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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00020849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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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 00020849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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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한국의 이상적 남성성 계보 캐내기
한국 사회에서 남자란?
삽화 하나. 1909년 7월 어느 날. 도쿄에 유학중이던 유학생들이 팀을 나눠 도쿄에서 야구 대회를 열었다. 한국 야구사상 한국팀끼리 맞붙은 최초의 경기였던 이날 대회에서는 유학생들이 만든 것임에 분명한 대회가가 울려 퍼졌다. “무쇠골격 돌근육 소년 남자야 애국의 정신을 분발하여라”로 시작되는 대회가 〈소년 남자〉는 이후 “광복군 노래”로 알려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삽화 둘. 2001년 말. 한 ‘몸짱’ 가수가 미국 시민권 획득을 통해 병역을 회피한 뒤 사실상 연예계에서 퇴출당한다. ‘대한의 남아로서 군대에 꼭 가겠다’고 여러 차례 밝히다가 막상 군대에 가야 할 시기가 되자 미국 시민권을 받아버린 행위가 ‘국민적 분노’를 자아낸 것이다. 덕분에 이 가수는 연예 활동은 물론 한국에 입국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위의 두 삽화는 한국 사회에서 남자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무쇠골격’과 ‘돌근육’을 애국을 위해 쓰는 남자, 국가를 위해 국민의 의무인 군대를 기꺼이 다녀온 남자. 대한민국이 요구하는 바람직한 남성상의 표준은 이처럼 국가를 개인의 우위에 두고, 애국이라는 정신적 가치와 신체 단련이라는 육체적인 힘을 동시에 구현하기 위해 애쓰는 남자다. 이것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한국의 이상적 남성상이다.
1900년대 남성 담론을 통해 본 한국의 이상적 남성성
박노자 교수의 《씩씩한 남자 만들기―한국의 이상적 남성성의 역사를 파헤치다》는 한국의 이러한 ‘씩씩한 남자 만들기’의 역사를 통해 한국의 이상적 남성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살핀다.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자행된 개인 말살의 역사에 연구의 초점을 맞춰온 박노자 교수는 이 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다음의 문제들을 규명하려 한다. 1900년대 후반의 남자다움에 대한 이상은 전통 사회의 남성상과 어떠한 관계를 갖는가? 남성다움에 대한 새로운 이상은 어떻게 구성되었고, 어떠한 사회적 현실이 그것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가? 다양한 언론매체에서 규정된 이상들과 일상생활에서 실천되는 남성성 사이에는 어떤 차이들이 있는가?
이 같은 탐구는 전근대의 여러 남성성들과 근대적인 남성성, 즉 ‘훈련된’ 남성성을 비교함으로써 연속성과 단절성을 동시에 이해하려는 일종의 “계보 캐내기”다. 이성적 남성성의 계보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일은 과거를 살았던 이들이 추구했던 남성성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나아가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남성다움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한다.
구한말 양반과 상것의 이상적 남성성을 가다
남성성이란?
이 책의 주제는 근대 초기의 남성성 형성이다. 따라서 남성성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박노자는 남성성, 즉 “남자다움”에 대한 사회적 이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성성이란 생물학적인 남성다움을 둘러싼 사회적 구성물, 복잡한 권력관계의 망에 의해 지탱되고 지배적인 문화의 틀과 이데올로기를 통해 구체화되는 패러다임을 가리킨다. 요즘식으로 말한다면 “남성다움의 담론”을 연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남성성에 대한 이 같은 정의 후 박노자는 담론의 다선성多線性을 논한다. 남성다움의 담론이 수많은 모순과 갈등을 내포한, 단선單線적이지도 단일하지도 않은 담론이었다는 것이다. “지배 담론이라고 해서 일사불란하고 초지일관되게 통일된 모습으로 전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권력관계의 복잡한 그물망이 언제나 지배 계급 내의 서로 다른 파벌 간 그리고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 경쟁과 투쟁의 장인 까닭에, 이 관계들에 의해 생산되고 유지되는 패러다임들은 대개 복합적이고 상호모순적인 의미들을 포괄하며, 항시 유동적이고 도전받고 전복되고 재규정된다.”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박노자는 구한말 남성성에 대한 담론이 크게 선비들의 ‘군자’ 패러다임과 평민들의 ‘거친 남자’ 패러다임으로 나뉜다고 말한다.
“군자”와 “거친 남자”, 구한말 남성들의 남성다움
구한말 남성들이 꿈꾸던 이상적 남성성은 양반과 평민이 서로 달랐다. 양반의 경우 왕조국가와 성리학적인 도덕규범에서 벗어나 점차 “민족의 독립과 자주”라는 새로운 지상 가치로 옮겨가던 “군자”를 이상적 남성의 전형으로 여기고 있었다. 반면 평민들은 겁 없는 협객을 존중하고 거친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거친 남자”를 남성다움의 전형으로 여기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고상한 목표”, 자기 수양, 도덕적 청렴 등을 부각시키던 선비들의 “군자” 패러다임은 구한말 대표적인 유학자이던 곽종석에게서 잘 확인할 수 있다. 곽종석은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왕에게 직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망국의 책임에 괴로워하면서도 그 고통을 외면적인 무력 저항으로 표출시키지 않은 선비 중의 선비였다. 의분義憤과 비분강개를 품속에 간직한 채 살았던 곽종석의 모습은 이후 최남선 등이 남성다움의 표상으로 “자기희생”을 강조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반면 평민들은 세시풍속의 일종으로서 이웃마을 사이의 돌싸움에서 드러나는 사납고 거친 남성성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주문을 외우면서 총을 쏘는 일본군을 상대로 과감한 전쟁을 벌이던 동학 농민들, 1896년 쓰치다 조고를 살해함으로써 국모 복수의 장엄한 의식을 실행한 김구, 의협호한들의 우정과 음주가무와 사냥 등을 즐기는 자신의 성향에 대한 자부심을 최후의 순간까지 간직했던 안중근의 모습은 그러한 평민들의 이상적 남성성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같은 평민들의 “거친 남자” 패러다임은 일제 강점기 새로운 남성적 에토스 중 하나로 강조되는 군사주의로 이어진다.
1900년대, “애국적 남성의 훈련된 신체”를 꿈꾸다
이상적 남성의 조건들
구한말 양반과 평민의 토착적 남성성 패러다임은 새로운 조선을 꿈꾸던 1900년대 계몽주의자들에게 계승되어 “애국적 남성의 훈련된 신체” 강조로 발현된다. 《독립신문》, 《제국신문》 등의 신문과 《서우》, 《호남학보》 등의 학회지들은 ‘체육 만세’와 ‘모험 만세’를 외치며 청년들이 건강한 신체를 바탕으로 애국의 길에 나설 것을 호소한다.
이들이 내건 “애국적 남성”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개인이 국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인식이다. 개인은 자기희생을 통해 국가에 봉사해야 한다. 비스마르크와 잔 다르크가 강조되고, 헌신적 정신이 애국을 위한 최고의 덕목으로 칭송된 것은 애국하는 남성에 대한 이러한 인식 때문이었다. 둘째, 정신적인 힘과 신체적인 힘, 양자 모두의 구현이다. 사내다운 힘과 애국심은 열강들의 침략에 의해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진 상황 하에서 남성들이 추구해야 할 최우선의 가치였다. 셋째, 명예와 명성, 성공과 공훈에 대한 집착이다. 젊은 영웅들은 “국가 존망에 대한 책임”, “시대의 경쟁”에서 꼭 이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양쪽 어깨에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옛날처럼 삼강오륜의 실천을 위해서가 아니라 “명예를 사랑하는” 정신으로 온갖 “모험”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대한영웅”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용기와 자신력과 명예심, 자부심과 독립의 기상”이었다. 여기에 운동장에서 단련된 “무쇠골격”과 “시대의 경쟁”을 마다하지 않는 경쟁심 등을 추가하면 1900년대 후반 계몽주의자들이 생각했던 남성 “모범생”의 그림이 거의 완벽하게 그려진다.
이상적 남성의 훈육, 꿈에 머물다
1900년대 근대주의자들이 가장 열망했던 남성은 이따금 운동 경기를 즐기거나 민족과 국가에 대해 막연한 애국심을 느끼는 데서 그치는 남성이 아니었다. 정기적인 훈련과 명령의 정확한 수행이라는 잣대로 자신들의 가치를 측정하는 남성, “군인”의 이상에 따라 훈육된 남성이 바로 근대주의자들의 이상적 남성이었다. 그러한 남성의 생산은 근대의 의무교육 체제와 징병제를 통해 근본적으로 달성해야 할 과제였다.
그러나 징병제 도입에 관한 고종의 1903년 3월 조칙은 사死문서로 남고 말았고, 의무교육 도입을 위한 1900년대 후반 학술 및 교육 단체들의 운동은 이렇다 할 만한 가시적인 결과를 낳지 못했다. 식민지 시대 조선의 지식인들이 상찬했던 훈육되고 군사화된 남성성이라는 새로운 모델은 태평양 전쟁의 “총동원” 기간 중에 그리고 1945년 이후 남한과 북한의 권위주의적 병영국가들에 의해 겨우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다.
식민지 남성은 기댈 조국이 없다는 점 때문에 늘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근대주의자들은 그러한 열등감의 해소를 위해 신체 단련과 애국적 정신 무장을 끊임없이 주문했다. 인근의 타 민족에 비해 우월한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도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근대적 군사훈련의 부재 때문이라는 인식 하에 외국인 지도자를 모셔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고, 운동장에서의 스포츠와 군사 훈련을 통해 남성적인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를 실천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호소력이 대단히 높은 “근대의 꿈”으로 남았다.
한국 남성의 미래?
여전히 진행 중인 국민적 신체 다듬기
“체육만이 군국민軍國民을 창출하는 강국强國, 우승優勝의 길”이라는 100년 전의 “제국주의 전성기”는 이미 끝난 지 오래다. 박정희가 “체력이 국력”이라면서 국민들에게 장엄하게 “지시”했던 유신 시절의 병영국가도 이제는 거의 과거형이다.
그러나 국가 안에서 주도권을 잡아버린 대기업들은 국가가 더 이상 중요시하지 않는 “국민적 신체 다듬기”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다. 국내 주요 기업 가운데 약 40퍼센트 정도는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합숙 훈련을 포함하는 “교육”을 실시한다. 교육의 주종을 이루는 것은 물론 업무 관련 내용이다. 하지만 “애사愛社” 교육과 같은 일종의 “조합주의적 세뇌”도 교육의 큰 몫을 차지한다. “일체감”, “협동심”을 배양한다는 목적 하에 실시하는 강도 높은 신체 훈련도 단골메뉴다. 국가보다 한국 사회의 핵심 지배조직인 대기업이 “국민적 신체 다듬기”의 주체가 된 것이다.
“극기 훈련 캠프에서 윗사람의 구령에 따라 다 같이 움직여본 사원이라면 명령 수행 차원에서 뛰어날 것이다. 또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세계 최장에 가까운 노동시간과 업무 강도를 참아내기 어렵다.” 이것이 기업 경영진의 계산이다. 수출 위주의 대기업들은 일본, 중국 경쟁사와의 경쟁을 일종의 전쟁으로 인식하고 사원들을 태극전사로 여긴다. 해병 캠프에서 고된 훈련을 유쾌하게 해내는, 능력과 애사심이 강한 “씩씩한 남자”가 여전히 대한민국 남성성의 전형典型 중 하나인 것이다.
배려하는 남자, 돌봄을 할 줄 아는 남자를 위해
인의염치와 비분강개의 선비, 패싸움할 때에는 주먹도 잘 쓰지만 평상시에는 부모를 효성스럽게 대하고 여편네들을 잘 다스리는 조선 시대의 “남정네”, 근대 초기의 “스포츠를 애호하는 애국자”, 박정희 시대의 “체위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국민”, 재벌 시대의 “잘 훈련된 수출 전사”, 그리고 운동을 적당히 즐기고 살을 적당히 빼고 신체를 “건강” 코드 위주로 보는 2000년대 이후의 “웰빙족”. 이처럼 복잡다단한 길을 걸어온 한국의 남성성이 현재에는 과연 무엇을 지향해야 옳을 것일까? 현 시점에서 “남자의 씩씩함”은 어떻게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박노자는 “국민”, “민족의 일분자”, “수출 전사”, 금전거래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는 향락주의적 남성을 대신할 수 있는 바람직한 “씩씩한 남성상”으로 “배려하는 남자”, “돌봄을 할 줄 아는 남성”을 제안한다. 배려, 돌봄은 대단히 넓은 의미를 지닌다. 가족 범위 안에서 보면 여성과 가사를 분담하고 육아 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사회 차원에서는 웰빙보다 각종 사회 문제들을 더 우선시하여 그 해결에 자신을 과감히 던지는 “사회 참여형” 남성을 의미한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남성도 배려하는 남자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등 여러 부문에서 자신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애쓰는 남자도 배려하는 남자다. 적극적인 배려의 생활은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 정기적인 운동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배려는 과거의 근대적 이상들과의 단절이 아니라 발전적 계승이다.
한국 사회에서 남자란?
삽화 하나. 1909년 7월 어느 날. 도쿄에 유학중이던 유학생들이 팀을 나눠 도쿄에서 야구 대회를 열었다. 한국 야구사상 한국팀끼리 맞붙은 최초의 경기였던 이날 대회에서는 유학생들이 만든 것임에 분명한 대회가가 울려 퍼졌다. “무쇠골격 돌근육 소년 남자야 애국의 정신을 분발하여라”로 시작되는 대회가 〈소년 남자〉는 이후 “광복군 노래”로 알려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삽화 둘. 2001년 말. 한 ‘몸짱’ 가수가 미국 시민권 획득을 통해 병역을 회피한 뒤 사실상 연예계에서 퇴출당한다. ‘대한의 남아로서 군대에 꼭 가겠다’고 여러 차례 밝히다가 막상 군대에 가야 할 시기가 되자 미국 시민권을 받아버린 행위가 ‘국민적 분노’를 자아낸 것이다. 덕분에 이 가수는 연예 활동은 물론 한국에 입국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위의 두 삽화는 한국 사회에서 남자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무쇠골격’과 ‘돌근육’을 애국을 위해 쓰는 남자, 국가를 위해 국민의 의무인 군대를 기꺼이 다녀온 남자. 대한민국이 요구하는 바람직한 남성상의 표준은 이처럼 국가를 개인의 우위에 두고, 애국이라는 정신적 가치와 신체 단련이라는 육체적인 힘을 동시에 구현하기 위해 애쓰는 남자다. 이것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한국의 이상적 남성상이다.
1900년대 남성 담론을 통해 본 한국의 이상적 남성성
박노자 교수의 《씩씩한 남자 만들기―한국의 이상적 남성성의 역사를 파헤치다》는 한국의 이러한 ‘씩씩한 남자 만들기’의 역사를 통해 한국의 이상적 남성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살핀다.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자행된 개인 말살의 역사에 연구의 초점을 맞춰온 박노자 교수는 이 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다음의 문제들을 규명하려 한다. 1900년대 후반의 남자다움에 대한 이상은 전통 사회의 남성상과 어떠한 관계를 갖는가? 남성다움에 대한 새로운 이상은 어떻게 구성되었고, 어떠한 사회적 현실이 그것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가? 다양한 언론매체에서 규정된 이상들과 일상생활에서 실천되는 남성성 사이에는 어떤 차이들이 있는가?
이 같은 탐구는 전근대의 여러 남성성들과 근대적인 남성성, 즉 ‘훈련된’ 남성성을 비교함으로써 연속성과 단절성을 동시에 이해하려는 일종의 “계보 캐내기”다. 이성적 남성성의 계보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일은 과거를 살았던 이들이 추구했던 남성성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나아가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남성다움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한다.
구한말 양반과 상것의 이상적 남성성을 가다
남성성이란?
이 책의 주제는 근대 초기의 남성성 형성이다. 따라서 남성성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박노자는 남성성, 즉 “남자다움”에 대한 사회적 이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성성이란 생물학적인 남성다움을 둘러싼 사회적 구성물, 복잡한 권력관계의 망에 의해 지탱되고 지배적인 문화의 틀과 이데올로기를 통해 구체화되는 패러다임을 가리킨다. 요즘식으로 말한다면 “남성다움의 담론”을 연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남성성에 대한 이 같은 정의 후 박노자는 담론의 다선성多線性을 논한다. 남성다움의 담론이 수많은 모순과 갈등을 내포한, 단선單線적이지도 단일하지도 않은 담론이었다는 것이다. “지배 담론이라고 해서 일사불란하고 초지일관되게 통일된 모습으로 전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권력관계의 복잡한 그물망이 언제나 지배 계급 내의 서로 다른 파벌 간 그리고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 경쟁과 투쟁의 장인 까닭에, 이 관계들에 의해 생산되고 유지되는 패러다임들은 대개 복합적이고 상호모순적인 의미들을 포괄하며, 항시 유동적이고 도전받고 전복되고 재규정된다.”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박노자는 구한말 남성성에 대한 담론이 크게 선비들의 ‘군자’ 패러다임과 평민들의 ‘거친 남자’ 패러다임으로 나뉜다고 말한다.
“군자”와 “거친 남자”, 구한말 남성들의 남성다움
구한말 남성들이 꿈꾸던 이상적 남성성은 양반과 평민이 서로 달랐다. 양반의 경우 왕조국가와 성리학적인 도덕규범에서 벗어나 점차 “민족의 독립과 자주”라는 새로운 지상 가치로 옮겨가던 “군자”를 이상적 남성의 전형으로 여기고 있었다. 반면 평민들은 겁 없는 협객을 존중하고 거친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거친 남자”를 남성다움의 전형으로 여기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고상한 목표”, 자기 수양, 도덕적 청렴 등을 부각시키던 선비들의 “군자” 패러다임은 구한말 대표적인 유학자이던 곽종석에게서 잘 확인할 수 있다. 곽종석은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왕에게 직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망국의 책임에 괴로워하면서도 그 고통을 외면적인 무력 저항으로 표출시키지 않은 선비 중의 선비였다. 의분義憤과 비분강개를 품속에 간직한 채 살았던 곽종석의 모습은 이후 최남선 등이 남성다움의 표상으로 “자기희생”을 강조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반면 평민들은 세시풍속의 일종으로서 이웃마을 사이의 돌싸움에서 드러나는 사납고 거친 남성성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주문을 외우면서 총을 쏘는 일본군을 상대로 과감한 전쟁을 벌이던 동학 농민들, 1896년 쓰치다 조고를 살해함으로써 국모 복수의 장엄한 의식을 실행한 김구, 의협호한들의 우정과 음주가무와 사냥 등을 즐기는 자신의 성향에 대한 자부심을 최후의 순간까지 간직했던 안중근의 모습은 그러한 평민들의 이상적 남성성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같은 평민들의 “거친 남자” 패러다임은 일제 강점기 새로운 남성적 에토스 중 하나로 강조되는 군사주의로 이어진다.
1900년대, “애국적 남성의 훈련된 신체”를 꿈꾸다
이상적 남성의 조건들
구한말 양반과 평민의 토착적 남성성 패러다임은 새로운 조선을 꿈꾸던 1900년대 계몽주의자들에게 계승되어 “애국적 남성의 훈련된 신체” 강조로 발현된다. 《독립신문》, 《제국신문》 등의 신문과 《서우》, 《호남학보》 등의 학회지들은 ‘체육 만세’와 ‘모험 만세’를 외치며 청년들이 건강한 신체를 바탕으로 애국의 길에 나설 것을 호소한다.
이들이 내건 “애국적 남성”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개인이 국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인식이다. 개인은 자기희생을 통해 국가에 봉사해야 한다. 비스마르크와 잔 다르크가 강조되고, 헌신적 정신이 애국을 위한 최고의 덕목으로 칭송된 것은 애국하는 남성에 대한 이러한 인식 때문이었다. 둘째, 정신적인 힘과 신체적인 힘, 양자 모두의 구현이다. 사내다운 힘과 애국심은 열강들의 침략에 의해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진 상황 하에서 남성들이 추구해야 할 최우선의 가치였다. 셋째, 명예와 명성, 성공과 공훈에 대한 집착이다. 젊은 영웅들은 “국가 존망에 대한 책임”, “시대의 경쟁”에서 꼭 이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양쪽 어깨에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옛날처럼 삼강오륜의 실천을 위해서가 아니라 “명예를 사랑하는” 정신으로 온갖 “모험”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대한영웅”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용기와 자신력과 명예심, 자부심과 독립의 기상”이었다. 여기에 운동장에서 단련된 “무쇠골격”과 “시대의 경쟁”을 마다하지 않는 경쟁심 등을 추가하면 1900년대 후반 계몽주의자들이 생각했던 남성 “모범생”의 그림이 거의 완벽하게 그려진다.
이상적 남성의 훈육, 꿈에 머물다
1900년대 근대주의자들이 가장 열망했던 남성은 이따금 운동 경기를 즐기거나 민족과 국가에 대해 막연한 애국심을 느끼는 데서 그치는 남성이 아니었다. 정기적인 훈련과 명령의 정확한 수행이라는 잣대로 자신들의 가치를 측정하는 남성, “군인”의 이상에 따라 훈육된 남성이 바로 근대주의자들의 이상적 남성이었다. 그러한 남성의 생산은 근대의 의무교육 체제와 징병제를 통해 근본적으로 달성해야 할 과제였다.
그러나 징병제 도입에 관한 고종의 1903년 3월 조칙은 사死문서로 남고 말았고, 의무교육 도입을 위한 1900년대 후반 학술 및 교육 단체들의 운동은 이렇다 할 만한 가시적인 결과를 낳지 못했다. 식민지 시대 조선의 지식인들이 상찬했던 훈육되고 군사화된 남성성이라는 새로운 모델은 태평양 전쟁의 “총동원” 기간 중에 그리고 1945년 이후 남한과 북한의 권위주의적 병영국가들에 의해 겨우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다.
식민지 남성은 기댈 조국이 없다는 점 때문에 늘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근대주의자들은 그러한 열등감의 해소를 위해 신체 단련과 애국적 정신 무장을 끊임없이 주문했다. 인근의 타 민족에 비해 우월한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도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근대적 군사훈련의 부재 때문이라는 인식 하에 외국인 지도자를 모셔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고, 운동장에서의 스포츠와 군사 훈련을 통해 남성적인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를 실천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호소력이 대단히 높은 “근대의 꿈”으로 남았다.
한국 남성의 미래?
여전히 진행 중인 국민적 신체 다듬기
“체육만이 군국민軍國民을 창출하는 강국强國, 우승優勝의 길”이라는 100년 전의 “제국주의 전성기”는 이미 끝난 지 오래다. 박정희가 “체력이 국력”이라면서 국민들에게 장엄하게 “지시”했던 유신 시절의 병영국가도 이제는 거의 과거형이다.
그러나 국가 안에서 주도권을 잡아버린 대기업들은 국가가 더 이상 중요시하지 않는 “국민적 신체 다듬기”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다. 국내 주요 기업 가운데 약 40퍼센트 정도는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합숙 훈련을 포함하는 “교육”을 실시한다. 교육의 주종을 이루는 것은 물론 업무 관련 내용이다. 하지만 “애사愛社” 교육과 같은 일종의 “조합주의적 세뇌”도 교육의 큰 몫을 차지한다. “일체감”, “협동심”을 배양한다는 목적 하에 실시하는 강도 높은 신체 훈련도 단골메뉴다. 국가보다 한국 사회의 핵심 지배조직인 대기업이 “국민적 신체 다듬기”의 주체가 된 것이다.
“극기 훈련 캠프에서 윗사람의 구령에 따라 다 같이 움직여본 사원이라면 명령 수행 차원에서 뛰어날 것이다. 또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세계 최장에 가까운 노동시간과 업무 강도를 참아내기 어렵다.” 이것이 기업 경영진의 계산이다. 수출 위주의 대기업들은 일본, 중국 경쟁사와의 경쟁을 일종의 전쟁으로 인식하고 사원들을 태극전사로 여긴다. 해병 캠프에서 고된 훈련을 유쾌하게 해내는, 능력과 애사심이 강한 “씩씩한 남자”가 여전히 대한민국 남성성의 전형典型 중 하나인 것이다.
배려하는 남자, 돌봄을 할 줄 아는 남자를 위해
인의염치와 비분강개의 선비, 패싸움할 때에는 주먹도 잘 쓰지만 평상시에는 부모를 효성스럽게 대하고 여편네들을 잘 다스리는 조선 시대의 “남정네”, 근대 초기의 “스포츠를 애호하는 애국자”, 박정희 시대의 “체위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국민”, 재벌 시대의 “잘 훈련된 수출 전사”, 그리고 운동을 적당히 즐기고 살을 적당히 빼고 신체를 “건강” 코드 위주로 보는 2000년대 이후의 “웰빙족”. 이처럼 복잡다단한 길을 걸어온 한국의 남성성이 현재에는 과연 무엇을 지향해야 옳을 것일까? 현 시점에서 “남자의 씩씩함”은 어떻게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박노자는 “국민”, “민족의 일분자”, “수출 전사”, 금전거래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는 향락주의적 남성을 대신할 수 있는 바람직한 “씩씩한 남성상”으로 “배려하는 남자”, “돌봄을 할 줄 아는 남성”을 제안한다. 배려, 돌봄은 대단히 넓은 의미를 지닌다. 가족 범위 안에서 보면 여성과 가사를 분담하고 육아 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사회 차원에서는 웰빙보다 각종 사회 문제들을 더 우선시하여 그 해결에 자신을 과감히 던지는 “사회 참여형” 남성을 의미한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남성도 배려하는 남자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등 여러 부문에서 자신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애쓰는 남자도 배려하는 남자다. 적극적인 배려의 생활은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 정기적인 운동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배려는 과거의 근대적 이상들과의 단절이 아니라 발전적 계승이다.
목차
◎ 목 차
1부 근대, 남성성의 찬미
2부 변화하는 대장부: 남성성에 대한 비전의 변화
1장 남성성에 대한 기술/규정과 수행의 전통
2장 1890년대 남성다움의 새로운 모델: 이념과 실제
3장 1900년대 및 그 이후의 새로운 남성성 담론의 토착화
3부 근대적 남성의 다양한 얼굴들: `민족 전사`, `태극 전사`, `수출 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