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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00021691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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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고장난 민주주의인가, 포스트민주주의인가?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정치인이 국민을 배신한다. 심지어 우리는 “선거 때는 무슨 말이나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는 대통령을 지도자로 뽑아버렸다. 그 대통령은 검역 주권을 다른 나라에 넘겨버리면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힌 바 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당선되었으므로 나의 정당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명박 정부는 부유층에는 세금 세일, 서민에겐 복지 축소를 선사하고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267조 원 규모의 공기업들을 매물로 내놓고 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민주주의가 고장나버린 것일까? 영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는 이러한 현상을 ‘포스트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며 설명하고 있다.
포스트민주주의의 도래.
‘포스트민주주의’란,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유지되고 법치 국가의 성격이 유지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도달하려 한 목적을 선출된 정부가 배신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규정하는 말이다.
오늘날 선거는 유권자들의 무관심과 냉소 가운데 치러지는 정치권의 쇼 비즈니스로 전락했다. 정당 간의 정책이나 이념적 차별성이 모호해지고, 후보자 개인의 이미지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대체하고 있다. 선거란 민의를 반영하는 정치적 대결의 장이 아니라, 사실상 마케팅과 광고 기법이 적용되는 통제된 스펙터클에 불과하다.
‘진짜 정치’는 바로 그 뒤에서 이루어진다. 선거를 통해 일단 선출된 정부는 기업들의 비즈니스 로비를 받으며, 공공 부문을 팔아치우거나 민간 위탁을 주는 등 막후 거래의 참여자가 될 뿐이다. 단적으로 우리는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통해 구체적인 사례를 확인했다. 교육 시장 자유화를 지지하는 공정택 후보와 학원계의 큰손들 간에 이루어진 금전 거래는 포스트민주주의 시대의 진짜 정치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콜린 크라우치의 ‘포스트민주주의’ 개념은 이런 현상을 경제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의 확장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적 차원의 메커니즘을 규명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오늘날 교육, 의료, 보건, 에너지 분야에서, 그리고 심지어 먹는 물에 이르기까지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로 인식되던 공공 서비스가 급속히 이윤과 사업의 영역으로 재편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과정은 모두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다. 즉, 국민의 보편적 요구보다는 기업 엘리트의 특수한 이해관계가 더 잘 관철되는 의사결정 구조가 포스트민주주의 정치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역사의 포물선 궤적’을 따라 움직인다.
콜린 크라우치는 이런 현상이 단지 대의제의 딜레마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등장이라는 역사적 요인과 진행 과정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20세기 민주주의의 역사는 노동-자본 간의 대결과 궤를 같이한다. 저자는 전후 약 25년의 기간을 '민주주의의 시대(democratic moment)'라고 말하는데, 이 시기에 정당은 계급 관계에 기반을 두고 활동했으며, 일국적 차원의 계급타협, 즉 코포라티즘 체제가 정치의 기본 프레임을 구성하였다. 이러한 체제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부상과 함께 붕괴했다. 노동자 계급의 쇠퇴로 인해 정당 정치가 계급 관계를 더 이상 대변하지 못하게 되었고 다국적 기업이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강력한 제도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민주주의의 형식과 절차는 남아, 포스트민주주의의 식어버린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콜린 크라우치는 이를 두고 민주주의가 ‘역사의 포물선’을 따라 움직인다고 표현한다. 시간의 흐름을 x축으로 하고, 민주주의의 정치적 확장과 수축을 y축으로 하는 아래의 그래프를 보라. 포스트민주주의는 특권층의 권력이 시민의 권리를 압도했던 민주주의 이전 사회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한편으로 민주주의의 시대를 규정짓던 특징 역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을 완전히 한 바퀴 돌아 과거로 회귀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점, 즉 포스트민주주의의 시대로 미끄러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민주주의를 막을 수 있는가?
현대 정치가 포스트민주주의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저자 콜린 크라우치는 다음과 같은 실천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기업의 압도적 지배력을 축소시켜라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정부에 대한 기업의 압도적 지배력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정부란 본질적으로 무능하고 오직 기업만이 능력 있다고 보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하에서는, 공공사업에 대한 통제권이 기업에게 넘어가고, 정부는 능력과 자신감을 상실하고 부패해지는 결과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편적 시민권이 살아 있는 민주주의 사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면, 정당과 정치 고문이 기업(로비스트 집단)과 자금을 주고받거나 서로 간 인사이동을 못하게 막는 제도, 공무원들이 기업의 정치 자금 기부자들과 구별되고, 기업의 영향력이 차단된 상태에서 재정 지출과 정책 결정을 하는 제도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시민이여, 정당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라
포스트민주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정당을 통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정당 밖의 사회 운동 단체에 힘을 보태서 정당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이 크라우치의 답이다. 왜냐하면, 정치적 행동이 개별 법안과 정책, 개별 이슈에 따라 파편화되면, 정당 중심의 정치보다 부자와 권력 있는 자에게 훨씬 크고 체계적인 이점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정당을 버리고 사회 운동을 택하는 것은 포스트민주주의의 승리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 운동 단체의 압력을 받지 않는 정당은 기업 로비의 세계에 계속 머무르게 될 것이고, 강력한 정당을 건설하지 않고서 행동하려는 운동은 기업 로비에 의해 찌그러질 것이라고 본다. 결국, 적극적 사회적 시민권이 보장되는 (평등주의적)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당을 통해 비판적으로, 조건부로 활동하라는 것이다.
촛불을 넘어, 포스트민주주의를 넘어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우고, 뒤에서 밀어왔던 힘의 본질은 바로 대중의 정치적 열망과 활력이다. 지난 6월 광화문 광장에 모여든 수십만 개의 촛불은 진보 세력의 좌절과 체념 가운데서도 대중의 정치적 에너지는 언제든 타오를 수 있다는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을 보여주었다. 또 한편으로 촛불은 단지 대중이 거리에서기만 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가져올 수 없음을 조용히 웅변한다. 콜린 크라우치의 책 '포스트민주주의'는 이제 막 전초전을 끝낸 우리에게, 어떻게 거대 기업을 제어하고, 보편적 시민권을 지켜내며, 포스트민주주의에 대항할지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정치인이 국민을 배신한다. 심지어 우리는 “선거 때는 무슨 말이나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는 대통령을 지도자로 뽑아버렸다. 그 대통령은 검역 주권을 다른 나라에 넘겨버리면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힌 바 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당선되었으므로 나의 정당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명박 정부는 부유층에는 세금 세일, 서민에겐 복지 축소를 선사하고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267조 원 규모의 공기업들을 매물로 내놓고 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민주주의가 고장나버린 것일까? 영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는 이러한 현상을 ‘포스트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며 설명하고 있다.
포스트민주주의의 도래.
‘포스트민주주의’란,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유지되고 법치 국가의 성격이 유지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도달하려 한 목적을 선출된 정부가 배신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규정하는 말이다.
오늘날 선거는 유권자들의 무관심과 냉소 가운데 치러지는 정치권의 쇼 비즈니스로 전락했다. 정당 간의 정책이나 이념적 차별성이 모호해지고, 후보자 개인의 이미지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대체하고 있다. 선거란 민의를 반영하는 정치적 대결의 장이 아니라, 사실상 마케팅과 광고 기법이 적용되는 통제된 스펙터클에 불과하다.
‘진짜 정치’는 바로 그 뒤에서 이루어진다. 선거를 통해 일단 선출된 정부는 기업들의 비즈니스 로비를 받으며, 공공 부문을 팔아치우거나 민간 위탁을 주는 등 막후 거래의 참여자가 될 뿐이다. 단적으로 우리는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통해 구체적인 사례를 확인했다. 교육 시장 자유화를 지지하는 공정택 후보와 학원계의 큰손들 간에 이루어진 금전 거래는 포스트민주주의 시대의 진짜 정치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콜린 크라우치의 ‘포스트민주주의’ 개념은 이런 현상을 경제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의 확장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적 차원의 메커니즘을 규명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오늘날 교육, 의료, 보건, 에너지 분야에서, 그리고 심지어 먹는 물에 이르기까지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로 인식되던 공공 서비스가 급속히 이윤과 사업의 영역으로 재편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과정은 모두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다. 즉, 국민의 보편적 요구보다는 기업 엘리트의 특수한 이해관계가 더 잘 관철되는 의사결정 구조가 포스트민주주의 정치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역사의 포물선 궤적’을 따라 움직인다.
콜린 크라우치는 이런 현상이 단지 대의제의 딜레마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등장이라는 역사적 요인과 진행 과정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20세기 민주주의의 역사는 노동-자본 간의 대결과 궤를 같이한다. 저자는 전후 약 25년의 기간을 '민주주의의 시대(democratic moment)'라고 말하는데, 이 시기에 정당은 계급 관계에 기반을 두고 활동했으며, 일국적 차원의 계급타협, 즉 코포라티즘 체제가 정치의 기본 프레임을 구성하였다. 이러한 체제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부상과 함께 붕괴했다. 노동자 계급의 쇠퇴로 인해 정당 정치가 계급 관계를 더 이상 대변하지 못하게 되었고 다국적 기업이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강력한 제도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민주주의의 형식과 절차는 남아, 포스트민주주의의 식어버린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콜린 크라우치는 이를 두고 민주주의가 ‘역사의 포물선’을 따라 움직인다고 표현한다. 시간의 흐름을 x축으로 하고, 민주주의의 정치적 확장과 수축을 y축으로 하는 아래의 그래프를 보라. 포스트민주주의는 특권층의 권력이 시민의 권리를 압도했던 민주주의 이전 사회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한편으로 민주주의의 시대를 규정짓던 특징 역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을 완전히 한 바퀴 돌아 과거로 회귀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점, 즉 포스트민주주의의 시대로 미끄러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민주주의를 막을 수 있는가?
현대 정치가 포스트민주주의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저자 콜린 크라우치는 다음과 같은 실천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기업의 압도적 지배력을 축소시켜라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정부에 대한 기업의 압도적 지배력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정부란 본질적으로 무능하고 오직 기업만이 능력 있다고 보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하에서는, 공공사업에 대한 통제권이 기업에게 넘어가고, 정부는 능력과 자신감을 상실하고 부패해지는 결과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편적 시민권이 살아 있는 민주주의 사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면, 정당과 정치 고문이 기업(로비스트 집단)과 자금을 주고받거나 서로 간 인사이동을 못하게 막는 제도, 공무원들이 기업의 정치 자금 기부자들과 구별되고, 기업의 영향력이 차단된 상태에서 재정 지출과 정책 결정을 하는 제도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시민이여, 정당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라
포스트민주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정당을 통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정당 밖의 사회 운동 단체에 힘을 보태서 정당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이 크라우치의 답이다. 왜냐하면, 정치적 행동이 개별 법안과 정책, 개별 이슈에 따라 파편화되면, 정당 중심의 정치보다 부자와 권력 있는 자에게 훨씬 크고 체계적인 이점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정당을 버리고 사회 운동을 택하는 것은 포스트민주주의의 승리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 운동 단체의 압력을 받지 않는 정당은 기업 로비의 세계에 계속 머무르게 될 것이고, 강력한 정당을 건설하지 않고서 행동하려는 운동은 기업 로비에 의해 찌그러질 것이라고 본다. 결국, 적극적 사회적 시민권이 보장되는 (평등주의적)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당을 통해 비판적으로, 조건부로 활동하라는 것이다.
촛불을 넘어, 포스트민주주의를 넘어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우고, 뒤에서 밀어왔던 힘의 본질은 바로 대중의 정치적 열망과 활력이다. 지난 6월 광화문 광장에 모여든 수십만 개의 촛불은 진보 세력의 좌절과 체념 가운데서도 대중의 정치적 에너지는 언제든 타오를 수 있다는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을 보여주었다. 또 한편으로 촛불은 단지 대중이 거리에서기만 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가져올 수 없음을 조용히 웅변한다. 콜린 크라우치의 책 '포스트민주주의'는 이제 막 전초전을 끝낸 우리에게, 어떻게 거대 기업을 제어하고, 보편적 시민권을 지켜내며, 포스트민주주의에 대항할지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목차
차 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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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서문
1장 왜 포스트민주주의인가?
2장 다국적 기업:국가와 세계를 좌우하는 핵심 제도가 되다
3장 포스트민주주의 시대의 사회 계급
4장 포스트민주주의 하의 정당
5장 포스트민주주의와 시민권의 상업화
6장 결론:여기서 어디로 갈 것인가?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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