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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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가능 (1) |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00031170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31170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열한 명의 필자들이 열한 가지 색깔로 드러내는,
다양하고 복잡한 돌봄과 작업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다양한 조건에서 양육을 하는 여성들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엄마됨’, ‘양육’, ‘모성’ 같은 오해받기 쉬운 주제에 대해 용기 있게 발언하거나 표현해온 매력적인 필자들이다. 물론 독특한 방식으로 자기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는 필자들이기도 하다.
외동을 키우거나 아이 셋을 키우거나, 직접 낳았거나 입양을 했거나, 아이가 어리거나 크거나, 아이의 기질이 예민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베이비시터의 도움을 받거나 조부모의 도움을 받거나 아무 도움도 못 받거나, 파트너와의 관계가 협조적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풀타임 직장에 다니거나 프리랜서로 일을 하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결혼과 출산에 익숙한 문화에서 자랐거나 그렇지 않거나, 아이 먹거리나 교육에 힘을 쓰거나 그렇지 않거나, 양육서를 읽거나 읽지 않거나. 열한 명의 필자들은 이 다양한 변수들을 통과해 나름의 선택을 하고 또 그 선택에 대해 나름의 책임을 지는 과정을 공유한다.
이 책은 돌보면서 작업을 할 때 어떤 방식이 효과적인지 혹은 올바른지 따지지 않는다. 열한 명의 필자들이 돌보면서 작업하는 방식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많은 필자들이 고백하듯 한 사람의 선택 안에서도 일관성보다는 모순이 두드러질 때가 많다. 가령 우리는 엄마들에게 너무 쉽게 모순적이거나 과도한 요구를 하는 양육 지침 때문에 상처받고 자책하고 분노하지만, 또 누구보다 열심히 그런 지침들을 수집하고 시도해보기도 한다. 또 아이의 교육 문제라는 예민한 주제에서는 어디까지가 아이의 개성을 함양시킬 지원이며, 어디부터가 과도한 개입인지에 대해서도 저마다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방식으로 책임진다. 또 아이와 물리적으로 오랜 시간 붙어 있는 것과 아이와 잘 분리해 떨어져 지내는 것 사이에서도 양육과 작업을 지속시키기 위한 각자의 방침은 다양하고 복잡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양육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언어들은 지나치게 명료하고 단호하고 해맑고 건전하고 평가적이다. 이런 언어들을 훨씬 더 복잡하고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 가치판단의 언어가 아니라 관찰과 숙고의 언어로 만드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여성에 대한, 여성의 출산과 양육에 대한 사회와 전통과 과학과 자연의 요구가 얼마나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모든 사소하고 하찮은 모성적, 양육적 선택에도 엄마들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마디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유사한 상황이 반복된다고 해서 항상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없다. 이렇게 정답이 너무 많고 늘 바뀌는 상태에서 현대의 양육자들은 오히려 끝없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소리를 듣고 가장 어두운 욕망까지도 직시할 수밖에 없다. 쉽게 많은 것들을 판단하고 가르치려고 드는 ‘엄마됨’에 관한 언어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데에는 큰 부담이 따른다. 하지만 열한 명의 필자들은 모두 정직하고 용감하게 가장 내밀한 이야기들을 공유해준다.
읽고 쓰고 만드는 여자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존중과 응원의 말들
돌봄과 작업이 서로 경쟁하거나 협력하기만 하는 잘 구획된 삶의 측면일 리는 없다. 돌봄과 작업은 서로 뒤섞인 채로 닥쳐온다. 이 책에서는 ‘돌봄’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양육과 여성에 대한 단순화된 언어들을 피하고자 한 것처럼, ‘작업’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직업, 일에 대한 통념을 피하고자 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읽다 보면 각각의 필자들이 지금 왜 그 일을 하고 있고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가 은연중에 드러난다. 이런 이야기들이 쌓여서 직업, 몰입과 창조성과 성취에 대한 새로운 모델들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작업’이라고 함으로써 일의 창조적인 측면이 조금 더 강조되기를 바랐지만, 창조적인 일을 순수한 예술의 영역에 가두지는 않았다. 연구든 예술이든, 다른 종류의 글쓰기든, 번역이든 인터뷰든 상담이든, 혹은 아직 이름이 없는 어떤 일이든 모두 창조적인 과업의 범주에 속한다고 믿는다. 작업이란 외부의 잣대나 규정과 무관하게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하는 일이다. (조금 겹칠 수도 있지만) 취미와도 다르고 직업과도 다르다.
이런 주제로 단순히 유명인들의 직업적 성취를 자랑하는 홍보물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읽힐 만한 출간물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 책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으리라는 확신 덕분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은 대체로 자신의 일을 양육만큼이나 소중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구를 지니게 된다. 양육을 기점으로 하던 일을 그만두거나 다른 업으로 바꾸는 경우도 많다.(물론 양육이 시간과 체력 등의 자원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활동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양육에는 그런 힘이 있다. 하염없이 아이가 집중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기다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러는 사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들고 또 나에게 더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숙고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온전히 나의 욕망(욕심), 나의 자원, 나의 곤란에 집중하다 보면 이전보다는 더 명료하게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책은 그런 과정에 있는 이들을 응원하기 위한 책이다.
이렇게나 다르지만 이렇게나 공감이 가는,
웃기다가 슬프다가 아름답다가 서늘한 이야기들
이 책에 실린 다양한 이야기들은 앞서 말한 대로 모두 다르고 때로 모순되는 것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할 정도로 모두 내 이야기처럼 읽힌다. “그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이 있어서 행복”했지만 “사람은 너무 비싼 걸 사면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후기를 남긴다던데 어쩌면 난 아이들을 키우는 데 너무 많은 걸 투자했는지도 모른다.”고 쓴 정서경의 사실과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자조적 고백도, “열 살 된 아이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그 속에 좀 더 어린 아이, 그보다 더 어린 아이가 들어 있을 것 같다.”는 서유미의 정확한 비유도 양육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다.
“동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놀이터에 데리고 나온 아기들이나 책가방 메고 초등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마주치면 예전처럼 '귀엽다'는 감정이 아니라 '가엾다'는 감정이 먼저 든다.”며 아이에게서 도망친 기억을 들려준 홍한별의 이야기는 돌봄의 마음이 어떻게 더 넓은 연대로 확장될 수 있는지 의외의 방향에서 드러낸다.
“한 인간을 잉태해서 키워내는 수많은 여자들의 말씀이 포함되지 않은 철학은 아무리 고상해도, 아니 고상할수록 더더욱 ‘다 무효다!’라고 외치고 싶다.”는 임소연의 씩씩한 선언은 이 책의 출판 가치를 웅변해주는 듯하다. “인류의 수많은 여자들이 이 일을 해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양육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끊임없이 이야기되어야 한다.”
한편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여 성공에 이르는 영웅담은 육아에 어울리지 않는다. 육아의 서사는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단순해서도 안 된다. 그런 맥락에서 일과 육아에 모두 성공했다는 알파 우먼에 대한 기사를 그만 보고 싶다. 아무리 사연을 미화해도 그 삶에 있었을 온갖 고통이 다 읽혀 괴롭다.”는 전유진의 속 시원한 일갈도 이 책이 예민하게 살피려고 했던 대목을 콕 짚어준다.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슈퍼맘, 알파우먼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는 응석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가 이렇게 잘 해냈다는 자랑도 아니다. 돌봄과 작업을 각자의 방식으로 배치하는 와중에 어떤 다양한 어려움과 곤란들이 있고 어떤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지, 또 그 와중에 어떤 다양한 느낌과 생각들이 오가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대표성을 띈다기보다는 영감을 주는 쪽이다.
“완벽한 부모야말로 최고의 재앙”이라는 말에 안도로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엄지혜처럼 우리는 완벽과는 거리가 한참 멀지만("걸핏하면 불쑥 고개를 들어 나를 좀먹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법도 조금씩 배워간다."라는 박재연의 말이나 “타협만이 살 길이다!”라는 주문에 가까운 임소연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 상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실을 받아들이느라 아파하는 아이 곁을 지키려니 20년 가까이 잠재워두었던, 충분한 애도를 끝내지 못한 상실이 꿈틀대기 시작”했고 “아이들과 몇 년에 걸쳐 함께 울고, 조금 가벼워진 마음을 나누고, 삶을 긍정하게 되는 과정을 함께하면서 이전보다 더 강건한 어른이 되었다.”는 이설아의 말처럼 돌봄의 과정에서 우리가 부쩍 성장해 어른이 되어왔다는 것은 확고한 사실이다.
다양하고 복잡한 돌봄과 작업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다양한 조건에서 양육을 하는 여성들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엄마됨’, ‘양육’, ‘모성’ 같은 오해받기 쉬운 주제에 대해 용기 있게 발언하거나 표현해온 매력적인 필자들이다. 물론 독특한 방식으로 자기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는 필자들이기도 하다.
외동을 키우거나 아이 셋을 키우거나, 직접 낳았거나 입양을 했거나, 아이가 어리거나 크거나, 아이의 기질이 예민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베이비시터의 도움을 받거나 조부모의 도움을 받거나 아무 도움도 못 받거나, 파트너와의 관계가 협조적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풀타임 직장에 다니거나 프리랜서로 일을 하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결혼과 출산에 익숙한 문화에서 자랐거나 그렇지 않거나, 아이 먹거리나 교육에 힘을 쓰거나 그렇지 않거나, 양육서를 읽거나 읽지 않거나. 열한 명의 필자들은 이 다양한 변수들을 통과해 나름의 선택을 하고 또 그 선택에 대해 나름의 책임을 지는 과정을 공유한다.
이 책은 돌보면서 작업을 할 때 어떤 방식이 효과적인지 혹은 올바른지 따지지 않는다. 열한 명의 필자들이 돌보면서 작업하는 방식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많은 필자들이 고백하듯 한 사람의 선택 안에서도 일관성보다는 모순이 두드러질 때가 많다. 가령 우리는 엄마들에게 너무 쉽게 모순적이거나 과도한 요구를 하는 양육 지침 때문에 상처받고 자책하고 분노하지만, 또 누구보다 열심히 그런 지침들을 수집하고 시도해보기도 한다. 또 아이의 교육 문제라는 예민한 주제에서는 어디까지가 아이의 개성을 함양시킬 지원이며, 어디부터가 과도한 개입인지에 대해서도 저마다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방식으로 책임진다. 또 아이와 물리적으로 오랜 시간 붙어 있는 것과 아이와 잘 분리해 떨어져 지내는 것 사이에서도 양육과 작업을 지속시키기 위한 각자의 방침은 다양하고 복잡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양육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언어들은 지나치게 명료하고 단호하고 해맑고 건전하고 평가적이다. 이런 언어들을 훨씬 더 복잡하고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 가치판단의 언어가 아니라 관찰과 숙고의 언어로 만드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여성에 대한, 여성의 출산과 양육에 대한 사회와 전통과 과학과 자연의 요구가 얼마나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모든 사소하고 하찮은 모성적, 양육적 선택에도 엄마들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마디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유사한 상황이 반복된다고 해서 항상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없다. 이렇게 정답이 너무 많고 늘 바뀌는 상태에서 현대의 양육자들은 오히려 끝없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소리를 듣고 가장 어두운 욕망까지도 직시할 수밖에 없다. 쉽게 많은 것들을 판단하고 가르치려고 드는 ‘엄마됨’에 관한 언어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데에는 큰 부담이 따른다. 하지만 열한 명의 필자들은 모두 정직하고 용감하게 가장 내밀한 이야기들을 공유해준다.
읽고 쓰고 만드는 여자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존중과 응원의 말들
돌봄과 작업이 서로 경쟁하거나 협력하기만 하는 잘 구획된 삶의 측면일 리는 없다. 돌봄과 작업은 서로 뒤섞인 채로 닥쳐온다. 이 책에서는 ‘돌봄’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양육과 여성에 대한 단순화된 언어들을 피하고자 한 것처럼, ‘작업’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직업, 일에 대한 통념을 피하고자 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읽다 보면 각각의 필자들이 지금 왜 그 일을 하고 있고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가 은연중에 드러난다. 이런 이야기들이 쌓여서 직업, 몰입과 창조성과 성취에 대한 새로운 모델들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작업’이라고 함으로써 일의 창조적인 측면이 조금 더 강조되기를 바랐지만, 창조적인 일을 순수한 예술의 영역에 가두지는 않았다. 연구든 예술이든, 다른 종류의 글쓰기든, 번역이든 인터뷰든 상담이든, 혹은 아직 이름이 없는 어떤 일이든 모두 창조적인 과업의 범주에 속한다고 믿는다. 작업이란 외부의 잣대나 규정과 무관하게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하는 일이다. (조금 겹칠 수도 있지만) 취미와도 다르고 직업과도 다르다.
이런 주제로 단순히 유명인들의 직업적 성취를 자랑하는 홍보물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읽힐 만한 출간물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 책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으리라는 확신 덕분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은 대체로 자신의 일을 양육만큼이나 소중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구를 지니게 된다. 양육을 기점으로 하던 일을 그만두거나 다른 업으로 바꾸는 경우도 많다.(물론 양육이 시간과 체력 등의 자원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활동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양육에는 그런 힘이 있다. 하염없이 아이가 집중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기다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러는 사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들고 또 나에게 더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숙고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온전히 나의 욕망(욕심), 나의 자원, 나의 곤란에 집중하다 보면 이전보다는 더 명료하게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책은 그런 과정에 있는 이들을 응원하기 위한 책이다.
이렇게나 다르지만 이렇게나 공감이 가는,
웃기다가 슬프다가 아름답다가 서늘한 이야기들
이 책에 실린 다양한 이야기들은 앞서 말한 대로 모두 다르고 때로 모순되는 것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할 정도로 모두 내 이야기처럼 읽힌다. “그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이 있어서 행복”했지만 “사람은 너무 비싼 걸 사면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후기를 남긴다던데 어쩌면 난 아이들을 키우는 데 너무 많은 걸 투자했는지도 모른다.”고 쓴 정서경의 사실과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자조적 고백도, “열 살 된 아이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그 속에 좀 더 어린 아이, 그보다 더 어린 아이가 들어 있을 것 같다.”는 서유미의 정확한 비유도 양육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다.
“동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놀이터에 데리고 나온 아기들이나 책가방 메고 초등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마주치면 예전처럼 '귀엽다'는 감정이 아니라 '가엾다'는 감정이 먼저 든다.”며 아이에게서 도망친 기억을 들려준 홍한별의 이야기는 돌봄의 마음이 어떻게 더 넓은 연대로 확장될 수 있는지 의외의 방향에서 드러낸다.
“한 인간을 잉태해서 키워내는 수많은 여자들의 말씀이 포함되지 않은 철학은 아무리 고상해도, 아니 고상할수록 더더욱 ‘다 무효다!’라고 외치고 싶다.”는 임소연의 씩씩한 선언은 이 책의 출판 가치를 웅변해주는 듯하다. “인류의 수많은 여자들이 이 일을 해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양육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끊임없이 이야기되어야 한다.”
한편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여 성공에 이르는 영웅담은 육아에 어울리지 않는다. 육아의 서사는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단순해서도 안 된다. 그런 맥락에서 일과 육아에 모두 성공했다는 알파 우먼에 대한 기사를 그만 보고 싶다. 아무리 사연을 미화해도 그 삶에 있었을 온갖 고통이 다 읽혀 괴롭다.”는 전유진의 속 시원한 일갈도 이 책이 예민하게 살피려고 했던 대목을 콕 짚어준다.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슈퍼맘, 알파우먼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는 응석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가 이렇게 잘 해냈다는 자랑도 아니다. 돌봄과 작업을 각자의 방식으로 배치하는 와중에 어떤 다양한 어려움과 곤란들이 있고 어떤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지, 또 그 와중에 어떤 다양한 느낌과 생각들이 오가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대표성을 띈다기보다는 영감을 주는 쪽이다.
“완벽한 부모야말로 최고의 재앙”이라는 말에 안도로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엄지혜처럼 우리는 완벽과는 거리가 한참 멀지만("걸핏하면 불쑥 고개를 들어 나를 좀먹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법도 조금씩 배워간다."라는 박재연의 말이나 “타협만이 살 길이다!”라는 주문에 가까운 임소연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 상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실을 받아들이느라 아파하는 아이 곁을 지키려니 20년 가까이 잠재워두었던, 충분한 애도를 끝내지 못한 상실이 꿈틀대기 시작”했고 “아이들과 몇 년에 걸쳐 함께 울고, 조금 가벼워진 마음을 나누고, 삶을 긍정하게 되는 과정을 함께하면서 이전보다 더 강건한 어른이 되었다.”는 이설아의 말처럼 돌봄의 과정에서 우리가 부쩍 성장해 어른이 되어왔다는 것은 확고한 사실이다.
목차
ㆍ 서수연 | illustration
ㆍ editor’s note | 돌보며 읽고 쓰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존중과 응원의 말
ㆍ 정서경 | 진짜가 아닌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다
ㆍ 서유미 |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일
ㆍ 홍한별 | 아이를 버리고 도망쳤던 기억
ㆍ 임소연 |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들과 살아가기
ㆍ 장하원 | 지식에 대한 생각을 바꾼 양육
ㆍ 전유진 | 사라지는 마법으로 사라지지 않기
ㆍ 박재연 | 여러 세계를 연결하며 살아가기
ㆍ 엄지혜 | 돌봄 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말해주는 것
ㆍ 이설아 |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서로를 끌어안을 때
ㆍ 김희진 | 양육 간증: 나를 잃었다 찾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