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소셜미디어 2000년: 파피루스에서 페이스북까지
- 저자
- 톰 스탠디지 지음;, 노승영 옮김
- 발행사항
- 파주: 열린책들, 2015
- 형태사항
- 402 p: 삽도, 24cm
- 서지주기
- 참고문헌과 색인을 포함하고 있음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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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가능 (1) |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00027459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27459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이코노미스트」 부편집장이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저자인 톰 스탠디지의 최신작 「소셜 미디어 2,000년」이 출간되었다. 식량, 통신, 천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문화사적 접근을 통해 현장감 있는 역사 교양서를 집필해 온 스탠디지는 이 책에서 현대 사회의 주요 테마인 소셜 미디어의 오래된 역사를 탐구한다. 스탠디지의 주장은 명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뭇 의아하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소셜 미디어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키케로와 로마 원로들 사이를 오갔던 서신들, 혁명의 현장에서 퍼져나갔던 프로파간다 등 역사 속 수많은 소통의 매개체가 본질적으로 현대의 소셜 미디어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해 나간다. 바야흐로 소셜 네트워크 시대라 할 만큼 소셜 미디어는 현대인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스탠디지는 이 매력적인 소셜 플랫폼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에 새겨진 인간 관계와 소통의 욕구을 추적한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현대의 소셜 미디어는 과거의 부활이자,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동시에 미래를 향해 내딛는 또 하나의 발걸음이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통해 우리는 인간 본질의 일면을 이해할 수 있고,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명확히 하게 될 것이다.
관계와 소통에 대한 인간의 욕구
현재 전 세계 온라인 사용자의 80퍼센트가 소셜 사이트를 이용하고, 온라인 사용 시간의 25퍼센트가 소셜 사이트에서 소비된다. 소셜 미디어는 어떻게 사람들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하나의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을까? 스탠디지는 그 이유를 인간의 생물학적, 행동적, 역사적 뿌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먼저,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사회적 뇌를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다른 포유류와 비교해 영장류, 특히 인간의 신피질은 유독 크게 발달했다.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에 의하면, 신피질의 크기와 개체가 속한 집단의 크기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안정적인 집단생활을 위해서는 구성원들 사이의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를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이는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다. 신피질은 사회적 분석과 조작을 더 정교하게 해낼 수 있도록 한다.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인간의 신피질은 크게 진화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소셜 네트워크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스탠디지의 주장이다.
두 번째 측면은, 인간이 소셜 네트워크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유지하는 주된 방법 중 하나가 정보, 즉 풍문의 교환이라는 것이다. 영장류에게서 관찰할 수 있는 털 고르기 행동은 집단 내 구성원들 간 유대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 더 이상 털 고르기는 주된 신체 활동이 아니다. 언어의 발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털을 고르며 확립하고 강화했던 사회적 유대 관계는 언어를 통해, 즉 사회적 정보인 풍문의 교환을 통해 일어나게 되었다. 스탠디지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나누는 자발적 대화의 3분의 2가량이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일어난다. 사회적 네트워크 안에서 다른 사람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핵심적인 요소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문자의 발명이다. 문자는 인간이 가진 수다 본능을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온갖 지식과 정보가 문자로 새겨져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 나갔다. 초기 문자 사회에서는 형태적 발달, 문해율, 문화적 변화에 대한 반감 등으로 문자의 활용이 활발할 수 없었다. 수사학이 발달한 그리스 시대에 문어는 구어에 비해 순수하지 못하고 지성적 삶에 지장을 주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플라톤은 제자인 디오니시오스가 철학 논문을 글로 썼다고 비난했다.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플라톤의 사상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문자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한편 스탠디지는 과거의 이러한 시각이 최근 디지털 미디어에 대해 표출되는 사회적 우려와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통해 소셜 미디어의 역사적 보편성을 확인한다. 과거와 현재 모두 새로운 미디어는 정보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했고 기억한다는 것을 번거로운 일로 만들었다. 실제로 글과 디지털 미디어 모두 매사를 정확하게 기억해야 할 필요성을 감소시켰다. 하지만 동시에 반쯤 기억한 항목을 문서화된 출처에서 필요할 때 끄집어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간 정신을 확장하는 역할도 했음을 스탠디지는 강조한다. 즉, 문자의 발명을 통해 최초의 소셜 미디어 생태계가 등장할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 생태계
스탠디지는 소셜 미디어의 원형을 로마 시대에서 찾는다. 악타 디우르나 혹은 악타는 정치적 정보 교환이 원래 목적이었던 로마의 관보였다. 하지만 몇 해 지나지 않아 악타는 도시 구성원의 증여와 상속, 장례, 이례적이고 중요한 사건 같은 비정치적 사항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사람들에 의해 필사된 악타의 내용은 지배층은 물론이고 일반인 사회 전반에 퍼져나가며 로마의 신문 역할을 했다. 영어 단어 저널journal, 저널리즘jounalism의 어원이 된 단어가 <매일>이라는 뜻의 디우르나diurna다. 낙서는 또 다른 형태의 미디어였다. 도시 가옥을 둘러싼 벽은 온갖 종류의 광고, 정치 구호, 개인적 문구 등으로 뒤덮여 일종의 공공 게시판 역할을 했다. 이곳에 적힌 낙서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이웃과 공유할 수 있었다. 낙서에는 댓글이 붙어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스탠디지는 이러한 소통 방식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현대 소셜 네트워크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15세기 구텐베르크에 의한 인쇄술의 발전은 정보 교환 방식에 대변혁을 가져왔다. 스탠디지는 활자 인쇄의 혜택에 힘입어 본격적인 소셜 미디어 활동을 통해 선구적인 사례를 남긴 인물로 마르틴 루터를 예로 든다. 루터의 종교 개혁 사상은 소책자로 제작되어 독일 전역과 유럽 각지로 확산되었다. 그 속도와 규모는 로마 시대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중세인들은 <일대일 미디어 시스템> 안에서 <배포>에 관여하고 <공유>, <추천>, <복제>의 과정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퍼뜨릴 것인지를 집단적으로 결정했다. 정치인과 성직자의 전유물이던 종교 논쟁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고, 전에 없던 관심과 지지를 얻게 되었다. 루터의 인기가 최고조에 이른 1523년에는 그의 소책자가 400판까지 재인쇄되었고, 종교 개혁 첫 10년 동안에는 600만 부가 인쇄되었다. 오늘날 <좋아요>, <리트윗>, <담기>, <+1>, <조회수>의 개념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루터의 종교 개혁은 <바이럴> 효과를 톡톡히 보았던 것이다.
18세기의 커피하우스는 그 무엇보다도 소셜 미디어의 전형을 잘 보여 준다.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찾고 다양한 미디어를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이 등장한 것이다. <새롭고 평등한 지적 공간>을 사람들은 쌍수 들어 환영했다. 커피하우스는 <건강의 안식처요, 절제의 양성소요, 검약의 기쁨이요, 예의의 전당이요, 재치의 학교>에 비유되었다. 주제와 상관없이 커피하우스는 뉴스와 여론을 말, 글, 인쇄물의 형태로 공유하고 토론했다. 정보가 사회에 스며드는 속도와 효율이 커졌다. 마치 현대인들이 하루에 몇 번씩 소셜 사이트를 확인하고 메일함을 열어 보는 것처럼, 단골들은 하루에 한두 번 커피하우스를 찾아 커피를 마시고 최근 뉴스를 듣고 새로 온 편지가 없는지 확인했다. 풍문의 수준을 넘어 전문적인 정보와 지식이 오가기도 했다. 근대 과학의 주춧돌을 놓은 뉴턴의 「프린키피아」, 경제학의 토대가 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의 탄생도 커피하우스에서 일어났다. 커피하우스의 자유분방한 정신과 전문성은 현재까지도 계승되어 인터넷 토론방과 소셜 미디어나 학술 토론 플랫폼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소셜 미디어의 몰락과 부활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에 따르면 18세기에 커피하우스, 살롱, 문예지, 자유 언론이 등장하면서, 시민이 사회적으로 대등한 존재로서 자유롭게 공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공론장이 탄생했다. 이 공적 공간은 만인에게 개방되었으며 정치로부터 독립적이었다. 따라서 법적, 정치적 문제를 토론하고 비판할 수 있는 마당이 될 수 있었으며, 법률과 정책의 정당성을 점검하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세기 중엽 대형 신문과 잡지의 형태로 매스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이 연약한 공론장이 해체되었다는 것이다.
19세기 후반이 되자 신문은 전문 기자가 기사를 쓰고 전신으로 외국 뉴스를 공급하고 광고주가 주로 자금을 대고 값비싼 증기 인쇄기로 인쇄되었다. 독자가 어느 때보다 많아졌지만, 18세기에는 독자와 필자의 간극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에 반해 신문의 소유와 집필이 점차 집중화되면서 그 간극이 넓어졌다. 20세기에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등장은 이러한 간극을 더욱 넓혔다. 대량 유포 기술은 정보를 전례 없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공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정보 흐름이 선택된 소수의 손에 집중되었다. 집중화된 단방향의 방송 형태로 정보가 전달되면서 앞서 등장한 양방향이고 대화형이며 사회적인 유포의 전통은 사그라졌다. 매스 미디어 기술은 거대 미디어 제국에 자양분을 공급했다. 정보에 대한 자유와 평등은 옅어지고 오히려 국가 정체성을 함양하고 독재 정부가 어느 때보다 수월하게 선전을 유포하는 데 일조했다. 매스 미디어가 득세했던 150여 년 동안 소셜 미디어는 그 전통적인 모습을 잃어버린 것이다. 스탠디지가 매스 미디어의 출현을 소셜 미디어 역사 속 예외적인 사건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인터넷은 소셜 미디어 생태계에 부활의 기회를 제공했다. 사용하기 쉬운 퍼블리싱 도구가 쏟아져 나왔으며 월드 와이드 웹이라는 무형의 공론장은 소셜 미디어로 하여금 방송 미디어와 경쟁하고 그 그늘에서 빠져나올 만큼 커다란 파급력을 갖게 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 플랫폼으로 가능해진 출판의 민주화는 매스 미디어 회사들에 큰 타격을 입혔다. 더 중요한 사실은 폭넓은 사회적, 정치적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발전, 그리고 디지털 네트워크를 등에 업은 소셜 미디어의 재등장은 미디어 내에서뿐 아니라 전체 사회에도 크나큰 변화였다. 이러한 변화는 동시에 자유롭고 민주적인 먼 과거의 소통 메커니즘의 부활이다.
소셜 미디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스탠디지는 2010년 튀니지의 대규모 시위로 촉발된 <아랍의 봄>을 목격한 우리가 16세기 루터의 종교 개혁 현장을 재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두 경우 모두 소셜 미디어는 동시대 인간들의 욕망이 자유롭게 표출되도록, 그로부터 시작된 변화의 불씨가 더 빨리 퍼져나가도록 만든 <촉진제> 역할을 했다. 오늘날의 블로그는 소책자의 새로운 형태고,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는 커피하우스의 새로운 형태이며, 미디어 공유 사이트는 비망록의 새로운 형태다. 당장 환영받지 못할 때도, 상업화되고 특권적 소수의 소유물이었을 때도 있었지만 소셜 미디어의 생태계는 결국 자기 치유의 능력을 보여 주었고 본연의 모습을 되찾았다. 수 세기 동안 존재하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어 왔던 소셜 미디어가 앞으로 어떤 형태를 취하든, 결코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스탠디지의 주장은 그가 이 책에서 보여 주는 수많은 생생한 역사적 현장들을 통해 힘을 얻는다.
관계와 소통에 대한 인간의 욕구
현재 전 세계 온라인 사용자의 80퍼센트가 소셜 사이트를 이용하고, 온라인 사용 시간의 25퍼센트가 소셜 사이트에서 소비된다. 소셜 미디어는 어떻게 사람들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하나의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을까? 스탠디지는 그 이유를 인간의 생물학적, 행동적, 역사적 뿌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먼저,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사회적 뇌를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다른 포유류와 비교해 영장류, 특히 인간의 신피질은 유독 크게 발달했다.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에 의하면, 신피질의 크기와 개체가 속한 집단의 크기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안정적인 집단생활을 위해서는 구성원들 사이의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를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이는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다. 신피질은 사회적 분석과 조작을 더 정교하게 해낼 수 있도록 한다.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인간의 신피질은 크게 진화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소셜 네트워크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스탠디지의 주장이다.
두 번째 측면은, 인간이 소셜 네트워크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유지하는 주된 방법 중 하나가 정보, 즉 풍문의 교환이라는 것이다. 영장류에게서 관찰할 수 있는 털 고르기 행동은 집단 내 구성원들 간 유대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 더 이상 털 고르기는 주된 신체 활동이 아니다. 언어의 발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털을 고르며 확립하고 강화했던 사회적 유대 관계는 언어를 통해, 즉 사회적 정보인 풍문의 교환을 통해 일어나게 되었다. 스탠디지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나누는 자발적 대화의 3분의 2가량이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일어난다. 사회적 네트워크 안에서 다른 사람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핵심적인 요소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문자의 발명이다. 문자는 인간이 가진 수다 본능을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온갖 지식과 정보가 문자로 새겨져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 나갔다. 초기 문자 사회에서는 형태적 발달, 문해율, 문화적 변화에 대한 반감 등으로 문자의 활용이 활발할 수 없었다. 수사학이 발달한 그리스 시대에 문어는 구어에 비해 순수하지 못하고 지성적 삶에 지장을 주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플라톤은 제자인 디오니시오스가 철학 논문을 글로 썼다고 비난했다.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플라톤의 사상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문자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한편 스탠디지는 과거의 이러한 시각이 최근 디지털 미디어에 대해 표출되는 사회적 우려와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통해 소셜 미디어의 역사적 보편성을 확인한다. 과거와 현재 모두 새로운 미디어는 정보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했고 기억한다는 것을 번거로운 일로 만들었다. 실제로 글과 디지털 미디어 모두 매사를 정확하게 기억해야 할 필요성을 감소시켰다. 하지만 동시에 반쯤 기억한 항목을 문서화된 출처에서 필요할 때 끄집어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간 정신을 확장하는 역할도 했음을 스탠디지는 강조한다. 즉, 문자의 발명을 통해 최초의 소셜 미디어 생태계가 등장할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 생태계
스탠디지는 소셜 미디어의 원형을 로마 시대에서 찾는다. 악타 디우르나 혹은 악타는 정치적 정보 교환이 원래 목적이었던 로마의 관보였다. 하지만 몇 해 지나지 않아 악타는 도시 구성원의 증여와 상속, 장례, 이례적이고 중요한 사건 같은 비정치적 사항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사람들에 의해 필사된 악타의 내용은 지배층은 물론이고 일반인 사회 전반에 퍼져나가며 로마의 신문 역할을 했다. 영어 단어 저널journal, 저널리즘jounalism의 어원이 된 단어가 <매일>이라는 뜻의 디우르나diurna다. 낙서는 또 다른 형태의 미디어였다. 도시 가옥을 둘러싼 벽은 온갖 종류의 광고, 정치 구호, 개인적 문구 등으로 뒤덮여 일종의 공공 게시판 역할을 했다. 이곳에 적힌 낙서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이웃과 공유할 수 있었다. 낙서에는 댓글이 붙어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스탠디지는 이러한 소통 방식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현대 소셜 네트워크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15세기 구텐베르크에 의한 인쇄술의 발전은 정보 교환 방식에 대변혁을 가져왔다. 스탠디지는 활자 인쇄의 혜택에 힘입어 본격적인 소셜 미디어 활동을 통해 선구적인 사례를 남긴 인물로 마르틴 루터를 예로 든다. 루터의 종교 개혁 사상은 소책자로 제작되어 독일 전역과 유럽 각지로 확산되었다. 그 속도와 규모는 로마 시대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중세인들은 <일대일 미디어 시스템> 안에서 <배포>에 관여하고 <공유>, <추천>, <복제>의 과정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퍼뜨릴 것인지를 집단적으로 결정했다. 정치인과 성직자의 전유물이던 종교 논쟁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고, 전에 없던 관심과 지지를 얻게 되었다. 루터의 인기가 최고조에 이른 1523년에는 그의 소책자가 400판까지 재인쇄되었고, 종교 개혁 첫 10년 동안에는 600만 부가 인쇄되었다. 오늘날 <좋아요>, <리트윗>, <담기>, <+1>, <조회수>의 개념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루터의 종교 개혁은 <바이럴> 효과를 톡톡히 보았던 것이다.
18세기의 커피하우스는 그 무엇보다도 소셜 미디어의 전형을 잘 보여 준다.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찾고 다양한 미디어를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이 등장한 것이다. <새롭고 평등한 지적 공간>을 사람들은 쌍수 들어 환영했다. 커피하우스는 <건강의 안식처요, 절제의 양성소요, 검약의 기쁨이요, 예의의 전당이요, 재치의 학교>에 비유되었다. 주제와 상관없이 커피하우스는 뉴스와 여론을 말, 글, 인쇄물의 형태로 공유하고 토론했다. 정보가 사회에 스며드는 속도와 효율이 커졌다. 마치 현대인들이 하루에 몇 번씩 소셜 사이트를 확인하고 메일함을 열어 보는 것처럼, 단골들은 하루에 한두 번 커피하우스를 찾아 커피를 마시고 최근 뉴스를 듣고 새로 온 편지가 없는지 확인했다. 풍문의 수준을 넘어 전문적인 정보와 지식이 오가기도 했다. 근대 과학의 주춧돌을 놓은 뉴턴의 「프린키피아」, 경제학의 토대가 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의 탄생도 커피하우스에서 일어났다. 커피하우스의 자유분방한 정신과 전문성은 현재까지도 계승되어 인터넷 토론방과 소셜 미디어나 학술 토론 플랫폼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소셜 미디어의 몰락과 부활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에 따르면 18세기에 커피하우스, 살롱, 문예지, 자유 언론이 등장하면서, 시민이 사회적으로 대등한 존재로서 자유롭게 공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공론장이 탄생했다. 이 공적 공간은 만인에게 개방되었으며 정치로부터 독립적이었다. 따라서 법적, 정치적 문제를 토론하고 비판할 수 있는 마당이 될 수 있었으며, 법률과 정책의 정당성을 점검하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세기 중엽 대형 신문과 잡지의 형태로 매스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이 연약한 공론장이 해체되었다는 것이다.
19세기 후반이 되자 신문은 전문 기자가 기사를 쓰고 전신으로 외국 뉴스를 공급하고 광고주가 주로 자금을 대고 값비싼 증기 인쇄기로 인쇄되었다. 독자가 어느 때보다 많아졌지만, 18세기에는 독자와 필자의 간극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에 반해 신문의 소유와 집필이 점차 집중화되면서 그 간극이 넓어졌다. 20세기에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등장은 이러한 간극을 더욱 넓혔다. 대량 유포 기술은 정보를 전례 없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공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정보 흐름이 선택된 소수의 손에 집중되었다. 집중화된 단방향의 방송 형태로 정보가 전달되면서 앞서 등장한 양방향이고 대화형이며 사회적인 유포의 전통은 사그라졌다. 매스 미디어 기술은 거대 미디어 제국에 자양분을 공급했다. 정보에 대한 자유와 평등은 옅어지고 오히려 국가 정체성을 함양하고 독재 정부가 어느 때보다 수월하게 선전을 유포하는 데 일조했다. 매스 미디어가 득세했던 150여 년 동안 소셜 미디어는 그 전통적인 모습을 잃어버린 것이다. 스탠디지가 매스 미디어의 출현을 소셜 미디어 역사 속 예외적인 사건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인터넷은 소셜 미디어 생태계에 부활의 기회를 제공했다. 사용하기 쉬운 퍼블리싱 도구가 쏟아져 나왔으며 월드 와이드 웹이라는 무형의 공론장은 소셜 미디어로 하여금 방송 미디어와 경쟁하고 그 그늘에서 빠져나올 만큼 커다란 파급력을 갖게 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 플랫폼으로 가능해진 출판의 민주화는 매스 미디어 회사들에 큰 타격을 입혔다. 더 중요한 사실은 폭넓은 사회적, 정치적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발전, 그리고 디지털 네트워크를 등에 업은 소셜 미디어의 재등장은 미디어 내에서뿐 아니라 전체 사회에도 크나큰 변화였다. 이러한 변화는 동시에 자유롭고 민주적인 먼 과거의 소통 메커니즘의 부활이다.
소셜 미디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스탠디지는 2010년 튀니지의 대규모 시위로 촉발된 <아랍의 봄>을 목격한 우리가 16세기 루터의 종교 개혁 현장을 재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두 경우 모두 소셜 미디어는 동시대 인간들의 욕망이 자유롭게 표출되도록, 그로부터 시작된 변화의 불씨가 더 빨리 퍼져나가도록 만든 <촉진제> 역할을 했다. 오늘날의 블로그는 소책자의 새로운 형태고,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는 커피하우스의 새로운 형태이며, 미디어 공유 사이트는 비망록의 새로운 형태다. 당장 환영받지 못할 때도, 상업화되고 특권적 소수의 소유물이었을 때도 있었지만 소셜 미디어의 생태계는 결국 자기 치유의 능력을 보여 주었고 본연의 모습을 되찾았다. 수 세기 동안 존재하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어 왔던 소셜 미디어가 앞으로 어떤 형태를 취하든, 결코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스탠디지의 주장은 그가 이 책에서 보여 주는 수많은 생생한 역사적 현장들을 통해 힘을 얻는다.
목차
-머리말: 키케로의 웹
1. 과거에서 찾은 소셜 미디어의 토대: 인간은 왜 공유하는 습성을 타고났을까?
2. 로마의 미디어: 최초의 소셜 미디어 생태계
3. 루터와 바이럴 효과: 혁명에서 소셜 미디어의 역할 (1)
4. 시를 통한 실천: 자기표현과 자기 홍보를 위한 소셜 미디어
5. 참과 거짓이 싸우게 하라: 소셜 미디어 규제의 과제
6. 커피하우스도 그랬다지: 소셜 미디어는 어떻게 혁신을 증진하는가
7. 인쇄의 자유: 혁명에서 소셜 미디어의 역할 (2)
8. 인민의 감시병: 독재, 낙관론, 소셜 미디어
9. 매스 미디어의 부상: 집중화가 시작되다
10. 소셜 미디어의 반대쪽: 방송 시대의 미디어
11. 소셜 미디어의 부활: 아파넷에서 페이스북까지
-후기: 역사는 스스로 리트윗한다
-감사의 글
-주
-참고 문헌
-찾아보기
-옮긴이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