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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00023448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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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서
2000년 1권 출간 이후 12년 만의 국내 최초 완역!
‘철학적 해석학’의 창시자 가다머 필생의 역작
하버마스, 데리다와 세기적 논쟁을 부른 현대 철학의 명저
“ 2차 대전 이후 독일 철학계에서 나온 가장 중요한 업적이다.”
위르겐 하버마스
【책 소개】
20세기 서구 지성사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는 『진리와 방법』(1960)은 근대 학문의 역사와 방법론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1927) 이후 나온 가장 비중 있는 철학서이자 해석학에 관한 기념비적 저서로 평가되는 이 책은 철학뿐 아니라 미학, 문학, 역사학, 신학, 법학, 사회학 등 광범위한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진리와 방법』은 1부에서 예술과 미적 경험, 2부에서 역사와 정신과학, 3부에서 언어를 다룬다. 이 책은 그 방대한 지식과 난해함 탓에 번역 자체가 무모하다고 여겨질 만큼 지난한 일이었다. 문학동네는 지난 2000년 이 책의 1부를 우선 번역해 『진리와 방법 1』을 펴냈고, 그후 12년 만에 2부와 3부를 묶어 『진리와 방법 2』를 출간한다. 이에 맞춰 1권 개정판도 함께 낸다. 15년의 세월 동안 모두 다섯 분의 번역자가 심혈을 기울인 『진리와 방법』 완역은 아직도 원전 번역의 풍토가 취약한 한국 지식사회에 풍부한 지적 자극을 제공할 것이다.
진리의 복권을 향한 ‘철학적 해석학’의 대장정
『진리와 방법』은 ‘진리’에 이르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가다머는 근대 과학의 객관주의적 방법론으로 포착되지 않는 진리의 경험과 그 정당성을 밝힌다. 가다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와 스피노자, 칸트와 헤겔을 거쳐 슐라이어마허와 딜타이에 이르는 서구 인문주의 전통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면서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가다머에게 진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역동적인 인간경험의 역사성에 기초한 이해의 산물이다.
후설과 하이데거를 발전적으로 계승한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은 훗날 비판이론의 하버마스, 해체론의 데리다와 세기적 논쟁을 촉발한다. 가다머 사후 데리다는 ‘끝나지 않은 대화’라는 제목의 추도사에서, 가다머와 나눈 우정어린 대화를 통해 비로소 20세기 독일 사상과 철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문학과 미학에서 가다머의 영향사 이론은 야우스의 수용미학과 허쉬의 문학해석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진리와 방법』은 학제간 경계를 넘나들며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식을 담은 저작이다. 가다머는 자연과학의 객관주의와 그 영향을 받은 인문과학(사회과학)의 실증주의, 그리고 정신과 인식대상의 주객 동일성을 전제하는 관념론에 맞서 ‘이해의 역사성’을 축으로 정신과학적 진리를 복권시킨다.
진리의 경험과 이해의 역사성
가다머가 『진리와 방법 1』(1부)에서 천착하는 것은 예술경험에서의 진리 문제다. 이렇게 예술경험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는 이 미적 체험의 영역이 근대 과학의 객관주의적 방법론의 영향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가다머는 미적 체험의 근간을 이루는 판단력과 미적 취미가 과학의 객관주의에 대립하여 주관성의 표현으로 수렴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진리를 예술작품에서 경험한다는 사실은 모든 이성적 논고에 맞서는 예술의 철학적 의미를 형성한다. 이렇게 철학의 경험과 더불어 예술의 경험은 과학적 의식을 향해 자신의 한계를 시인하라고 하는 가장 강력한 경고가 된다.”(1권 11쪽)
가다머가 이 책의 핵심이라고 강조한 것은 『진리와 방법 2』의 2부에서 논하는 ‘해석학적 경험’과 ‘이해의 역사성’이다. 이해란 인식의 기대지평이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상호매개 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주체의 선입견을 허물어뜨리면서 이해의 장場인 역사를 향해 확장되어가는 것이다. 이해는 그 본질상 영향사적 과정이다. 전통과의 상호작용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3부에서 논하는 ‘언어’는 그러한 해석학적 경험의 ‘매체’이자 ‘중심’으로서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다. 언어가 역사적 전승의 매체이자 이해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단지 기성관념과 인식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이해의 과정을 주도하고 구현하는 본질적 계기다.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는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으며, 언어 자체가 곧 세계관이다. 그런 맥락에서 가다머는 이해의 문제를 인식론에서 존재론의 차원으로 전환시킨다.
하버마스, 데리다와의 세기적 논쟁과
『진리와 방법』의 영향사
위르겐 하버마스는 명실상부한 프랑크푸르트학파와 비판이론의 계승자이고, 가다머는 후설과 하이데거의 제자이다. 두 사람의 세기적 논쟁에는 이런 상이한 지적 배경도 크게 작용한다. 『진리와 방법』에 대한 하버마스의 비판문이 발표된 것은 68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1967년이었다.
하버마스는 전통의 권위를 인정하는 가다머의 해석학적 경험 이론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독일 관념론에 이르는 지적 전통의 확고한 유산인 ‘비판적 성찰’의 힘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심지어 가다머의 그러한 지적 태도는 프랑스 혁명 직후 유럽 지성계에서 혁명에 반대하는 논리를 유포하는 데 앞장섰던 에드먼드 버크 류의 보수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1세대 보수주의’라고 규정한다. 하버마스는 가다머가 이해의 기본적 제약조건으로 설정한 ‘선입견’의 문제 역시 비판의 표적으로 삼는다. 그는 가다머가 선입견을 이해의 제약조건으로 보는 올바른 통찰에서 더 나아가 ‘선입견 자체의 복권’을 시도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가다머는 영향사적 맥락에서 전통을 선이해의 규정요인으로 설정하기는 했으나, 전통의 힘을 절대화한다거나 이해의 과정이 전통의 힘에 종속된다고 보지는 않았다. 또한 하버마스가 강조하는 ‘비판적 성찰’ 역시 이해와 마찬가지로 영향사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러한 제약을 초극하는 특권적 지위를 주장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하버마스의 비판과 달리 가다머는 계몽주의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편협한 이성중심주의로 인해 역사적 전통의 힘을 간과하는 비역사적 관념성을 비판한다. 가다머의 논리로 보자면, 하버마스가 말하는 ‘비판적 성찰’ 역시 계몽의 정신을 ‘확고한 유산’이라고 믿는 영향사의 맥락에서 만들어진 완고한 ‘선입견’일 뿐이다.
가다머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로 이루어지는 이해의 과정에서 그 누구도 전통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전통의 영향에 의해 형성된 선입견을 자각하고 극복해가는 것이 진정한 이해의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한편, 해체론의 기수 자크 데리다가 1980년대 초반 『진리와 방법』에 대해 비판적 문제제기를 하면서 벌어진 데리다-가다머 논쟁도 학문사의 중요한 사건이다. 가다머가 선이해의 부단한 수정과정을 통해 더욱 확장되고 통일된 이해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보았던 반면, 데리다는 그렇게 확장된 이해도 의미의 통일성을 담보하기보다는 필연적으로 ‘해체’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또한 가다머는 세계경험을 구성하는 원리로서 언어의 존재론적 지평을 적극적으로 옹호했으나, 데리다는 언어를 통한 의미구성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표명했다. 이처럼 둘의 입장 차이는 분명했지만, 2002년 가다머 서거에 즈음하여 데리다는 ‘끝나지 않은 대화’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추도사를 발표한다. 이 글에서 데리다는 가다머와 나눈 우정어린 대화를 통해 비로소 20세기 독일 사상과 철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진리와 방법』은 신학해석학과 법학해석학, 윤리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중세 교부철학과 신플라톤주의 이래 슐라이어마허에 이르기까지 성서해석학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통시적으로 꿰뚫어보고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가다머의 탁월한 통찰은 신학해석학에 풍부한 논의의 단서를 제공한다. 또한 『진리와 방법』 2부에서 해석학의 근본문제를 재발견하기 위한 하나의 사례로서 법학해석학을 다루었듯이, 법의 제정과 전승이 언제나 상이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역사적 고려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법학 분야에서도 가다머의 논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지phronesis’에 대한 가다머의 재해석은 칸트의 정언률에 기초한 근대 윤리학에 새로운 방향전환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인간경험의 역사성을 탐구의 시발점으로 삼는 가다머의 논의가 역사학 분야에서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책의 내용】
『진리와 방법 1』
1부 예술경험에서 발굴하는 진리 문제
인문주의 전통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이 책에서 예술 및 예술경험의 문제는 정신과학적 인식 및 진리의 특성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우회로의 성격을 띤다. 1830년대 이래 헤겔의 사변철학이 퇴조하고 그 자리에 자연과학의 발전과 성과를 배경으로 한 자연주의, 과학주의, 실증주의의 정신이 군림하면서, 19세기 말부터 대두된 정신과학의 논리적, 방법론적 자기 성찰도 자연과학의 방법적 이상에 지배되었다.
가다머는 이러한 정신과학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근대 과학의 객관주의적 방법론에 의해 은폐되거나 잘못 이해된 경험의 세계를 규명하려 한다. 이 세계야말로 정신과학의 학문적 자양분이자 후설의 생활세계적 경험 영역에 상응한다. 이 영역에서의 진리는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될 수 없다. 이 점에서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은 정신과학의 방법론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과학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지반을 근본적으로 반성한다.
여기서 가다머는 서구 인문주의 전통으로 되돌아간다. 인문주의의 유산인 감지력, 공통감각, 판단력, 취미 등에 대한 개념 분석을 통해서 가다머는 학문의 ‘방법론’으로 획득되는 인식과 진리의 세계와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며, 오히려 그것에 선행하는 정신과학적 인식과 진리의 세계가 가능함을 보여주려 한다. 그리고 인문주의 전통에 대한 이런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칸트의 미학 이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칸트의 미적 판단력 비판에서 중심 주제는 ‘미적 취미의 주관적 보편성’을 정당화하는 일이다. 칸트의 미학은 취미의 입장으로 특징지어진다. 또한 칸트는 예술을 ‘천재의 기술’로 규정한다. 즉 천재성 없이는 예술이란 있을 수 없고, 또 예술을 판단하는 올바른 취미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칸트는 천재 개념을 예술미의 선험적인 보편적 원리로 간주한다.
칸트 이래로 천재 개념은 예술의 영역에서 생의 개념 및 체험의 개념과 하나의 통일성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체험 개념이 예술 표현에서 새로운 지위를 얻는다. 예술작품은 체험의 표현이고, 이 표현은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천재적 영감의 체험으로부터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체험 개념은 예술의 입장을 정초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천재’와 ‘체험’은 19세기의 예술을 지배하는 가치 개념이다. 그리고 천재, 생, 체험은 동일한 지평 위에 서 있었기에, 천재 예술은 체험 예술이며, 괴테의 세기를 지배한 체험 예술이야말로 당시에는 본래적 예술로 간주되었다.
예술의 진리에 대한 물음
가다머는 1부 ‘Ⅰ.3 다시 제기한 예술의 진리에 대한 물음’에서 미적 교양과 미적 의식의 독단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실러에게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는 미적 교양의 이념은 어떠한 내용적 척도도 타당한 것으로 수용하지 않고, 예술작품과 그것이 속한 세계와의 통일적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그 본질이 있다. 이러한 이념에 기초한 미적 의식은 ‘순수한 예술작품’만을 문제삼는다. 이 순수성의 요구는 사실상 ‘천재의 무의식적 창조성’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가다머는 미와 예술을 정당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미적 순수성’이라는 이념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예술작품이란 순수한 미적 체험의 절대적, 무시간적 현재성에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집합?집결되는 정신의 행위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술작품 안에서 세계를 만나고, 세계 안에서 예술작품을 만나는 것이다.
예술의 경험은 미적 의식에서처럼 다양한 체험의 불연속성으로서의 경험이 아니라, 미적 존재가 그때그때 끊임없이 생기生起하는 것이 특징이다. 말하자면 예술의 경험이란 ‘완결되지 않은 생기와의 만남이며, 그 자체가 이 생기의 한 부분’으로 이해된다. 그렇기에 예술의 경험에서 드러나는 진리란 완결된 인식의 형태를 취할 수 없다. 그런데 예술 및 예술작품의 경험은 그 자체가 이미 ‘이해’를 내포한다. 따라서 ‘예술의 진리에 관한 물음’은 정신과학의 기본 개념인 ‘이해’의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놀이’와 예술작품의 존재론
가다머는 ‘Ⅱ 예술작품의 존재론과 그 해석학적 의미’에서 예술작품의 존재방식의 본질적 특성을 밝히려 한다. 여기서는 특히 실러의 ‘놀이Spiel’ 개념이 주요 분석 대상이다. 가다머는 놀이의 개념적 분석을 통해서 예술작품의 존재방식을 생기 현상으로, 즉 존재론적으로 특징지음으로써 칸트에 의한 미학의 주관화 이래 근대 미학의 주된 흐름인 주관주의적 경향성을 극복하려 한다. 가다머에게 예술작품이란 미적 의식과 마주하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작품의 미적 존재가 그때그때 생기하면서 나타나는 의미의 통일체로 간주된다. 아울러 놀이에 대한 분석은 단순히 예술의 이론적 토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술의 양식은 물론 문학, 역사 등의 존재방식을 밝힘으로써 정신과학적 인식과 진리의 가능한 지평을 획득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근대 미학에서 놀이 개념은 놀이하는 사람의 태도나 마음의 상태, 즉 주관성에 종속되었다. 그러나 가다머에 의하면, 놀이는 놀이하는 사람의 의식이나 주관적 태도에서 독립된 독특한 본질을 지닌다. 즉 놀이의 주체는 놀이하는 사람이 아니고, 놀이는 다만 놀이하는 사람을 통해서 표현될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놀이의 주체가 놀이 그 자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놀이 개념은 칸트 이래 전통적 미학에서 ‘예술의 입장’이 전제하는 ‘순수한 미’의 이념을 극복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것은 곧 미학에서 천재의 무의식적 창조나 천재의 선험적 기능과 같은 이른바 주관성의 지배를 극복한다는 의미다. 그뿐 아니라 놀이 개념은 예술작품에서의 진리 문제, 더 나아가 진리 일반의 문제에도 적용된다. 가다머는 이 놀이 개념에서 진정한 해석학적 경험의 가능성을 본다.
예술작품이 본래 속해 있던 주변 세계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예술은 결코 과거적인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적 의미를 통해 역사적 시대의 간격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예술이 역사적 의식의 단순한 대상은 아니지만, 그것에 대한 이해는 이미 역사적 매개를 내포한다. 여기서 가다머는 이해의 문제, 말하자면 해석학의 과제를 새롭게 규정한다.
이와 관련 슐라이어마허와 헤겔은 이미 두 가지 극단적인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슐라이어마허는 재구성Rekon-struktion에, 헤겔은 통합Integration에 무게를 둔다. 즉 슐라이어마허에게 해석학의 과제는 원래 있던 과거적인 것의 재구성에 있고, 헤겔에게는 과거적인 것과 현재적인 것을 사유를 통해 매개하는 데 있다. 슐라이어마허가 과거적인 것의 복원을 목표로 한다면, 헤겔은 과거적인 것(역사)과 현재를 사유로 통합하고자 한다. 가다머는 이 점에서 헤겔이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적 이념을 근본적으로 능가한다고 본다. 그리하여 그는 2부의 서두에 이렇게 밝힌다. “슐라이어마허보다는 헤겔의 입장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과제임을 인식할 때 해석학의 역사는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강조되어야 한다.”(『진리와 방법 1』 13쪽)
『진리와 방법 2』
2부 정신과학에서 진리의 문제를 이해의 문제로 확장하기
이해의 역사성
자연과학을 모델로 하는 과학적 객관주의와 편협한 방법론 중심주의에 맞서서 ‘과학의 방법으로는 검증될 수 없는 진리 개현의 경험방식’을 탐구하고자 한 가다머가 최우선의 원칙으로 강조한 것이 바로 ‘이해의 역사성’이다. 랑케와 드로이젠의 역사주의가 역사를 ‘역사적 객체로 대상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해의 역사성을 몰각했다고 비판하는 맥락에서 가다머는 이해의 근원적 역사성을 ‘영향사’ 개념으로 설명한다.
역사적 문헌 또는 사건에 대한 해석 주체 역시 탐구대상이 되는 역사과정의 일부이며, 그런 의미에서 ‘역사의 현실과 역사적 이해의 현실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관계’가 곧 역사적 탐구대상이다. 이처럼 전통의 영향을 역사적 이해의 근본적 제약조건으로 보는 영향사적 맥락에서 가다머는 인식주체의 ‘선이해Vorverst?ndnis’를 규정하는 ‘선입견Vorurteil’을 이해의 본질적 구성요건으로 간주한다. 가다머에 따르면, ‘선입견’은 18세기 계몽주의 이래 부정적 의미로 격하되었지만, 역사적 전통의 영향에 의해 미리 형성되어 있는 ‘선입견’을 이해의 기본조건으로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이해의 역사성에 상응하는 자연스럽고도 합당한 인식태도이다.
이런 선입견을 이해의 불가결한 조건으로 보는 시각은 하버마스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는다. 그렇지만 가다머가 전통의 막강한 영향력과 선입견의 규정력을 이해의 필수적 계기로서 긍정하는 것은 전통과 선입견을 무조건 용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식주체가 그러한 영향사적 의식을 자각할 때 비로소 편협한 주관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평융합
선입견에 대한 자각은 이해의 역사성에 대한 개방적 인식을 담보하기 위한 필연적 요청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해라는 것은 주관성의 활동이라기보다는 과거와 현재가 부단히 상호매개 작용을 하는 전통의 전승이라는 사건 속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171쪽) 이처럼 이해의 과정이 곧 ‘전통의 전승이라는 사건 속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해란 인식의 기대지평이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상호매개 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주체의 선입견을 허물어뜨리면서 이해의 장場인 역사를 향해 확장되어가는 것을 뜻한다. 아울러 전통 역시 불변의 실체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이해의 과정을 통해 늘 새로운 이해지평으로 열리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현재의 관점에 서 있는 이해주체의 기대지평과 역사적 지평이 부단히 상호작용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단절을 넘어서 보다 확장된 역사적 이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처럼 서로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현재의 지평과 역사의 지평이 부단한 상호작용을 통해 이해가 확장되는 과정을 가다머는 ‘지평융합’이라 일컫는다.
과거와 현재, 이해의 역사적 대상과 이해자를 매개해주는 이러한 ‘지평융합’ 개념은 원래 전통적 해석학 방법론에서 부분과 전체의 상호순환 운동을 뜻하는 ‘해석학적 순환’을 이해의 역사성이라는 맥락으로 확장하여 새롭게 정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3부 언어를 통한 해석학의 존재론적 전환
해석학적 경험의 매체이자 중심인 언어
전통과 현재 사이의 개방적 대화를 이해과정의 핵심 계기로 부각시키는 가다머의 논의에서 ‘언어’는 역사적 전승의 매체이자 이해의 매체로서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다. 전통의 전승은 다름 아닌 언어를 통해 구현되며, 전통과 현재 사이의 지평융합 역시 ‘현재와 전통 사이의 언어적 소통’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언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전통의 전승과 이해에서 언어는 단지 기성관념과 인식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이해의 과정을 주도하고 구현하는 본질적 계기다. 그런 의미에서 가다머는 사물과 언어의 관계를 원상原象과 모상模像의 관계로 보는 소박한 재현론이나 언어도구주의의 관점을 근본적으로 비판한다. 훔볼트가 말했듯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는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으며, 언어 자체가 곧 세계관이다. 그런 맥락에서 가다머는 이해의 문제를 인식론에서 존재론의 차원으로 전환했듯, 해석학적 경험의 수행과정에 대해서도 ‘언어를 통한 존재론적 전환’을 시도한다. 이처럼 가다머는 이해의 대상과 방법적 원리 및 언어적 구현과정을 서로 분리시키지 않고 통일된 맥락에서 일관되게 사유한다. 바로 그런 점에서 『진리와 방법』은 개별 학문 분야의 방법론 차원을 뛰어넘어 인간의 역사적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는 정신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진리에 대한 개방성이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2000년 1권 출간 이후 12년 만의 국내 최초 완역!
‘철학적 해석학’의 창시자 가다머 필생의 역작
하버마스, 데리다와 세기적 논쟁을 부른 현대 철학의 명저
“ 2차 대전 이후 독일 철학계에서 나온 가장 중요한 업적이다.”
위르겐 하버마스
【책 소개】
20세기 서구 지성사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는 『진리와 방법』(1960)은 근대 학문의 역사와 방법론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1927) 이후 나온 가장 비중 있는 철학서이자 해석학에 관한 기념비적 저서로 평가되는 이 책은 철학뿐 아니라 미학, 문학, 역사학, 신학, 법학, 사회학 등 광범위한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진리와 방법』은 1부에서 예술과 미적 경험, 2부에서 역사와 정신과학, 3부에서 언어를 다룬다. 이 책은 그 방대한 지식과 난해함 탓에 번역 자체가 무모하다고 여겨질 만큼 지난한 일이었다. 문학동네는 지난 2000년 이 책의 1부를 우선 번역해 『진리와 방법 1』을 펴냈고, 그후 12년 만에 2부와 3부를 묶어 『진리와 방법 2』를 출간한다. 이에 맞춰 1권 개정판도 함께 낸다. 15년의 세월 동안 모두 다섯 분의 번역자가 심혈을 기울인 『진리와 방법』 완역은 아직도 원전 번역의 풍토가 취약한 한국 지식사회에 풍부한 지적 자극을 제공할 것이다.
진리의 복권을 향한 ‘철학적 해석학’의 대장정
『진리와 방법』은 ‘진리’에 이르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가다머는 근대 과학의 객관주의적 방법론으로 포착되지 않는 진리의 경험과 그 정당성을 밝힌다. 가다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와 스피노자, 칸트와 헤겔을 거쳐 슐라이어마허와 딜타이에 이르는 서구 인문주의 전통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면서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가다머에게 진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역동적인 인간경험의 역사성에 기초한 이해의 산물이다.
후설과 하이데거를 발전적으로 계승한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은 훗날 비판이론의 하버마스, 해체론의 데리다와 세기적 논쟁을 촉발한다. 가다머 사후 데리다는 ‘끝나지 않은 대화’라는 제목의 추도사에서, 가다머와 나눈 우정어린 대화를 통해 비로소 20세기 독일 사상과 철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문학과 미학에서 가다머의 영향사 이론은 야우스의 수용미학과 허쉬의 문학해석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진리와 방법』은 학제간 경계를 넘나들며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식을 담은 저작이다. 가다머는 자연과학의 객관주의와 그 영향을 받은 인문과학(사회과학)의 실증주의, 그리고 정신과 인식대상의 주객 동일성을 전제하는 관념론에 맞서 ‘이해의 역사성’을 축으로 정신과학적 진리를 복권시킨다.
진리의 경험과 이해의 역사성
가다머가 『진리와 방법 1』(1부)에서 천착하는 것은 예술경험에서의 진리 문제다. 이렇게 예술경험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는 이 미적 체험의 영역이 근대 과학의 객관주의적 방법론의 영향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가다머는 미적 체험의 근간을 이루는 판단력과 미적 취미가 과학의 객관주의에 대립하여 주관성의 표현으로 수렴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진리를 예술작품에서 경험한다는 사실은 모든 이성적 논고에 맞서는 예술의 철학적 의미를 형성한다. 이렇게 철학의 경험과 더불어 예술의 경험은 과학적 의식을 향해 자신의 한계를 시인하라고 하는 가장 강력한 경고가 된다.”(1권 11쪽)
가다머가 이 책의 핵심이라고 강조한 것은 『진리와 방법 2』의 2부에서 논하는 ‘해석학적 경험’과 ‘이해의 역사성’이다. 이해란 인식의 기대지평이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상호매개 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주체의 선입견을 허물어뜨리면서 이해의 장場인 역사를 향해 확장되어가는 것이다. 이해는 그 본질상 영향사적 과정이다. 전통과의 상호작용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3부에서 논하는 ‘언어’는 그러한 해석학적 경험의 ‘매체’이자 ‘중심’으로서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다. 언어가 역사적 전승의 매체이자 이해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단지 기성관념과 인식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이해의 과정을 주도하고 구현하는 본질적 계기다.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는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으며, 언어 자체가 곧 세계관이다. 그런 맥락에서 가다머는 이해의 문제를 인식론에서 존재론의 차원으로 전환시킨다.
하버마스, 데리다와의 세기적 논쟁과
『진리와 방법』의 영향사
위르겐 하버마스는 명실상부한 프랑크푸르트학파와 비판이론의 계승자이고, 가다머는 후설과 하이데거의 제자이다. 두 사람의 세기적 논쟁에는 이런 상이한 지적 배경도 크게 작용한다. 『진리와 방법』에 대한 하버마스의 비판문이 발표된 것은 68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1967년이었다.
하버마스는 전통의 권위를 인정하는 가다머의 해석학적 경험 이론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독일 관념론에 이르는 지적 전통의 확고한 유산인 ‘비판적 성찰’의 힘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심지어 가다머의 그러한 지적 태도는 프랑스 혁명 직후 유럽 지성계에서 혁명에 반대하는 논리를 유포하는 데 앞장섰던 에드먼드 버크 류의 보수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1세대 보수주의’라고 규정한다. 하버마스는 가다머가 이해의 기본적 제약조건으로 설정한 ‘선입견’의 문제 역시 비판의 표적으로 삼는다. 그는 가다머가 선입견을 이해의 제약조건으로 보는 올바른 통찰에서 더 나아가 ‘선입견 자체의 복권’을 시도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가다머는 영향사적 맥락에서 전통을 선이해의 규정요인으로 설정하기는 했으나, 전통의 힘을 절대화한다거나 이해의 과정이 전통의 힘에 종속된다고 보지는 않았다. 또한 하버마스가 강조하는 ‘비판적 성찰’ 역시 이해와 마찬가지로 영향사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러한 제약을 초극하는 특권적 지위를 주장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하버마스의 비판과 달리 가다머는 계몽주의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편협한 이성중심주의로 인해 역사적 전통의 힘을 간과하는 비역사적 관념성을 비판한다. 가다머의 논리로 보자면, 하버마스가 말하는 ‘비판적 성찰’ 역시 계몽의 정신을 ‘확고한 유산’이라고 믿는 영향사의 맥락에서 만들어진 완고한 ‘선입견’일 뿐이다.
가다머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로 이루어지는 이해의 과정에서 그 누구도 전통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전통의 영향에 의해 형성된 선입견을 자각하고 극복해가는 것이 진정한 이해의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한편, 해체론의 기수 자크 데리다가 1980년대 초반 『진리와 방법』에 대해 비판적 문제제기를 하면서 벌어진 데리다-가다머 논쟁도 학문사의 중요한 사건이다. 가다머가 선이해의 부단한 수정과정을 통해 더욱 확장되고 통일된 이해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보았던 반면, 데리다는 그렇게 확장된 이해도 의미의 통일성을 담보하기보다는 필연적으로 ‘해체’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또한 가다머는 세계경험을 구성하는 원리로서 언어의 존재론적 지평을 적극적으로 옹호했으나, 데리다는 언어를 통한 의미구성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표명했다. 이처럼 둘의 입장 차이는 분명했지만, 2002년 가다머 서거에 즈음하여 데리다는 ‘끝나지 않은 대화’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추도사를 발표한다. 이 글에서 데리다는 가다머와 나눈 우정어린 대화를 통해 비로소 20세기 독일 사상과 철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진리와 방법』은 신학해석학과 법학해석학, 윤리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중세 교부철학과 신플라톤주의 이래 슐라이어마허에 이르기까지 성서해석학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통시적으로 꿰뚫어보고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가다머의 탁월한 통찰은 신학해석학에 풍부한 논의의 단서를 제공한다. 또한 『진리와 방법』 2부에서 해석학의 근본문제를 재발견하기 위한 하나의 사례로서 법학해석학을 다루었듯이, 법의 제정과 전승이 언제나 상이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역사적 고려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법학 분야에서도 가다머의 논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지phronesis’에 대한 가다머의 재해석은 칸트의 정언률에 기초한 근대 윤리학에 새로운 방향전환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인간경험의 역사성을 탐구의 시발점으로 삼는 가다머의 논의가 역사학 분야에서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책의 내용】
『진리와 방법 1』
1부 예술경험에서 발굴하는 진리 문제
인문주의 전통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이 책에서 예술 및 예술경험의 문제는 정신과학적 인식 및 진리의 특성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우회로의 성격을 띤다. 1830년대 이래 헤겔의 사변철학이 퇴조하고 그 자리에 자연과학의 발전과 성과를 배경으로 한 자연주의, 과학주의, 실증주의의 정신이 군림하면서, 19세기 말부터 대두된 정신과학의 논리적, 방법론적 자기 성찰도 자연과학의 방법적 이상에 지배되었다.
가다머는 이러한 정신과학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근대 과학의 객관주의적 방법론에 의해 은폐되거나 잘못 이해된 경험의 세계를 규명하려 한다. 이 세계야말로 정신과학의 학문적 자양분이자 후설의 생활세계적 경험 영역에 상응한다. 이 영역에서의 진리는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될 수 없다. 이 점에서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은 정신과학의 방법론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과학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지반을 근본적으로 반성한다.
여기서 가다머는 서구 인문주의 전통으로 되돌아간다. 인문주의의 유산인 감지력, 공통감각, 판단력, 취미 등에 대한 개념 분석을 통해서 가다머는 학문의 ‘방법론’으로 획득되는 인식과 진리의 세계와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며, 오히려 그것에 선행하는 정신과학적 인식과 진리의 세계가 가능함을 보여주려 한다. 그리고 인문주의 전통에 대한 이런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칸트의 미학 이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칸트의 미적 판단력 비판에서 중심 주제는 ‘미적 취미의 주관적 보편성’을 정당화하는 일이다. 칸트의 미학은 취미의 입장으로 특징지어진다. 또한 칸트는 예술을 ‘천재의 기술’로 규정한다. 즉 천재성 없이는 예술이란 있을 수 없고, 또 예술을 판단하는 올바른 취미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칸트는 천재 개념을 예술미의 선험적인 보편적 원리로 간주한다.
칸트 이래로 천재 개념은 예술의 영역에서 생의 개념 및 체험의 개념과 하나의 통일성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체험 개념이 예술 표현에서 새로운 지위를 얻는다. 예술작품은 체험의 표현이고, 이 표현은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천재적 영감의 체험으로부터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체험 개념은 예술의 입장을 정초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천재’와 ‘체험’은 19세기의 예술을 지배하는 가치 개념이다. 그리고 천재, 생, 체험은 동일한 지평 위에 서 있었기에, 천재 예술은 체험 예술이며, 괴테의 세기를 지배한 체험 예술이야말로 당시에는 본래적 예술로 간주되었다.
예술의 진리에 대한 물음
가다머는 1부 ‘Ⅰ.3 다시 제기한 예술의 진리에 대한 물음’에서 미적 교양과 미적 의식의 독단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실러에게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는 미적 교양의 이념은 어떠한 내용적 척도도 타당한 것으로 수용하지 않고, 예술작품과 그것이 속한 세계와의 통일적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그 본질이 있다. 이러한 이념에 기초한 미적 의식은 ‘순수한 예술작품’만을 문제삼는다. 이 순수성의 요구는 사실상 ‘천재의 무의식적 창조성’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가다머는 미와 예술을 정당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미적 순수성’이라는 이념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예술작품이란 순수한 미적 체험의 절대적, 무시간적 현재성에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집합?집결되는 정신의 행위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술작품 안에서 세계를 만나고, 세계 안에서 예술작품을 만나는 것이다.
예술의 경험은 미적 의식에서처럼 다양한 체험의 불연속성으로서의 경험이 아니라, 미적 존재가 그때그때 끊임없이 생기生起하는 것이 특징이다. 말하자면 예술의 경험이란 ‘완결되지 않은 생기와의 만남이며, 그 자체가 이 생기의 한 부분’으로 이해된다. 그렇기에 예술의 경험에서 드러나는 진리란 완결된 인식의 형태를 취할 수 없다. 그런데 예술 및 예술작품의 경험은 그 자체가 이미 ‘이해’를 내포한다. 따라서 ‘예술의 진리에 관한 물음’은 정신과학의 기본 개념인 ‘이해’의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놀이’와 예술작품의 존재론
가다머는 ‘Ⅱ 예술작품의 존재론과 그 해석학적 의미’에서 예술작품의 존재방식의 본질적 특성을 밝히려 한다. 여기서는 특히 실러의 ‘놀이Spiel’ 개념이 주요 분석 대상이다. 가다머는 놀이의 개념적 분석을 통해서 예술작품의 존재방식을 생기 현상으로, 즉 존재론적으로 특징지음으로써 칸트에 의한 미학의 주관화 이래 근대 미학의 주된 흐름인 주관주의적 경향성을 극복하려 한다. 가다머에게 예술작품이란 미적 의식과 마주하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작품의 미적 존재가 그때그때 생기하면서 나타나는 의미의 통일체로 간주된다. 아울러 놀이에 대한 분석은 단순히 예술의 이론적 토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술의 양식은 물론 문학, 역사 등의 존재방식을 밝힘으로써 정신과학적 인식과 진리의 가능한 지평을 획득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근대 미학에서 놀이 개념은 놀이하는 사람의 태도나 마음의 상태, 즉 주관성에 종속되었다. 그러나 가다머에 의하면, 놀이는 놀이하는 사람의 의식이나 주관적 태도에서 독립된 독특한 본질을 지닌다. 즉 놀이의 주체는 놀이하는 사람이 아니고, 놀이는 다만 놀이하는 사람을 통해서 표현될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놀이의 주체가 놀이 그 자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놀이 개념은 칸트 이래 전통적 미학에서 ‘예술의 입장’이 전제하는 ‘순수한 미’의 이념을 극복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것은 곧 미학에서 천재의 무의식적 창조나 천재의 선험적 기능과 같은 이른바 주관성의 지배를 극복한다는 의미다. 그뿐 아니라 놀이 개념은 예술작품에서의 진리 문제, 더 나아가 진리 일반의 문제에도 적용된다. 가다머는 이 놀이 개념에서 진정한 해석학적 경험의 가능성을 본다.
예술작품이 본래 속해 있던 주변 세계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예술은 결코 과거적인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적 의미를 통해 역사적 시대의 간격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예술이 역사적 의식의 단순한 대상은 아니지만, 그것에 대한 이해는 이미 역사적 매개를 내포한다. 여기서 가다머는 이해의 문제, 말하자면 해석학의 과제를 새롭게 규정한다.
이와 관련 슐라이어마허와 헤겔은 이미 두 가지 극단적인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슐라이어마허는 재구성Rekon-struktion에, 헤겔은 통합Integration에 무게를 둔다. 즉 슐라이어마허에게 해석학의 과제는 원래 있던 과거적인 것의 재구성에 있고, 헤겔에게는 과거적인 것과 현재적인 것을 사유를 통해 매개하는 데 있다. 슐라이어마허가 과거적인 것의 복원을 목표로 한다면, 헤겔은 과거적인 것(역사)과 현재를 사유로 통합하고자 한다. 가다머는 이 점에서 헤겔이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적 이념을 근본적으로 능가한다고 본다. 그리하여 그는 2부의 서두에 이렇게 밝힌다. “슐라이어마허보다는 헤겔의 입장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과제임을 인식할 때 해석학의 역사는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강조되어야 한다.”(『진리와 방법 1』 13쪽)
『진리와 방법 2』
2부 정신과학에서 진리의 문제를 이해의 문제로 확장하기
이해의 역사성
자연과학을 모델로 하는 과학적 객관주의와 편협한 방법론 중심주의에 맞서서 ‘과학의 방법으로는 검증될 수 없는 진리 개현의 경험방식’을 탐구하고자 한 가다머가 최우선의 원칙으로 강조한 것이 바로 ‘이해의 역사성’이다. 랑케와 드로이젠의 역사주의가 역사를 ‘역사적 객체로 대상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해의 역사성을 몰각했다고 비판하는 맥락에서 가다머는 이해의 근원적 역사성을 ‘영향사’ 개념으로 설명한다.
역사적 문헌 또는 사건에 대한 해석 주체 역시 탐구대상이 되는 역사과정의 일부이며, 그런 의미에서 ‘역사의 현실과 역사적 이해의 현실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관계’가 곧 역사적 탐구대상이다. 이처럼 전통의 영향을 역사적 이해의 근본적 제약조건으로 보는 영향사적 맥락에서 가다머는 인식주체의 ‘선이해Vorverst?ndnis’를 규정하는 ‘선입견Vorurteil’을 이해의 본질적 구성요건으로 간주한다. 가다머에 따르면, ‘선입견’은 18세기 계몽주의 이래 부정적 의미로 격하되었지만, 역사적 전통의 영향에 의해 미리 형성되어 있는 ‘선입견’을 이해의 기본조건으로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이해의 역사성에 상응하는 자연스럽고도 합당한 인식태도이다.
이런 선입견을 이해의 불가결한 조건으로 보는 시각은 하버마스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는다. 그렇지만 가다머가 전통의 막강한 영향력과 선입견의 규정력을 이해의 필수적 계기로서 긍정하는 것은 전통과 선입견을 무조건 용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식주체가 그러한 영향사적 의식을 자각할 때 비로소 편협한 주관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평융합
선입견에 대한 자각은 이해의 역사성에 대한 개방적 인식을 담보하기 위한 필연적 요청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해라는 것은 주관성의 활동이라기보다는 과거와 현재가 부단히 상호매개 작용을 하는 전통의 전승이라는 사건 속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171쪽) 이처럼 이해의 과정이 곧 ‘전통의 전승이라는 사건 속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해란 인식의 기대지평이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상호매개 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주체의 선입견을 허물어뜨리면서 이해의 장場인 역사를 향해 확장되어가는 것을 뜻한다. 아울러 전통 역시 불변의 실체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이해의 과정을 통해 늘 새로운 이해지평으로 열리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현재의 관점에 서 있는 이해주체의 기대지평과 역사적 지평이 부단히 상호작용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단절을 넘어서 보다 확장된 역사적 이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처럼 서로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현재의 지평과 역사의 지평이 부단한 상호작용을 통해 이해가 확장되는 과정을 가다머는 ‘지평융합’이라 일컫는다.
과거와 현재, 이해의 역사적 대상과 이해자를 매개해주는 이러한 ‘지평융합’ 개념은 원래 전통적 해석학 방법론에서 부분과 전체의 상호순환 운동을 뜻하는 ‘해석학적 순환’을 이해의 역사성이라는 맥락으로 확장하여 새롭게 정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3부 언어를 통한 해석학의 존재론적 전환
해석학적 경험의 매체이자 중심인 언어
전통과 현재 사이의 개방적 대화를 이해과정의 핵심 계기로 부각시키는 가다머의 논의에서 ‘언어’는 역사적 전승의 매체이자 이해의 매체로서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다. 전통의 전승은 다름 아닌 언어를 통해 구현되며, 전통과 현재 사이의 지평융합 역시 ‘현재와 전통 사이의 언어적 소통’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언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전통의 전승과 이해에서 언어는 단지 기성관념과 인식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이해의 과정을 주도하고 구현하는 본질적 계기다. 그런 의미에서 가다머는 사물과 언어의 관계를 원상原象과 모상模像의 관계로 보는 소박한 재현론이나 언어도구주의의 관점을 근본적으로 비판한다. 훔볼트가 말했듯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는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으며, 언어 자체가 곧 세계관이다. 그런 맥락에서 가다머는 이해의 문제를 인식론에서 존재론의 차원으로 전환했듯, 해석학적 경험의 수행과정에 대해서도 ‘언어를 통한 존재론적 전환’을 시도한다. 이처럼 가다머는 이해의 대상과 방법적 원리 및 언어적 구현과정을 서로 분리시키지 않고 통일된 맥락에서 일관되게 사유한다. 바로 그런 점에서 『진리와 방법』은 개별 학문 분야의 방법론 차원을 뛰어넘어 인간의 역사적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는 정신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진리에 대한 개방성이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목차
목차
2부 정신과학에서 진리의 문제를 이해의 문제로 확장하기
I. 역사적 준비
1. 낭만주의 해석학과 그 역사학적 적용의 문제점
1)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에서 일어난 해석학의 본질적 변화
① 낭만주의 해석학의 전사前史 ② 슐라이어마허의 보편적 해석학 구상
2) 역사학파와 낭만주의 해석학의 연관성
① 보편사의 이상에 내재하는 딜레마 ② 랑케의 역사적 세계관
③ 드로이젠이 본 역사학과 해석학의 관계
2. 딜타이와 역사주의의 난관
1) 역사에 관한 인식론적 문제에서 정신과학의 해석학적 기초정립으로
2) 딜타이의 역사의식 분석에서 과학과 생철학의 분리
3. 현상학적 탐구를 통한 인식론적 문제의 극복
1) 후설과 요르크 백작의 삶 개념
2)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현상학 구상
Ⅱ. 해석학적 경험 이론의 개요
1. 해석학적 원리로 격상된 이해의 역사성
1) 해석학적 순환과 선입견의 문제
① 이해의 선구조에 대한 하이데거의 설명 ② 계몽주의에 의한 선입견의 격하
2) 이해의 조건으로서의 선입견
① 권위와 전통의 복권 ② '고전적인 것'의 예
3) 시대적 간격의 해석학적 의미
4) 영향사의 원리
2. 해석학적 근본문제의 재발견
1) 적용에 관한 해석학적 문제
2) 해석학의 관점에서 본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재적 의의
3) 법학적 해석학의 본보기적 의의
3. 영향사적 의식에 대한 분석
1) 반성철학의 한계
2) 경험 개념과 해석학적 경험의 본질
3) 해석학에서 '물음'의 우선적 중요성
① 플라톤 변증법의 선구적 사례 ② 물음과 대답의 논리
3부 언어를 통한 해석학의 존재론적 전환
1. 해석학적 경험매체로서의 언어
1) 해석학적 대상 규정으로서의 언어
2) 해석학적 수행 규정으로서의 언어
2. 서구 사상사에서 '언어' 개념의 형성
1) 언어와 로고스
2) 언어와 말씀
3) 언어와 개념 형성
3. 해석학적 존재론의 지평으로서의 언어
1) 세계경험으로서의 언어
2) 언어의 중심과 그 사변적 구조
3) 해석학의 보편적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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