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당신이 지금 스쳐 지나간)얼굴들
- 발행사항
- 서울: 후마니타스, 2017
- 형태사항
- 190 p: 삽도, 25cm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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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가능 (1) |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00027487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27487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얼굴들》은 사진가 이상엽과 활동가 변정윤, 기록노동자 이혜정·희정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에 걸쳐 만난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진과 구술을 엮은 책이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 노동자 59명의 얼굴과 목소리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우리가 아는 얼굴들’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초상 사진을 실었다. 촬영은 노동자들의 생활공간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행되었고, 스트로보(플래시)를 활용해 ‘얼굴’을 훤히 드러내는 원칙을 유지함으로써 시공의 일관성을 확보했다. 2부 ‘나와 당신의 이야기’에는 비정규직 노동의 현주소를 밝히는 이남신 소장의 글과 함께, 노동자의 삶과 싸움, 죽음의 현장을 화보로 구성했다. ‘아카이브’에는 인터뷰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전체 구술을 담았다. 채록 일자를 표기했고, 이후 다시 만났거나 소식을 접한 이들의 후일담은 아래에 따로 추가했다.
‘일’이 이름과 얼굴이 되는 사회
59명이 직조한 ‘하나’의 이야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저마다의 얼굴과 이름 옆에 ‘콜센터 노동자’에서 ‘아파트 경비 노동자’까지 30종에 이르는 다종다양한 ‘일’들이 꼬리표처럼 붙어 있다. 어떤 일을 하는지가 한 사람의 이름이나 얼굴과 다름없는 위계의 ‘정체성’이 된 사회에 대한 노골적이고도 필연적인 반영이다. 흑백필름에 찍힌 피사체들의 나이 차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생애주기마다 어떤 불가피한 선택으로 비정규직 노동을 감내했고, 왜 싸움을 시작하거나 멈추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렇게 59개의 ‘다른’ 이야기가 얽히고설키며 수시로 겹치다가 ‘하나’의 줄기로 모이며, 우리의 가족·친구·이웃 등 도처에 허다한 존재들을 아프게 상기시킨다. 이는 모든 일하는 사람(또는 혜택이나 부양을 받는/받아야 하는 자)의 일체감과 동질성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과정이다.
기록의 이유
“우리에게 유리하건 그렇지 않건 공유해야 한다”
사진을 찍은 이상엽 작가는 서문에서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 1876~1964)를 언급한다. 잔더는 독일인을 7개의 섹션, (1)농민, (2)장인, (3)여성, (4)전문 사회직종, (5)예술가, (6)대도시, (7)장애인·실업자 등을 포괄하는 ‘최후의 사람들’로 분류해 나치 집권기까지 1만 장의 인물 사진을 찍은 사진가다. 나치의 검열에 걸려 사진과 인쇄물이 죄다 불태워졌지만, 전후 복권되자 1960년대까지 4만 장의 인물 사진을 구축했다. 이상엽은 잔더를 “유형학적 담론과 아카이브라는 방식을 실현한 최초의 예술가”로 말하면서 “인물 사진을 사회적 풍경 안으로 끌어들인” 점을 호평한다. 또한 잔더가 1927년 <20세기의 사람들>이라는 전시에서 한 말을 인용한다. “사진은 놀라운 아름다움으로, 그리고 냉혹한 진실성으로 사물들을 표현한다. 또한 사진은 사물들을 엄청나게 왜곡할 수 있다. 우리는 진실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동료와 후세에 물려주어야 한다. 이 진실이 우리에게 유리하건 그렇지 않건 관계없이 말이다”(8쪽).
어쩌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우리 사회 ‘최후의 사람들’에 가깝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6년 8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반수를 넘긴 1100만여 명에 이른다”(124쪽). 헤아려보면, 어떤 가족은 구성원 모두가 비정규직일지 모른다. 한동네에서 태어나 한 아파트단지에서 자라 같은 중고교를 다니다 비슷한 등급의 대학에 가고 같은 시기 이력서를 넣던 청년 집단의 상당수가 비정규직이거나 잠재적 비정규직일지 모른다. 우리가 스쳐 지나간 얼굴의 대다수가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오래되고 흔해서, 이를 직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너무 오래된 악습은 어느새 기정사실이 되어 버리고, 흔하디흔한 존재는 마치 ‘없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유형의 형태로 남기지 않으면 기억은 옅어지기 마련이다. 잔더를 변주하자면, ‘진실’이 우리에게 유리하건 그렇지 않건 우리는 공유해야 한다. 기록은 진실을 간직하는 방법이면서, 기울어진 세상의 원점을 찾는 길이기도 하다.
연결의 기억
“나는 최고운이며, ‘9-4’이며, 이제 막 인천공항에 도착한 이주 노동자이다”
에필로그(‘하늘에서 온 편지’)에서 송경동 시인은 생활고와 병을 견디다 죽은 시나리오작가 최고운의 목소리를 빌어 지상에 편지를 보낸다.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은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 주세요.” 주인집 문틈에 끼워 넣은 비참한 쪽지가 유서가 되고 만 작가 최고운은 자기와 비슷한 이유로 하늘나라에 오게 된 이들의 안부를 전한다. 그들은 삼성서비스 최종범 씨, 구의역 안전문 수리 도중 사망한 ‘9-4’, 세월호 기간제 교사 김초원·이지혜 선생, 기아차 비정규직 해고자 윤주형 씨, 송파 석촌동의 세 모녀다. 그들은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며, 가족을 보살펴주는 손길에 감사해 하며, 사람들이 “국가의 역할을 바로잡고 사회를 점점 더 가파르게 하는 자본의 끝없는 욕망을 제어하며 세상을 함께 바꿔 나가길”, 자기들처럼 “외롭게 죽지 말고 꼭 살아서, 서로의 처지가 다름을 이해하며 목소리를 모으고, 분연히 일어나 싸울 수 있길” 바란다.
어쩌면 지금은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삼아도 끄떡없는 시대인지 모른다. 저마다의 절실함을 움켜쥐고 서로 밀어내거나 스스럼없이 무릎 꿇는다. 지하철 경정비 노동자 서재현·이대희 씨는 2014년 인터뷰 당시, 풍문으로만 들리던 서울시의 직접 고용을 간절히 바랐다. 2016년 12월, 같은 일을 하는 두 사람은 그해 5월에 일어난 구의역 ‘9-4’ 승강장 사고를 계기로 서울메트로에 안전 업무직으로 직접 고용되었다(147, 151쪽). 임금 등 근로조건의 변화는 크게 없지만, 사고를 계기로 혜택을 입은 것 같아 죽은 청년 노동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낀다. 이들에게 ‘하늘에서 온 편지’가 진심 어린 응원을 건넨다.
나의 절실함이 다른 누군가의 절실함과 부딪힐 때마다, 한 번쯤 돌아볼 수 있길 바란다. 나조차 미처 오르지 못한 채 걷어차야 하는 사다리는 누가 거기에 놓았을까. ‘하늘에서 온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언제든 우리의 안부나 의견이 궁금하면 물어봐 주길 바란다. 우리는 ‘인간의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며 끝없이 당신에게 말 걸 것이고, 어떤 사회적 존재의 잊히지 않는 이름으로, 모른 척 지나칠 수 없는 얼굴로, 언제나 당신 곁에 머무를 것이다. 나는 최고운이며, ‘9-4’이며, 최종범이며, 이제 막 인천공항에 도착한 네팔에서 온 이주 노동자이다.”(189쪽)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우리가 아는 얼굴들’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초상 사진을 실었다. 촬영은 노동자들의 생활공간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행되었고, 스트로보(플래시)를 활용해 ‘얼굴’을 훤히 드러내는 원칙을 유지함으로써 시공의 일관성을 확보했다. 2부 ‘나와 당신의 이야기’에는 비정규직 노동의 현주소를 밝히는 이남신 소장의 글과 함께, 노동자의 삶과 싸움, 죽음의 현장을 화보로 구성했다. ‘아카이브’에는 인터뷰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전체 구술을 담았다. 채록 일자를 표기했고, 이후 다시 만났거나 소식을 접한 이들의 후일담은 아래에 따로 추가했다.
‘일’이 이름과 얼굴이 되는 사회
59명이 직조한 ‘하나’의 이야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저마다의 얼굴과 이름 옆에 ‘콜센터 노동자’에서 ‘아파트 경비 노동자’까지 30종에 이르는 다종다양한 ‘일’들이 꼬리표처럼 붙어 있다. 어떤 일을 하는지가 한 사람의 이름이나 얼굴과 다름없는 위계의 ‘정체성’이 된 사회에 대한 노골적이고도 필연적인 반영이다. 흑백필름에 찍힌 피사체들의 나이 차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생애주기마다 어떤 불가피한 선택으로 비정규직 노동을 감내했고, 왜 싸움을 시작하거나 멈추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렇게 59개의 ‘다른’ 이야기가 얽히고설키며 수시로 겹치다가 ‘하나’의 줄기로 모이며, 우리의 가족·친구·이웃 등 도처에 허다한 존재들을 아프게 상기시킨다. 이는 모든 일하는 사람(또는 혜택이나 부양을 받는/받아야 하는 자)의 일체감과 동질성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과정이다.
기록의 이유
“우리에게 유리하건 그렇지 않건 공유해야 한다”
사진을 찍은 이상엽 작가는 서문에서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 1876~1964)를 언급한다. 잔더는 독일인을 7개의 섹션, (1)농민, (2)장인, (3)여성, (4)전문 사회직종, (5)예술가, (6)대도시, (7)장애인·실업자 등을 포괄하는 ‘최후의 사람들’로 분류해 나치 집권기까지 1만 장의 인물 사진을 찍은 사진가다. 나치의 검열에 걸려 사진과 인쇄물이 죄다 불태워졌지만, 전후 복권되자 1960년대까지 4만 장의 인물 사진을 구축했다. 이상엽은 잔더를 “유형학적 담론과 아카이브라는 방식을 실현한 최초의 예술가”로 말하면서 “인물 사진을 사회적 풍경 안으로 끌어들인” 점을 호평한다. 또한 잔더가 1927년 <20세기의 사람들>이라는 전시에서 한 말을 인용한다. “사진은 놀라운 아름다움으로, 그리고 냉혹한 진실성으로 사물들을 표현한다. 또한 사진은 사물들을 엄청나게 왜곡할 수 있다. 우리는 진실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동료와 후세에 물려주어야 한다. 이 진실이 우리에게 유리하건 그렇지 않건 관계없이 말이다”(8쪽).
어쩌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우리 사회 ‘최후의 사람들’에 가깝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6년 8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반수를 넘긴 1100만여 명에 이른다”(124쪽). 헤아려보면, 어떤 가족은 구성원 모두가 비정규직일지 모른다. 한동네에서 태어나 한 아파트단지에서 자라 같은 중고교를 다니다 비슷한 등급의 대학에 가고 같은 시기 이력서를 넣던 청년 집단의 상당수가 비정규직이거나 잠재적 비정규직일지 모른다. 우리가 스쳐 지나간 얼굴의 대다수가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오래되고 흔해서, 이를 직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너무 오래된 악습은 어느새 기정사실이 되어 버리고, 흔하디흔한 존재는 마치 ‘없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유형의 형태로 남기지 않으면 기억은 옅어지기 마련이다. 잔더를 변주하자면, ‘진실’이 우리에게 유리하건 그렇지 않건 우리는 공유해야 한다. 기록은 진실을 간직하는 방법이면서, 기울어진 세상의 원점을 찾는 길이기도 하다.
연결의 기억
“나는 최고운이며, ‘9-4’이며, 이제 막 인천공항에 도착한 이주 노동자이다”
에필로그(‘하늘에서 온 편지’)에서 송경동 시인은 생활고와 병을 견디다 죽은 시나리오작가 최고운의 목소리를 빌어 지상에 편지를 보낸다.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은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 주세요.” 주인집 문틈에 끼워 넣은 비참한 쪽지가 유서가 되고 만 작가 최고운은 자기와 비슷한 이유로 하늘나라에 오게 된 이들의 안부를 전한다. 그들은 삼성서비스 최종범 씨, 구의역 안전문 수리 도중 사망한 ‘9-4’, 세월호 기간제 교사 김초원·이지혜 선생, 기아차 비정규직 해고자 윤주형 씨, 송파 석촌동의 세 모녀다. 그들은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며, 가족을 보살펴주는 손길에 감사해 하며, 사람들이 “국가의 역할을 바로잡고 사회를 점점 더 가파르게 하는 자본의 끝없는 욕망을 제어하며 세상을 함께 바꿔 나가길”, 자기들처럼 “외롭게 죽지 말고 꼭 살아서, 서로의 처지가 다름을 이해하며 목소리를 모으고, 분연히 일어나 싸울 수 있길” 바란다.
어쩌면 지금은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삼아도 끄떡없는 시대인지 모른다. 저마다의 절실함을 움켜쥐고 서로 밀어내거나 스스럼없이 무릎 꿇는다. 지하철 경정비 노동자 서재현·이대희 씨는 2014년 인터뷰 당시, 풍문으로만 들리던 서울시의 직접 고용을 간절히 바랐다. 2016년 12월, 같은 일을 하는 두 사람은 그해 5월에 일어난 구의역 ‘9-4’ 승강장 사고를 계기로 서울메트로에 안전 업무직으로 직접 고용되었다(147, 151쪽). 임금 등 근로조건의 변화는 크게 없지만, 사고를 계기로 혜택을 입은 것 같아 죽은 청년 노동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낀다. 이들에게 ‘하늘에서 온 편지’가 진심 어린 응원을 건넨다.
나의 절실함이 다른 누군가의 절실함과 부딪힐 때마다, 한 번쯤 돌아볼 수 있길 바란다. 나조차 미처 오르지 못한 채 걷어차야 하는 사다리는 누가 거기에 놓았을까. ‘하늘에서 온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언제든 우리의 안부나 의견이 궁금하면 물어봐 주길 바란다. 우리는 ‘인간의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며 끝없이 당신에게 말 걸 것이고, 어떤 사회적 존재의 잊히지 않는 이름으로, 모른 척 지나칠 수 없는 얼굴로, 언제나 당신 곁에 머무를 것이다. 나는 최고운이며, ‘9-4’이며, 최종범이며, 이제 막 인천공항에 도착한 네팔에서 온 이주 노동자이다.”(189쪽)
목차
프롤로그
1부 우리가 아는 얼굴들
2부 나와 당신의 이야기
아카이브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