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남편살해 피학대여성의 사회심리적 특성에 따른 형법적 대응방안
- 발행사항
- 서울: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1
- 형태사항
- 514p. , 26cm
- 서지주기
- 참고문헌과 부록을 포함하고 있음
- 비통제주제어
- 피해학대여성보호방안, 남편살해피해학대여성법적용실태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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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가능 (1) |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00022311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22311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발 간 사
여성가족부의 조사결과 15%의 기혼여성들이 지난 일년 동안 남편으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전 세대와 비교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향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법제도는 가정폭력을 예방하고, 가정폭력의 피해여성들을 보호하는데 제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배우자를 폭행하는 남성은 자녀들까지 폭행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자녀들은 폭력의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의 폭력성을 내면화하여 가정폭력은 대물림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가정 안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은밀하면서 오랜 기간 지속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가정폭력의 실상이 외부로 알려지게 될 때는 이미 피해자의 정신과 육체가 완전히 파괴된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사회가 가정폭력을 방관하는 동안, 남편의 극심한 폭행을 견디다 못해, 살인을 저지른 여성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가치로 타인의 생명을 뺏은 사람은 응분의 댓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폭력남편을 죽인 여성들은 남편의 구타와 성폭력으로 인해 이미 인격적, 정신적으로 타살당한 피해자이므로 여타의 살인 피의자들과 동질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가정폭력으로 인해 살인을 저지른 여성들이 나타내는 심리적 특성과 상황적 특수성에 관해 학문적 연구가 필요하고, 이러한 여성들에 대해 법원의 선처가 필요하다는 전환적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은 서구역사에서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간 한국사회에서도 폭력남편이 살해되는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했을때만 관심이 집중되었을 뿐, 이러한 결과를 낳게 한 사회문화적 특성, 가해자와 피해자의 특성 등에 대한 실증조사 및 사법적 대응방안을 위한 밀도있는 법리적 고찰은 미흡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법현장에서도 피해여성들에 대해 관대한 처우를 고려하게 되었고, 2000년 이후에는 판결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범죄자가 된 여성들의 문제에는 여성이라는 성적 변수와 한국사회라는 문화적 변수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습니다. 때문에 단순히 서구의 연구결과와 이론을 그대로 이식하는 수준이 아닌, 국내현실을 바탕으로 한 실증적인 자료를 축적하고 선진각국의 제도를 성찰하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학제간, 문화간 통합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본 보고서는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으며, 심리학자와 법학자들이 영역을 넘나들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자료를 공유한 결과의 산물입니다. 이 연구결과가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남편살해의 가해자인 여성들에 관한 국내 형법학계의 논쟁을 촉발시키고, 사법정책의 영역에서 보다 합리적이고 다양한 대응방안들이 생산되는데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합니다. 끝으로 연구를 위해 애쓴 김지영 연구위원과 강우예 부연구위원, 김성규 교수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2011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
[국문요약]
1. 연구의 목적 및 의의
본 연구는 국내에서도 학대로 인해 가해남성을 살해한 여성들에 관한 실증연구와 그 결과의 사법적 적용에 관해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한다는 필요성에 의해 시작되었다. 즉, 미국의 학계와 법정에서 찬반양론이 팽팽한 피학대여성증후군이론 자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뿐 아니라, 피학대여성증후군이외 여성들을 변호할만한 형법적 논리와 실증적 근거가 없는지에 관한 본격적인 탐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보고서는 먼저, 국내의 남편살해피학대여성에 대한 실증조사를 통해 피학대여성의 사회심리적 특성과 그들에 대한 법적용의 실태를 살펴보고, 다음으로 독일, 일본, 미국의 피학대여성에 대한 사법적 대응의 실태를 고찰하였는데, 특히 미국 법원 및 법학계에서 피학대여성이 기소된 사건들에 있어 피학대여성증후군을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해왔는지를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이는 일차적으로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증명력과 증거능력에 관한 문제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증명대상과 실체법적 쟁점에 관한 문제이다. 이 두 가지 쟁점은 피학대여성증후군과 관련된 다른 방향의 법적 쟁점이지만 결국 상당히 긴밀하게 연관이 되어 있는 문제이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정황들이 법정에서 섬세하게 활용될 수 있다면, 정의와 형평에 보다 접근하는 방향으로 피학대여성의 행위와 결과의 가벌성과 관련된 법적 기준의 발전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 보고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실증조사와 형법적 논의를 결합한 법심리학적 접근방법으로 남편을 살해한 피학대여성들에 관한 절차법적, 실체법적 개선방안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피학대여성의 사후적 구제책은 피학대여성증후군을 단지 활용한다고 하여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기존 법리가 상당부분 수정되어야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피학대여성 행위의 정당성과 면책가능성을 논하는 단계의 성격이 규명되어야 한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피학대여성증후군이라는 개념이 정당화 요건과 면책 요건을 변화시키는 데 강력한 동인이 되었던 것으로 평가되었음에 비추어 이러한 변화의 성격과 내용의 정당성에 대하여 심사를 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짚어 보는 데 있어 피학대여성증후군과 형사법리와의 관계에 주된 초점을 두고 분석했지만, 피학대여성증후군에 제한되지 않고 피학대여성의 다양한 심리적·상황적 현상들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이는 피학대여성증후군과 형사법리의 관계라는 좁은 쟁점에서 출발하여 보다 넓고 포괄적인 시각으로 전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연구방법
본 연구는 문헌연구와 실증조사로 나뉘어 진행된다. 문헌연구는 피학대여성에 관한 심리학적 연구결과와 피학대여성의 반격행위관련 국내 법리적 논의 및 판례를 분석하고, 미국, 독일, 일본의 법이론적 논의 및 판례를 분석하였다. 피학대여성에 대한 사후적 보호방안의 마련을 위한 심리학적 연구성과를 활용한 미국의 법원과 학설의 현황을 주로 분석과 이해의 토대로 삼았다. 소위 피학대여성증후군이 현존하는 미국의 정당화 및 법리를 극한까지 몰고 가서 사실상 변화시킨 부분이 가장 큰 쟁점이었다. 이 부분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지에 대한 부분에 주로 본 글의 분석의 초점이 맞추어졌다. 가능한 한 가장 급진적인 견해와 전통적인 견해를 대비시켰으며 양자 중 어디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며 진실은 어디에 가까운지를 최대한 부분적인 개념까지 놓치지 않고 추적했다. 즉, 위법성 및 면책의 객관성을 고수하고자 하는 태도와 행위자의 개별적 상황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태도 간의 긴장을 활용했다.
실증연구는 사례분석과 판결기록조사로 이루어졌다. 사례분석은 12명의 심층면접사례와 2명의 수사재판기록을 대상으로 하였다. 18명의 대상자를 면접하였으나 이들 중 4명은 학대를 당한 사실이 없었으며, 또 다른 2명은 판결문에는 짤막하게 남편의 폭력이 언급되어 있으나 정신질환이 심각하여, 응답에 일관성이 없이 횡설수설하여 면담에서 제외하였다. 18명중 6명을 제외하고 12명이 분석대상이 되었다. 면담이 끝나면, 신분카드, 신분장, 분류처우심사표에 나타난 전과, 질환여부, 교정심리검사결과 등의 제반사항을 기록하였다. 12개의 사례이외에 판결문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사례 2개를 골라 수사재판기록을 분석하였다. 이로써 최종적으로 14개의 사례가 분석대상이 되었다. 사례에 대한 심층분석은 남편을 살해하고 교도소에 수감중인 12명의 여성들과 수사재판기록에 나타난 2명의 여성사례 총 14명의 사례를 대상으로 하였다.
판결기록조사는 다음과 같은 절차로 이루어졌다. 먼저 두 차례의 대법원 방문 시,『살인, 과실치사, 폭행, 남편, 아내, 주부, 정당방위, 과잉방위, 오상방위, 긴급피난, 가정폭력, 심신상실, 심신미약, 학대, 변태』등의 검색어로 교차 검색하여 본 연구와 관련된 판결문을 선정하여 일차적으로 대법원 통합법률시스템 및 판결문 제공신청으로 판결문을 찾고, 찾을 수 없는 판결문들은 각 법원에 협조 요청하여 총 70개의 판결문을 분석대상으로 하였다.
3. 사례분석결과
국내의 선행연구에서 사용된 심층면접이나 사례분석은 양적연구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으며, Walker의 피학대여성증후군을 이론적 근거로 하여 살인의 동기를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인한 상황에 대한 오판, 누적된 폭력에 의한 공포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본 연구에서도 피학대여성증후군에 관한 기존의 연구결과와 국내선행연구들에서 나타난 공통된 결과에 주목하고는 있으나, 기본적 분석의 틀은 여성들이 가진 성장환경과 결혼생활, 폭력피해 실태, 심리적 과정, 살인의 동기 등이 가진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때문에 이전의 남편살해 피학대여성에 관한 연구들과 달리 BWS(피학대여성증후군)에 기대어 살인의 동기와 여성들의 심리적 특성을 일률적으로 재단하지 않았다.
사례분석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여성들이 당한 학대와 ‘왜 학대를 당하면서 남성을 떠나지 못했는가’에 관한 것이다. 사례분석에 나타난 대부분의 여성들은 범행직후 자수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여성들은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적어도 사건에 직면하기 직전까지는 남편에 대한 살인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면담과 수사재판기록을 통해 당시 상황에서 여성들이 느꼈던 감정이나 인지적 판단의 내용을 완전하고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또한 여성들의 회고를 통해 들을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과 여성들이 술회하는 살인의 동기는 대부분 우발적이다. 때문에 여성들의 살인동기보다는 살인의 발생에 이르도록 남편을 떠나지 못하거나, 남편의 폭력을 중지시키지 못한 상황과 이유에 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Walker가 주장한 학습된 무기력과 여성들의 낮은 자아존중감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가장 많이 공격받은 부분인데, 실제 면접에서 만난 피학대 여성들의 대부분은 생활력이 강하고, 자기의 삶을 영위해나가는데 적극적이었으며, 자녀를 위해 살아가는 억척스러운 여성들이었다. 이들 중 다수는 학대남성을 만나기전까지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고, 같이 사는 동안에는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기도 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여성들의 모습은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상황이 가진 문제를 드러내준다. 즉, 사례에서 여성들은 경찰에 신고했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상담소나 쉼터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으며, 상담소의 존재를 알고 상담소에 전화를 한 사례에서조차 상담소로부터 무성의한 응답만 들었을 뿐이다. 또한 친정식구나 시댁식구에게 학대사실을 말한 경우에도 돌아오는 것은 여성의 인고에 대한 강조였다. 만약 도피를 감행할 경우, 생계수단이 막막할 뿐 아니라 친정식구를 모두 죽이겠다, 도망가면 끝까지 찾아내겠다는 협박은 여성과 자녀를 보호해줄 법적 장치가 전무한 상황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현실이다. 면담에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말한 여성들조차도 자신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통제력을 상실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즉, 여성들이 학대상황에서 학습된 무력감 때문에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다는 Walker의 주장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때문에 이러한 여성들의 노력이 법정에서 충분한 부각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폭력의 순환주기에 대한 Walker의 통찰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Walker의 수정된 이론대로 남성들 대부분이 애정어린 뉘우침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며, 마지막 단계는 단지 폭력의 일시적 휴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남성들이 폭력을 행사하고 눈물로 참회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겪었던 사례들에서는 남성에 대한 불쌍함, 측은함이 관계에 머물러 있게 된 중요한 이유로 나타났다.
여성들이 당하는 학대상황에 대한 분석결과에서 주목할 점은 신체적 폭력 못지않게 성적 학대와 정신적인 학대, 경제적 학대 등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구타 이후의 성관계에 대한 강제,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의 폭력과 흉기위협, 자녀와 친정식구들에 대한 폭행과 협박, 잠못자게 하기, 의처증, 생활비를 주지 않으면서 노동활동을 통제하는 등의 전방위적인 폭력상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성들의 자제력을 무너뜨리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들의 살인동기에는 자기 자신과 자녀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와 남성에 대한 분노라는 두 가지 동기로 크게 나눠진다. 여기서 말하는 정당방위는 형법적인 개념보다는 느슨하고, 페미니즘적인 관점보다는 엄격하다. 분명히 남성들이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는 대면상황에서 사건이 발생했으며, 여성들이 느낀 절박함에는 차이가 있으나, 자신과 자녀의 안전을 위해 남성을 공격한 사례만을 정당방위로 분류하였다.
국내외의 선행연구에서는 비대면 상황에서도 여성들의 살해동기에 분노보다는 공포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면접에서 만난 여성들의 절반 이상이 남편이 수면 중이거나 여성을 공격하지 않는 상태일 때 살해했는데, 그 때 당시 분노를 느꼈다고 표현했다. 여성들이 살인의 피의자이고 대부분 사건이 종결되고 시간이 흐른 이후에 면접이 진행되기 때문에 자기보고적인 조사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보자면 여성들이 분노를 느꼈다는 말도 완전히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즉, 여성들이 ‘분노’에 대해 말한 것은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서 자신이 학대당하던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는 중에 생긴 해석적 감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4개의 사례를 제외한 10개의 사례에서 여성들은 살인의 동기를 분노로 표현했다.
4. 판결문기록조사
분석대상이 된 여성들의 약 80%가 공식적인 죄명이 살인이었고, 나머지 20%에서 살인미수, 상해치사, 폭행치사 등으로 나타났다. 피학대 여성들의 남편살해는 대부분 우발적이기 때문에 공범이 없으나, 공범이 있는 6건의 사건에서 자녀가 공범인 사건이 4건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은 신체적 특성상 남성을 완력으로 제압하기 어렵기 때문에 흉기를 사용한 경우가 88.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흉기는 사건현장에 있던 경우가 가장 많았고, 남성이 사용하던 흉기로 공격한 경우가 다음으로 많았다. 피학대 여성들은 공포 때문에 과도한 공격(overkill)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실제 약 40%의 사건에서 남성을 흉기로 가격한 횟수가 4회 이상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이 학대로 인해 병력을 가지고 있는지 조사한 결과, 남편의 폭력에 의해 골절이나 고막파열, 상해 등의 병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여성들은 모두 20명이었다. 또한 남편의 학대로 인해 정신적인 병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 여성들은 모두 26명이었다. 여성들의 병력이 적은 이유는 판결문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학대남성이 지니고 있던 문제를 보면 신체적 폭력과 언어적 폭력, 음주문제가 가장 많았으며, 생계에 대한 무관심이 네 번째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최종판결에서 60%의 여성이 유기형을 선고받았고, 약 2%의 여성은 무기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여성은 약 33%이다. 이러한 여성들의 형량을 보면 3년 이상 ~ 4년 미만이 약 30%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6년 이상 ~ 10년 미만이 많았다. 세 번째로 4년 이상에서 5년 미만, 5년 이상에서 6년 미만이 동일한 비율로 결과 되었다.
변호인의 변호요지를 보면 여성들에 대해 정당방위를 주장한 비율이 23%로 가장 높았으며, 과잉방위가 20.5%로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다음으로 심신장애, 범의 없음(우연의 결과)이 뒤를 이었다. 판사의 유죄판단 및 양형의 논지를 보면 생명의 존엄과 가치가 피해자귀책보다 중하다는 논지가 25%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가해행위의 상당성 결여, 현재성/급박성 결여, 죄질불량 등이 뒤를 이었다. 즉, 여성들의 학대사실에 관해서는 인정되고 있으나, 피학대 여성들의 반격행위가 가지는 정당성과 상당성에 관한 부분은 아직도 법정에서 인정되고 있지 않은 듯했다. 피학대여성에 대한 정상참작사유에서도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피해자에 의한 학대, 다음으로 피고인의 전과 없음, 피고인의 반성, 범죄의 우발성 순으로 결과 되었다.
집행유예를 받은 여성들과 집행유예를 받지 않은 여성들 간에 여성들의 피해상황과 범행의 특성 등에 있어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교차분석을 실시하였다. 여성들의 신체적 및 정신적 피해는 집단 간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집행유예를 받지 않은 집단에서 피해사례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당시 여성들의 음주여부가 집단 간에 차이가 있는지에 관해서도 분석하였는데, 그 결과 오히려 실형을 받은 집단에서 더 음주비율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으며, 통계적 차이도 유의미하였다. 그 외에도 피해자와 대면상황에서 살인을 저질렀는지, 피고인이 사건은폐를 시도했는지의 여부 등이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여주지 못하여, 집행유예를 받은 집단과 실형을 산 집단 간에 범행특성과 여성의 피해상황 등이 뚜렷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판결문에 누락된 부분이 많은 때문일 수도 있으나, 남편살해 피학대여성에 대한 법적판단에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5. 형사법적 쟁점
가. 우리나라
우리나라의 경우, 주로 형사소송법 제13장에 따라 증거로 취급되는 정신감정서를 통하여 피학대여성증후군과 관련된 전문가의 감정의견이 서면으로 법관에게 제출된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이 우리 법원의 감정서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의 일이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일종의 심신미약을 뒷받침하는 증거 내지 이후 양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한 증거로 활용되고 있다. 몇몇 사실심에서는 변호인이 피학대여성증후군을 정당방위 내지 과잉방위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피학대여성증후군 관련 증거채택은 법원의 재량 하에 직권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정신감정서 상에서 피고인의 여러 가지 정신병리학적·심리학적 증상에 대한 전문가 의견의 한 형태로 제시된다. 이러한 피학대여성증후군과 관련된 전문가 의견이 어느 정도의 증명력을 지니고 있는지 나아가 증거능력을 부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쟁점으로서 제기조차 되지 않고 있다. 사실, 정신감정서 상의 피학대여성증후군 관련 내용이 증거능력 혹은 허용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다른 과학적 증거 혹은 전문적 증거와 마찬가지로 과학적으로 최소한도의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이 법정에서 활용하기에 정당한 증거가 되는지에 대해서 국내에서는 별다른 고민이 없다.
우리의 경우에도 피학대여성의 형사책임에 관한 학계의 논의는 1990년 중반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 중이다. 이 논의는 정당방위의 본질과도 관계된 문제이며 형법해석의 한계라는 근본적인 쟁점과도 관계되어 있다. 현재 까지 법원에서 정당화 사유로 피학대여성의 상황과 행위를 포섭하는 경우는 없으며 넓게는 무죄판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피학대여성의 가벌성을 극도로 낮게 보아서 집행유예 판결을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논의가 정당방위를 벗어나면 주로 피학대여성이 피학대여성증후군과 관련하여 심신장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논하게 된다. 일부 학설에서는 긴급피난 성립 여부에 대하여 논하고 있으며 긴급피난 중에서도 정당화적 긴급피난과 면책적 긴급피난으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피학대여성의 과거의 학대사실이나 이로 인한 심리적 상흔에 대하여 양형의 감경사유로 고려하고 있다.
나. 독일
독일에서는 1970년대 이래 피학대여성의 반격행위와 정당방위의 관계 및 그것에 대한 법적 기관의 대응에 관한 문제가 큰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독일에서 피학대여성의 그와 같은 반격행위가 정당방위의 관점에서 논해지게 된 계기로서는 특히 1969년과 1974년에 내려진 독일 연방법원(Bundesgerichtshof) 판결을 들 수 있다. 이 두가지 판결은 피학대여성이 남편을 살해한 사건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와 같은 경우를 ‘보증관계 내에서의 공격에 대한 정당방위’로 일컫는 한편, 그러한 관계에서도 낯선 사람의 공격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정당방위권의 행사가 가능한지를 문제로 삼았다. 판례는 일관해서, ‘보증관계’와 같이 특별히 긴밀한 인적 관계에 있는 경우에는 사회윤리적 견지에서 정당방위권이 제한되며, 그러한 관계에서는 피공격자에게 공격자에 대한 일종의 특별한 배려의무가 법적으로 요구된다고 해서 정당방위를 부정했다. 그런데 마찬가지의 사건을 다룬 1984년의 판결은 그와는 달리 피고인인 여성의 정당방위를 인정했다.
독일에서도 역시 피학대여성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과 관련하여 문제가 되는 것은 긴급방위(Notwehr)(독일「형법전(Strafgesetzbuch)」제32조)의 사실적 전제에 해당되는 공격의 현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가정내 폭력에서 문제되는 위협관계 내지 학대상황에서 공격의 현재성을 요구하는 긴급방위권(Notwehrrecht)이 고려되는 경우는 사실상 드물다. 그 점은 궁극적으로 그와 같은 사건을 재판하는 법원에게는 공격의 현재성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결여되어 있는 것에 기인하고 있다. 그 점과 관련해서 피고인으로서의 피학대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대체로 두 가지로 좁혀질 수 있다. 하나는, 남편의 학대가 차후에야 비로소 행해질 것으로 예상되거나 혹은 그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에는 공격의 현재성이 부정되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피학대여성의 반격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긴급방위(Notwehr)의 객관적 사정이 존재해야만 하고, 그러한 사정이 있는 것에 관한 주관적 인식만으로써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물론 오상방위(誤想防衛)가 문제된다. 그 두 가지의 점은 피학대여성이 처해 있는 생활환경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는 것이다. 종래 법원은 대체로 그와 같은 상황을 무시하거나 피학대여성의 경험적 판단에 가치를 두지 않고 있다. 따라서 피학대여성으로서는 조만간 실제로 남편의 공격이 행해지게 될 것을 잘 알면서도, 또한 어차피 자신의 생명은 이미 염려되는 상황에서도, 실제의 공격을 기다려야 한다.
다만, 피학대여성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에 관한 사회과학적 지식은, 종래 피학대여성의 배우자살해가 문제되는 사건에서 정당화사유 내지 면책사유(독일「형법전(Strafgesetzbuch)」제32조 이하)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독일의 법제 하에서도 유용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제시되고 이다. 나아가, 긴급방위(Notwehr)(독일「형법전(Strafgesetzbuch)」제32조)의 경우에는 그 요건으로서의 공격의 현재성의 개념이 피학대여성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에 대한 인식에 기초하는 법해석을 통해서 그와 같은 요건이 지니고 있는 차별적 속성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피학대여성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에 대한 인식이 그와 같이 정당화의 단계에서 법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면책적 긴급상황(entschuldigender Notstand)(독일「형법전(Strafgesetzbuch)」제32조)의 규정을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도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피학대여성의 배우자살해가 문제되는 사건에 관해서는 피고인의 정신적 이상(異常)상태에만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고, 그 결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학대상황은 피고인의 주관적인 심리의 문제로서 취급될 우려가 있다고 한다. 그 점과 관련해서, 배우자를 살해한 피학대여성이 단지 면책되는 데에 그치거나 혹은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되는 점을 강조하는 견해, 즉, 피학대여성도 어디까지나 이성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존재로서 취급받을 권리는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고, 그와 같은 관점에서 배우자를 살해한 경우에는 그것이 자기방위로서 정당화되는 것이지 피학대여성의 정신병적 상태가 문제되어서는 안 되는 점을 지적하는 견해가 종종 인용되고 있다.
다. 일본
일본에서는 형사사법에서의 피해자보호가 중요한 정책과제의 하나로서 인식되고 있다. 피학대여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동향 중의 하나는 법리적인 측면에서 가령 상해죄의 경우에 종래 경시되어온 정신적 피해에 대한 인식과 그 형법적 평가에 대한 논의가 종종 행해지는 한편, 이른바 ‘범죄자의 피해자성’에 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후자의 문제는, 범죄학의 발전이 범죄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는 점을 밝혀내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과연 범죄자의 존재가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가해를 행한 자로서 평가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관한 문제로서, 범죄자가 과거에 피해자로부터 받은 학대로 인해서 심적 외상(外傷)을 겪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경우에는 범죄자가 동시에 피해자로서 생각될 수도 있으며, 그와 같이 피해자이기도 한 범죄자의 형사책임은 종래와는 달리 평가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이 존재한다. 또한, 그러한 관점에서 형사책임에 관한 종래의 사고방식도 수정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문제의식도 존재한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오히려 피해자인 점을 주장하는 항변의 형태를 취하면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미국에서의 사례를 검토하는 것이 일본의 형사책임론에도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첫째, 행위자의 피학대경험과 같은 피해체험은 그 형사책임의 평가에 있어서 적절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 점은 피해자보호의 관점에서도 요청되는 것이고, 또한 사회변혁을 위한 중요한 문제제기로서도 필요하다고 한다. 둘째, 행위자가 피해를 체험한 것 자체가 면책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면책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행위 당시에 위법행위를 회피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사정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해체험을 강조하는 것의 의의는 책임론의 틀 자체의 변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종래의 이론구조를 전제로 하면서도 보다 넓은 면책가능성이 있는 점을 의식시키는 데에 있다고 한다. 따라서 재판에서 고려될 수 있는 피해체험에 제한을 둘 필요는 없고 널리 다양한 사상(事象)이 피해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셋째, 현재 일본에서는 전통적인 타행위가능성에 터 잡고 있는 규범적 책임론에서 예방적 관점을 고려한 책임론에로의 전환이 유력하게 주장되고 있지만, 피해체험을 형사책임론에서 적절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행위 당시 행위자의 의사(意思)의 자유가 피해체험에 의해서 제약된 점이 인정될 필요가 있는 한에서는 규범적 책임론이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넷째, 책임의 일반원리에 해당되는 타행위가능성의 판단기준에 관해서는 평균인표준설이 통설로 되어있지만, 피해체험을 적절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당해 행위자의 성장환경이나 과거에 체험한 사건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그 한에서는 행위자표준설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동일한 피해체험이 반드시 동일한 증상을 초래하지는 않는 점이 정신의학에서 널리 승인되고 있으므로 유사한 환경에 놓여 있어도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면책을 방해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다섯째, 책임조각에 관한 종래의 이론구조는 행위자의 인격 내부의 요소와 그 외부의 요소를 나누어 후자에 관해서는 책임의 조각을 인정하지만 전자에 관해서는 자유의사의 행사를 인정하는 것인데, 피해체험이 책임판단에 고려되는 요소가 되는 경우에는 그 피해체험에 의해 인격과는 이질적인 장해가 발생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격 그 자체가 변용되어버리는 것인지는 본질적인 차이를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한다. 여섯째, 피해체험에는 추상적이기는 해도 가해자를 예정하는 경우와 가령 천재지변과 같이 가해자를 예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피해체험의 평가를 사회변혁의 계기로 하기 위해서는 양자를 달리 평가할 것인지의 여부가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일곱째, 피해체험을 형사책임의 평가에 고려하는 때에도 어떤 책임조각사유가 문제되는지를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 경우에는 특히 책임능력의 개념이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여덟째, 배심제를 채용하지 않거나 혹은 배심제를 채용하더라도 법관에 의한 사실인정을 방기하지 않는 재판제도 하에서는 책임론이라고 하는 실체법상의 문제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체험으로부터 행위 당시에 어떤 장해가 발생산 경우에 책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에 관한 논의는 불가결하며, 구체적인 면책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피해체험에 의해 책임이 조각되는 경우는 한정적이겠지만 책임의 감소가 인정되는 경우는 상당히 존재할 것이므로, 양형에 관해서 보면 피해체험이 수행하는 역할은 클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적어도 피해체험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모든 책임을 행위자에게 지게 하는 것, 가령 행위자에게 사형(死刑)을 과하는 것은 부정될 것이라고 한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향후 일본에서도 범행 당시의 외상후(外傷後)스트레스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내지는 피학대여성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이 존재한 사정이 심신미약상태에 해당되어 정상작량(情狀酌量)의 대상이 되는 것인지에 관한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라. 미국
1980년 중반부터 피학대여성증후군은 피학대여성의 가벌성 판단과 관련된 증거로 미국 법원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은 과학적으로도 일반적인 승인을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거의 대부분의 미국 법원들이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있지만 증명대상 및 증명목적에 따라 인정여부가 차이가 난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증거법적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한편으로는 피학대여성증후군의 피학대여성의 가벌성 판단에 있어 실체법적 내용 및 효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사회과학계 및 심리학계의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학대여성증후군의 퇴장을 예측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은 많은 수의 법학 및 사회과학 전문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재 피학대여성증후군에 대한 학계의 상당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재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증명대상범위를 넓혀가며 법원에서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범위는 더 늘어나고 있다. 방법론과 실증적 결과 등에서 문제점을 노출시켰지만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사회심리학적 현상을 설명한 개념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완전히 가치가 없는 것이라 볼 수 없다는 견해도 경청해야 한다. 태츨리츠(Taslitz)는 순수한 가치중립적인 사회과학적 연구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은 반드시 워커가 주장한대로의 패턴을 정확히 보여주지는 않고 있지만 미약하나마 의미있는 연구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심리내적인 부분과 심리외적·관계적인 부분으로 나누어 법정에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심리내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은 적절한 연구방법과 연구결과를 보여주고 있으며, 동료 전문가의 심사를 거쳐 출판되었으며, 비판 및 오류분석 결과도 상당히 축척이 되었다. 실제 많은 전문가들이 피학대여성증후군을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의 일종으로 파악하고 있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외적·관계적 측면에 대해서는 사회적 정황 증거(social context evidence)로 제시하여 정당화 사유 내지 강요 등의 면책사유와 관련된 사실관계를 풍부하게 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우선 장기간의 학대관계로 인한 피학대여성의 행위의 특수성에 대한 부분은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전문가 증언 시 일관되게 제시되었던 부분이다. 또한 피학대 관계를 끝내지 못한 사회적·경제적 이유에 대한 부분도 사회적 정황 증거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피학대여성이 오랜 학대 끝에 반격행위를 통하여 남성을 살해 혹은 중상해를 입힌 경우에 대하여 깊은 연민을 대상이 되어 왔지만 이에 관한 법리적인 해결은 복잡한 미로를 그리는 작업이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여러 가지 성격의 내용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한 법리적인 논의도 단선적으로 진행될 수 없다. 객관적인 요건들을 보다 중시하는 법리와 관련되어 있을수록 피학대여성증후군의 객관적인 측면들이 보다 의미가 있을 것이고, 행위자의 특수한 심리내적 부분들이 강조되는 법리에 가까울수록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주관적 측면들이 보다 의미가 있을 것이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의 활용은 그 자체로 피학대여성의 불행을 구제하기 위한 일정한 법적 효과를 발생시킨다기 보다도 정당방위 법리의 변화를 상당부분 유도한 의미가 짙다. 다시 말하면 정당방위의 성립기준의 변화가 없다면 사회심리학적인 개념으로서의 피학대여성증후군의 활용도는 상당히 축소될 수밖에 없다. 반면, 전통적인 정당화 요건 내지 면책 요건이 가진 의미 내용 또한 쉽게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의 무게도 상당부분 존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당화와 면책 요건을 지나치게 확대하면, 그 반대면에는 부적절하고 부당한 피해자가 양산될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법여성학자들을 중심으로 미국의 학계에서는 피학대여성 반격행위는 전형적인 정당방위 상황과는 구분되는 특수한 경우이므로 기존의 요건들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임박성(imminency), 비례성(proportionality), 필요성(necessity)과 같은 정당방위 요건들이 오랫동안 학대를 당하여 심신이 왜곡된 상태에 있는 피학대여성에게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임박성 내지 시간적인 근접성(temporal proximity) 요건은 특히 비대결적 상황에서 반격행위를 통하여 중대한 결과를 발생시킨 피학대여성을 정당화하는 데 큰 장애였다. 이에 몇몇 학자들은 시간적인 근접성을 내용으로 하는 임박성 개념은 원래 정당방위 요건이 아니었으며 이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면 정당방위에서 회피의무(duty of retreat)를 요구하게 되어 정당방위의 근본정신에 반한다고 하며, 가변적이고 주관적인 필요성(necessity) 개념이 정당방위에 보다 핵심적인 요건이라고 주장했다.
현재까지 미국의 법원들은 임박성 요건을 크게 수정하지 않고 고수하고 있다. 다만, 많은 미국의 법원들은 정당방위의 성립 문제를 피학대여성증후군을 바탕으로 한 피학대여성의 인식의 상당성 문제로 전환했다. 즉, 피학대여성이 가해남성으로부터의 위험이 임박하거나 비례했다고 인식한 것이 상당했다면 정당방위가 성립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 것이다. 이는 사실상 피학대여성의 정당방위 성립과 관련한 쟁점을 객관적 요건을 주관적 필요성 요건으로 슬쩍 전환시킨 것이다.
만일 피학대여성 관련 사건을 정당화 사유로 분류하고자 한다면, 피학대여성증후군의 내용 중 심리내적인 내용들은 피학대여성의 행위 시 의사형성 등에 최대한 적은 기여를 하도록 하고, 피학대여성이 장기간 학대를 받아온 점, 고립되어 온 점, 학대의 강도가 대단히 높아서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협이었던 점, 심신장애 정도는 아니지만 학대가 관계종료의 의지를 좌절시켰다는 점 등 객관적 정황을 보다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숍 교수 또한 우울증(depression), 자존감 결여, 학습된 무기력 등의 피학대여성증후군의 내적 현상 보다는 지속적 학대 관계(battering relationship)내지 다른 대안적 선택이 없음(no institutional legal alternative)이라는 외적 정황이 정당방위 성립과 훨씬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경우에도 물론 엄격한 임박성 내지 비례성 요건의 역할을 축소하고 대신 필요성 요건을 활용하는 것이 정당방위 성립에 보다 유리하다. 다만, 임박성 개념 대신 필요성 개념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보복적 정당방위나 예방적 정당방위의 성립을 인정할 여지를 남기게 된다. 이는 사적 보복을 금지하고 형벌권의 국가독점을 수립하며 사적인 방위행위는 국가가 보호수단을 제공할 수 없는 범위 내에서만 인정하는 정당방위의 근본정신에 어긋날 가능성이 있다. 피학대여성의 상황이 아주 극악한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해야 할 것이다.
한편, 불완전 자기방어(imperfect self-defense) 법리는 면책사유로서 피학대여성증후군과 일면 어울리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주의할 것은 불완전 자기방어의 경우에도 “오인(mistake)의 상당성(reasonableness)”이라는 객관적 요건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피학대여성의 특수한 상황을 즉,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증세를 보이는 여성의 오인에 기초한 혹은 과도한 행위를 법질서 내에서 보호가능한 일반적인 경우로 평가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다시 등장한다.
피학대여성과 관련된 정당방위 법리가 상당히 변화하게 되자 이번에는 피학대여성과 관련된 강요(duress) 법리가 문제가 되었다. 피학대여성이 학대남성으로부터 지시받은 범죄행위를 강요 법리에 따라 면책할 수 있는가가 쟁점이 된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강요 법리와 상당부분 배치되는 내용을 지녔다. 연방항소법원들은 강요법리의 요건들은 본질적으로 객관적이어서 이에 한하여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해왔다.
숍 교수는 피학대여성증후군을 정당화 내지 면책 가능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새롭고 특별한 심리적인 현상으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정신적 질환(mental illness) 내지 심리적 장애(psychological disorder)의 일종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찍이 워커를 비롯한 상당수의 학자들이 피학대여성증후군을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의 하위개념으로 분류하고 있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은 행위자의 인식상태 내지 착오의 상당성, 특수한 심신상태(cognitive impairment, depression, learned helplessness)로 인한 유책성 감소 등 면책사유와 보다 밀접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정당화 혹은 면책과 같은 항변사유의 개념적 범주에 정확히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양적으로 책임비난을 감경하기 위해서는 활용도가 높다. 우선 미국의 일부 법원들은 피학대여성증후군을 일반살인(murder)을 격정살인(manslaughter)으로 감경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양형은 피학대여성의 책임의 감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연방법원이나 주법원이나 피학대여성증후군을 근거로 무죄항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피학대여성증후군을 근거로 형의 감경은 상당부분 이루어지고 있다.
6. 피학대여성 반격행위의 법적 평가
피학대여성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의 확대를 통하여 피학대여성이 보다 선처를 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은 분명 피학대여성증후군이 가져온 상당한 공로임은 분명하지만, 미국의 일부 주 법원과 같이 정당방위를 전적으로 주관화·사후심사화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당화 사유 혹은 면책사유를 개별적 사건 유형의 필요성에 따라 다른 성질과 내용을 지닌 것들로 변화할 수 있게 된다면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피학대여성만 특별하게 취급하는 이유에 대한 강력하게 설득력 있는 논증이 필요하다. 피학대여성이 특별한 이유로서의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설득력이 희박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초기부터 지금까지 피학대여성증후군은 과학계에서의 많은 비판을 받았고 따라서 법적인 증명력과 나아가 증거능력 또한 의심의 대상이 된 것은 앞에서 상당부분 논한 바 있다. 본고의 실증조사에서도 역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피학대여성들은 하나의 개체로서 학대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학대남성 그리고 주변의 여러 가지 인간관계 및 사회적 상황과의 관계에 대한 이유 때문에 떠나지 못한다. 남편에 대한 양가감정, 가족과 사회의 무관심, 이혼에 대한 두려움과 사회적 수치심 등이 이러한 이유에 속한다. 물론, 가해남성의 뉘우침과 끊질긴 추적, 가해남성의 가족과 여성의 생명에 대한 위협과 같은 피학대여성의 발목을 강력하게 잡는 가해남성의 위법한 행위가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만일 본고 제3장 제1절의 사례11과 같이 여성이 타인의 도움을 청할 수 없으며 극도로 고립된 환경하에서 생명에 위협될 정도의 가해행위가 장기간 반복되었다면 이는 정당화까지 고려해 볼만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당방위, 정당화적 긴급피난의 경우에 지나치게 개별적이고 주관적으로 해당 요건들을 해석할 가능하지 많지만 현재성과 상당성의 규범론적 완화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이 경우 피학대여성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었던 정황적·심리적 상황 모두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피학대여성증후군 혹은 피학대여성의 사회심리적 특성은 이러한 한도에서 피학대여성에 유리한 정당화 내지 면책 요건 해당성을 판단하는 데 상당한 의미가 있다. 단지 특정한 심리학적인 증세가 있다고 하여 심신장애라고 판결하기를 꺼려하는 우리 법원의 태도에 비추어 볼 때 피학대여성이 자기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잔존하는 데서 피학대여성증후군은 보다 의미가 있을 것이다. 현재의 정당방위 해석을 조금이라도 상황구체화 혹은 개별화할 수 있다면 피학대여성의 여러 가지 심리적·상황적 요인은 무게감을 더할 것이다. 사실, 정당방위 내지 방어적 긴급피난의 경우 피해자인 가해남성이 피학대여성의 정황적·심리적 상황의 악화에 기여한 데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는 좋은 법적 장치이다. 사실 책임배제를 시도하는 것도 제5장 제5절 2. 라.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반드시 정당화 사유 보다 용이하거나 원활하다고만 할 수 없다. 가벌성이 질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어려우나 양적인 감소는 현재 우리의 법제도하에서도 용이할 것으로 보이며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이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다. 워커의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면 피학대여성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결과 및 정황적 증언들이 법정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심신미약, 감형 등에서 많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 검토한 가정폭력 피해여성에 대한 사후적·실체법적 구제책은 일정정도 한계가 있으며 미국과 같이 완전히 주관적상황구체적인 정당화 요건의 변화로 나아갈 수 없을뿐더러 나아가서도 안되므로, 사전적이고 절차적인 구제책의 중요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불행한 결과의 해소는 단편적이고 급진적인 법제도를 구축한다고 하여 해결되지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야만이 가능한, 난제에 속하는 것이다.
여성가족부의 조사결과 15%의 기혼여성들이 지난 일년 동안 남편으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전 세대와 비교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향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법제도는 가정폭력을 예방하고, 가정폭력의 피해여성들을 보호하는데 제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배우자를 폭행하는 남성은 자녀들까지 폭행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자녀들은 폭력의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의 폭력성을 내면화하여 가정폭력은 대물림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가정 안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은밀하면서 오랜 기간 지속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가정폭력의 실상이 외부로 알려지게 될 때는 이미 피해자의 정신과 육체가 완전히 파괴된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사회가 가정폭력을 방관하는 동안, 남편의 극심한 폭행을 견디다 못해, 살인을 저지른 여성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가치로 타인의 생명을 뺏은 사람은 응분의 댓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폭력남편을 죽인 여성들은 남편의 구타와 성폭력으로 인해 이미 인격적, 정신적으로 타살당한 피해자이므로 여타의 살인 피의자들과 동질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가정폭력으로 인해 살인을 저지른 여성들이 나타내는 심리적 특성과 상황적 특수성에 관해 학문적 연구가 필요하고, 이러한 여성들에 대해 법원의 선처가 필요하다는 전환적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은 서구역사에서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간 한국사회에서도 폭력남편이 살해되는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했을때만 관심이 집중되었을 뿐, 이러한 결과를 낳게 한 사회문화적 특성, 가해자와 피해자의 특성 등에 대한 실증조사 및 사법적 대응방안을 위한 밀도있는 법리적 고찰은 미흡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법현장에서도 피해여성들에 대해 관대한 처우를 고려하게 되었고, 2000년 이후에는 판결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범죄자가 된 여성들의 문제에는 여성이라는 성적 변수와 한국사회라는 문화적 변수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습니다. 때문에 단순히 서구의 연구결과와 이론을 그대로 이식하는 수준이 아닌, 국내현실을 바탕으로 한 실증적인 자료를 축적하고 선진각국의 제도를 성찰하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학제간, 문화간 통합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본 보고서는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으며, 심리학자와 법학자들이 영역을 넘나들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자료를 공유한 결과의 산물입니다. 이 연구결과가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남편살해의 가해자인 여성들에 관한 국내 형법학계의 논쟁을 촉발시키고, 사법정책의 영역에서 보다 합리적이고 다양한 대응방안들이 생산되는데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합니다. 끝으로 연구를 위해 애쓴 김지영 연구위원과 강우예 부연구위원, 김성규 교수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2011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
[국문요약]
1. 연구의 목적 및 의의
본 연구는 국내에서도 학대로 인해 가해남성을 살해한 여성들에 관한 실증연구와 그 결과의 사법적 적용에 관해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한다는 필요성에 의해 시작되었다. 즉, 미국의 학계와 법정에서 찬반양론이 팽팽한 피학대여성증후군이론 자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뿐 아니라, 피학대여성증후군이외 여성들을 변호할만한 형법적 논리와 실증적 근거가 없는지에 관한 본격적인 탐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보고서는 먼저, 국내의 남편살해피학대여성에 대한 실증조사를 통해 피학대여성의 사회심리적 특성과 그들에 대한 법적용의 실태를 살펴보고, 다음으로 독일, 일본, 미국의 피학대여성에 대한 사법적 대응의 실태를 고찰하였는데, 특히 미국 법원 및 법학계에서 피학대여성이 기소된 사건들에 있어 피학대여성증후군을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해왔는지를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이는 일차적으로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증명력과 증거능력에 관한 문제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증명대상과 실체법적 쟁점에 관한 문제이다. 이 두 가지 쟁점은 피학대여성증후군과 관련된 다른 방향의 법적 쟁점이지만 결국 상당히 긴밀하게 연관이 되어 있는 문제이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정황들이 법정에서 섬세하게 활용될 수 있다면, 정의와 형평에 보다 접근하는 방향으로 피학대여성의 행위와 결과의 가벌성과 관련된 법적 기준의 발전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 보고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실증조사와 형법적 논의를 결합한 법심리학적 접근방법으로 남편을 살해한 피학대여성들에 관한 절차법적, 실체법적 개선방안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피학대여성의 사후적 구제책은 피학대여성증후군을 단지 활용한다고 하여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기존 법리가 상당부분 수정되어야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피학대여성 행위의 정당성과 면책가능성을 논하는 단계의 성격이 규명되어야 한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피학대여성증후군이라는 개념이 정당화 요건과 면책 요건을 변화시키는 데 강력한 동인이 되었던 것으로 평가되었음에 비추어 이러한 변화의 성격과 내용의 정당성에 대하여 심사를 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짚어 보는 데 있어 피학대여성증후군과 형사법리와의 관계에 주된 초점을 두고 분석했지만, 피학대여성증후군에 제한되지 않고 피학대여성의 다양한 심리적·상황적 현상들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이는 피학대여성증후군과 형사법리의 관계라는 좁은 쟁점에서 출발하여 보다 넓고 포괄적인 시각으로 전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연구방법
본 연구는 문헌연구와 실증조사로 나뉘어 진행된다. 문헌연구는 피학대여성에 관한 심리학적 연구결과와 피학대여성의 반격행위관련 국내 법리적 논의 및 판례를 분석하고, 미국, 독일, 일본의 법이론적 논의 및 판례를 분석하였다. 피학대여성에 대한 사후적 보호방안의 마련을 위한 심리학적 연구성과를 활용한 미국의 법원과 학설의 현황을 주로 분석과 이해의 토대로 삼았다. 소위 피학대여성증후군이 현존하는 미국의 정당화 및 법리를 극한까지 몰고 가서 사실상 변화시킨 부분이 가장 큰 쟁점이었다. 이 부분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지에 대한 부분에 주로 본 글의 분석의 초점이 맞추어졌다. 가능한 한 가장 급진적인 견해와 전통적인 견해를 대비시켰으며 양자 중 어디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며 진실은 어디에 가까운지를 최대한 부분적인 개념까지 놓치지 않고 추적했다. 즉, 위법성 및 면책의 객관성을 고수하고자 하는 태도와 행위자의 개별적 상황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태도 간의 긴장을 활용했다.
실증연구는 사례분석과 판결기록조사로 이루어졌다. 사례분석은 12명의 심층면접사례와 2명의 수사재판기록을 대상으로 하였다. 18명의 대상자를 면접하였으나 이들 중 4명은 학대를 당한 사실이 없었으며, 또 다른 2명은 판결문에는 짤막하게 남편의 폭력이 언급되어 있으나 정신질환이 심각하여, 응답에 일관성이 없이 횡설수설하여 면담에서 제외하였다. 18명중 6명을 제외하고 12명이 분석대상이 되었다. 면담이 끝나면, 신분카드, 신분장, 분류처우심사표에 나타난 전과, 질환여부, 교정심리검사결과 등의 제반사항을 기록하였다. 12개의 사례이외에 판결문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사례 2개를 골라 수사재판기록을 분석하였다. 이로써 최종적으로 14개의 사례가 분석대상이 되었다. 사례에 대한 심층분석은 남편을 살해하고 교도소에 수감중인 12명의 여성들과 수사재판기록에 나타난 2명의 여성사례 총 14명의 사례를 대상으로 하였다.
판결기록조사는 다음과 같은 절차로 이루어졌다. 먼저 두 차례의 대법원 방문 시,『살인, 과실치사, 폭행, 남편, 아내, 주부, 정당방위, 과잉방위, 오상방위, 긴급피난, 가정폭력, 심신상실, 심신미약, 학대, 변태』등의 검색어로 교차 검색하여 본 연구와 관련된 판결문을 선정하여 일차적으로 대법원 통합법률시스템 및 판결문 제공신청으로 판결문을 찾고, 찾을 수 없는 판결문들은 각 법원에 협조 요청하여 총 70개의 판결문을 분석대상으로 하였다.
3. 사례분석결과
국내의 선행연구에서 사용된 심층면접이나 사례분석은 양적연구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으며, Walker의 피학대여성증후군을 이론적 근거로 하여 살인의 동기를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인한 상황에 대한 오판, 누적된 폭력에 의한 공포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본 연구에서도 피학대여성증후군에 관한 기존의 연구결과와 국내선행연구들에서 나타난 공통된 결과에 주목하고는 있으나, 기본적 분석의 틀은 여성들이 가진 성장환경과 결혼생활, 폭력피해 실태, 심리적 과정, 살인의 동기 등이 가진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때문에 이전의 남편살해 피학대여성에 관한 연구들과 달리 BWS(피학대여성증후군)에 기대어 살인의 동기와 여성들의 심리적 특성을 일률적으로 재단하지 않았다.
사례분석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여성들이 당한 학대와 ‘왜 학대를 당하면서 남성을 떠나지 못했는가’에 관한 것이다. 사례분석에 나타난 대부분의 여성들은 범행직후 자수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여성들은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적어도 사건에 직면하기 직전까지는 남편에 대한 살인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면담과 수사재판기록을 통해 당시 상황에서 여성들이 느꼈던 감정이나 인지적 판단의 내용을 완전하고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또한 여성들의 회고를 통해 들을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과 여성들이 술회하는 살인의 동기는 대부분 우발적이다. 때문에 여성들의 살인동기보다는 살인의 발생에 이르도록 남편을 떠나지 못하거나, 남편의 폭력을 중지시키지 못한 상황과 이유에 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Walker가 주장한 학습된 무기력과 여성들의 낮은 자아존중감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가장 많이 공격받은 부분인데, 실제 면접에서 만난 피학대 여성들의 대부분은 생활력이 강하고, 자기의 삶을 영위해나가는데 적극적이었으며, 자녀를 위해 살아가는 억척스러운 여성들이었다. 이들 중 다수는 학대남성을 만나기전까지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고, 같이 사는 동안에는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기도 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여성들의 모습은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상황이 가진 문제를 드러내준다. 즉, 사례에서 여성들은 경찰에 신고했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상담소나 쉼터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으며, 상담소의 존재를 알고 상담소에 전화를 한 사례에서조차 상담소로부터 무성의한 응답만 들었을 뿐이다. 또한 친정식구나 시댁식구에게 학대사실을 말한 경우에도 돌아오는 것은 여성의 인고에 대한 강조였다. 만약 도피를 감행할 경우, 생계수단이 막막할 뿐 아니라 친정식구를 모두 죽이겠다, 도망가면 끝까지 찾아내겠다는 협박은 여성과 자녀를 보호해줄 법적 장치가 전무한 상황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현실이다. 면담에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말한 여성들조차도 자신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통제력을 상실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즉, 여성들이 학대상황에서 학습된 무력감 때문에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다는 Walker의 주장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때문에 이러한 여성들의 노력이 법정에서 충분한 부각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폭력의 순환주기에 대한 Walker의 통찰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Walker의 수정된 이론대로 남성들 대부분이 애정어린 뉘우침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며, 마지막 단계는 단지 폭력의 일시적 휴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남성들이 폭력을 행사하고 눈물로 참회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겪었던 사례들에서는 남성에 대한 불쌍함, 측은함이 관계에 머물러 있게 된 중요한 이유로 나타났다.
여성들이 당하는 학대상황에 대한 분석결과에서 주목할 점은 신체적 폭력 못지않게 성적 학대와 정신적인 학대, 경제적 학대 등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구타 이후의 성관계에 대한 강제,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의 폭력과 흉기위협, 자녀와 친정식구들에 대한 폭행과 협박, 잠못자게 하기, 의처증, 생활비를 주지 않으면서 노동활동을 통제하는 등의 전방위적인 폭력상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성들의 자제력을 무너뜨리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들의 살인동기에는 자기 자신과 자녀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와 남성에 대한 분노라는 두 가지 동기로 크게 나눠진다. 여기서 말하는 정당방위는 형법적인 개념보다는 느슨하고, 페미니즘적인 관점보다는 엄격하다. 분명히 남성들이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는 대면상황에서 사건이 발생했으며, 여성들이 느낀 절박함에는 차이가 있으나, 자신과 자녀의 안전을 위해 남성을 공격한 사례만을 정당방위로 분류하였다.
국내외의 선행연구에서는 비대면 상황에서도 여성들의 살해동기에 분노보다는 공포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면접에서 만난 여성들의 절반 이상이 남편이 수면 중이거나 여성을 공격하지 않는 상태일 때 살해했는데, 그 때 당시 분노를 느꼈다고 표현했다. 여성들이 살인의 피의자이고 대부분 사건이 종결되고 시간이 흐른 이후에 면접이 진행되기 때문에 자기보고적인 조사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보자면 여성들이 분노를 느꼈다는 말도 완전히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즉, 여성들이 ‘분노’에 대해 말한 것은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서 자신이 학대당하던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는 중에 생긴 해석적 감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4개의 사례를 제외한 10개의 사례에서 여성들은 살인의 동기를 분노로 표현했다.
4. 판결문기록조사
분석대상이 된 여성들의 약 80%가 공식적인 죄명이 살인이었고, 나머지 20%에서 살인미수, 상해치사, 폭행치사 등으로 나타났다. 피학대 여성들의 남편살해는 대부분 우발적이기 때문에 공범이 없으나, 공범이 있는 6건의 사건에서 자녀가 공범인 사건이 4건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은 신체적 특성상 남성을 완력으로 제압하기 어렵기 때문에 흉기를 사용한 경우가 88.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흉기는 사건현장에 있던 경우가 가장 많았고, 남성이 사용하던 흉기로 공격한 경우가 다음으로 많았다. 피학대 여성들은 공포 때문에 과도한 공격(overkill)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실제 약 40%의 사건에서 남성을 흉기로 가격한 횟수가 4회 이상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이 학대로 인해 병력을 가지고 있는지 조사한 결과, 남편의 폭력에 의해 골절이나 고막파열, 상해 등의 병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여성들은 모두 20명이었다. 또한 남편의 학대로 인해 정신적인 병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 여성들은 모두 26명이었다. 여성들의 병력이 적은 이유는 판결문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학대남성이 지니고 있던 문제를 보면 신체적 폭력과 언어적 폭력, 음주문제가 가장 많았으며, 생계에 대한 무관심이 네 번째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최종판결에서 60%의 여성이 유기형을 선고받았고, 약 2%의 여성은 무기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여성은 약 33%이다. 이러한 여성들의 형량을 보면 3년 이상 ~ 4년 미만이 약 30%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6년 이상 ~ 10년 미만이 많았다. 세 번째로 4년 이상에서 5년 미만, 5년 이상에서 6년 미만이 동일한 비율로 결과 되었다.
변호인의 변호요지를 보면 여성들에 대해 정당방위를 주장한 비율이 23%로 가장 높았으며, 과잉방위가 20.5%로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다음으로 심신장애, 범의 없음(우연의 결과)이 뒤를 이었다. 판사의 유죄판단 및 양형의 논지를 보면 생명의 존엄과 가치가 피해자귀책보다 중하다는 논지가 25%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가해행위의 상당성 결여, 현재성/급박성 결여, 죄질불량 등이 뒤를 이었다. 즉, 여성들의 학대사실에 관해서는 인정되고 있으나, 피학대 여성들의 반격행위가 가지는 정당성과 상당성에 관한 부분은 아직도 법정에서 인정되고 있지 않은 듯했다. 피학대여성에 대한 정상참작사유에서도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피해자에 의한 학대, 다음으로 피고인의 전과 없음, 피고인의 반성, 범죄의 우발성 순으로 결과 되었다.
집행유예를 받은 여성들과 집행유예를 받지 않은 여성들 간에 여성들의 피해상황과 범행의 특성 등에 있어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교차분석을 실시하였다. 여성들의 신체적 및 정신적 피해는 집단 간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집행유예를 받지 않은 집단에서 피해사례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당시 여성들의 음주여부가 집단 간에 차이가 있는지에 관해서도 분석하였는데, 그 결과 오히려 실형을 받은 집단에서 더 음주비율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으며, 통계적 차이도 유의미하였다. 그 외에도 피해자와 대면상황에서 살인을 저질렀는지, 피고인이 사건은폐를 시도했는지의 여부 등이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여주지 못하여, 집행유예를 받은 집단과 실형을 산 집단 간에 범행특성과 여성의 피해상황 등이 뚜렷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판결문에 누락된 부분이 많은 때문일 수도 있으나, 남편살해 피학대여성에 대한 법적판단에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5. 형사법적 쟁점
가. 우리나라
우리나라의 경우, 주로 형사소송법 제13장에 따라 증거로 취급되는 정신감정서를 통하여 피학대여성증후군과 관련된 전문가의 감정의견이 서면으로 법관에게 제출된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이 우리 법원의 감정서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의 일이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일종의 심신미약을 뒷받침하는 증거 내지 이후 양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한 증거로 활용되고 있다. 몇몇 사실심에서는 변호인이 피학대여성증후군을 정당방위 내지 과잉방위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피학대여성증후군 관련 증거채택은 법원의 재량 하에 직권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정신감정서 상에서 피고인의 여러 가지 정신병리학적·심리학적 증상에 대한 전문가 의견의 한 형태로 제시된다. 이러한 피학대여성증후군과 관련된 전문가 의견이 어느 정도의 증명력을 지니고 있는지 나아가 증거능력을 부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쟁점으로서 제기조차 되지 않고 있다. 사실, 정신감정서 상의 피학대여성증후군 관련 내용이 증거능력 혹은 허용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다른 과학적 증거 혹은 전문적 증거와 마찬가지로 과학적으로 최소한도의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이 법정에서 활용하기에 정당한 증거가 되는지에 대해서 국내에서는 별다른 고민이 없다.
우리의 경우에도 피학대여성의 형사책임에 관한 학계의 논의는 1990년 중반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 중이다. 이 논의는 정당방위의 본질과도 관계된 문제이며 형법해석의 한계라는 근본적인 쟁점과도 관계되어 있다. 현재 까지 법원에서 정당화 사유로 피학대여성의 상황과 행위를 포섭하는 경우는 없으며 넓게는 무죄판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피학대여성의 가벌성을 극도로 낮게 보아서 집행유예 판결을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논의가 정당방위를 벗어나면 주로 피학대여성이 피학대여성증후군과 관련하여 심신장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논하게 된다. 일부 학설에서는 긴급피난 성립 여부에 대하여 논하고 있으며 긴급피난 중에서도 정당화적 긴급피난과 면책적 긴급피난으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피학대여성의 과거의 학대사실이나 이로 인한 심리적 상흔에 대하여 양형의 감경사유로 고려하고 있다.
나. 독일
독일에서는 1970년대 이래 피학대여성의 반격행위와 정당방위의 관계 및 그것에 대한 법적 기관의 대응에 관한 문제가 큰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독일에서 피학대여성의 그와 같은 반격행위가 정당방위의 관점에서 논해지게 된 계기로서는 특히 1969년과 1974년에 내려진 독일 연방법원(Bundesgerichtshof) 판결을 들 수 있다. 이 두가지 판결은 피학대여성이 남편을 살해한 사건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와 같은 경우를 ‘보증관계 내에서의 공격에 대한 정당방위’로 일컫는 한편, 그러한 관계에서도 낯선 사람의 공격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정당방위권의 행사가 가능한지를 문제로 삼았다. 판례는 일관해서, ‘보증관계’와 같이 특별히 긴밀한 인적 관계에 있는 경우에는 사회윤리적 견지에서 정당방위권이 제한되며, 그러한 관계에서는 피공격자에게 공격자에 대한 일종의 특별한 배려의무가 법적으로 요구된다고 해서 정당방위를 부정했다. 그런데 마찬가지의 사건을 다룬 1984년의 판결은 그와는 달리 피고인인 여성의 정당방위를 인정했다.
독일에서도 역시 피학대여성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과 관련하여 문제가 되는 것은 긴급방위(Notwehr)(독일「형법전(Strafgesetzbuch)」제32조)의 사실적 전제에 해당되는 공격의 현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가정내 폭력에서 문제되는 위협관계 내지 학대상황에서 공격의 현재성을 요구하는 긴급방위권(Notwehrrecht)이 고려되는 경우는 사실상 드물다. 그 점은 궁극적으로 그와 같은 사건을 재판하는 법원에게는 공격의 현재성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결여되어 있는 것에 기인하고 있다. 그 점과 관련해서 피고인으로서의 피학대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대체로 두 가지로 좁혀질 수 있다. 하나는, 남편의 학대가 차후에야 비로소 행해질 것으로 예상되거나 혹은 그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에는 공격의 현재성이 부정되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피학대여성의 반격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긴급방위(Notwehr)의 객관적 사정이 존재해야만 하고, 그러한 사정이 있는 것에 관한 주관적 인식만으로써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물론 오상방위(誤想防衛)가 문제된다. 그 두 가지의 점은 피학대여성이 처해 있는 생활환경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는 것이다. 종래 법원은 대체로 그와 같은 상황을 무시하거나 피학대여성의 경험적 판단에 가치를 두지 않고 있다. 따라서 피학대여성으로서는 조만간 실제로 남편의 공격이 행해지게 될 것을 잘 알면서도, 또한 어차피 자신의 생명은 이미 염려되는 상황에서도, 실제의 공격을 기다려야 한다.
다만, 피학대여성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에 관한 사회과학적 지식은, 종래 피학대여성의 배우자살해가 문제되는 사건에서 정당화사유 내지 면책사유(독일「형법전(Strafgesetzbuch)」제32조 이하)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독일의 법제 하에서도 유용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제시되고 이다. 나아가, 긴급방위(Notwehr)(독일「형법전(Strafgesetzbuch)」제32조)의 경우에는 그 요건으로서의 공격의 현재성의 개념이 피학대여성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에 대한 인식에 기초하는 법해석을 통해서 그와 같은 요건이 지니고 있는 차별적 속성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피학대여성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에 대한 인식이 그와 같이 정당화의 단계에서 법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면책적 긴급상황(entschuldigender Notstand)(독일「형법전(Strafgesetzbuch)」제32조)의 규정을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도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피학대여성의 배우자살해가 문제되는 사건에 관해서는 피고인의 정신적 이상(異常)상태에만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고, 그 결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학대상황은 피고인의 주관적인 심리의 문제로서 취급될 우려가 있다고 한다. 그 점과 관련해서, 배우자를 살해한 피학대여성이 단지 면책되는 데에 그치거나 혹은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되는 점을 강조하는 견해, 즉, 피학대여성도 어디까지나 이성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존재로서 취급받을 권리는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고, 그와 같은 관점에서 배우자를 살해한 경우에는 그것이 자기방위로서 정당화되는 것이지 피학대여성의 정신병적 상태가 문제되어서는 안 되는 점을 지적하는 견해가 종종 인용되고 있다.
다. 일본
일본에서는 형사사법에서의 피해자보호가 중요한 정책과제의 하나로서 인식되고 있다. 피학대여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동향 중의 하나는 법리적인 측면에서 가령 상해죄의 경우에 종래 경시되어온 정신적 피해에 대한 인식과 그 형법적 평가에 대한 논의가 종종 행해지는 한편, 이른바 ‘범죄자의 피해자성’에 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후자의 문제는, 범죄학의 발전이 범죄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는 점을 밝혀내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과연 범죄자의 존재가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가해를 행한 자로서 평가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관한 문제로서, 범죄자가 과거에 피해자로부터 받은 학대로 인해서 심적 외상(外傷)을 겪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경우에는 범죄자가 동시에 피해자로서 생각될 수도 있으며, 그와 같이 피해자이기도 한 범죄자의 형사책임은 종래와는 달리 평가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이 존재한다. 또한, 그러한 관점에서 형사책임에 관한 종래의 사고방식도 수정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문제의식도 존재한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오히려 피해자인 점을 주장하는 항변의 형태를 취하면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미국에서의 사례를 검토하는 것이 일본의 형사책임론에도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첫째, 행위자의 피학대경험과 같은 피해체험은 그 형사책임의 평가에 있어서 적절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 점은 피해자보호의 관점에서도 요청되는 것이고, 또한 사회변혁을 위한 중요한 문제제기로서도 필요하다고 한다. 둘째, 행위자가 피해를 체험한 것 자체가 면책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면책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행위 당시에 위법행위를 회피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사정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해체험을 강조하는 것의 의의는 책임론의 틀 자체의 변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종래의 이론구조를 전제로 하면서도 보다 넓은 면책가능성이 있는 점을 의식시키는 데에 있다고 한다. 따라서 재판에서 고려될 수 있는 피해체험에 제한을 둘 필요는 없고 널리 다양한 사상(事象)이 피해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셋째, 현재 일본에서는 전통적인 타행위가능성에 터 잡고 있는 규범적 책임론에서 예방적 관점을 고려한 책임론에로의 전환이 유력하게 주장되고 있지만, 피해체험을 형사책임론에서 적절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행위 당시 행위자의 의사(意思)의 자유가 피해체험에 의해서 제약된 점이 인정될 필요가 있는 한에서는 규범적 책임론이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넷째, 책임의 일반원리에 해당되는 타행위가능성의 판단기준에 관해서는 평균인표준설이 통설로 되어있지만, 피해체험을 적절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당해 행위자의 성장환경이나 과거에 체험한 사건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그 한에서는 행위자표준설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동일한 피해체험이 반드시 동일한 증상을 초래하지는 않는 점이 정신의학에서 널리 승인되고 있으므로 유사한 환경에 놓여 있어도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면책을 방해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다섯째, 책임조각에 관한 종래의 이론구조는 행위자의 인격 내부의 요소와 그 외부의 요소를 나누어 후자에 관해서는 책임의 조각을 인정하지만 전자에 관해서는 자유의사의 행사를 인정하는 것인데, 피해체험이 책임판단에 고려되는 요소가 되는 경우에는 그 피해체험에 의해 인격과는 이질적인 장해가 발생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격 그 자체가 변용되어버리는 것인지는 본질적인 차이를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한다. 여섯째, 피해체험에는 추상적이기는 해도 가해자를 예정하는 경우와 가령 천재지변과 같이 가해자를 예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피해체험의 평가를 사회변혁의 계기로 하기 위해서는 양자를 달리 평가할 것인지의 여부가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일곱째, 피해체험을 형사책임의 평가에 고려하는 때에도 어떤 책임조각사유가 문제되는지를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 경우에는 특히 책임능력의 개념이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여덟째, 배심제를 채용하지 않거나 혹은 배심제를 채용하더라도 법관에 의한 사실인정을 방기하지 않는 재판제도 하에서는 책임론이라고 하는 실체법상의 문제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체험으로부터 행위 당시에 어떤 장해가 발생산 경우에 책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에 관한 논의는 불가결하며, 구체적인 면책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피해체험에 의해 책임이 조각되는 경우는 한정적이겠지만 책임의 감소가 인정되는 경우는 상당히 존재할 것이므로, 양형에 관해서 보면 피해체험이 수행하는 역할은 클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적어도 피해체험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모든 책임을 행위자에게 지게 하는 것, 가령 행위자에게 사형(死刑)을 과하는 것은 부정될 것이라고 한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향후 일본에서도 범행 당시의 외상후(外傷後)스트레스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내지는 피학대여성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이 존재한 사정이 심신미약상태에 해당되어 정상작량(情狀酌量)의 대상이 되는 것인지에 관한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라. 미국
1980년 중반부터 피학대여성증후군은 피학대여성의 가벌성 판단과 관련된 증거로 미국 법원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은 과학적으로도 일반적인 승인을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거의 대부분의 미국 법원들이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있지만 증명대상 및 증명목적에 따라 인정여부가 차이가 난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증거법적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한편으로는 피학대여성증후군의 피학대여성의 가벌성 판단에 있어 실체법적 내용 및 효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사회과학계 및 심리학계의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학대여성증후군의 퇴장을 예측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은 많은 수의 법학 및 사회과학 전문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재 피학대여성증후군에 대한 학계의 상당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재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증명대상범위를 넓혀가며 법원에서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범위는 더 늘어나고 있다. 방법론과 실증적 결과 등에서 문제점을 노출시켰지만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사회심리학적 현상을 설명한 개념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완전히 가치가 없는 것이라 볼 수 없다는 견해도 경청해야 한다. 태츨리츠(Taslitz)는 순수한 가치중립적인 사회과학적 연구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은 반드시 워커가 주장한대로의 패턴을 정확히 보여주지는 않고 있지만 미약하나마 의미있는 연구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심리내적인 부분과 심리외적·관계적인 부분으로 나누어 법정에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심리내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은 적절한 연구방법과 연구결과를 보여주고 있으며, 동료 전문가의 심사를 거쳐 출판되었으며, 비판 및 오류분석 결과도 상당히 축척이 되었다. 실제 많은 전문가들이 피학대여성증후군을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의 일종으로 파악하고 있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외적·관계적 측면에 대해서는 사회적 정황 증거(social context evidence)로 제시하여 정당화 사유 내지 강요 등의 면책사유와 관련된 사실관계를 풍부하게 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우선 장기간의 학대관계로 인한 피학대여성의 행위의 특수성에 대한 부분은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전문가 증언 시 일관되게 제시되었던 부분이다. 또한 피학대 관계를 끝내지 못한 사회적·경제적 이유에 대한 부분도 사회적 정황 증거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피학대여성이 오랜 학대 끝에 반격행위를 통하여 남성을 살해 혹은 중상해를 입힌 경우에 대하여 깊은 연민을 대상이 되어 왔지만 이에 관한 법리적인 해결은 복잡한 미로를 그리는 작업이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여러 가지 성격의 내용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한 법리적인 논의도 단선적으로 진행될 수 없다. 객관적인 요건들을 보다 중시하는 법리와 관련되어 있을수록 피학대여성증후군의 객관적인 측면들이 보다 의미가 있을 것이고, 행위자의 특수한 심리내적 부분들이 강조되는 법리에 가까울수록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주관적 측면들이 보다 의미가 있을 것이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의 활용은 그 자체로 피학대여성의 불행을 구제하기 위한 일정한 법적 효과를 발생시킨다기 보다도 정당방위 법리의 변화를 상당부분 유도한 의미가 짙다. 다시 말하면 정당방위의 성립기준의 변화가 없다면 사회심리학적인 개념으로서의 피학대여성증후군의 활용도는 상당히 축소될 수밖에 없다. 반면, 전통적인 정당화 요건 내지 면책 요건이 가진 의미 내용 또한 쉽게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의 무게도 상당부분 존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당화와 면책 요건을 지나치게 확대하면, 그 반대면에는 부적절하고 부당한 피해자가 양산될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법여성학자들을 중심으로 미국의 학계에서는 피학대여성 반격행위는 전형적인 정당방위 상황과는 구분되는 특수한 경우이므로 기존의 요건들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임박성(imminency), 비례성(proportionality), 필요성(necessity)과 같은 정당방위 요건들이 오랫동안 학대를 당하여 심신이 왜곡된 상태에 있는 피학대여성에게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임박성 내지 시간적인 근접성(temporal proximity) 요건은 특히 비대결적 상황에서 반격행위를 통하여 중대한 결과를 발생시킨 피학대여성을 정당화하는 데 큰 장애였다. 이에 몇몇 학자들은 시간적인 근접성을 내용으로 하는 임박성 개념은 원래 정당방위 요건이 아니었으며 이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면 정당방위에서 회피의무(duty of retreat)를 요구하게 되어 정당방위의 근본정신에 반한다고 하며, 가변적이고 주관적인 필요성(necessity) 개념이 정당방위에 보다 핵심적인 요건이라고 주장했다.
현재까지 미국의 법원들은 임박성 요건을 크게 수정하지 않고 고수하고 있다. 다만, 많은 미국의 법원들은 정당방위의 성립 문제를 피학대여성증후군을 바탕으로 한 피학대여성의 인식의 상당성 문제로 전환했다. 즉, 피학대여성이 가해남성으로부터의 위험이 임박하거나 비례했다고 인식한 것이 상당했다면 정당방위가 성립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 것이다. 이는 사실상 피학대여성의 정당방위 성립과 관련한 쟁점을 객관적 요건을 주관적 필요성 요건으로 슬쩍 전환시킨 것이다.
만일 피학대여성 관련 사건을 정당화 사유로 분류하고자 한다면, 피학대여성증후군의 내용 중 심리내적인 내용들은 피학대여성의 행위 시 의사형성 등에 최대한 적은 기여를 하도록 하고, 피학대여성이 장기간 학대를 받아온 점, 고립되어 온 점, 학대의 강도가 대단히 높아서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협이었던 점, 심신장애 정도는 아니지만 학대가 관계종료의 의지를 좌절시켰다는 점 등 객관적 정황을 보다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숍 교수 또한 우울증(depression), 자존감 결여, 학습된 무기력 등의 피학대여성증후군의 내적 현상 보다는 지속적 학대 관계(battering relationship)내지 다른 대안적 선택이 없음(no institutional legal alternative)이라는 외적 정황이 정당방위 성립과 훨씬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경우에도 물론 엄격한 임박성 내지 비례성 요건의 역할을 축소하고 대신 필요성 요건을 활용하는 것이 정당방위 성립에 보다 유리하다. 다만, 임박성 개념 대신 필요성 개념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보복적 정당방위나 예방적 정당방위의 성립을 인정할 여지를 남기게 된다. 이는 사적 보복을 금지하고 형벌권의 국가독점을 수립하며 사적인 방위행위는 국가가 보호수단을 제공할 수 없는 범위 내에서만 인정하는 정당방위의 근본정신에 어긋날 가능성이 있다. 피학대여성의 상황이 아주 극악한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해야 할 것이다.
한편, 불완전 자기방어(imperfect self-defense) 법리는 면책사유로서 피학대여성증후군과 일면 어울리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주의할 것은 불완전 자기방어의 경우에도 “오인(mistake)의 상당성(reasonableness)”이라는 객관적 요건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피학대여성의 특수한 상황을 즉,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증세를 보이는 여성의 오인에 기초한 혹은 과도한 행위를 법질서 내에서 보호가능한 일반적인 경우로 평가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다시 등장한다.
피학대여성과 관련된 정당방위 법리가 상당히 변화하게 되자 이번에는 피학대여성과 관련된 강요(duress) 법리가 문제가 되었다. 피학대여성이 학대남성으로부터 지시받은 범죄행위를 강요 법리에 따라 면책할 수 있는가가 쟁점이 된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강요 법리와 상당부분 배치되는 내용을 지녔다. 연방항소법원들은 강요법리의 요건들은 본질적으로 객관적이어서 이에 한하여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해왔다.
숍 교수는 피학대여성증후군을 정당화 내지 면책 가능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새롭고 특별한 심리적인 현상으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정신적 질환(mental illness) 내지 심리적 장애(psychological disorder)의 일종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찍이 워커를 비롯한 상당수의 학자들이 피학대여성증후군을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의 하위개념으로 분류하고 있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은 행위자의 인식상태 내지 착오의 상당성, 특수한 심신상태(cognitive impairment, depression, learned helplessness)로 인한 유책성 감소 등 면책사유와 보다 밀접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정당화 혹은 면책과 같은 항변사유의 개념적 범주에 정확히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양적으로 책임비난을 감경하기 위해서는 활용도가 높다. 우선 미국의 일부 법원들은 피학대여성증후군을 일반살인(murder)을 격정살인(manslaughter)으로 감경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양형은 피학대여성의 책임의 감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연방법원이나 주법원이나 피학대여성증후군을 근거로 무죄항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피학대여성증후군을 근거로 형의 감경은 상당부분 이루어지고 있다.
6. 피학대여성 반격행위의 법적 평가
피학대여성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의 확대를 통하여 피학대여성이 보다 선처를 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은 분명 피학대여성증후군이 가져온 상당한 공로임은 분명하지만, 미국의 일부 주 법원과 같이 정당방위를 전적으로 주관화·사후심사화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당화 사유 혹은 면책사유를 개별적 사건 유형의 필요성에 따라 다른 성질과 내용을 지닌 것들로 변화할 수 있게 된다면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피학대여성만 특별하게 취급하는 이유에 대한 강력하게 설득력 있는 논증이 필요하다. 피학대여성이 특별한 이유로서의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설득력이 희박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초기부터 지금까지 피학대여성증후군은 과학계에서의 많은 비판을 받았고 따라서 법적인 증명력과 나아가 증거능력 또한 의심의 대상이 된 것은 앞에서 상당부분 논한 바 있다. 본고의 실증조사에서도 역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피학대여성들은 하나의 개체로서 학대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학대남성 그리고 주변의 여러 가지 인간관계 및 사회적 상황과의 관계에 대한 이유 때문에 떠나지 못한다. 남편에 대한 양가감정, 가족과 사회의 무관심, 이혼에 대한 두려움과 사회적 수치심 등이 이러한 이유에 속한다. 물론, 가해남성의 뉘우침과 끊질긴 추적, 가해남성의 가족과 여성의 생명에 대한 위협과 같은 피학대여성의 발목을 강력하게 잡는 가해남성의 위법한 행위가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만일 본고 제3장 제1절의 사례11과 같이 여성이 타인의 도움을 청할 수 없으며 극도로 고립된 환경하에서 생명에 위협될 정도의 가해행위가 장기간 반복되었다면 이는 정당화까지 고려해 볼만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당방위, 정당화적 긴급피난의 경우에 지나치게 개별적이고 주관적으로 해당 요건들을 해석할 가능하지 많지만 현재성과 상당성의 규범론적 완화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이 경우 피학대여성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었던 정황적·심리적 상황 모두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피학대여성증후군 혹은 피학대여성의 사회심리적 특성은 이러한 한도에서 피학대여성에 유리한 정당화 내지 면책 요건 해당성을 판단하는 데 상당한 의미가 있다. 단지 특정한 심리학적인 증세가 있다고 하여 심신장애라고 판결하기를 꺼려하는 우리 법원의 태도에 비추어 볼 때 피학대여성이 자기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잔존하는 데서 피학대여성증후군은 보다 의미가 있을 것이다. 현재의 정당방위 해석을 조금이라도 상황구체화 혹은 개별화할 수 있다면 피학대여성의 여러 가지 심리적·상황적 요인은 무게감을 더할 것이다. 사실, 정당방위 내지 방어적 긴급피난의 경우 피해자인 가해남성이 피학대여성의 정황적·심리적 상황의 악화에 기여한 데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는 좋은 법적 장치이다. 사실 책임배제를 시도하는 것도 제5장 제5절 2. 라.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반드시 정당화 사유 보다 용이하거나 원활하다고만 할 수 없다. 가벌성이 질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어려우나 양적인 감소는 현재 우리의 법제도하에서도 용이할 것으로 보이며 피학대여성증후군은 이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다. 워커의 피학대여성증후군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면 피학대여성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결과 및 정황적 증언들이 법정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심신미약, 감형 등에서 많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 검토한 가정폭력 피해여성에 대한 사후적·실체법적 구제책은 일정정도 한계가 있으며 미국과 같이 완전히 주관적상황구체적인 정당화 요건의 변화로 나아갈 수 없을뿐더러 나아가서도 안되므로, 사전적이고 절차적인 구제책의 중요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불행한 결과의 해소는 단편적이고 급진적인 법제도를 구축한다고 하여 해결되지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야만이 가능한, 난제에 속하는 것이다.
목차
목 차
제1장 서론
제2장 일반론
제3장 여성의 목소리로 들어본 학대상황과 살인동기
제4장 남편살해 피학대여성에 대한 법적용의 실태
제5장 피해학대여성 보호방안 관련 법리 현황 및 변화
제6장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부록 1 : 교도소 설문조사지
부록 2 : 교도소 기록조사지
부록 3 : 교도소 면접지
부록 4 : 판결문 기록조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