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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00023749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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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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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1. 한국의 경제 위기를 투영하는 개념, 비정규직
1997년 IMF 경제 위기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불어 닥친 세계 금융 위기 속에서 2009년을 살아내는 한국인들에게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친숙하다. 그런데 지금은 각종 언론 매체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이 단어는 십여 년 전만 해도 흔히 쓰이는 말이 아니었다. 새로운 개념이 생겨났다는 것은 사회가 변화하며 새로운 현상이 자리 잡고 있음을 뜻한다. 그리 길지 않은 역사를 가지는 ‘비정규직’도 단지 일시적인 불황이나 고용난 때문에 잠시 거쳐 가는 현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고용 방식과 일자리의 성격 자체의 전반적인 변화를 내포하고 있는 개념인 것이다.
비정규직 고용은 IMF 위기 이후 기업에게 이익이 되어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계속 확산되어왔지만, 이로 인해 노동자들에게 고용 불안정과 저임금을 감수하게 하면서도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게 하는 큰 사회 문제이자 쟁점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2008년에 한 20대 방송 작가가 열악한 근무 환경과 업무에 쫓겨, 일하던 방송국 옥상에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녀의 수입은 월 60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비정규직 고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는 법의 시행을 앞두고 이랜드 계열 홈에버 사가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해, 해고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이랜드 노동조합이 파업을 한다는 기사도 오랜 시간 지면을 장식했다. 이는 우리 시대에 비정규직으로 인해 사람들이 받는 고통의 깊이를 드러내는 것이며, 여기에 대응하는 제도와 규정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아직 미약함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와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기본적인 열쇠가 되는 개념들을 뽑아 그 의미와 역사, 실천적 함의를 해설하는 ‘비타 악티바Vita Activa|개념사’ 시리즈의 열 번째 권《비정규직》은 사회학자이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장으로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접근한 저작이다. 이 책은 비정규직의 개념을 규정하고 그 근본 원인과 배경을 짚어본 후 이를 바탕으로 선진국들의 사례와 한국의 현실을 비교하고, 비정규직의 확산으로 인한 문제점과 제도의 한계를 비판하며 해결책을 강구한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비정규직이 갈수록 더 보편화되리라는 것이 현실적인 전망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고용을 인정하되 문제점을 보완할 방법들을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며 현실감 있게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저자에게서 우리는 절충적 해법을 기대해볼 수 있다.
2. 권리를 상실한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
이 책은 우선 비정규직이란 어떤 것인지 유형을 분류함으로써 개념을 규정하고 범위와 규모를 제시한다. 비정규직의 유형에는 회사에서 일하는 기간이 한정되어 있는 기간제(일용직, 임시직, 계약직), 하루 중 짧은 시간 동안만 일하는 시간제(파트타임), 고용을 한 기업과 일을 시키는 기업이 다른 간접 고용(파견, 도급, 용역, 사내 하청), 개인과 기업이 사업자 대 사업자로 계약을 체결하는 특수 고용(프리랜서, 개인 사업자)이 있다.
한국의 경우 비정규직 중 90퍼센트 이상이 기간제로, 재개약 여부가 확실하지 않아 계약한 기간이 지나면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한다는 불안함 속에 살고 있다. 또한 여러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임금은 같은 회사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정규직 임금의 60퍼센트에 불과한 실정이며, 특히 간접 고용의 경우 중계자인 인력 공급 업체가 챙기는 일정한 이윤 때문에 임금이 더 적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 외에도 휴게실이나 식당 같은 회사의 복지 시설, 임금, 승진 등 여러 부분에서 정규직과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에 애정을 가질 수도 목표를 가질 수도 없는 불안하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부분 기업별로 이루어져 있는 한국의 노동조합 구조 안에서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쉽지 않다. 또 간접 고용의 경우 노동조합의 대상이 분명하지 않다는 문제도 있으며,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입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권리를 상실한 비정규직이 계속 늘어나면서 사회는 경제적으로 더욱 양극화되고, 이런 불평등한 구조에서는 사회적 갈등도 심해질 수밖에 없다.
3. 비정규직 확산, 왜? ― 케인스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비정규직은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비교적 근래에 급격히 확산된 고용 형식이다. 20세기의 미국이나 유럽 같은 자본주의 선진국에서는 노동자들을 잘살게 함으로써 상품 구매 수요를 늘려 경제를 발전시키는 케인스주의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케인스주의식 자본주의 경제가 성공을 거두어 생산이 국내 수요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이윤율이 떨어지게 되자 기업들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이렇게 전 세계 기업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경쟁 체제, 즉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자유 경쟁 체제에 기반한 신자유주의로 인해 이제 불확실성과 경쟁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면서 수량적 유연화와 비용 절감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고, 이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비정규직을 고용하게 되면서 더 이상 기업들이 정규직 일자리와 안정된 고용을 보장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변화를 겪었는데, 다만 자본주의 후발 국가로서 이를 훨씬 늦게 짧은 기간 동안 매우 압축적으로 겪었다. 한국은 중공업 및 소비재 대량 생산 체제가 확고히 갖추어지고 노동조합의 힘이 강해지기 시작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에 케인스주의 경제 패러다임이 가능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선진국들의 영향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다가, 1997년 IMF 경제 위기 때 상품과 자본 시장 개방, 자유 경쟁 위주의 경제 정책 및 제도를 채택하게 되면서 신자유주의적 경제 패러다임으로 완전히 전환하게 된다. 이처럼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케인스주의적 성장의 기간이 짧았고 급격히 자유주의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선진국처럼 보편적인 사회 복지를 제대로 확립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비정규직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의 고용과 임금이 불안정지고 그것이 사회 문제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4. 선진국의 대처 방식 ― 경제 성장이냐 사회 통합이냐
그러나 케인스주의적 패러다임을 거쳐 서서히 신자유주의로 변화하며 고용과 임금의 불안정을 받쳐줄 준비를 한 다른 선진국들의 경우에도 비정규직 고용은 점차 확산되고 있고 그에 따른 논쟁도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근본적으로 비정규직의 확산은 세계화되고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으로 바뀐 자본주의 경제 흐름에서 비롯된 현상인 것이다. 즉 비정규직 문제는 세계적 현상이며, 한국보다 먼저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논쟁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온 문제이다.
세계화가 이루어지면서 기업들은 자유로운 해고와 저임금이 가능한 다른 나라로 진출할 수도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유럽 선진국들 내에서는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률이 증가하게 되었다. 실업 문제가 심각해지고 이로 인해 사회 보장을 책임지는 국가의 재정적 부담이 늘게 되자 서유럽 국가 중 몇몇은 비정규직을 허용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기도 했다. 독일은 경제 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결국 비정규직 고용을 허용했고, 프랑스는 사회 통합을 위해 정규직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며, 스페인의 경우에는 비정규직 고용을 허용했다가 사회적 부작용이 심해지자 다시 규제를 가했다. 경제 강대국으로 불리는 미국의 경우에는 경제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회 보험이나 노동조합 등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많은 차별을 받고 있어, 사회 불평등 정도를 수치화한 지니 계수가 현재 0.47에까지 이르는 등 계속해서 심각한 사회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에서 나타나듯이 비정규직 문제는 결국 경제 성장과 사회 통합에 대한 가치의 문제이기도 하며, 이 적정선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합의에 의해 정해진다.
5. 비정규직,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기업들이 비정규직 고용을 선호하는 만큼, 비정규직이 갈수록 더 보편화되리라는 것이 현실적인 전망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는 비정규직 고용을 인정하되 문제점을 보완할 방법들을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비정규직 법에 대한 논의가 일어난 후 한국에서도 1998년에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2006년에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기업 경영과 경제 활성화, 노동자 복지와 사회 통합이라는 양측의 입장을 절충시키려는 노력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고용의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법은 기업이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피하기 위해 2년이 되기 전에 계약을 해지해버리는 등 오히려 비정규직을 확산시키고 그 불안정성을 심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을 줄이고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확산을 방지하려 하는 규정도 사실 ‘불합리한 차별’의 기준이 분명치 않으며, 이 때문에 기업이 빠져나갈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높지 않다. 그렇다면 현 제도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저자는 이런 제도적 문제를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는 문제점을 정확히 포착하고 법과 제도의 취지를 살려 계속 보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법의 현실적 문제들에 대해 국가의 적극성을 요구하는 구체적인 보완책을 펼치고 있으며, 기존의 노동조합의 관행과 체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의 노력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저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떠나 어떤 일자리나 고용 방식에서도 중요한 것은 모두가 행복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노력하는 것이 사회와 국가의 임무이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할 일임을 거듭 강조한다.
“비정규직의 확산은 자본주의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한 현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사회에서 자연적인 것이란 없다.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 경제 체제나 고용이라는 방식도 인간 사회의 발명품이 아닌가. 비정규직이라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이윤을 얻어내려는 기업 경영자들의 전략,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법과 정책의 입안, 노동자들의 고통과 희망, 이런 것들이 얽히고설켜 비정규직이라는 현상이 생겨나고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앞으로 고용 방식이 점점 더 다양해져, 정규직을 일자리의 전형으로 보는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정규직과 구분해 부르는 비정규직이라는 말도 아예 없어질지 모른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어떤 일자리나 고용 방식이든, 또 어떻게 노동을 하든 중요한 것은 모두가 행복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사회와 국가의 임무이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할 일이다.“
1997년 IMF 경제 위기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불어 닥친 세계 금융 위기 속에서 2009년을 살아내는 한국인들에게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친숙하다. 그런데 지금은 각종 언론 매체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이 단어는 십여 년 전만 해도 흔히 쓰이는 말이 아니었다. 새로운 개념이 생겨났다는 것은 사회가 변화하며 새로운 현상이 자리 잡고 있음을 뜻한다. 그리 길지 않은 역사를 가지는 ‘비정규직’도 단지 일시적인 불황이나 고용난 때문에 잠시 거쳐 가는 현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고용 방식과 일자리의 성격 자체의 전반적인 변화를 내포하고 있는 개념인 것이다.
비정규직 고용은 IMF 위기 이후 기업에게 이익이 되어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계속 확산되어왔지만, 이로 인해 노동자들에게 고용 불안정과 저임금을 감수하게 하면서도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게 하는 큰 사회 문제이자 쟁점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2008년에 한 20대 방송 작가가 열악한 근무 환경과 업무에 쫓겨, 일하던 방송국 옥상에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녀의 수입은 월 60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비정규직 고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는 법의 시행을 앞두고 이랜드 계열 홈에버 사가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해, 해고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이랜드 노동조합이 파업을 한다는 기사도 오랜 시간 지면을 장식했다. 이는 우리 시대에 비정규직으로 인해 사람들이 받는 고통의 깊이를 드러내는 것이며, 여기에 대응하는 제도와 규정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아직 미약함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와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기본적인 열쇠가 되는 개념들을 뽑아 그 의미와 역사, 실천적 함의를 해설하는 ‘비타 악티바Vita Activa|개념사’ 시리즈의 열 번째 권《비정규직》은 사회학자이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장으로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접근한 저작이다. 이 책은 비정규직의 개념을 규정하고 그 근본 원인과 배경을 짚어본 후 이를 바탕으로 선진국들의 사례와 한국의 현실을 비교하고, 비정규직의 확산으로 인한 문제점과 제도의 한계를 비판하며 해결책을 강구한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비정규직이 갈수록 더 보편화되리라는 것이 현실적인 전망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고용을 인정하되 문제점을 보완할 방법들을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며 현실감 있게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저자에게서 우리는 절충적 해법을 기대해볼 수 있다.
2. 권리를 상실한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
이 책은 우선 비정규직이란 어떤 것인지 유형을 분류함으로써 개념을 규정하고 범위와 규모를 제시한다. 비정규직의 유형에는 회사에서 일하는 기간이 한정되어 있는 기간제(일용직, 임시직, 계약직), 하루 중 짧은 시간 동안만 일하는 시간제(파트타임), 고용을 한 기업과 일을 시키는 기업이 다른 간접 고용(파견, 도급, 용역, 사내 하청), 개인과 기업이 사업자 대 사업자로 계약을 체결하는 특수 고용(프리랜서, 개인 사업자)이 있다.
한국의 경우 비정규직 중 90퍼센트 이상이 기간제로, 재개약 여부가 확실하지 않아 계약한 기간이 지나면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한다는 불안함 속에 살고 있다. 또한 여러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임금은 같은 회사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정규직 임금의 60퍼센트에 불과한 실정이며, 특히 간접 고용의 경우 중계자인 인력 공급 업체가 챙기는 일정한 이윤 때문에 임금이 더 적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 외에도 휴게실이나 식당 같은 회사의 복지 시설, 임금, 승진 등 여러 부분에서 정규직과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에 애정을 가질 수도 목표를 가질 수도 없는 불안하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부분 기업별로 이루어져 있는 한국의 노동조합 구조 안에서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쉽지 않다. 또 간접 고용의 경우 노동조합의 대상이 분명하지 않다는 문제도 있으며,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입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권리를 상실한 비정규직이 계속 늘어나면서 사회는 경제적으로 더욱 양극화되고, 이런 불평등한 구조에서는 사회적 갈등도 심해질 수밖에 없다.
3. 비정규직 확산, 왜? ― 케인스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비정규직은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비교적 근래에 급격히 확산된 고용 형식이다. 20세기의 미국이나 유럽 같은 자본주의 선진국에서는 노동자들을 잘살게 함으로써 상품 구매 수요를 늘려 경제를 발전시키는 케인스주의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케인스주의식 자본주의 경제가 성공을 거두어 생산이 국내 수요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이윤율이 떨어지게 되자 기업들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이렇게 전 세계 기업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경쟁 체제, 즉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자유 경쟁 체제에 기반한 신자유주의로 인해 이제 불확실성과 경쟁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면서 수량적 유연화와 비용 절감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고, 이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비정규직을 고용하게 되면서 더 이상 기업들이 정규직 일자리와 안정된 고용을 보장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변화를 겪었는데, 다만 자본주의 후발 국가로서 이를 훨씬 늦게 짧은 기간 동안 매우 압축적으로 겪었다. 한국은 중공업 및 소비재 대량 생산 체제가 확고히 갖추어지고 노동조합의 힘이 강해지기 시작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에 케인스주의 경제 패러다임이 가능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선진국들의 영향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다가, 1997년 IMF 경제 위기 때 상품과 자본 시장 개방, 자유 경쟁 위주의 경제 정책 및 제도를 채택하게 되면서 신자유주의적 경제 패러다임으로 완전히 전환하게 된다. 이처럼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케인스주의적 성장의 기간이 짧았고 급격히 자유주의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선진국처럼 보편적인 사회 복지를 제대로 확립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비정규직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의 고용과 임금이 불안정지고 그것이 사회 문제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4. 선진국의 대처 방식 ― 경제 성장이냐 사회 통합이냐
그러나 케인스주의적 패러다임을 거쳐 서서히 신자유주의로 변화하며 고용과 임금의 불안정을 받쳐줄 준비를 한 다른 선진국들의 경우에도 비정규직 고용은 점차 확산되고 있고 그에 따른 논쟁도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근본적으로 비정규직의 확산은 세계화되고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으로 바뀐 자본주의 경제 흐름에서 비롯된 현상인 것이다. 즉 비정규직 문제는 세계적 현상이며, 한국보다 먼저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논쟁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온 문제이다.
세계화가 이루어지면서 기업들은 자유로운 해고와 저임금이 가능한 다른 나라로 진출할 수도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유럽 선진국들 내에서는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률이 증가하게 되었다. 실업 문제가 심각해지고 이로 인해 사회 보장을 책임지는 국가의 재정적 부담이 늘게 되자 서유럽 국가 중 몇몇은 비정규직을 허용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기도 했다. 독일은 경제 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결국 비정규직 고용을 허용했고, 프랑스는 사회 통합을 위해 정규직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며, 스페인의 경우에는 비정규직 고용을 허용했다가 사회적 부작용이 심해지자 다시 규제를 가했다. 경제 강대국으로 불리는 미국의 경우에는 경제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회 보험이나 노동조합 등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많은 차별을 받고 있어, 사회 불평등 정도를 수치화한 지니 계수가 현재 0.47에까지 이르는 등 계속해서 심각한 사회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에서 나타나듯이 비정규직 문제는 결국 경제 성장과 사회 통합에 대한 가치의 문제이기도 하며, 이 적정선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합의에 의해 정해진다.
5. 비정규직,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기업들이 비정규직 고용을 선호하는 만큼, 비정규직이 갈수록 더 보편화되리라는 것이 현실적인 전망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는 비정규직 고용을 인정하되 문제점을 보완할 방법들을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비정규직 법에 대한 논의가 일어난 후 한국에서도 1998년에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2006년에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기업 경영과 경제 활성화, 노동자 복지와 사회 통합이라는 양측의 입장을 절충시키려는 노력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고용의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법은 기업이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피하기 위해 2년이 되기 전에 계약을 해지해버리는 등 오히려 비정규직을 확산시키고 그 불안정성을 심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을 줄이고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확산을 방지하려 하는 규정도 사실 ‘불합리한 차별’의 기준이 분명치 않으며, 이 때문에 기업이 빠져나갈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높지 않다. 그렇다면 현 제도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저자는 이런 제도적 문제를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는 문제점을 정확히 포착하고 법과 제도의 취지를 살려 계속 보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법의 현실적 문제들에 대해 국가의 적극성을 요구하는 구체적인 보완책을 펼치고 있으며, 기존의 노동조합의 관행과 체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의 노력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저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떠나 어떤 일자리나 고용 방식에서도 중요한 것은 모두가 행복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노력하는 것이 사회와 국가의 임무이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할 일임을 거듭 강조한다.
“비정규직의 확산은 자본주의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한 현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사회에서 자연적인 것이란 없다.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 경제 체제나 고용이라는 방식도 인간 사회의 발명품이 아닌가. 비정규직이라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이윤을 얻어내려는 기업 경영자들의 전략,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법과 정책의 입안, 노동자들의 고통과 희망, 이런 것들이 얽히고설켜 비정규직이라는 현상이 생겨나고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앞으로 고용 방식이 점점 더 다양해져, 정규직을 일자리의 전형으로 보는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정규직과 구분해 부르는 비정규직이라는 말도 아예 없어질지 모른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어떤 일자리나 고용 방식이든, 또 어떻게 노동을 하든 중요한 것은 모두가 행복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사회와 국가의 임무이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할 일이다.“
목차
목차
1장|비정규직이란 무엇인가
1.개념의 탄생
2.비정규직의 유형
3.규모와 기준
2장|비정규직은 새로운 현상인가
1.비정규직화 현상
2.자본주의 고도화와 경제의 변화
3.비정규직 고용의 이점
3장|비정규직, 무엇이 문제인가
1.비정규직 일자리의 문제점
2.제도적 문제
3.사회적 문제
4장|비정규직을 둘러싼 논쟁과 현실
1.자본주의 선진국들의 비정규직 정책
2.한국의 비정규직 법 논쟁
5장|비정규직, 어떻게 할까
1.비정규직 문제의 대책
2.좋은 사회, 좋은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