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
이용 가능 (2) |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00021674 | 대출가능 | - |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00022103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2)
- 등록번호
- 00021674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등록번호
- 00022103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생태페다고지』는 저자가 대학에서 생태경제학을 가르치며 축적해온 교육지침을 정리해놓은 책이다. 그동안 저자는 한국 경제를 ‘토건경제’ ‘콘크리트주의’로 이름 짓고 이를 넘어설 대안경제 모델을 제시해왔는데, 이 책 『생태페다고지』는 바로 그 국민경제의 대전환 국면에서 생태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마디로, 생태교육은 탈토건 시대의 문을 여는 중요한 열쇠인 셈이다.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생태경제를 향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속에서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 사회경제적 전환과 교육이 서로 관계가 있는 건 분명한데 그 전후관계는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반생태적 경제 운용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을 가장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교사들이 가득 차 있는 학교에서 어떻게 생태적 교육이라는 것이 등장할 수 있을까? ‘바담풍’의 역설이 여기에서도 작동하는 것 아닌가? (본문 212쪽)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세 가지 덕목: 생태적 감수성, 생태적 지혜, 생태적 용기
저자의 우려대로 생태교육이 우리 교육현장에서 자리 잡기가 그리 녹록해 보이진 않는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교육현장에 전에 없이 경쟁, 효율의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도입되다보니 “명문대에 입학하는 길은 우편번호에 달렸다”는 하나의 불길한 징후가 이제는 아예 진리처럼 외쳐지고 있다. 이에 더해 고교서열화, 일제고사, 자립형사립학교 등의 구체적인 정책들이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터라 생태교육이 그저 ‘바담풍’의 사례가 될 수도 있다는 저자의 우려는 괜한 걱정이 아니다.
이에 저자는 한국과 비슷하게 경제를 운용하고 있는 다른 선진국(특히 OECD)의 전례에 주목한다. 선진국들은 현재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넘고 오래 전에 굴뚝산업으로 국토의 황폐화를 경험했다. 체르노빌 사태와 같은 인재(人災)를 비롯해 최근에 일어난 미국 카트리나 재앙 등 거대한 생태 문제들은 그 근본 원인이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에 있었다는 사실이 선진국의 많은 교육자와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활환경을 생태교육의 장으로 만들었다. 이 책에서는 그 대표적 사례로 생태후진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조차 현재 어린이들이 ‘그린 섬(Green thumb)’이라는 별명을 만들어, 원예를 잘하는 친구들을 높이 사는 경우를 든다. 여기에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서로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평수를 대며 ‘평수놀이’를 하는 장면을 대조하며 저자는 개탄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한국의 교육과정에서 생태교육이 올바로 정립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생태교육에서 가르쳐야 할 덕목을 제시한다. 즉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생들에 적합한 생태적 키워드로 각각 생태적 감수성, 생태적 지혜, 생태적 용기를 제시한다. 풀어 쓰자면, 초등학생 시절엔 생태계가 우리의 삶과 관련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고, 중학생이라면 무엇이 생태계에 도움이 되고 아닌지를 분별할 지혜를 갖춰야 하며, 고등학생이라면 자신이 직접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용기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요지다. 이 책은 이를 각각 교육과정별로 나누어 2장부터 5장까지 소소한 주제들로 커리큘럼화했다.
십대들의 용기 있는 선택, 문화생산자로 살기!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곧 사회로 진출할 고등학생에게 특별한 주문을 덧붙인다. ‘문화생산자(cultural animator)로 살기!’는 이 책의 주제를 응축한 구호다. 저자는 한국 경제를 ‘경제 신권(神權)주의’라고 이름 붙이고, 대다수 고등학생들이 시장의 생존법칙인 ‘돈이 될 것’만을 무비판적으로 익히는 상황을 우려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방안으로 저자는 학생들에게 창작의 욕구(창작욕)를 되살리길 당부한다. 문화는 “자원과 물질의 소비를 줄이면서도 경제활동이 가능할 수 있는 영역”(본문 190쪽)이므로 만약에 학생들이 문화생산자(cultural animator)로 살며 그들 중 30%가 매해 문화생산자로 살아갈 용기를 낸다면 한국경제의 생태적 전환은 “이미 이뤄진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저자의 문화생산에 대한 주장은 문화의 역할을 환기한다는 측면에서 ‘문화자본’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좀더 정확하게 보자면, 낭비형 사회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생활양식에 전면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더 많이 소비할수록 욕구불만이 더욱 쌓여가는 풍토에서 ‘소유’를 넘어 ‘존재’의 의미를 깨닫기 위한 한 방편이 바로 ‘문화’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농업을 일종의 사회적 가치로서 따져보고 직접 농사를 배우는 것을 또 다른 실천과제로 제시한다. 농업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해해서는 다가올 생태 시대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온전히 이해하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연 생태교육이 토건경제 시대의 콘크리트 더미에서 어떤 의미 있는 균열을 낼 수 있을까. 또한 한국 교육의 폐단을 푸는 데에 생태교육이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 있을까. 저자는 현재 학부모가 된 과거의 386세대들에게 파울로 프레이리의 저서 『페다고지』를 되새겨볼 것을 부탁하며 기성세대들이 ‘생태’와 ‘해방’, 두 가지 의미를 다시 한 번 자신의 생활 속에서 체득하는 것이 중요한 때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것이 바로 생태교육이 탈토건 시대를 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덕목이다.
한국에는 그동안 수많은 사교육 전문가들이 등장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 중 많은 사람이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의 『페다고지』를 읽었거나, 적어도 이런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그 책을 읽었을 30, 40대 학부모가 만들어내는 이 세상은 교육이라는 의미에서의 해방과는 거리가 멀다. 어디에서부터 이렇게 꼬이게 된 걸까? 이유는 많겠지만 어쨌든 이 문제는 생태적 인식과 교육을 통해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
돌아온 페다고지와 함께 우리는 우리가 아직 가보지 않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지평으로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한국 교육에 대해 가졌던 희망적 사유의 결론이다. 어둠이 깊으면 빛이 오기 직전이라고 하지 않던가? 지금, 참 어둡다. 이제 우리에게 다시 페다고지가 복귀할 때가 되지 않았나? 이번에는 생태페다고지의 차례가 아닐까? (본문 227~230쪽)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생태경제를 향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속에서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 사회경제적 전환과 교육이 서로 관계가 있는 건 분명한데 그 전후관계는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반생태적 경제 운용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을 가장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교사들이 가득 차 있는 학교에서 어떻게 생태적 교육이라는 것이 등장할 수 있을까? ‘바담풍’의 역설이 여기에서도 작동하는 것 아닌가? (본문 212쪽)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세 가지 덕목: 생태적 감수성, 생태적 지혜, 생태적 용기
저자의 우려대로 생태교육이 우리 교육현장에서 자리 잡기가 그리 녹록해 보이진 않는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교육현장에 전에 없이 경쟁, 효율의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도입되다보니 “명문대에 입학하는 길은 우편번호에 달렸다”는 하나의 불길한 징후가 이제는 아예 진리처럼 외쳐지고 있다. 이에 더해 고교서열화, 일제고사, 자립형사립학교 등의 구체적인 정책들이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터라 생태교육이 그저 ‘바담풍’의 사례가 될 수도 있다는 저자의 우려는 괜한 걱정이 아니다.
이에 저자는 한국과 비슷하게 경제를 운용하고 있는 다른 선진국(특히 OECD)의 전례에 주목한다. 선진국들은 현재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넘고 오래 전에 굴뚝산업으로 국토의 황폐화를 경험했다. 체르노빌 사태와 같은 인재(人災)를 비롯해 최근에 일어난 미국 카트리나 재앙 등 거대한 생태 문제들은 그 근본 원인이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에 있었다는 사실이 선진국의 많은 교육자와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활환경을 생태교육의 장으로 만들었다. 이 책에서는 그 대표적 사례로 생태후진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조차 현재 어린이들이 ‘그린 섬(Green thumb)’이라는 별명을 만들어, 원예를 잘하는 친구들을 높이 사는 경우를 든다. 여기에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서로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평수를 대며 ‘평수놀이’를 하는 장면을 대조하며 저자는 개탄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한국의 교육과정에서 생태교육이 올바로 정립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생태교육에서 가르쳐야 할 덕목을 제시한다. 즉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생들에 적합한 생태적 키워드로 각각 생태적 감수성, 생태적 지혜, 생태적 용기를 제시한다. 풀어 쓰자면, 초등학생 시절엔 생태계가 우리의 삶과 관련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고, 중학생이라면 무엇이 생태계에 도움이 되고 아닌지를 분별할 지혜를 갖춰야 하며, 고등학생이라면 자신이 직접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용기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요지다. 이 책은 이를 각각 교육과정별로 나누어 2장부터 5장까지 소소한 주제들로 커리큘럼화했다.
십대들의 용기 있는 선택, 문화생산자로 살기!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곧 사회로 진출할 고등학생에게 특별한 주문을 덧붙인다. ‘문화생산자(cultural animator)로 살기!’는 이 책의 주제를 응축한 구호다. 저자는 한국 경제를 ‘경제 신권(神權)주의’라고 이름 붙이고, 대다수 고등학생들이 시장의 생존법칙인 ‘돈이 될 것’만을 무비판적으로 익히는 상황을 우려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방안으로 저자는 학생들에게 창작의 욕구(창작욕)를 되살리길 당부한다. 문화는 “자원과 물질의 소비를 줄이면서도 경제활동이 가능할 수 있는 영역”(본문 190쪽)이므로 만약에 학생들이 문화생산자(cultural animator)로 살며 그들 중 30%가 매해 문화생산자로 살아갈 용기를 낸다면 한국경제의 생태적 전환은 “이미 이뤄진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저자의 문화생산에 대한 주장은 문화의 역할을 환기한다는 측면에서 ‘문화자본’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좀더 정확하게 보자면, 낭비형 사회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생활양식에 전면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더 많이 소비할수록 욕구불만이 더욱 쌓여가는 풍토에서 ‘소유’를 넘어 ‘존재’의 의미를 깨닫기 위한 한 방편이 바로 ‘문화’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농업을 일종의 사회적 가치로서 따져보고 직접 농사를 배우는 것을 또 다른 실천과제로 제시한다. 농업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해해서는 다가올 생태 시대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온전히 이해하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연 생태교육이 토건경제 시대의 콘크리트 더미에서 어떤 의미 있는 균열을 낼 수 있을까. 또한 한국 교육의 폐단을 푸는 데에 생태교육이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 있을까. 저자는 현재 학부모가 된 과거의 386세대들에게 파울로 프레이리의 저서 『페다고지』를 되새겨볼 것을 부탁하며 기성세대들이 ‘생태’와 ‘해방’, 두 가지 의미를 다시 한 번 자신의 생활 속에서 체득하는 것이 중요한 때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것이 바로 생태교육이 탈토건 시대를 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덕목이다.
한국에는 그동안 수많은 사교육 전문가들이 등장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 중 많은 사람이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의 『페다고지』를 읽었거나, 적어도 이런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그 책을 읽었을 30, 40대 학부모가 만들어내는 이 세상은 교육이라는 의미에서의 해방과는 거리가 멀다. 어디에서부터 이렇게 꼬이게 된 걸까? 이유는 많겠지만 어쨌든 이 문제는 생태적 인식과 교육을 통해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
돌아온 페다고지와 함께 우리는 우리가 아직 가보지 않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지평으로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한국 교육에 대해 가졌던 희망적 사유의 결론이다. 어둠이 깊으면 빛이 오기 직전이라고 하지 않던가? 지금, 참 어둡다. 이제 우리에게 다시 페다고지가 복귀할 때가 되지 않았나? 이번에는 생태페다고지의 차례가 아닐까? (본문 227~230쪽)
목차
차 례
머리말
1장 그린 섬을 아시나요?
2장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세계 : 생태 육아
3장 생태적 감수성 : 초등학생에게 필요한 것
4장 생태적 지혜 : 중학생에게 필요한 것
5장 생태적 용기 : 고등학생에게 필요한 것
6장 생태와 교육의 공진화를 위하여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