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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00029418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29418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는 매 시기 가족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새로운 가족이데올로기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결과다.”
여대생과 전문직 여성, 전업주부와 워킹맘, 조강지처와 불륜녀/내연녀/이혼녀 등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미디어에 재현된 여성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국사회 ‘여성혐오’의 기원과 역사적 전개 과정, 발생 원인을 추적하다
여성혐오 현상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 현상은 이전부터 지속되어오다가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가시화되었다. 그러나 여성혐오 논의 대부분이 ‘신자유주의’ 이후의 상황만을 언급하고 있으며, 여성혐오가 어떤 기원과 경로를 거쳐 여성혐오라는 감정의 폭발 상태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연구는 찾아볼 수 없다. 일부 연구가 남성/남성집단 중심의 ‘가부장제 질서’를 현 시기 여성혐오의 주된 이유로 내세우기도 하지만,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오히려 2000년대 이전에 더 굳건했다는 측면에서 여성혐오 현상의 발생 이유에 대한 세부적 언급이 필요하다. 그래서 시기별로 여성/여성집단의 이미지가 어떻게 배치/재배치되면서 변모되는지 그 과정을 추적할 때, 현재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족의 존재성과 여성혐오 현상을 더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 여성혐오 현상은 최근 들어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여성/여성집단에 대한 편견이 사회적 변화에 따라 재편된 결과다. 곧, 한국의 가부장제 질서가 어떻게 변모·유지되고 있는지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는 지점이다.
“이 책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세 시기─전후 시기인 1950∼1960년대/1970년대, 산업화 시기인 1980∼1990년대, 신자유주의 시기인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현재(2020)─로 나누어 미디어에 재현된 여성혐오 양상을 살펴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여대생’, ‘전업주부’와 ‘취업주부(워킹맘)’, ‘이혼녀’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현상을 사(史)적으로 추적한다.” (8쪽)
한국 현대사 속 가족이데올로기의 변모에서 여성혐오의 근원을 찾다
가족은 개인과 사회·국가의 원초적 기반이라 할 수 있다. 당대의 사회상을 담아내는 가족 ‘안방’ 극장의 거의 모든 일일/주말 연속극이 가장 많이 호명/표상하는 집단이 바로 ‘가족’이다. (예컨대 어느 방송국의 2010년대 주말드라마 제목은 다음과 같다. 〈부탁해요, 엄마〉, 〈아버지가 이상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솔약국집 아들들〉, 〈며느리 전성시대〉, 〈가족끼리 왜 이래〉)
《한국의 가족과 여성혐오, 1950∼2020》은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 현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그 역사적 전개 과정을 규명함으로써 살펴본다. 구체적으로는 시기마다 여성/여성집단을 대상화하는 기준점이 되는 가족 제도/이데올로기에, 특히 ‘아버지’의 형상이 달라지는 지점에 주목해 여성/여성집단의 존재성이 배치·재배치되는 측면을 분석하고 있다.
한 개인이 아버지로서 가족의 생계 부양 등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버지인 내가 원해서거나 아버지가 갖는 윤리적 당위성 때문이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아버지로서 어떻게 행동해야겠다는 의도는 사회의 욕망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즉, 사회적 상황에 따라 가족이데올로기는 달라지고, 아버지, 어머니, 여대생, 취업주부, 전업주부, 내연녀/이혼녀 등의 위치는 그 속에서 배치·재배치된다. 여성/여성집단에 부여된 ‘혐오’도, 아버지의 ‘윤리’가 사회의 욕망에 따라 만들어지듯, 구성되는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책은 남성 중심적 한국사회의 특질이나 성대립을 강조하기보다 가족이데올로기 안에서 남성 역시 여성과 함께 그 질서를 떠받치는 한 축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데 가장 큰 미덕이 있다.
“한국의 많은 남성은 자신이 가부장의 권력을 행사한 적도 없고 심지어는 남성이라서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혐오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성 중심적 한국사회의 특질을 강조하기보다는 가족이데올로기 안에서 남성 역시 여성과 함께 그 질서를 떠받치는 한 축임을 인식할 필요성이 있다. 가족에 대한 경제력과 통솔권을 가진 아버지의 존재성은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표상’이 아니라 특정 시대에 부여된 ‘역할’에 가깝다.” (26쪽)
미디어에 주조된 여성혐오의 스토리텔링,
미디어가 여성을 혐오적으로 만드는 메커니즘
〈“패륜의 남편에 실증 낫소”─500만 환 위자료 청구코 이혼소송〉, 〈여대생은 단화를 신으라─고대 ‘민족사상연’, 이대 앞서 이색 데모〉, 〈치맛바람…‘부각하’ ‘사모님’ 유한매담족은 천하기만 해〉, 〈스위트홈은 왜 깨지나─“이혼은 남자 책임이 많은가 봐요”〉, 〈(‘맘키즈 혐오사회’ 실태 보고서) 어쩌다 엄마와 아이는 대한민국 ‘동네북’이 됐나〉 등의 시기별 신문 기사.
〈침몰선〉, 〈슬픔은 강물처럼〉, 〈창부의 이력서〉, 〈부딪치는 육체들〉, 〈나는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좋다〉(에세이),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82년생 김지영〉 등의 시기별 소설.
〈여성상위시대〉, 〈남자와 기생〉, 〈언니는 말괄량이〉, 〈치맛바람〉, 〈저 눈밭에 사슴이〉, 〈남자는 괴로워〉 〈비오는 날의 수채화〉, 〈엽기적인 그녀〉 등의 시기별 영화.
〈사랑이 뭐길래〉, 〈신데렐라〉, 〈아줌마〉, 〈아내의 자격〉, 〈굿와이프〉, 〈품위있는 그녀〉, 〈SKY캐슬〉 등의 시기별 드라마.
《한국의 가족과 여성혐오, 1950∼2020》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 각 시기에 추구된 가족이데올로기의 얼굴을 대중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신문,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의 미디어에 형상화된 여성/여성집단의 이미지를 통해 들여다본다. 이처럼 여성혐오 현상을 여성학 이론이나 페미니즘적 시각에만 기대는 게 아닌 일상의 구체적 실례를 통해 재현/고증해내는 데 책의 또 다른 미덕이 있다. 특히 책의 중심이 되는 신문 기사의 경우, 주 제목에 이어 세부 제목들까지 소개하고 있으며 시각자료로도 제공하고 있어 당대의 사회 분위기를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곧, 책은 문화사/문화연구의 측면도 놓치지 않고 있다.
■ 책의 내용
제1부 여성혐오 사회의 대두, 여성상위 시대의 오해
본격적 논의를 위한 여성혐오의 일반적 소개와 책의 구성 등에 대해 밝힌다. 한국사회에서 한국전쟁 이후 국가 재건은 모범적 가장을 중심으로 가족제도의 확립에서 시작되었음과, 이후 국가 주도의 산업 발전 단계와 경제발전, 1997년 IMF 외환위기 시기를 거치면서 가부장제가 어떻게 재구축되었는지를 개략한다.
“한국사회에서 성담론은 가부장적 국가주의의 기획과 연동되었다. 1960년대 산업 전선에서 박차를 가해야 할 남성은 안락한 가정과 모성적 여성의 서비스로써 위로받아야 했으며, 여성의 신체는 남성의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야 했다. 동시에 국가적 기획이었던 산아제한과 가족계획은 양적·질적으로 적정 수준의 국민을 생산/재생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후 한국사회는 국가 주도의 산업 발전 단계와 그에 이은 경제 부흥기를 맞게 되면서 1990년대 이전까지는 남성이 책임감 있는 가부장과 국가의 전사(戰士)로서 갖추어야 할 의지, 믿음직스러움이라는 덕목이 비교적 일관되게 강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어려움이 악화되면서 1900년대 아버지 중심 가부장제 사회의 아버지상과 어머니상과는 다른 형태의 아버지상과 어머니상이 등장했다.” (28쪽)
제2부 ‘전이’의 내러티브, 동정과 가십의 여성들─1950∼1960년대/1970년대
1950∼1960년대에는 남성은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생득적(生得的) 자신감이 있었고, 그 자신감을 바탕 삼은 남성의 폭력·축첩 등으로 여성이 힘겹게 살아가는 상황이 지적되었다. 또한,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그 가족 구성원이 경제적·정신적으로 어렵게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목적에서 남성의 부도덕함이 공론화되었다. 그렇기에 이 시기 일반 부녀자들이 혐오적 존재로 위치되기는 어려웠다. 바람 난 취업주부는 엄중하게 비판되고 계도되기보다 대중의 말초적 흥미를 충족시키는 존재로 대상화되었다. 그러나 ‘여대생’은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이 상대적으로 드문 상황에서 호기심과 질투심의 대상이 되어 혐오 집단으로 배치되었다. 아직 여성이 대학 졸업 후 사회적 성취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여대생은 사회 질서를 위반할 수 있는 잠재적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대생은 바람 난 취업주부보다 더 정숙하지 못한 형상으로 형상화되었다. 동시에 1950∼1960년대/1970년대는 여성이 홀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어려웠던 시기라 주부는 이혼을 선택하기 어려웠고, 남편에게 이혼을 당한 여성은 동정의 대상으로 그려졌다.
“1950∼1960년대/1970년대 미디어는 전이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통해 사회 금기를 위반한 여성의 불행한 종말을 자극적 이야기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보다 그녀들을 과감하게 흥미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대중이 소비할 수 있게 했다. 영화에 나오는 허랑방탕한 여성들 역시 일시적으로 관객의 욕망을 충족시키다 사라진다. 1980∼1990년대처럼 타락한 여성들을 규율의 대상으로 취급하기보다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대중이 마음껏 즐기다가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방탕한 여성들의 부정적 속성과 함께 여성을 종속시키는 남성 중심 사회의 어두운 면모가 함께 부각된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상대적으로 1950∼1960년대/1970년대는 1980∼1990년대보다 한국이 남성 중심의 사회이고, 아버지의 잘못으로 가족이 힘겹게 살고 있음을 인정하고 반성했던 시기다.” (40쪽)
제3부 환상으로서의 여권신장, 노스탤지어로서의 가부장제─1980∼1990년대
1980∼1990년대에는 한국사회가 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여성과 남성이 성평등 하거나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에 놓인 것 같은 분위기가 주조되었다. 이와 함께 모든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을 가부장 권위의 추락과 여권신장에서 찾으려는 경향성이 나타났다. 그래서 무너진 사회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모범적’ 가부장을 중심으로 성별분업에 입각한 가족 질서가 강화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가족을 등한시하거나 성적으로 방종했던 아버지가 존재했던 과거를 가족 질서가 바로잡혔던 노스탤지어의 시공간으로 역전시키면서 가부장제가 구축되었다는 점이다. 그 안에서 가족 구성원에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직장에서 시달리는 현재의 아버지는 위로의 대상이 되었고, 무너진 현재의 가부장제 질서는 회복시켜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1980∼1990년대에는 아버지 중심의 가부장제가 가족의 정석이라는 사실이 ‘환상’임을 들출 수 있는 여성/여성집단에 혐오 이미지가 부여된다.
“첫째, 1950∼1960년대에는 기존의 정숙한 가족이데올로기를 위협하는 금기 위반의 주인공이었던 여대생이 1980년대 이후에는 청순가련한 외모에 사치를 즐기고 애정을 구걸하는 존재로 주조된다. (…) 이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에 이르면 아이 키우는 일이 사회활동과 동등한 것으로 위치되어 ‘고학력 주부’가 가정의 울타리 안으로 포섭된다. 혐오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었던 고학력 여성이 1990년대에 능력맘 ‘미시’로 존재성이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둘째, 취업주부의 경우에는 자신의 성취감만을 위해 남편과 아이를 희생시키며 그 자녀들에게는 문제가 생길 소지가 많다는 편견이 생긴다. 요컨대, 여성의 경제력을 통제하려는 전략이 치밀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셋째, 그동안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되어왔던 이혼녀는 단란한 가족을 무너뜨리는 최대의 적으로 위치된다. 문란한 성적 타락자이자 모성이 제거되어 남편의 내연녀보다 못한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158쪽)
제4부 남성성의 패러다임 전이, 가족의 재구성, 여성 간 여성혐오의 확산─2000년대 이후
오늘날 가족이데올로기의 화두는 20세기식 가부장제의 폐기와 출생률의 증가를 위한 평등한 부부관계의 확립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아버지가 혼자 벌어 가족을 경제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불가능하다. 이처럼 성별분업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사회는 그동안 부정적으로 간주되었던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을 당연하게 만들 수 있는 패러다임의 전이를 꾀하게 된다. 바로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되었다. 미디어에서 갑자기 아버지의 권위가 약화되고 여성의 사회활동이 왕성해지는 것처럼 나타나면서, 남성 간 경쟁에서 져 굴욕감을 느끼는 남성들의 분노가 사회가 아닌 ‘여성’을 향하게 된 것이다. 남성의 새로운 경쟁자로서 군복무를 하지 않고 학점이 좋은 ‘젊은’ 여성과 전문 분야에서 남성만큼 두각을 나타내며 가정일까지 잘해내는 ‘워킹맘’이 부각되면서 남성은 자신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결과, 남성은 실질적으로는 ‘남성 간’ 경쟁에서 진 것이지만 ‘여성 때문에’ 자신들의 사회활동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처럼 여기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현상은 모범적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부장제의 환상이 폐기되고, ‘사회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에 대한 환상’이 새롭게 주조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허영심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의 욕망을 보여주었던 골드미스와 전문직 고소득 여성은 이제 따뜻한 모성에 사회적 능력까지 갖춘 최고의 아내, 최고의 어머니로 격상되고 있다. 반면, 1980∼1990년대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위치되었던 ‘중산층 전업주부’는 허영, 사치, 불륜, 도박을 하는 부정적 존재로 대상화된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부정적 존재는 ‘취업주부’와 ‘이혼녀’였으나 갑작스럽게 이미지 전도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여기서 한편으로, 미디어에서 전업주부와 취업주부가 대립되어 이미지화되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맘충’은 미디어에서 가사노동의 가치가 절하되고, 그동안 아내에게 부여되었던 자녀교육의 책임이 남편과 사회/국가로 분산되면서 만들어진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미디어는 상황에 따라 1990년대처럼 남편보다 돈 잘 버는 아내를 불행의 대상으로, 혹은 현재처럼 능력 있는 여성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317쪽)
제5부 모성의 멸균 능력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남성 간 경쟁 질서를 은폐하는 ‘여성혐오’
미디어에서는 국가의 유지·발전에 필요한 새로운 ‘가족 판타지’가 끊임없이 만들어졌는데, 그 판타지는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구조화되었다.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었던 이혼녀들(1950∼1960년대)은 어느 순간 악녀로 추락되었다가(1980∼1990년대), 갑자기 지향해야 할 가족윤리를 내재한 존재(2010년대)로 부상되기도 했다. 많은 여대생이 과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여대생들은 공부벌레인 동시에 미용과 결혼에만 관심 있는 사치스러운 허영녀(1980∼1990년대)로 형상화되기도 했다. 된장녀로 취급되던 젊은 여성들(2000년대 중반)은 갑자기 자기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비윤리적 행동도 서슴지 않는 혐오스러운 페미니스트(2010년대 중반)로 이미지화되기도 했다.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내연녀에게 우위를 점하던 본처들(1950∼1960년대)은 한순간에 모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내연녀에게 본처의 자리를 빼앗기기도 했다(1980∼1990년대). 이제는 본처가 남편에게 경제적·정신적으로 독립적이 되면 남편의 내연녀 정도는 거뜬히 이길 수 있다고 이야기가 된다(2010년대).
“한국사회에서 모성은 언제나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왔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모성의 역할은 더욱더 강조되고 있다. 한 인간이 태어나 교육받고 취직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자체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지금, 사회는 어머니에게 자녀의 미래에 해가 되는 것을 ‘멸균’하는 능력까지 은근히 바라고 있다. 그런데 ‘멸균 능력을 지닌 모성’은 20세기 후반처럼 가족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돌봄’의 성격과는 매우 다르다.” (495쪽)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경쟁 상대가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말 살벌한 경쟁은 주로 남성 간에서 일어난다. 큰 재력을 가졌거나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는 ‘갑 중의 갑’은 아직 남성이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는 남성이 남성과 남성 간에 벌어지는 생존경쟁의 살벌함을 덜 인식하게 하고 있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여성혐오가 성대립으로 파생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여성혐오는 ‘남남 대립’을 은폐하기 위해 주조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2010년대 후반 이후는 여성 간 능력 경쟁과 여성 간 윤리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여여 갈등’의 문제가 커지게 될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여성도 ‘사회활동’을 하고 ‘이혼’에 대한 편견도 옅어지고 있으니 여권신장이 된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여여 갈등으로 인해 여성 간 연대가 힘들어짐에 따라 성불평등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503쪽)
국가가 새로운 가족이데올로기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결과다.”
여대생과 전문직 여성, 전업주부와 워킹맘, 조강지처와 불륜녀/내연녀/이혼녀 등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미디어에 재현된 여성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국사회 ‘여성혐오’의 기원과 역사적 전개 과정, 발생 원인을 추적하다
여성혐오 현상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 현상은 이전부터 지속되어오다가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가시화되었다. 그러나 여성혐오 논의 대부분이 ‘신자유주의’ 이후의 상황만을 언급하고 있으며, 여성혐오가 어떤 기원과 경로를 거쳐 여성혐오라는 감정의 폭발 상태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연구는 찾아볼 수 없다. 일부 연구가 남성/남성집단 중심의 ‘가부장제 질서’를 현 시기 여성혐오의 주된 이유로 내세우기도 하지만,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오히려 2000년대 이전에 더 굳건했다는 측면에서 여성혐오 현상의 발생 이유에 대한 세부적 언급이 필요하다. 그래서 시기별로 여성/여성집단의 이미지가 어떻게 배치/재배치되면서 변모되는지 그 과정을 추적할 때, 현재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족의 존재성과 여성혐오 현상을 더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 여성혐오 현상은 최근 들어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여성/여성집단에 대한 편견이 사회적 변화에 따라 재편된 결과다. 곧, 한국의 가부장제 질서가 어떻게 변모·유지되고 있는지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는 지점이다.
“이 책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세 시기─전후 시기인 1950∼1960년대/1970년대, 산업화 시기인 1980∼1990년대, 신자유주의 시기인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현재(2020)─로 나누어 미디어에 재현된 여성혐오 양상을 살펴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여대생’, ‘전업주부’와 ‘취업주부(워킹맘)’, ‘이혼녀’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현상을 사(史)적으로 추적한다.” (8쪽)
한국 현대사 속 가족이데올로기의 변모에서 여성혐오의 근원을 찾다
가족은 개인과 사회·국가의 원초적 기반이라 할 수 있다. 당대의 사회상을 담아내는 가족 ‘안방’ 극장의 거의 모든 일일/주말 연속극이 가장 많이 호명/표상하는 집단이 바로 ‘가족’이다. (예컨대 어느 방송국의 2010년대 주말드라마 제목은 다음과 같다. 〈부탁해요, 엄마〉, 〈아버지가 이상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솔약국집 아들들〉, 〈며느리 전성시대〉, 〈가족끼리 왜 이래〉)
《한국의 가족과 여성혐오, 1950∼2020》은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 현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그 역사적 전개 과정을 규명함으로써 살펴본다. 구체적으로는 시기마다 여성/여성집단을 대상화하는 기준점이 되는 가족 제도/이데올로기에, 특히 ‘아버지’의 형상이 달라지는 지점에 주목해 여성/여성집단의 존재성이 배치·재배치되는 측면을 분석하고 있다.
한 개인이 아버지로서 가족의 생계 부양 등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버지인 내가 원해서거나 아버지가 갖는 윤리적 당위성 때문이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아버지로서 어떻게 행동해야겠다는 의도는 사회의 욕망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즉, 사회적 상황에 따라 가족이데올로기는 달라지고, 아버지, 어머니, 여대생, 취업주부, 전업주부, 내연녀/이혼녀 등의 위치는 그 속에서 배치·재배치된다. 여성/여성집단에 부여된 ‘혐오’도, 아버지의 ‘윤리’가 사회의 욕망에 따라 만들어지듯, 구성되는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책은 남성 중심적 한국사회의 특질이나 성대립을 강조하기보다 가족이데올로기 안에서 남성 역시 여성과 함께 그 질서를 떠받치는 한 축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데 가장 큰 미덕이 있다.
“한국의 많은 남성은 자신이 가부장의 권력을 행사한 적도 없고 심지어는 남성이라서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혐오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성 중심적 한국사회의 특질을 강조하기보다는 가족이데올로기 안에서 남성 역시 여성과 함께 그 질서를 떠받치는 한 축임을 인식할 필요성이 있다. 가족에 대한 경제력과 통솔권을 가진 아버지의 존재성은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표상’이 아니라 특정 시대에 부여된 ‘역할’에 가깝다.” (26쪽)
미디어에 주조된 여성혐오의 스토리텔링,
미디어가 여성을 혐오적으로 만드는 메커니즘
〈“패륜의 남편에 실증 낫소”─500만 환 위자료 청구코 이혼소송〉, 〈여대생은 단화를 신으라─고대 ‘민족사상연’, 이대 앞서 이색 데모〉, 〈치맛바람…‘부각하’ ‘사모님’ 유한매담족은 천하기만 해〉, 〈스위트홈은 왜 깨지나─“이혼은 남자 책임이 많은가 봐요”〉, 〈(‘맘키즈 혐오사회’ 실태 보고서) 어쩌다 엄마와 아이는 대한민국 ‘동네북’이 됐나〉 등의 시기별 신문 기사.
〈침몰선〉, 〈슬픔은 강물처럼〉, 〈창부의 이력서〉, 〈부딪치는 육체들〉, 〈나는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좋다〉(에세이),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82년생 김지영〉 등의 시기별 소설.
〈여성상위시대〉, 〈남자와 기생〉, 〈언니는 말괄량이〉, 〈치맛바람〉, 〈저 눈밭에 사슴이〉, 〈남자는 괴로워〉 〈비오는 날의 수채화〉, 〈엽기적인 그녀〉 등의 시기별 영화.
〈사랑이 뭐길래〉, 〈신데렐라〉, 〈아줌마〉, 〈아내의 자격〉, 〈굿와이프〉, 〈품위있는 그녀〉, 〈SKY캐슬〉 등의 시기별 드라마.
《한국의 가족과 여성혐오, 1950∼2020》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 각 시기에 추구된 가족이데올로기의 얼굴을 대중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신문,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의 미디어에 형상화된 여성/여성집단의 이미지를 통해 들여다본다. 이처럼 여성혐오 현상을 여성학 이론이나 페미니즘적 시각에만 기대는 게 아닌 일상의 구체적 실례를 통해 재현/고증해내는 데 책의 또 다른 미덕이 있다. 특히 책의 중심이 되는 신문 기사의 경우, 주 제목에 이어 세부 제목들까지 소개하고 있으며 시각자료로도 제공하고 있어 당대의 사회 분위기를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곧, 책은 문화사/문화연구의 측면도 놓치지 않고 있다.
■ 책의 내용
제1부 여성혐오 사회의 대두, 여성상위 시대의 오해
본격적 논의를 위한 여성혐오의 일반적 소개와 책의 구성 등에 대해 밝힌다. 한국사회에서 한국전쟁 이후 국가 재건은 모범적 가장을 중심으로 가족제도의 확립에서 시작되었음과, 이후 국가 주도의 산업 발전 단계와 경제발전, 1997년 IMF 외환위기 시기를 거치면서 가부장제가 어떻게 재구축되었는지를 개략한다.
“한국사회에서 성담론은 가부장적 국가주의의 기획과 연동되었다. 1960년대 산업 전선에서 박차를 가해야 할 남성은 안락한 가정과 모성적 여성의 서비스로써 위로받아야 했으며, 여성의 신체는 남성의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야 했다. 동시에 국가적 기획이었던 산아제한과 가족계획은 양적·질적으로 적정 수준의 국민을 생산/재생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후 한국사회는 국가 주도의 산업 발전 단계와 그에 이은 경제 부흥기를 맞게 되면서 1990년대 이전까지는 남성이 책임감 있는 가부장과 국가의 전사(戰士)로서 갖추어야 할 의지, 믿음직스러움이라는 덕목이 비교적 일관되게 강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어려움이 악화되면서 1900년대 아버지 중심 가부장제 사회의 아버지상과 어머니상과는 다른 형태의 아버지상과 어머니상이 등장했다.” (28쪽)
제2부 ‘전이’의 내러티브, 동정과 가십의 여성들─1950∼1960년대/1970년대
1950∼1960년대에는 남성은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생득적(生得的) 자신감이 있었고, 그 자신감을 바탕 삼은 남성의 폭력·축첩 등으로 여성이 힘겹게 살아가는 상황이 지적되었다. 또한,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그 가족 구성원이 경제적·정신적으로 어렵게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목적에서 남성의 부도덕함이 공론화되었다. 그렇기에 이 시기 일반 부녀자들이 혐오적 존재로 위치되기는 어려웠다. 바람 난 취업주부는 엄중하게 비판되고 계도되기보다 대중의 말초적 흥미를 충족시키는 존재로 대상화되었다. 그러나 ‘여대생’은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이 상대적으로 드문 상황에서 호기심과 질투심의 대상이 되어 혐오 집단으로 배치되었다. 아직 여성이 대학 졸업 후 사회적 성취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여대생은 사회 질서를 위반할 수 있는 잠재적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대생은 바람 난 취업주부보다 더 정숙하지 못한 형상으로 형상화되었다. 동시에 1950∼1960년대/1970년대는 여성이 홀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어려웠던 시기라 주부는 이혼을 선택하기 어려웠고, 남편에게 이혼을 당한 여성은 동정의 대상으로 그려졌다.
“1950∼1960년대/1970년대 미디어는 전이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통해 사회 금기를 위반한 여성의 불행한 종말을 자극적 이야기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보다 그녀들을 과감하게 흥미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대중이 소비할 수 있게 했다. 영화에 나오는 허랑방탕한 여성들 역시 일시적으로 관객의 욕망을 충족시키다 사라진다. 1980∼1990년대처럼 타락한 여성들을 규율의 대상으로 취급하기보다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대중이 마음껏 즐기다가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방탕한 여성들의 부정적 속성과 함께 여성을 종속시키는 남성 중심 사회의 어두운 면모가 함께 부각된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상대적으로 1950∼1960년대/1970년대는 1980∼1990년대보다 한국이 남성 중심의 사회이고, 아버지의 잘못으로 가족이 힘겹게 살고 있음을 인정하고 반성했던 시기다.” (40쪽)
제3부 환상으로서의 여권신장, 노스탤지어로서의 가부장제─1980∼1990년대
1980∼1990년대에는 한국사회가 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여성과 남성이 성평등 하거나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에 놓인 것 같은 분위기가 주조되었다. 이와 함께 모든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을 가부장 권위의 추락과 여권신장에서 찾으려는 경향성이 나타났다. 그래서 무너진 사회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모범적’ 가부장을 중심으로 성별분업에 입각한 가족 질서가 강화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가족을 등한시하거나 성적으로 방종했던 아버지가 존재했던 과거를 가족 질서가 바로잡혔던 노스탤지어의 시공간으로 역전시키면서 가부장제가 구축되었다는 점이다. 그 안에서 가족 구성원에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직장에서 시달리는 현재의 아버지는 위로의 대상이 되었고, 무너진 현재의 가부장제 질서는 회복시켜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1980∼1990년대에는 아버지 중심의 가부장제가 가족의 정석이라는 사실이 ‘환상’임을 들출 수 있는 여성/여성집단에 혐오 이미지가 부여된다.
“첫째, 1950∼1960년대에는 기존의 정숙한 가족이데올로기를 위협하는 금기 위반의 주인공이었던 여대생이 1980년대 이후에는 청순가련한 외모에 사치를 즐기고 애정을 구걸하는 존재로 주조된다. (…) 이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에 이르면 아이 키우는 일이 사회활동과 동등한 것으로 위치되어 ‘고학력 주부’가 가정의 울타리 안으로 포섭된다. 혐오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었던 고학력 여성이 1990년대에 능력맘 ‘미시’로 존재성이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둘째, 취업주부의 경우에는 자신의 성취감만을 위해 남편과 아이를 희생시키며 그 자녀들에게는 문제가 생길 소지가 많다는 편견이 생긴다. 요컨대, 여성의 경제력을 통제하려는 전략이 치밀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셋째, 그동안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되어왔던 이혼녀는 단란한 가족을 무너뜨리는 최대의 적으로 위치된다. 문란한 성적 타락자이자 모성이 제거되어 남편의 내연녀보다 못한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158쪽)
제4부 남성성의 패러다임 전이, 가족의 재구성, 여성 간 여성혐오의 확산─2000년대 이후
오늘날 가족이데올로기의 화두는 20세기식 가부장제의 폐기와 출생률의 증가를 위한 평등한 부부관계의 확립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아버지가 혼자 벌어 가족을 경제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불가능하다. 이처럼 성별분업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사회는 그동안 부정적으로 간주되었던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을 당연하게 만들 수 있는 패러다임의 전이를 꾀하게 된다. 바로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되었다. 미디어에서 갑자기 아버지의 권위가 약화되고 여성의 사회활동이 왕성해지는 것처럼 나타나면서, 남성 간 경쟁에서 져 굴욕감을 느끼는 남성들의 분노가 사회가 아닌 ‘여성’을 향하게 된 것이다. 남성의 새로운 경쟁자로서 군복무를 하지 않고 학점이 좋은 ‘젊은’ 여성과 전문 분야에서 남성만큼 두각을 나타내며 가정일까지 잘해내는 ‘워킹맘’이 부각되면서 남성은 자신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결과, 남성은 실질적으로는 ‘남성 간’ 경쟁에서 진 것이지만 ‘여성 때문에’ 자신들의 사회활동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처럼 여기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현상은 모범적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부장제의 환상이 폐기되고, ‘사회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에 대한 환상’이 새롭게 주조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허영심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의 욕망을 보여주었던 골드미스와 전문직 고소득 여성은 이제 따뜻한 모성에 사회적 능력까지 갖춘 최고의 아내, 최고의 어머니로 격상되고 있다. 반면, 1980∼1990년대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위치되었던 ‘중산층 전업주부’는 허영, 사치, 불륜, 도박을 하는 부정적 존재로 대상화된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부정적 존재는 ‘취업주부’와 ‘이혼녀’였으나 갑작스럽게 이미지 전도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여기서 한편으로, 미디어에서 전업주부와 취업주부가 대립되어 이미지화되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맘충’은 미디어에서 가사노동의 가치가 절하되고, 그동안 아내에게 부여되었던 자녀교육의 책임이 남편과 사회/국가로 분산되면서 만들어진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미디어는 상황에 따라 1990년대처럼 남편보다 돈 잘 버는 아내를 불행의 대상으로, 혹은 현재처럼 능력 있는 여성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317쪽)
제5부 모성의 멸균 능력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남성 간 경쟁 질서를 은폐하는 ‘여성혐오’
미디어에서는 국가의 유지·발전에 필요한 새로운 ‘가족 판타지’가 끊임없이 만들어졌는데, 그 판타지는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구조화되었다.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었던 이혼녀들(1950∼1960년대)은 어느 순간 악녀로 추락되었다가(1980∼1990년대), 갑자기 지향해야 할 가족윤리를 내재한 존재(2010년대)로 부상되기도 했다. 많은 여대생이 과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여대생들은 공부벌레인 동시에 미용과 결혼에만 관심 있는 사치스러운 허영녀(1980∼1990년대)로 형상화되기도 했다. 된장녀로 취급되던 젊은 여성들(2000년대 중반)은 갑자기 자기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비윤리적 행동도 서슴지 않는 혐오스러운 페미니스트(2010년대 중반)로 이미지화되기도 했다.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내연녀에게 우위를 점하던 본처들(1950∼1960년대)은 한순간에 모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내연녀에게 본처의 자리를 빼앗기기도 했다(1980∼1990년대). 이제는 본처가 남편에게 경제적·정신적으로 독립적이 되면 남편의 내연녀 정도는 거뜬히 이길 수 있다고 이야기가 된다(2010년대).
“한국사회에서 모성은 언제나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왔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모성의 역할은 더욱더 강조되고 있다. 한 인간이 태어나 교육받고 취직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자체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지금, 사회는 어머니에게 자녀의 미래에 해가 되는 것을 ‘멸균’하는 능력까지 은근히 바라고 있다. 그런데 ‘멸균 능력을 지닌 모성’은 20세기 후반처럼 가족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돌봄’의 성격과는 매우 다르다.” (495쪽)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경쟁 상대가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말 살벌한 경쟁은 주로 남성 간에서 일어난다. 큰 재력을 가졌거나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는 ‘갑 중의 갑’은 아직 남성이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는 남성이 남성과 남성 간에 벌어지는 생존경쟁의 살벌함을 덜 인식하게 하고 있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여성혐오가 성대립으로 파생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여성혐오는 ‘남남 대립’을 은폐하기 위해 주조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2010년대 후반 이후는 여성 간 능력 경쟁과 여성 간 윤리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여여 갈등’의 문제가 커지게 될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여성도 ‘사회활동’을 하고 ‘이혼’에 대한 편견도 옅어지고 있으니 여권신장이 된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여여 갈등으로 인해 여성 간 연대가 힘들어짐에 따라 성불평등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503쪽)
목차
들어가며
제1부 여성혐오 사회의 대두, 여성상위 시대의 오해
제1장 소멸하는 가부장제의 환상, 등장하는 워킹맘의 환상
1. ‘검은 집’, 가부장제, 현실 공간과 환상 공간
2. ‘여성혐오’의 사회, 주류적 남성성의 영토
제2장 가족제도의 재구축, 여성혐오의 변화
1. ‘정상’ 가족, 여대생, 전업주부, 워킹맘, 이혼녀
2. ‘내 안’의 여성혐오,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
제2부 ‘전이’의 내러티브, 동정과 가십의 여성들 - 1950∼1960년대/1970년대
제1장 ‘원초적’ 존재로서의 아버지, ‘계몽’의 대상으로서의 어머니
1. 생득적인 아버지의 권위, 남성이라는 이유로
2. 가족 간 살해 사건, 권위의 대상의 아버지와 계몽의 대상의 어머니
제2장 여대생, 정숙하지 못함의 대명사
1. 계급적으로 성장할 수 없었던 ‘아프레 걸’들
2. ‘불의’한 치정 살인극의 주인공들
3. 사회 금기를 깨뜨리는 ‘부량소녀’들
제3장 헌신하는 ‘만능 주부’, 허영 가득한 ‘일하는 여성’
1. 주부에게 ‘여가’를 허하라
2. 일하는 여성의 죽음에 내재된 교훈 |
3. ‘여성상위 시대’와 ‘치맛바람’의 원형
제4장 비도덕적 가장에 의해 파괴되는 이혼(위기에 놓인)녀
1. 이혼녀, 동정의 스토리텔링, “현대의 유행병”에 대한 경각심을 위한
2. 이혼녀, 동정적 존재에서 균열적 존재로
3. 축첩하는 아버지, 처와 첩의 기이한 동거
제3부 환상으로서의 여권신장, 노스탤지어로서의 가부장제 - 1980∼1990년대
제1장 유교적 아버지를 보좌하는 내조의 힘
1. ‘노스탤지어’로서의 유교적 가족의 대두, ‘모범적 아버지’의 탄생
2. 남성의 유아성, 출세 담론에 갇힌 아버지
제2장 ‘환상화’되는 여대생과 전문직 여성
1. 여대생, 정숙하지 못함에서 철이 없음으로
2. 전문직 여성의 스위트홈, 슈퍼우먼을 위한 찬사
3. 청순가련한 여대생, 당당한 커리어 우먼
제3장 전업주부와 취업주부, 그녀들의 대립
1. “전업주부라서 행복해요”
2. “취업주부라서 편견 받아요”
3. 가부장제의 미화, 핵가족 전업주부의 교화
제4장 이혼녀, 범죄자의 형상을 한
1. ‘나쁜’ 이혼녀의 탄생
2. 모성이 제거된 이혼녀, 단란한 가족의 ‘공공의 적’인
3. 이혼녀의 혐오 이미지 부각과 가부장의 도덕성 회복 메커니즘
제4부 남성성의 패러다임 전이, 가족의 재구성, 여성 간 여성혐오의 확산 - 2000년대 이후
제1장 ‘체질 전이’를 통한 남성성의 구축과 아버지의 재구성
1. 폐기되는 가부장제, 밀려나는 ‘개저씨’들
2. 구축되는 남성성과 사라지는 여성의 적, 저출생의 극복을 위한
제2장 21세기 여성혐오 현상의 출현, 남성들을 압도하는 파워걸들
1. 성평등 지향 사회의 여학생, 엽기와 혐오의 주체로 떠오르는
2. 알파걸과 골드미스 존재성의 전이, 가족이데올로기의 강화
3. 여대생과 전문직 여성, ‘우월한 여성들’에 내재된 남성중심주의
제3장 전업주부 대 워킹맘의 갈등 조장
1. 된장아줌마 혹은 김치녀가 된 주부들
2. 전업주부와 워킹맘, ‘핵가족 유지’를 위한 성평등
3. 아내의 자격에 나타난 전업주부의 혐오 이미지
제4장 이혼녀 혐오 이미지의 변화, 신현모양처 담론의 생성
1. 모성과 아동을 관리하는 국가, 4인 핵가족의 유지를 위한
2. ‘품격 있는’ 이혼녀의 윤리, ‘품위 있는’ 조강지처의 윤리
3. ‘품위 있는 그녀’, ‘신현모양처’의 이혼 공식과 ‘욕망하는’ 여성의 처단
제5부 모성의 멸균 능력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남성 간 경쟁 질서를 은폐하는 ‘여성혐오’
제1장 SKY캐슬 타운의 가족 판타지, 성찰하는 아버지와 여전히 계도되는 모성
제2장 여성혐오, 남성 간 경쟁 질서를 은폐하고 여성 간 갈등을 조장하는
나오며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