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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저자
김원영
발행사항
서울: 푸른숲, 2010
형태사항
268p , 22cm
일반주기
청년 김원영의 과감한 사랑과 합당한 분노에 대하여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00021607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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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번호
    00021607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나는 서울대학교 로스쿨에 다닌다.
사람들은 나를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이라고 추켜세운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장애를 극복한 적이 없다.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될 생각은 없다.
나는 야한 장애인, 뜨거운 인간이 되고자 한다.

간략한 소개


책으로 출간되는 장애인 이야기는 대개 희망과 용기,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표방한다. 이 책의 저자 김원영의 삶도 어떤 면에서는 한 편의 ‘인간 승리의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초반 강원도의 시골 마을에서 수시로 뼈가 부러지는 골형성부전증을 안고 태어난 그는 열다섯 살까지 방 안에서만 지내다가 재활학교를 거쳐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노력 끝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장애인 인권 운동에 뛰어들고, 나아가 비장애인도 가기 어렵다는 로스쿨에 진학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누구나 의지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단순한 희망의 메시지가 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자신은 걸을 수 없는 다리, 매력적이기 어려운 외모, 가벼운 주머니를 쿨하게 인정하고 넘어가는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이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 여전히 걷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는 이십대 청년,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고 다른 모든 장애인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장애인 김원영 개인의 삶을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서 객관화하며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을 ‘천사 같은’과 ‘병신 육갑하는’이라는 수식어 사이에서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대해왔는지, 편견 가득한 시선 속에서 장애인들이 세상에 등장하기 위해 얼마나 애써왔는지,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장애인들이 고통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자신의 온몸과 전 생애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온몸으로 쓴 사회과학 에세이’다.
그러나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이 사회 비판이나 고발에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장애인을 비롯한 우리 시대의 모든 약자, 특히 ‘88만 원 세대’라 불리는 이십대들이 정당하지 못한 것에 ‘증오’가 아니라 ‘분노’할 수 있기를, 그 뜨거움 속에서 자신의 욕망과 열정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모두가 익숙한 선택을 하는 순간에 편견을 깨는 의외의 선택을 함으로써 자신과 같은 약자들이 세상에 등장할 수 있게 해준 용기 있는 사람들의 자유와 연대의 힘을 증언하고자 한다. 저자가 그려 보이는 우리 사회는 분명 이기심과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얼룩져 있지만 자유로운 창조와 연대의 가능성이 꿈틀대는 희망적인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은 무기력한 세대라 비판받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건강함과 또 다른 가능성을 증명하는 저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한 장애인의 이야기에서 편견과 싸워온 모든 약자들의 이야기, 나아가 가슴속에 뜨거운 욕망을 품고 자유를 일구어가는 우리 시대 모든 젊은이의 이야기로 점차 확장된다. 이것이 바로 스물아홉 청년 김원영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이유다.

출간 의의

소년은 어떻게 청년이 되는가

이 책은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물던 한 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분노하고 저항하며 세상에 등장하는 과정을 담은 사회 비판적인 에세이지만, 그에 앞서 한 연약한 소년이 삶의 고비마다 정체성의 변화를 겪으며 한 사람의 단단한 청년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성장기이다.
방 안에서 작은 창으로 학교 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던 소년은 열다섯 살에 ‘장애인 등록’을 하고, 이듬해 장애인들로만 이루어진 재활 학교에 입학한다. “아빠, 여기 이상한 장애인들이 너무 많아”라며 집에 돌아가고 싶다던 소년은 ‘다음 주’에 온다는 아빠를 기다리며 점차 그곳 생활에 익숙해져간다. 재활 학교에서 그는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던 ‘이상한 장애인들’ 사이에 “자신을 완전히 풀어놓았다. 가족과 함께 투병 생활을 하던 ‘골형성부전증 환자’임을 잊고 휠체어에 앉은 (내) 몸과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소년은 “골형성부전증을 안고 사랑을 하고 공부를 하고 연극을” 하며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점차 인정해가지만, 곧 장애인들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더 큰 세계로 나아가려는 꿈을 꾸게 된다. 그 길에서 장애인도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새로운 장애인’을 만나 용기를 얻고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비로소 ‘특수’의 세계에서 ‘일반’의 세계로 진입한 소년은 그 아찔한 높이에 좌절하지만 곧 무엇이든 잘하고 어떤 모욕에도 쿨한 ‘슈퍼 장애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슈퍼 장애인’답게 고등학교 3년을 치열하게 보내고, 그의 눈에 세상의 중심으로 보이던 서울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이제 장애인의 정체성을 벗어버리고 그냥 ‘서울대학교 학생 김원영’이 되려고 한다. “장애인 중 50퍼센트가 초등학교만 졸업하는 대한민국에서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인 그는 자신의 자부심과 “꿈 앞에서 또다시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우고 싶지 않았다. 추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본격화되던 장애인 인권 운동의 흐름은 그에게 다시 ‘나는 장애인이다’라고 선언하며 장애인의 학교생활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줄 것을 요구한다. 그 운동의 한복판에서 많은 독서와 토론을 거치며 그는 장애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회에 마땅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하나의 정체성으로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관점을 새롭게 배운다. 이전까지 그는 “삶을 극복하고, 장애를 극복하고, 희망과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적을 일으키는 동안 타야 할 대중교통이 필요하고, 기적을 위해 읽어야 할 책이 필요하며, 기적을 만들어내는 동안 먹어야 할 컵라면도 필요하다.” 꿈과 희망보다 당장 앞에 놓인 계단과 턱을 제거하는 일이 필요했던 그는 결국 장애인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고, 이 경험을 통해 “그때야 비로소 장애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골형성부전증 또는 장애 그 자체는 이미 내 몸이며 나 자신이다. 나는 이것을 ‘가지고’ 사는 게 아니라 이것 자체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휘어진 다리가 곧 내 삶이다. 골형성부전증이 아닌 몸은, 더 이상 김원영이 아니다.”
이렇게 기나긴 여정 끝에 ‘장애인’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 서울대 로스쿨이라는 ‘정상(正常)’ 세계의 ‘정상(頂上)’에 속한 그의 위치는 여전히 그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로 끊임없이 분열시키고 있다. 그에게는 “한쪽에 건강하고 열정적이며 좋은 직업과 매력적인 연인을 가진” 친구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아무 곳에도 갈 수가 없어 집을 지키는” 또 다른 친구들이 있다. 두 세계로 분열된 그의 자아는 지금 이 순간도 “서로를 부정하면서 공존하고 투쟁한다.”
아마도 이러한 분열과 혼란은 그가 평생에 걸쳐 고민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그 고민의 한가운데서 그는 여러 세계에 정체성을 걸치고 있는 존재로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을 긍정하며, 이질적인 것들의 종합과 초월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분노하고 사랑할 것을 다짐한다. 소년은 이제 불안정한 정체성조차 긍정할 수 있는 단단한 청년이 된 것이다.

나는 내가 들어갈 집단에 애초부터 적합한 인물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늘 부족했고, 적당하지 않았고, 그 집단과 조응할 수 없는 정체성이었다. 그래서 시작은 언제나 좌절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 세계와 새로운 방식으로 화해하고 상호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내곤 했다. 나는 기존의 질서에서 최고가 될 수는 없었지만 그 질서가 내 몸, 내 정체성과 조응하는 과정을 통해 나 자신과 외부 환경을 변화시켰다. 장애를 극복해본 적은 없지만, 나를 둘러싼 세계가 장애에 적응해나가는 변화를 경험했다. 그렇게 세상은 변화한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 생활과 이곳에서 한 공부가 내 삶을 또 얼마만큼 확장할지를 생각하면 설레기까지 한다. 세상은 또 얼마나,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 228~229쪽

‘희망’이란 말 뒤의 차가운 현실,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헬렌 켈러, 스티븐 호킹, 오토다케(《오체 불만족》의 저자) 등 불리한 신체적, 정신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낸 장애인들의 이야기는 자신의 불행한 처지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장애인은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존재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판에 박힌 시선이 장애인들의 구체적인 현실을 가리고 있을 뿐 아니라 장애인들로 하여금 외부의 기대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게 해 그들을 점점 더 소외된 존재로 만들어왔다고 말한다.
한 손에는 법전을, 다른 한 손에는 행인이 쥐어주고 간 천 원짜리 지폐를 들고 서 있는 저자는 그 두 세계가 어지러이 뒤섞인 채 살아온 자기 몸의 역사를 돌아보며, 장애인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과 장애인이 실제로 처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비장애인들은 대개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 열악한 교육 환경, 빈곤 등의 문제를 사회제도나 기부금, 자원봉사의 손길로 해결해주면 된다는 정도의 인식을 하고 있다. 저자는 그런 두루뭉술한 인식이 놓치고 있는 장애인들의 구체적인 고통과 저항의 움직임을 미시적 차원과 거시적 차원을 오가며 세밀하게 또한 분석적으로 그려 보인다. 이 책의 모델이 되었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마지막 문장에서 프란츠 파농이 “오 나의 육체여, 나로 하여 항상 물음을 던지는 인간이 되게 하소서”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는 자기 몸의 기억을 좇아 지나온 삶의 밑바닥까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장애인들의 “지옥 같은” 현실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그가 열다섯 살까지 방 안에서만 살았던 것처럼, 절대 다수의 장애인들은 평생을 수용 시설이나 작은 방 안에서 지낸다. 최소한의 교육만 받고, 동료 장애인과 자원봉사자들 이외에는 어떤 의미 있는 인간관계도 맺지 못한 채, 남성이나 여성으로서의 욕구도 무시당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도움’을 주기 위한 개인이나 단체의 방문은 꼭 필요한 일이고 무료한 일상의 작은 이벤트가 되기도 하지만, 그 일회적 성격이 더 큰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애인들은 “외지인들의 친절함이 자신을 다른 세계의 인간으로 전제했을 때만 나올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더욱더 멀어지는 두 세계의 간극만을 체험할 뿐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상처를 넘어 모욕을 경험한다. 그 도움의 손길이 장애인들에게 전시되어줄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재활 학교에 다니던 시절 자신에게 학비를 후원해주던 ‘저명인사들’ 옆에 어머니와 함께 앉아 말없이 전시되는 경험을 했고, 그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는 희귀병에 걸려 꼼짝도 못 하는 남자를 침대에 눕힌 채 강당으로 데려와 예배 시간 내내 전시하기도 했다. 지하철역에서 리프트를 타기 위해서는 〈즐거운 나의 집〉을 배경음악으로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민망함을 감수해야 하고, 혜택을 받는 대신 “꽃동네 같은 곳에 가서 봉사활동 좀 하고 오세요. 그럼 내 삶에 대해 진짜 감사하게 된답니다”라며 자신을 영혼 정화의 방편으로 삼는 이들에게 무감각해져야 한다.
이렇게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모욕은 기본적으로 장애인을 의식주만 해결해주면 되는 존재, 욕망 없는 존재, 깊은 사고나 격렬한 감정과는 거리가 먼 존재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화장실을 남녀 공용으로 만들고, 첫 생리를 한 장애인 여성에게 “주제에 여자라고”라는 등의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다 그런 맥락에서 발생하는 일들이다. 그러나 “나는 야한 장애인이고 싶다”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저자를 비롯해 그가 소개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해 버스와 지하철을 세우고 다섯 시간 동안 기어서 한강대교를 건너는 중증 장애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장애인 역시 인간적인 욕망을 가진 존재들이며, ‘자아’와 ‘사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분노하는 예민한 존재들임을 확인할 수 있다. 버스와 지하철을 세운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주장하면서 ‘이동’이라는 일상적인 행위가 인권의 하나로 부상했듯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장애인들의 새로운 면모, 아니 그동안 세상이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면모는 우리 사회의 장애인 담론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물론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시각을 한층 확장해줄 것이다.

나는 이제 뜨거운 인간이 되고자 한다
한때 슈퍼 장애인이 되어 희망을 전하려 했던 저자는 이제 야한 장애인, 뜨거운 인간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조차 쉽게 할 수 없었던 존재가 이제 감히 ‘섹시함’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욕망을 숨겨왔던 장애인들은 물론, 나아가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하게’ 웃어넘길 수 있기를 요구받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에게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하는 ‘쿨함’ 따위로 자신을 숨기지 말고, 가진 것 없고 능력도 부족하고 볼품없는 외모지만 누군가를 존재 자체로 사랑하고 싶은 마음,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 등장할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과감하게 드러내자고 말한다.

나는 쿨한 게 아니라 ‘핫한’ 장애인, ‘야한’ 장애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몸이 가진 욕망과 내 몸에 부여된 운명, 그 모든 것을 쿨하게 받아칠 줄 아는 유쾌한 인간 또는 고상한 척, 성숙한 척하는 인간이 아니라 좀 구차하고 미성숙하더라도 뛰고 싶다면 뛰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인간,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남은 생을 뜨겁게 살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인간, 누군가에게 무시와 모욕을 당하고 무성적인 존재로 인식당할 때 저 유명한 드라마 주인공 강마에의 대사처럼 “진짜 시련이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겪은 척, 뛰어넘은 척, 쿨한 척”하는 대신 “내 몸을 봐라. 내 욕망을 봐라. 나의 짓밟히는 자존심을 봐라”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 221쪽

저자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무기력한 세대라 비판받는 자신의 세대에게 필요한 것이 분노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분노는 증오와는 다르다. “증오는 폭력만을 낳을 뿐 증오하는 주체의 상태를 조금도 변화시키지 못한다.〔…〕분노는 부정의에 대한 합당한 저항이고, 그 저항 속에서 우리 자신의 욕망과 열정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분노하는 삶은 사랑하는 삶만큼이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확장시킨다.” 이는 ‘88만 원 세대’라고 불리는 이십대와 거기서 비교적 자유로울 것 같은 서울대학교 학생,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평균 임금이 88만 원보다는 44만 원에 가까운 장애인이라는 중첩된 정체성 사이에서 여전히 진동하듯 살고 있는 그가 지금 이 시점에 우리 사회에 하고 싶은 발언이다.
《88만 원 세대》 이후 쏟아져 나온 무수한 이십대 담론이 정작 이십대의 입에서 이십대의 경험과 감수성, 현실에 기반하여 나온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그의 전 생애가 오롯이 담겨 있는 이 발언은 새로운 종류의, 본격적인 이십대 담론으로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장애인들은 2000년대 한국 사회에서 자기계발서를 거의 읽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나가는 거의 유일한 집단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장애인’이라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집단에게서 ‘자기계발’에 몰두하고 있는 이십대의 삶을 변화시킬 동력을 찾았다는 데서도 이 책의 특별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자유, 서로 다른 세계의 ‘사이’를 연결하는 힘
저자는 열다섯 살까지 방 안에서만 지내던 자신이 중고차를 끌고 서울대 캠퍼스를 누비는 법학도가 되기까지, 그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도움과 기회와 우연을 ‘자유’라는 말로 표현한다. 잠깐 왔다 가는 자원봉사자들 따위에겐 마음을 열지 않겠다던 재활 학교의 자존심 강한 아이에게 진심으로 다가와 친구가 되어준 혜원 누나와 선정 누나,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꿈을 포기하려던 그에게 용기와 자극을 주었던 ‘새로운 장애인’ 찬오 형, 세상에 나오는 것조차 부정당하던 장애인을 연극 무대에 주인공으로 세워준 대학 친구들, 걷지도 못하는 상처투성이의 다리를 에로틱한 감수성으로 바라봐준 여자 친구, 늘 도움을 받는 입장이기 쉬운 장애인에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한 장학재단……. 장애인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창의적인 사고로 감행한 이들의 남다른 선택이 바로 그가 말하는 ‘자유’다. 이렇게 통념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무대를 연출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사이, 경계가 허물어진 자리에 생겨난 미지의 공간에서 그는 두 세계가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천명륜은 항상 내 휠체어를 밀고 다니면서도 언제나 내가 그를 돕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거의 유일한 친구였다. 녀석과 나는 큰소리로 말다툼을 한 뒤에도 묵묵히 함께 움직였다. 그때 우리는 그가 나를 일방적으로 돕고, 나는 도움을 받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그랬다면 싸우고 나서 곧장 그가 내 휠체어를 밀 수는 없었을 것이고, 나 역시 거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이동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었던 것 같다. 그 관계란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거나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는 친구를 넘어서, 서로 다른 세계에 발을 딛고 서 있으면서도 항상 당연하게 연결되어 있는 어떤 것들의 ‘사이’였다. 서로 완전히 다르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상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며, 서로 동일하지도 않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공감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 107~108쪽

그곳은 우리 둘 이외에는 누구의 시선도 없는, 오로지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장애인과의 에로스적 관계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침투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우리는 새로운 관계로 말려 들어갔다. 장애인의 몸에 씌워져 있던 동정, 시혜, 고통, 비극의 시선들이 괄호 안으로 들어갔다. 에로스는 평등한 인간의 관계에서만 출현한다. 누군가가 상대를 지배한다면, 또는 누군가가 상대를 도와야 한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내가 다리를 내보인 순간, 그동안 내가 어설프게 시도했던 지적 동반자인 척, 쿨한 척, 숭고한 관계인 척했던 행위는 끝이 났다. 나는 더 이상 무성적 존재가 아니었다. 내 몸은 자유롭게 부유했다. 내 다리는 타인의 시선 앞에서 섹시함을 뽐냈다. 섬세한 감각들이 날을 세운 채, 그러나 결코 날카롭지 않게 내 자의식을 쓰다듬었다. - 222쪽

저자는 용기 있고 창의적인 개인들이 열망한 자유, 그 자유가 연결한 여러 이질적인 세계들의 사이, 그 가능성의 공간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몸이고, 자기가 누리고 있는 자유이며, 자신이 경험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의 여정이 그 많은 이들의 실천에 빚지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며, 앞으로는 ‘사이’의 존재로서 스스로가 더 많은 가능성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될 것을 다짐하며 글을 맺는다.

내 삶은 이 자유를 온몸으로 실천한 사람들 가운데서 완전히 변화했으며 내 자유가, 내 몸이, 내 사랑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글을 자유와 연대의 힘을 증언하기 위해 썼다. 실천의 주체가 되기에 나는 아직 경험이 일천하고 능력도 용기도 부족하다.
그러나 앞으로 내게 다시 무엇인가를 쓸 기회가 온다면 나는 증언을 넘어 변론을 하고자 한다. 그 변론이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나의 몸, 당신의 몸, 내 친구들의 몸 그리고 우리 모두의 몸이 가진 자유가 될 것이다. 우리의 유약한 몸, 장애를 가진 몸, 추한 몸, 88만 원짜리 몸. 그 몸들이 처한 완전히 다른 여러 세계가 나의 존재와 나의 사랑을 통해서 자유의 가능성을 타고 새로운 삶을 생성하는 것. 그것이 내 궁극적인 꿈이며 삶이 될 것이다. - 263쪽
목차
차 례 1장 유리 같은 몸, 가시 같은 마음 2장 온몸을 밀어 세상 속으로 3장 새로운 몸의 기억 만들기 4장 두 세계 사이에서 5장 나는 '야한'장애인이고 싶다 6장 통속의 뇌, 주인공이 되다 에필로그 우리에겐 분노가 필요하다 부록 장애 문제 깊이 읽기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