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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인권의 풍경: 조효제 교수의 우리 시대 인권 강의

저자
조효제
발행사항
서울: 교양인, 2008
형태사항
423p. , 23cm
서지주기
참고문헌 : p.418-423
비통제주제어
인권, 민주주의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00020107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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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번호
    00020107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지금까지 한국 시민 사회 운동의 시도들은 정치 권력에 초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정권을 쟁취하면 그것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인권이 지향하는 방식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정치 권력도 중요하지만, 그것과 관계 없는 모든 억압 권력, 침해 권력에 저항함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기본적인 변화 방식입니다.”
- ‘인권, 새로운 진보를 말하다’ 2007년 11월 11일 평화나눔아카데미 강의에서

우리 인권 운동의 최전선
조효제 교수가 말하는 ‘인권을 넘어선 인권’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학자 조효제 교수의 새 책 《인권의 풍경》은 지금까지 통용된 ‘인간의 기본적 권리’라는 협소한 ‘인권’ 개념을 폐기하고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 맞서는 저항’으로 ‘인권’의 외연을 과감히 확장할 것을 제안하는 책이다. 이 책은 정치 권력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억압 권력이 작동하는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인권’ 개념을 제시하고 인권 운동의 목표를 새롭게 모색하며 인권의 의미를 재천명하는 21세기 인권 선언이다.
저자가 1년간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인권 프로그램 펠로로 연구 활동을 하면서 관찰한 미국 사회의 모습은 ‘인권’과 ‘민주주의’, ‘시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준다. 또한 대통령 탄핵 사태부터 국가보안법 논란, 촛불 집회에 이르기까지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들을 ‘인권’의 렌즈로 살피고 분석한 글들은 ‘인권’이야말로 21세기의 진정한 대안 이념임을 보여준다.

인권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보다
《인권의 풍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촛불 집회를 통해 새로운 인권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확인하며, 21세기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인권’의 정의, 인권 운동의 방향과 목표를 모색하는 ‘프롤로그’는 정치 권력이 아닌 ‘인권’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는 화두를 던진다. 저자는 현재 보수와 진보 진영의 의식 수준으로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촛불 집회의 의미를 시민들의 ‘인권’에 대한 갈망이 분출한 것으로 명쾌하게 해석한다. 원고지 160장의 장문으로 쓰여진 이 ‘프롤로그’는 한국 인권학의 최고 권위자인 저자가 오랜 시간 고민해 온 ‘인권론’의 중간 결산이다.

이어 1장과 2장에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나라로 알려진 미국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국 이야기는 저자가 2006년 여름부터 1년 동안 하버드대 로스쿨 인권 프로그램에 펠로로 참여하면서 미국에서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일을 담고 있다. 주로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와 하버드대 연구소에서 만난 이란, 남아프리카, 영국, 미국, 이탈리아 출신 동료 펠로들과 나눈 대화, 그리고 미국의 언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글들은 시종일관 유쾌함과 솔직함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여기서 저자는 ‘인권’, ‘민주주의’, ‘시민 사회’라는 3가지 키워드로 미국 사회를 진단한다.
‘1장 나의 미국 민주주의 관찰기’에는 주로 미국의 민주주의를 정책과 제도 차원에서 들여다보는 글이 실려 있다. 소외 계층 젊은이들을 타겟으로 하는 부시 행정부의 반인권적 모병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는 프리랜서 노동 조합, 법이 아닌 법률가가 지배하는 미국, 시민 사회 운동의 인재를 적극 채용하는 미 의회와 이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정당 민주주의 등의 이야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2장 인권의 창으로 본 미국’에는 미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일상적 삶의 지평에서 살펴본다. 미국의 대외 정책과 미국 사회를 분리해서 봐야만 또 다른 미국 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마틴 루서 킹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 헬렌 켈러의 삶에서 인간다운 세상을 향한 의지와 노력을 새삼 되짚어보고, 시민 교육의 현장으로 충실히 운영되는 공공 도서관을 보며 감탄과 부러움을 느낀다.

미국 사회를 다룬 다음에 실린 3개의 장은 21세기 한국 사회를 성찰하는 글들이다. 인권과, 민주주의, 시민 사회의 프리즘으로 최근 몇 년 동안의 우리 사회의 변화 과정을 총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
‘3장 인권 담론의 새벽’은 이주 노동자의 인권, 장애인의 노동권, 한국의 이라크전 파병 등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을 보여주는 현안과, 인권과 정치의 문제를 다룬다.
‘4장 인권을 넘어서 인권 운동’에서는 인권 운동에서 시민 사회와 엔지오(NGO)의 역할, 인권을 위한 지역적 ? 세계적 연대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신자유주의 전 지구화 시대의 인권 운동은 한 나라, 한 사회에 국한될 수 없으며, 아시아 연대, 나아가 전 세계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5장 인권 시대의 민주주의’에서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예를 통해 인권에 무감각한 정치 권력의 실패와, 시장 만능주의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심각한 갈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권’이야말로 21세기의 유일한 대안 이념이자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을 최후의 보루라는 것을 보여주는 글들이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우리 시대에 꼭 읽어야 할 인권 관련 책들을 안내하고 있다.

‘말하는 촛불들’, 인권의 최전선에 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연이은 선거 패배와 시장 만능주의의 공세로 기존 진보 진영이 의기소침해 있을 때, 청소년들이 먼저 저항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청소년들의 촛불 집회는 기성 세대의 무기력을 질타하고 전통적인 시민 사회 운동을 다시 불러 깨웠다. 어떤 상황에서도 완전한 절망은 있을 수 없으며, 언제나 예기치 못한 곳에서 희망의 불꽃이 타오른다는 역사의 교훈을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온 몸으로 체험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촛불 집회는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에게 의미 있는 교훈을 주었다.

우선 보수파에게는 한국 사회에 건너서는 안 되는 일종의 사회적 마지노선이 존재함을 각인해준 계기가 되었다. 즉,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소수만을 위한 정책을 펴거나, 혹은 그런 식으로 인식되는 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라는 교훈을 주었다. 이명박 정부는 선출되기 전부터 신자유주의, 시장 중시, 경쟁 체제를 지향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또 그러한 바탕 위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던 정치 세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유권자는 집권 정당의 이념적 색채와는 상관없이 일종의 ‘거국적(one-national)’ 또는 ‘친 서민적’ 경제·사회 정책을 심정적으로 선호한다는 점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한국 보수 정당의 운신의 폭에 관해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촛불 집회가 진보파에게 준 교훈도 있다. 그것은 이제 진보파의 주장도 경제적 이념의 언어보다는 ‘민주주의’라는 일반적 화두를 통해 제기해야 효과적이라는 교훈이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자생적 저항이 발생했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1조가 수도 없이 제창된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말 그대로 해석하는 신세대 시민들은 전통적인 진보파의 구호를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그런 용어에 거의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때 말하는 민주주의는 정치 영역의 민주주의를 넘어서 경제 영역, 직장, 생활 현장, 더 나아가 사적 인간 관계에까지 적용되는 실천 담론이라 할 것이다.

촛불 집회는 정치 공동체의 운용에 있어 대다수 시민들이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중첩되는 합의의 영역(overlapping consensus)’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가르쳐주었다. ‘중첩되는 합의의 영역’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권, 민주주의, 그리고 극좌·극우의 양극단을 배제한 사회적 시장 경제라 할 수 있다. 시민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켜주지 않고,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 “말하는 불꽃들”로 변신하여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인권을 ‘중첩되는 합의의 영역’으로 본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적어도 인권 문제에 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인권을 좌우도, 남녀도, 노소도, 민족도, 피부색도 초월한 어떤 공통의 영역, 일종의 신성 불가침 영역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인권은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 맞서는 투쟁이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철학자였던 가스통 바슐라르는 《촛불의 미학》에서 “나무는 꽃 피우는 불꽃이며, 인간은 말하는 불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나는 촛불 집회에 모인 수많은 남녀노소, 특히 촛불을 처음으로 주도했던 청소년들의 열정을 목격하면서 그들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시민 혁명을 이끄는 “말하는 불꽃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슐라르는 또한 “불꽃은 위쪽을 향해서 흐르는 모래 시계다.”라는 이야기도 했다. 내겐 그 말이 촛불 집회의 “말하는 불꽃들”이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 갈 주체라는 예언처럼 들렸다.
우리의 ‘촛불 혁명’은 표면적으로는 시적 상상력과 직접행동 민주주의의 결합이라는 특징을 지녔고, 심층적으로는 인권에 대한 갈망이 짙게 깔린 거대한 움직임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인권을 ‘사회적 고통을 야기하는 모든 억압 권력에 맞서는 저항의 움직임’이라고 이해한다. 이때 ‘0교시’, ‘우열반’, ‘일제고사’로 상징되는 교육 억압 권력에 대한 자연 발생적인 저항을 배경으로 하여 청소년들이 제일 먼저 촛불을 밝혔던 사실에 특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를 이런 각도에서 바라볼 때 우리는 ‘광우병 우려’가 구체적인 하나의 사회 이슈임과 동시에, 폭넓은 사회적 고통을 대변하는 강렬한 ‘은유’였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촛불 집회는 모든 억압 권력에 맞서는 저항의 움직임, 즉 인권의 외침이 현실에서 발현된 부인할 수 없는 증거로 다가왔다.
- [프롤로그]에서

‘인권’이란 무엇인가? 보릿고개가 있었던 과거와 비교해 살기가 좋아졌다고 해서 인권이 충족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성소수자 인권 문제나 장애인 인권 문제처럼 과거에는 먹고 사는 문제에 밀려 사치스러운 이야기로 치부되었던 것들이 지금은 당연한 인권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지금 우리는 곳곳에서 나와 너의 권리, 우리 집단과 다른 집단의 권리가 서로 충돌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이럴 경우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가? 여러 권리 중에서도 인간의 핵심적 권리인 인권이 가장 중요한 권리이지만, 어떤 권리가 인권에 속하는지 아닌지는 누가 어떻게 판가름하는가? 인간의 핵심적 이익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는데 인권을 만고불변의 ‘보편적 권리’라고 해버리면 이런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처럼 인권은 대단히 복잡한 개념이고, 모순과 긴장을 포함한 담론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에 맞는 ‘인권’은 무엇인가? 저자는 ‘인권’을 ‘인간의 기본적 권리’ 정도로 해석하는 협소한 정의에 반대한다. 저자는 지금 이 시대의 ‘인권’은 인간의 존재와 본질적 이익을 침해하는 모든 요소들(국가, 집단, 개인, 정치, 경제, 사회적 억압)에 대한 ‘저항’이자 ‘대항 담론’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인권을 이해할 때 비로소 인권에 대한 우리의 사고가 더욱 확장되고, 인간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으며, 나아가 인간다운 세상을 꿈꿀 수 있다. 이제 인권은 공평하고 좋은 세상의 상징적 등가물, 즉 ‘은유로서 인권’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사회적 고통’을 해결하는 치유제로서 인권이다. 그것은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억압 권력을 찾아내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에 맞서는 대항 권력을 조직하는 운동으로서 인권이다.

그렇다면 ‘은유로서 인권’은 구체적으로 어떤 목표를 지향하는가? 저자는 이 질문에 한 가지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꿈꾸는 좋은 세상의 그림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통 분모로서 그것은 점점 더 민주주의 사상 자체와 비슷한 내용을 담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란 ‘민의 평등’과 ‘민의 지배’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오늘날 인권의 목표는 첫째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둘째 모든 의제 설정 영역에서 민주적 원칙을 준수하라, 등 민주주의의 원칙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권의 렌즈로 세상을 들여다볼 때, 비로소 인간다운 세상이 열린다

인권 운동은 인권 단체의 활동만이 아니라 인권 보호와 인권 신장에 개입하는 모든 움직임을 가리킨다. 인권의 의미가 재발명되고 있는 지금, 인권 운동의 목표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오늘날 인권 운동의 ‘목표’는 성문화된 인권법의 준수를 넘어 모든 억압 권력과의 투쟁으로 바뀌고 있다. 인권 운동의 ‘방법’은 국가를 인권 문제 해결의 유일한 주체로 간주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각종 비국가 행위자들(초국적 기업, 무장 반군, 정부 간 기구 등)을 인권의 의무 주체로 새롭게 부각하고 있다. 인권 침해의 ‘사실’에 관한 새로운 차원들 ? 구조적 인과 요인, 맥락적 조건, 인권 침해의 경로, 사실 자체의 부인 ? 도 더욱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인권 운동이 추구하는 ‘가치’ 역시 개인을 단순히 보호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인간의 적극적인 자력화와 권리·의무를 함께 지향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인권 운동은 개인의 권리 하나 하나를 일일이 요구하는 1단계를 넘어서, 보다 높은 수준에서‘활짝 핀 인간’을 지향하는 2단계까지 꿈꿀 필요가 있다. ‘활짝 핀 인간’은 자기 역량이 최대한 고양되어 있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인간이다. 그러한 ‘활짝 핀 인간’은 자기 권리를 100퍼센트 요구하는 행위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의무를 다하는 행위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활짝 핀 인간’은 언제라도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으면서도 그것을 일일이 쟁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역량을 인간 공동체의 선익을 증진하는 데에 사용할 줄 안다. ‘활짝 핀 인간’은 자기 권리를 얼마든지 지킬 줄 알지만 약자를 위해서라면 그 권리를 양보할 줄도 아는 인간이다. 그러한 ‘활짝 핀 인간’을 지향하는 인권 운동은 인권이 자칫 극단적으로 자유 지상주의적인 어떤 개념, 자기 권리를 찾아먹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아는 어떤 좁은 개념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활짝 핀 인간’을 지향하는 인권 운동은 인권 개념이 그 사회의 정치적·도덕적 매트릭스에 따라 확연히 달라질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이기심이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인권은 자칫 잘못하면 ‘사익’에 가까워지기 쉽고, 연대성이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인권은 공동선과 부합되는 인권이 될 수 있다. 나는 우리가 목격하고 참여했던 촛불 집회가 민주적 연대성을 희구하는 큰 바다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또한 인권을 외치는 ‘활짝 핀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불꽃의 함성이었다고 믿고 있다.
― [프롤로그]에서
목차
1장 나의 미국 민주주의 관찰기 2장 인권의 창으로 본 미국 3장 인권 담론의 새벽 4장 인권을 넘어선 인권 운동 5장 인권 시대의 민주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