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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00021964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21964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전통 철학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사상의 가능성을 연 현대 철학의 고전
『그라마톨로지』 전면 개정판 출간
20세기를 빛낸 세계적인 사상가 자크 데리다
서양의 형이상학 전통을 해체하고 지적 모험의 지평을 열다
1967년 데리다가 출간한 『그라마톨로지』는 그가 발표한 80여 권의 저서 가운데 최고의 문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1962년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의 번역과 장문의 해제를 발표하여 철학적 천재성을 인정받은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이 책을 통해서, 데리다는 프랑스 지성계가 구조주의의 열풍 속에서 그야말로 사상의 백가쟁명기라 할 수 있는 1960년대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프랑스 철학계를 넘어 세계 사상계의 찬란한 혜성으로 출현한다. 야콥슨의 언어학,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인류학, 라캉의 혁명적인 정신분석학이 태동하던 이 시기에 데리다의 성찰은 다른 모든 사상의 지평을 넘어서는 저편을 가리키고 있으며, 그가 개진하는 이론들은 새로운 사유와 패러다임의 전환 내지는 급선회를 성립하는 사건이라 할 만하다. 통상적으로 그라마톨로지에서 그 같은 사상의 전환은 크게 세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첫째, 서양 형이상학의 토대를 받쳐 주는 텍스트들에 대한 해체적 독법 또는 방법, 둘째, 에크리튀르의 학문, 즉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의 고전적 이분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자 내지는 글쓰기의 학문, 셋째, 이로부터 창발하는 차이의 사상이 그것이다. 예컨대 문자와 관련하여 데리다에게 그라마톨로지라는 학문은 서양 2500년 동안의 역사에 대해서 전혀 다른 빛을 비추어 준다. 여기서 새로운 문자 개념이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다. 달리 말해서, 에크리튀르의 시작은 언어의 역사에서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이미 시작부터 그 안에 각인된 그 무엇이다. 즉 언어는 이미 늘 에크리튀르였다는 것이다. 데리다가 설정한 서양의 기호 사상사는 서양 형이상학 전반의 논리에 대한 결정적인 진입 지점이다. 서양에서 온축된 기호의 로고스 중심적 사상은 현대 기호학 이후, 우리가 기표와 기의라고 부르는 것의 대립에 기초하여 서술되어 왔음을 데리다는 설파한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이 같은 대립은 이어서 현전의 형이상학의 전체를 구성하는 보다 광범위한 대립들의 망으로 유도된다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 무한과 유한, 초월과 경험, 지성과 감성 등이 그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양 기호사상사에 대한 데리다의 독법은 그로 하여금 로고스중심주의 전체의 형이상학적 체계를 해부할 수 있게 만들어 준 훌륭한 해체 수술용 ‘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라마톨로지』의 내용을 몇 개의 핵심 주제로 요약하거나 몇 명 사상가들의 언급으로 머무는 것은 원전을 통독하지 않은 사람들의 설익은 주석이며 원전 독해를 가로막는 반데리다적인 왜곡의 위험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이 책에 대한 상투적인 소개와 달리, 이 책은 결코 서양의 음성 중심 및 그것을 조건 지은 서양의 형이상학에 대한 해체적 비판으로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라마톨로지』는 책 제목이 독자에게 암시할 수 있는 주제 내용과 달리, 결코 하나의 문자학 이론이나 문자 철학 또는 언어철학 등의 단일 주제로 표상될 수 없으며, 생명과 죽음, 자연과 문화, 여성과 남성, 문명과 야만, 기억과 망각, 외면과 내면, 선과 악, 목소리와 그래피즘, 의식과 무의식, 현존과 부재, 충만과 소외, 고유와 은유, 욕망과 쾌락, 성욕과 자기 관능성, 역사의 기원과 과학의 성립 조건, 관음과 자위, 언어와 정치, 음악과 정치, 화성과 선율 등 인문학의 거의 모든 주제를 아우르고 있는 서양 인문학의 대서사라고 보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역자는 프랑스어 원제인 De la grammatologie에서 전치사 de를 통상적으로 번역할 때 사용되는 ‘에 대하여’ (또는 ‘에 관하여’)를 생략하였다. 책 제목에서 사용된 de는 통상적인 논문이나 책 제목에서 사용될 때, 주제의 초점을 지시하기 위해 사용되는 용법과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사용된 그라마톨로지(문자학)는 문자와 글쓰기를 다루는 학문으로 이해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문자의 문제는 중요한 화두인 것에는 틀림없으나, 이 책의 빌미(미끼) 또는 그가 다룰 인문학 전체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본질적 문제들을 폭발시킬 하나의 기폭 장치일 뿐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전치사 de는 문제의 시발점이나 기원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로부터’로 번역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주제의 다양성과 아울러 그 주제의 광역성과 관련해서도, 이 책에 나오는 서양 사상사와 현대 인문학의 주요 인물들은 줄잡아 100명이 넘으며, 그 분야는 니체 철학, 후설 현상학, 하이데거 존재론은 물론이요, 소쉬르의 기호학과, 옐름슬레우의 언어 이론, 인공두뇌학, 선사학, 퍼스 기호학, 근현대 문자사상사, 정신분석학 이론, 구조인류학, 루소의 정치사상, 언어 사상, 음악 이론 등의 기본 지식을 전제로 논지가 전개되고 있다.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 존재, 언어(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 포함), 인간 문화와 관련된 한 편의 서양 지성사의 대서사라 할 수 있다. 만약 『그라마톨로지』를 한 편의 연극으로 상연할 경우 한마디 이상의 대사를 갖고 등장하는 인물은 약 250여 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는 무대 전면에서 선보일 소쉬르, 레비스트로스, 루소 등의 주연급을 비롯하여, 연극의 서막을 장식하고, 전경에 대비되는 배경에 나타날 니체, 하이데거, 후설 등의 주요 조연, 한두 마디의 대사를 하고 사라질 단역의 배우에 해당되는 사상가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한두 마디가 이 책의 핵심 요지를 알려 주는 복선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이 책의 1부 3장에서 인용되는 프랑스 최고의 선사학자 앙드레 르루아구랑이나, 무한한 기호 작용을 암시하는 퍼스가 그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모두 2부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연극으로 상연할 경우, 책의 구성 체계를 따라 그대로 2막 7장이 될 수 있으며, 이 책의 2부 가운데 2장, 3장, 4장이 모두 루소에 대한 서술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 세 개의 장을 한 장으로 처리할 경우, 2막 5장의 구성도 가능할 것이다. 1막은 모두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 문자에 대한 플라톤의 음성이 배경으로 나타나는 것을 시작으로, 니체, 후설, 하이데거가 무대에 등장해 서양 형이상학에서 현상학에 이장에서 난해한 토론을 벌이는 것으로 채워질 것이다. 2장은 소쉬르가 무대 전면에 등장하여 현대 언어학의 과학성을 정초하기 위해 연구 대상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문자 언어에 비해 음성 언어를 우선시하는 논증을 진행하는 과정이며, 이와 동시에 소쉬르로부터 세례를 받은 쟁쟁한 언어학자들(옐름슬레우, 야콥슨, 마르티네 등)이 소쉬르와 대화를 하는 장면으로 연출될 것이다. 3장은 그래피즘(graphism)이 말보다 먼저 있어났다는 제목으로 휘황찬란한 선사 시대의 이미지가 나오면서, 서양 문자 사상사를 개괄하는 장면의 서두를 장식할 것이다. 여기서 18세기 문자 사상사에서 한 획을 그은 워버튼은 무대 전면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이다. 2막은 모두 4장(또는 2장)으로 이루어진다. 1막의 배경은 레비스트로스가 연구한 남아메리카의 남비크와라 부족이 살고 있는 평온한 마을을 중심으로 서정성이 짙은 장면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2장부터 4장까지는 루소가 무대 전면을 지배하며, 그의 해박한 지식으로, 언어의 기원, 음악의 기원과 이론, 정치사상, 교육 사상, 사회 비평 등을 종횡무진하며 논하는 장면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2장부터 4장에는 루소 사상의 대표적 석학인 장 레몽, 데라테, 스타로뱅스키 등이 출현하여, 루소 텍스트와 그의 사상에 대한 문헌학적 인식론적 논쟁을 벌일 것이다. 특히 3장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프랑스 사상사의 백미라 할 수 있는 18세기이다. 특히, 음악 선율의 문화적 상대성을 주장하며 하모니를 중시한 루소가 당대 최고의 음악 이론가이며, 음악의 물리적 보편성을 주장한 라모와 벌인 한판의 세기적 격론이 무대를 장식할 것이다.
비록 역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본문의 구성과 내용과 관련된 특정 주제를 선별하여 선형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데리다의 글은 바로 이 같은 평면적 해석과 풀어쓰기로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각자 다른 시각에서 보다 중층적인 해석을 시도할 수 있는 열린 텍스트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독자는 데리다의 글을 읽을수록 더욱더 그 깊이에 놀랄 뿐만 아니라 늘 새로운 연구 주제가 도출될 수 있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여기에 대부분의 데리다 주석서가 평이하게 쉽게 풀어쓴 것은 『그라마톨로지』의 예비적 입문을 위하여 제시된 해설자의 재구성이며, 독자의 전공 영역과 경험 세계에 따라서 각자가 고유하게 발견할 수 있는 데리다 텍스트의 우주가 따로 있음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데리다의 글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 원인은 그의 글쓰기 방식과 언어의 속성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철학은 논리적 정합성에 기초한 체계성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라마톨로지』를 비롯하여 그의 주요 저술을 읽어 보면 그의 분석과 추론의 상당 부분은 세밀한 독법, 인용, 주석의 다소 지루한 과정을 통하여 다른 사상가들이 생산한 텍스트들의 역사적 맥락, 그들의 내면세계, 그리고 텍스트의 무의식과 나누는 매우 성실하면서도 비판적이며 창발적인 대화를 통하여 수행된다. 구체적인 예로서, 역자가 총 445쪽의 원서를 분석해 본 결과, 소쉬르, 레비스트로스, 루소의 글을 비롯하여 무려 259차례의 인용문들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데리다 자신이 이 책의 서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는 기존의 사상사와 문학사의 범주에서 일탈하여, 기존의 학문적 분류 체계의 규범과 기준에서 보자면 나란히 놓일 수 없는 이질적 분야의 텍스트들을 서로 병치시켜 놓고 있다. 이를테면 데리다 이전에 하이데거와 소쉬르, 퍼스와 니체, 루소와 프로이트가 나란히 놓고 논증을 구성하는 텍스트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 같은 전혀 다른 전통의 텍스트 병치 방식과 이질적 텍스트 구성 방식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가 다른 사상가의 글과 표현, 상이한 철학들의 틈을 파고 들어가 그 사이에 자신의 텍스트를 수놓는 독특한 텍스트의 상감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것을 일러 어떤 학자는 ‘간텍스트적 폴리로그’(polyogue intertextuel)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를테면, 서양 사상사에서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거나 성립될 수 없는 상이한 전통들에 귀속된 사상가들과 텍스트들의 병치를 통하여 자신의 텍스트 속으로 흡수하면서 가상의 대화를 나누도록 만드는 기묘한 장면을 연출하는 서양 지성사의 ‘샤먼’의 역할을 맡았던 셈이다. 이 같은 데리다 담론의 텍스트적 생산 방식에 대해서 일부 비평가들이 타자의 텍스트와 사상에 의존하여 자신의 것을 구성하는 기생적 속성을 띠고 있다고 힐난하기도 했으나, 데리다는 자신의 텍스트와 타자의 텍스트를 서로 교착시킴으로써 전혀 새로운 사유의 공간을 창안하며 전통적 선입관과 전제로부터 벗어나 참된 문제를 제기한 문제학(probl?matologie)의 발명가였다.
『그라마톨로지』 전면 개정판 출간
20세기를 빛낸 세계적인 사상가 자크 데리다
서양의 형이상학 전통을 해체하고 지적 모험의 지평을 열다
1967년 데리다가 출간한 『그라마톨로지』는 그가 발표한 80여 권의 저서 가운데 최고의 문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1962년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의 번역과 장문의 해제를 발표하여 철학적 천재성을 인정받은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이 책을 통해서, 데리다는 프랑스 지성계가 구조주의의 열풍 속에서 그야말로 사상의 백가쟁명기라 할 수 있는 1960년대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프랑스 철학계를 넘어 세계 사상계의 찬란한 혜성으로 출현한다. 야콥슨의 언어학,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인류학, 라캉의 혁명적인 정신분석학이 태동하던 이 시기에 데리다의 성찰은 다른 모든 사상의 지평을 넘어서는 저편을 가리키고 있으며, 그가 개진하는 이론들은 새로운 사유와 패러다임의 전환 내지는 급선회를 성립하는 사건이라 할 만하다. 통상적으로 그라마톨로지에서 그 같은 사상의 전환은 크게 세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첫째, 서양 형이상학의 토대를 받쳐 주는 텍스트들에 대한 해체적 독법 또는 방법, 둘째, 에크리튀르의 학문, 즉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의 고전적 이분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자 내지는 글쓰기의 학문, 셋째, 이로부터 창발하는 차이의 사상이 그것이다. 예컨대 문자와 관련하여 데리다에게 그라마톨로지라는 학문은 서양 2500년 동안의 역사에 대해서 전혀 다른 빛을 비추어 준다. 여기서 새로운 문자 개념이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다. 달리 말해서, 에크리튀르의 시작은 언어의 역사에서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이미 시작부터 그 안에 각인된 그 무엇이다. 즉 언어는 이미 늘 에크리튀르였다는 것이다. 데리다가 설정한 서양의 기호 사상사는 서양 형이상학 전반의 논리에 대한 결정적인 진입 지점이다. 서양에서 온축된 기호의 로고스 중심적 사상은 현대 기호학 이후, 우리가 기표와 기의라고 부르는 것의 대립에 기초하여 서술되어 왔음을 데리다는 설파한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이 같은 대립은 이어서 현전의 형이상학의 전체를 구성하는 보다 광범위한 대립들의 망으로 유도된다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 무한과 유한, 초월과 경험, 지성과 감성 등이 그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양 기호사상사에 대한 데리다의 독법은 그로 하여금 로고스중심주의 전체의 형이상학적 체계를 해부할 수 있게 만들어 준 훌륭한 해체 수술용 ‘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라마톨로지』의 내용을 몇 개의 핵심 주제로 요약하거나 몇 명 사상가들의 언급으로 머무는 것은 원전을 통독하지 않은 사람들의 설익은 주석이며 원전 독해를 가로막는 반데리다적인 왜곡의 위험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이 책에 대한 상투적인 소개와 달리, 이 책은 결코 서양의 음성 중심 및 그것을 조건 지은 서양의 형이상학에 대한 해체적 비판으로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라마톨로지』는 책 제목이 독자에게 암시할 수 있는 주제 내용과 달리, 결코 하나의 문자학 이론이나 문자 철학 또는 언어철학 등의 단일 주제로 표상될 수 없으며, 생명과 죽음, 자연과 문화, 여성과 남성, 문명과 야만, 기억과 망각, 외면과 내면, 선과 악, 목소리와 그래피즘, 의식과 무의식, 현존과 부재, 충만과 소외, 고유와 은유, 욕망과 쾌락, 성욕과 자기 관능성, 역사의 기원과 과학의 성립 조건, 관음과 자위, 언어와 정치, 음악과 정치, 화성과 선율 등 인문학의 거의 모든 주제를 아우르고 있는 서양 인문학의 대서사라고 보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역자는 프랑스어 원제인 De la grammatologie에서 전치사 de를 통상적으로 번역할 때 사용되는 ‘에 대하여’ (또는 ‘에 관하여’)를 생략하였다. 책 제목에서 사용된 de는 통상적인 논문이나 책 제목에서 사용될 때, 주제의 초점을 지시하기 위해 사용되는 용법과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사용된 그라마톨로지(문자학)는 문자와 글쓰기를 다루는 학문으로 이해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문자의 문제는 중요한 화두인 것에는 틀림없으나, 이 책의 빌미(미끼) 또는 그가 다룰 인문학 전체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본질적 문제들을 폭발시킬 하나의 기폭 장치일 뿐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전치사 de는 문제의 시발점이나 기원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로부터’로 번역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주제의 다양성과 아울러 그 주제의 광역성과 관련해서도, 이 책에 나오는 서양 사상사와 현대 인문학의 주요 인물들은 줄잡아 100명이 넘으며, 그 분야는 니체 철학, 후설 현상학, 하이데거 존재론은 물론이요, 소쉬르의 기호학과, 옐름슬레우의 언어 이론, 인공두뇌학, 선사학, 퍼스 기호학, 근현대 문자사상사, 정신분석학 이론, 구조인류학, 루소의 정치사상, 언어 사상, 음악 이론 등의 기본 지식을 전제로 논지가 전개되고 있다.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 존재, 언어(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 포함), 인간 문화와 관련된 한 편의 서양 지성사의 대서사라 할 수 있다. 만약 『그라마톨로지』를 한 편의 연극으로 상연할 경우 한마디 이상의 대사를 갖고 등장하는 인물은 약 250여 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는 무대 전면에서 선보일 소쉬르, 레비스트로스, 루소 등의 주연급을 비롯하여, 연극의 서막을 장식하고, 전경에 대비되는 배경에 나타날 니체, 하이데거, 후설 등의 주요 조연, 한두 마디의 대사를 하고 사라질 단역의 배우에 해당되는 사상가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한두 마디가 이 책의 핵심 요지를 알려 주는 복선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이 책의 1부 3장에서 인용되는 프랑스 최고의 선사학자 앙드레 르루아구랑이나, 무한한 기호 작용을 암시하는 퍼스가 그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모두 2부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연극으로 상연할 경우, 책의 구성 체계를 따라 그대로 2막 7장이 될 수 있으며, 이 책의 2부 가운데 2장, 3장, 4장이 모두 루소에 대한 서술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 세 개의 장을 한 장으로 처리할 경우, 2막 5장의 구성도 가능할 것이다. 1막은 모두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 문자에 대한 플라톤의 음성이 배경으로 나타나는 것을 시작으로, 니체, 후설, 하이데거가 무대에 등장해 서양 형이상학에서 현상학에 이장에서 난해한 토론을 벌이는 것으로 채워질 것이다. 2장은 소쉬르가 무대 전면에 등장하여 현대 언어학의 과학성을 정초하기 위해 연구 대상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문자 언어에 비해 음성 언어를 우선시하는 논증을 진행하는 과정이며, 이와 동시에 소쉬르로부터 세례를 받은 쟁쟁한 언어학자들(옐름슬레우, 야콥슨, 마르티네 등)이 소쉬르와 대화를 하는 장면으로 연출될 것이다. 3장은 그래피즘(graphism)이 말보다 먼저 있어났다는 제목으로 휘황찬란한 선사 시대의 이미지가 나오면서, 서양 문자 사상사를 개괄하는 장면의 서두를 장식할 것이다. 여기서 18세기 문자 사상사에서 한 획을 그은 워버튼은 무대 전면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이다. 2막은 모두 4장(또는 2장)으로 이루어진다. 1막의 배경은 레비스트로스가 연구한 남아메리카의 남비크와라 부족이 살고 있는 평온한 마을을 중심으로 서정성이 짙은 장면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2장부터 4장까지는 루소가 무대 전면을 지배하며, 그의 해박한 지식으로, 언어의 기원, 음악의 기원과 이론, 정치사상, 교육 사상, 사회 비평 등을 종횡무진하며 논하는 장면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2장부터 4장에는 루소 사상의 대표적 석학인 장 레몽, 데라테, 스타로뱅스키 등이 출현하여, 루소 텍스트와 그의 사상에 대한 문헌학적 인식론적 논쟁을 벌일 것이다. 특히 3장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프랑스 사상사의 백미라 할 수 있는 18세기이다. 특히, 음악 선율의 문화적 상대성을 주장하며 하모니를 중시한 루소가 당대 최고의 음악 이론가이며, 음악의 물리적 보편성을 주장한 라모와 벌인 한판의 세기적 격론이 무대를 장식할 것이다.
비록 역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본문의 구성과 내용과 관련된 특정 주제를 선별하여 선형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데리다의 글은 바로 이 같은 평면적 해석과 풀어쓰기로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각자 다른 시각에서 보다 중층적인 해석을 시도할 수 있는 열린 텍스트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독자는 데리다의 글을 읽을수록 더욱더 그 깊이에 놀랄 뿐만 아니라 늘 새로운 연구 주제가 도출될 수 있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여기에 대부분의 데리다 주석서가 평이하게 쉽게 풀어쓴 것은 『그라마톨로지』의 예비적 입문을 위하여 제시된 해설자의 재구성이며, 독자의 전공 영역과 경험 세계에 따라서 각자가 고유하게 발견할 수 있는 데리다 텍스트의 우주가 따로 있음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데리다의 글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 원인은 그의 글쓰기 방식과 언어의 속성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철학은 논리적 정합성에 기초한 체계성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라마톨로지』를 비롯하여 그의 주요 저술을 읽어 보면 그의 분석과 추론의 상당 부분은 세밀한 독법, 인용, 주석의 다소 지루한 과정을 통하여 다른 사상가들이 생산한 텍스트들의 역사적 맥락, 그들의 내면세계, 그리고 텍스트의 무의식과 나누는 매우 성실하면서도 비판적이며 창발적인 대화를 통하여 수행된다. 구체적인 예로서, 역자가 총 445쪽의 원서를 분석해 본 결과, 소쉬르, 레비스트로스, 루소의 글을 비롯하여 무려 259차례의 인용문들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데리다 자신이 이 책의 서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는 기존의 사상사와 문학사의 범주에서 일탈하여, 기존의 학문적 분류 체계의 규범과 기준에서 보자면 나란히 놓일 수 없는 이질적 분야의 텍스트들을 서로 병치시켜 놓고 있다. 이를테면 데리다 이전에 하이데거와 소쉬르, 퍼스와 니체, 루소와 프로이트가 나란히 놓고 논증을 구성하는 텍스트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 같은 전혀 다른 전통의 텍스트 병치 방식과 이질적 텍스트 구성 방식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가 다른 사상가의 글과 표현, 상이한 철학들의 틈을 파고 들어가 그 사이에 자신의 텍스트를 수놓는 독특한 텍스트의 상감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것을 일러 어떤 학자는 ‘간텍스트적 폴리로그’(polyogue intertextuel)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를테면, 서양 사상사에서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거나 성립될 수 없는 상이한 전통들에 귀속된 사상가들과 텍스트들의 병치를 통하여 자신의 텍스트 속으로 흡수하면서 가상의 대화를 나누도록 만드는 기묘한 장면을 연출하는 서양 지성사의 ‘샤먼’의 역할을 맡았던 셈이다. 이 같은 데리다 담론의 텍스트적 생산 방식에 대해서 일부 비평가들이 타자의 텍스트와 사상에 의존하여 자신의 것을 구성하는 기생적 속성을 띠고 있다고 힐난하기도 했으나, 데리다는 자신의 텍스트와 타자의 텍스트를 서로 교착시킴으로써 전혀 새로운 사유의 공간을 창안하며 전통적 선입관과 전제로부터 벗어나 참된 문제를 제기한 문제학(probl?matologie)의 발명가였다.
목차
차 례
친필편지
전면 개정판 옮긴이 서문
일러두기
1부 문자 이전의 에크리튀르
명구
1 책의 종언과 에크리튀르의 개시
2 언어학과 그라마톨로지
3 실증과학으로서의 문자학(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2부 자연, 문화, 에크리튀르
'루소시대'에 대한 서론
1 문자의 폭력 : 레비스트로스에서 루소로
2 `이 위험천만한 대리보충
3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의 발생과 구조
4 대리 보충으로부터 근원으로 : 문자 언어 이론
옮긴이 해제
데리다연보
데리다가 인용한 저서 및 논문서지
데리다의 저술 목록
국내 데리다 번역서지
국내 데리다 관련 연구 목록 서지
주요 개념어 번역 대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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