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으로 치닫는 숫자 중심의 경제학에 인간적 사유와
윤리적 관계를 포함시킨 아시아 최초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티아 센.
오늘 그가 들려주는 우리가 지켜야 할 ‘경제학의 양심’을 읽는다!


■ 이 책의 개요

이 책은 ‘경제학자의 양심’으로 불리는 아시아 최초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티아 센이 전 세계를 돌며 각종 강연과 워크숍 등지에서 발표했던 글들 중 기아와 빈곤의 극복 문제 그리고 인간의 안전보장에 관한 핵심적인 내용들을 모아서 엮은 센 경제 사상의 기본서이다. 제1장 「빈곤을 넘어 아시아를 위한 발전전략을 모색하다」, 제2장 「이른바 ‘아시아적’인 가치는 존재하는가?」, 제3장 「보편적 가치로서의 민주주의를 말하다」, 제4장 「왜 인간의 안전보장인가?」, 제5장 「기초교육은 인간의 안전보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의 총 5개 장과 옮긴이가 쉽게 정리한 아마티아 센의 생애와 사상 이야기인 「아마티아 센을 말하다」로 구성되어 있다. 어렵고 딱딱한 이론 이야기가 아닌 편안한 서술의 강연집인 만큼 센 사상의 얼개를 알기 부족함 없는 최적의 입문서이다. 경제학과 윤리학, 철학의 영토를 전방위로 아우르며 기존 경제학적 관점에 인간다운 삶을 반영하고자 한 ‘센코노믹스’의 요체를 확인할 수 있다.

1998년 노벨상위원회는, 불평등과 빈곤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주요 경제적 문제들에 관한 논의에서 윤리와 철학을 복원시킨 인도의 후생경제학자(복지경제학자) 아마티아 센 박사를 그해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경제학상 부문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최초의 수상이자, 주로 시장경제 분야의 보수적인 학자들에게 상을 수여하던 관행을 깬 사건이었다.

센이 인간의 삶과 복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근저에는 그가 어릴 적 경험한 일련의 불행한 사건들이 자리한다. 센은 9살 되던 해인 1943년, 벵골에서 벌어진 대기근을 목격했다.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이 참사는 어린 센을 경악과 충격 속에 내몰며 조국 인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거기에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빈번히 발생하던 종교적 분쟁과 테러, 극심한 폭력들 또한 센의 사상과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 비극적인 몇몇 사건들은 센으로 하여금 “인간의 생존, 생활, 그리고 존엄성을 억압하는 모든 종류의 위협을 포괄적으로 제거하고 이들 위협에 맞서는” ‘인간 안전보장’의 당위성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센코노믹스의 전반을 이루는 핵심적인 전거를 마련했다.

그렇다면 센코노믹스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센 사상의 모든 것이다. 인간성이 사라진 현대경제학에 메스를 가하고 경제학의 영지에 철학과 윤리적 시선을 반영한 아마티아 센 이론의 총체다. 센코노믹스는 결과와 수치에만 집중하는 알맹이 없는 양적 성장을 경계한다. 대신 그것은 ‘사람다운 삶’을 우위에 둔 양심적인 경제관점을 지향한다. 즉 인간의 행복을 반영하는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가치를 실현하고 인간의 잠재능력을 개발하며, 동시에 인간의 생존과 존엄을 위협하는 모든 위해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그가 이야기하는 센코노믹스의 핵심이다.

이 책에 보이는 센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인간의 존엄이 사라진 상태인 기아와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묻고, 편협하고 배타적인 문명 가르기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진정한 발전전략을 모색하며, 인간의 안전을 보장하고 인간이 지닌 잠재능력을 개발하는 것만이 진정한 경제성장을 불러온다고 역설한다. 즉 그의 이야기에는 한결같이 ‘사람’ 이라는 절대 불변의 가치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은 대단히 근본적이고 기초적이며 상식적인 문제 제기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뒤로 처지기 쉬운, 가장 망각하기 쉬운 제안들이기도 하다. 과연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센의 신념처럼 “적절한 영양섭취, 좋은 건강유지, 나쁜 병에 걸리지 않는 것, 조기사망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삶의 안전을 보장받고, “행복한 생활, 자기존중 확보”를 성취하며, 나아가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인생”을 누리기 위해선 우리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발을 옮겨야 할 것인가. 여기 지칠 줄 모르는 한 노학자의 목소리에 그 답이 있다.


■ 이 책의 내용

산티니케탄, 센코노믹스의 시작
먼저 이 책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마티아 센이라는 인물의 생애와 사상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옮긴이 해제 「아마티아 센을 말하다」로 시작한다. 센은 1933년 인도 동부의 벵골에서 태어났다.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 지배 아래 있었고 독립을 향한 열망 및 종교와 민족적 갈등이 야기한 분쟁으로 사회 내부는 몹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러나 센은 비교적 풍요로웠던 가정환경 덕에 어린 시절 타고르가 설립한 산티니케탄의 학교에서 진보적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중국, 일본,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아라비아와 페르시아의 전통"을 가르치며 문화적, 종교적, 민족적 다양성을 긍정한 산티니케탄의 열린 교육이야말로 센코노믹스의 시작을 가능케 한 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기아와 민주주의의 상관관계
그러나 센이 아홉 살 되던 해 벵골에 대기근이 발생하면서 수백만 명의 엄청난 아사자가 속출했다. 거기에 각기 다른 종교를 지닌 자들 사이에 반목과 분쟁, 테러와 폭력이 빈번히 발생해 민중의 삶은 피폐해져만 갔다. 이 일련의 경험들이 이후 센의 사고와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는 결국 센으로 하여금 인간의 자유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확신하게 만들었다. 제1장 「빈곤을 넘어 아시아를 위한 발전전략을 모색하다」와 제2장 「이른바 ‘아시아적’인 가치를 바로잡다」, 제3장 「보편적 가치로서의 민주주의를 말하다」를 비롯한 책의 전반에서 센코노믹스의 기저를 이루는 민주주의를 향한 그의 신념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센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각 지역마다 종교적 내분과 사회적 무질서가 확산되어 인도의 어려움은 가중되기만 하였지요. 그때는 인도에서 단합된 민주주의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반세기가 흐른 지금, 인도의 민주주의는 거친 파도를 넘어 순풍 속에서 잘 기능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의견대립은 헌법상의 규범과 절차 속에서 대체적으로 해결되었으며, 정부도 선거와 의회규칙에 따라 정권교체를 이뤘습니다. 인도는 여러 면에서 이질적인 요소가 집합된 나라로서 때로는 어색하고 세련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민주적 체제를 갖춘 정치적 통합능력을 놀랄 만큼 발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잘 운영된 민주체제가 인도 전체를 하나로 모은 것이지요.”

그러나 센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는 비단 사회통합의 기능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었다. 민주주의가 인간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 작용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갑작스런 기근이 발생한다고 해서 모든 사회에 아사자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며 이 책에서 생존과 관련한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기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회 전체적으로 식량의 총 공급량을 크게 감소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기근은 시장을 위축시켜 전반적인 실업을 야기하며, 식량가격의 일시적 상승을 유도하고, 식량부족에 대한 공포와 사재기, 몇몇 사람들만의 소득만을 증대하는 불균등한 호황을 불러온다. 즉 공급량 자체의 감소가 아닌, “식량과 그 밖에 필요한 생활필수품의 구매력이며 갑작스럽게 박탈된 재화의 지배권리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개개인의 구체적 능력”인 ‘인타이틀먼트(entitlement)’의 붕괴가 재해나 기근으로부터 일상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이에 현실적으로 인타이틀먼트의 확보가 어려운 빈민층은 온전히 사회의 공적 안전망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않은 나라는 이러한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으로 남는다. 센은 말한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는 곳에서는 지도층이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에 기아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세계적으로 비참한 기근의 역사 가운데 비교적 자유로운 언론이 존재한 민주국가에서는 본격적인 기근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수단, 에티오피아, 소말리아나 다른 독재국가에서 발생한 기근, 1930년대 소련 스탈린 정권 치하의 기근, 1958년에서 1961년 사이 중국의 기근, 최근 북한에서 발생한 기근에서도 우리는 예외없이 그런 법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군부 독재정권 아래 굶주림과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현 미얀마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 책에 보이는 센의 혜안과 통찰이 시공간에 구애 받지 않고 모두에게 본질적으로 유효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진정한 경제성장의 동력, 인간의 안전보장과 인간개발
센은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적인 가치로서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과 함께, 책의 후반부인 제4장 「왜 인간의 안전보장인가?」와 제5장 「기초교육은 인간의 안전보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서 인간의 안전보장, 그리고 인간의 능력 개발에 주목한다. 즉 그는 해당 강연들에서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사회 저변의 기초적 여건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문제와, 발전과 성장의 모든 가능성은 ‘인간’에 내재되어 있음을 다루고 있다. 센은 일부 동아시아 국가들의 권위주의 정책이 고도의 성장을 촉진한 것이라는 세간의 관점에 단호히 반대한다. 그는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로 대변되는 서구 중심의 편협한 문명 가르기를 비판하며, 권위와 형식주의는 아시아만의 유물이 아니라 서구의 고대와 중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던 탈지역?탈문화적 소산임을 설명한다. 동시에 몇몇 고전 문헌을 통해 아시아의 전통에도 엄연히 자유와 관용이 충만함을 명쾌한 논리로 증명해낸다. 센에 따르면 가치에는 “보편적인 가치가 있을 뿐 지역과 문명에 따른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흔히 ‘아시아적’인 가치로 오인되는 권위주의나 형식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단기간에 높은 경제성장을 일궈낸 일명 “동아시아 전략”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초교육을 위시로 한 인간개발과, 의료 및 공공정책으로 요약되는 사회 안전망 확충이다. 특히 센은 이 책에서 문자해독이나 계산능력을 포함한 “기초교육”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매우 중요함을 강조했다. 첫째, “읽고 쓰고 계산하는 능력이 없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생활이 불안정해진다”는 것, 둘째, 기초교육이 “사람들이 취직하고 소득이 많은 직장을 잡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 셋째, “읽고 쓰는 능력이 없다면 법적권리를 이해하고 법에 호소할 수 있는 능력이 매우 제한될 수 있”다는 것, 넷째, “문맹은 사회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가두어버림으로써 곧바로 불안정한 삶을 확산시”킨다는 것, 즉 “정치적 발언과 삶의 안전보장은 매우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등이 바로 그 내용이다. 기초교육은 “인간 자신의 정체성과, 인간이 인간을 서로 대하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쳐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사회 구조를 형성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이러한 기초교육과 함께 질 좋은 “의료정책 등의 형태로 실현된 인간개발은” 모두의 삶을 윤택하게 해 “끝내는 경제와 공업화 발전을 크게 촉진하며,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시장경제를 광범위하게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피드백 작용을 거쳐 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까지 이른다. 이것이 바로 센이 추구한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성장’이자 이 책 『센코노믹스, 인간의 행복에 말을 거는 경제학』의 또 다른 핵심인 셈이다. 센이 남긴 다음의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작금의 우리 사회는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경제발전은 국민 총생산(GNP)의 성장, 즉 소득과 부, 재화를 생산하거나 자본을 축적하는 1인당 국민 총생산의 성장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유와 행복, 존엄성의 확대까지도 의미합니다.”

‘사람’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희망에 기대어
다름 아닌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사람보다 시장을 더 대접하는 신자유주의와 빈곤과 불평등의 주범인 불공정한 세계화는 지금 이 시대의 심각한 위협이다. “시장의 문제는 시장 존재 자체에 있지 않고 대체로 시장 밖에” 있다고 하는 센의 말은 그러한 흐름에 맞서 적절한 규제 없이 수많은 불안요소들을 고삐 풀린 말처럼 마구잡이로 날뛰게 하는 우리 사회의 안이한 태도에 경종을 울린다. 그러나 센은 절망이 난무한 이 슬픈 시대를 결코 눈물로 읽지 않는다. 그는 이 책의 여러 강연을 통해 ‘인간’에서, 인간이 만들어가는 바로 ‘지금’에서 가장 큰 가능성을 엿본다. 날카로운 희망을 찾아낸다.

“우리는 인간의 생존을 불안정하게 하는 위협세력에 대응해 보다 긴밀하고 일치된 모습으로 맞서야 하는데, 이를 위해 우리들의 이해와 노력을 결집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현대에는 한껏 높아졌습니다. 우리들은 각종 위험과 위협이 가득 찬 세상과 만나고 있지만, 한편으론 온갖 재난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과학이 확실히 진보한 덕분에 이들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자산은 더욱 많아졌으니까요. 현대사회에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들이 어쩔 수 없이 증가한다 하더라도, 거기에 대처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지요.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속도와 물질, 무분별한 성장과 개발의 홍역을 앓고 있는 모두에게 더 나은 세상으로의 동참을 권유하는 노스승의 메시지다. 잊지 말아야 할, 나지막하지만 울림이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