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연구자의 탄생: 포스트-포스트 시대의 지식 생산과 글쓰기
- 발행사항
- 파주: 돌베개, 2022
- 형태사항
- 291 p., 21cm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
이용 가능 (1) |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00030671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30671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인문학의 위기’가 기본값인 시대
연구에 관한 사적이고도 공적인 이야기
『연구자의 탄생: 포스트-포스트 시대의 지식 생산과 글쓰기』는 40여 년 전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져 학술운동의 일부이기도 했던 한 인문사회 출판사의 편집자로서, 그리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오랜 독자이자 한 명의 시민으로서 품었던 의문으로부터 시작했다. 인문사회 출판의 역할 중 하나가 학계에서 생산된 지식을 일반 시민들과 연결하고 사회적 담론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때, 연구자들의 이야기는 왜 과거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할까? 여전히 좋은 연구자들이 존재하지만, 왜 기존에 인문·사회과학의 일이었던 것은 문학과 에세이의 몫처럼 보일까? 왜 문학으로부터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를 알고자 하고, 에세이로부터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났을까? 인문·사회과학의 언어, 학계에서 생산되는 지식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출판시장에서) 매력적일 수 있을까? 물론 부정적인 대답이라면, 여기에는 ‘인문학의 위기’나 ‘학문공동체의 붕괴’, ‘연구자의 전문화’, ‘학문 후속세대의 재생산 실패’, ‘논문 중심 글쓰기’, ‘성과주의·계량화’ 등 학술장의 변화를 지적하는 말들이 뒤따를 것이다. 이러한 말들은 익숙하다 못해 지루한 기본값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단하고도 예민하게 ‘사회’와 (활동으로서의) ‘글쓰기’를 동시에 염두에 두면서 2000년대 이후에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공부해온 동시대 젊은 연구자들이 있고, 그들의 가장 날것의 이야기를, 동료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학계 바깥의 시민들도 경청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었다.
비판적 사회연구의 전통에 속할 다양한 전공의, 문학평론가와 비평가, 독립연구자, 박사과정 중인 국내외 대학원생과 교수까지 다양한 위치의 인문사회 연구자 열 명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지금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 천착하고 있는 주제는 무엇입니까? 왜 그 문제가 개인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문제의식은 어떤 개인(사)적·시대적 경험을 통해, 어떤 궤적을 거치며 형성된 것인가요? 그리고 그러한 문제를 규명 또는 해결하기 위해 어떤 연구(글쓰기)를 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작업을 통해 어떤 지적 또는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기를 희망하시는지요?’ 다시 말해, 어떤 경험과 문제의식이 이들을 지금의 위치로 이끌었는지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기를 바랐고, 이런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200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와 지식 생산이 맺는 관계에 관해 풍부한 영감과 통찰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연구자의 탄생』은 ‘나는 왜 이런 연구를 하고 글을 쓰는가?’에 관한 연구자의 사적이고도 공적인 기록을 통해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에 이를 수 있는 책으로 기획되었다.
‘분과학문’과 ‘학계’ 안팎을 가로지르며
연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연구자’는 일반적으로, 대학원생과 시간강사와 교수를 아우르며 ‘학계’에서 연구를 하고 지식을 생산하는 이들을 칭한다. 하지만 연구자라는 말의 쓰임은 지난 20여 년간 변화한 학계와 사회의 조건을 정확히 반영한다. 이 말은 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강조하는 대신, 다른 분야나 학계 외부, 즉 시민과 사회와의 단절을 의도치 않게 장려한다. 따라서 이러한 진단이 가능하다. 2000년대 이후 학술장에 진입한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광활하고도 혹독한 지식/교육‘시장’에 맨몸으로 내던져” “가까스로 ‘연구자’인지 ‘콘텐츠 제공자’인지 ‘덕후’인지 모를 무언가가 되고 있는 중이다.”(79쪽) 문학평론가 오혜진에 따르면, “‘지적 분기점’이라고 합의할 만한 공통의 역사적 경험”이 도출되지 않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별 시차 없이 접한, 이른바 ‘포스트-포스트모던 시대의 지식노동자’라고 호명되곤 하는 동시대 젊은 연구자들은 자신의 지적 좌표와 궤적을 묻는 질문 앞에서 때때로 불안해진다.”(73~74쪽)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에 연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연구자들이 자신의 지적 좌표와 궤적을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연구자의 탄생』은 동시대 젊은 인문사회 연구자들에게 연구란 무엇인지 묻고 인문·사회과학 ‘연구’와 ‘연구자’를 재정의해보려는 책이 되었다. 문화연구, 국문학, 사회학, 여성학, 인류학, 영문학 등 다양한 전공과 관심사를 가진 연구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에 대한 답변과 새로운 질문들을 들려주었다. 이 책은 2000년대 이후 ‘분과학문’ 또는 ‘학계’ 안팎을 오가며 연구자로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와 시민들과의 연결을 놓지 않는 지식 생산이 어떻게 가능한지 되묻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연구자이자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를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인 천주희의 「나는 내일도 연구자이고 싶다」는 이 책의 서문 역할을 한다. “한 명의 연구자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경제적 자원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이 글은 청년연구자이자 프리랜서 연구자로 활동한 자신의 경험을 하나의 사례로 제시하며 연구자들이 직면한 물적 조건을 살핀다. 암묵지인 동시에 민감한 주제인 대학원생과 연구자의 재생산 문제를 제기하면서, 연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며 연구란 무엇인가에 대한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아간다. 또한 일반적으로 사회적 지식을 생산하는 주요 장이라고 여겨지는 언론계, 출판계, 학계를 기자, 작가, 유학생으로 경험한 안은별은 「이동 중에, 글쓰기의 자리에 대한 생각들」에서 자신의 연구 주제인 ‘이동’을 키워드로, 일본에서 공부한다는 것, 학계에 속한 지식 생산자로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앞의 두 편이 작가-연구자의 이야기라면, 다음 두 편은 비평가-연구자들의 이야기이다. 2010년대의 페미니즘 문학비평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 오혜진은 「불투명한 언어로 말하기」에서 국어국문학과를 중심으로 2000년대 이후 학술장과 한국사회의 변화를 개괄하며, 소수자정치에 관한 자신의 비평적 문제의식이 어떻게 벼리어졌는지를 들려준다. 한편, 비평가이자 한국사회의 감정을 사회적 맥락과 엮어 고찰하는 감정사회학 연구자인 김신식은 「그것: 감정사회학, 내 삶의 가망이 되다」에서 이러한 작업을 하게 된 계기를 좀 더 내밀하고 개인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이 글은 자기 자신의 문제, 특히 목회자 가정에서 자란 경험과 연결해 연구의 여정을 서술한다.
코로나19가 강화시킨 디지털 환경 속에서,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으로도 활동 중인 윤보라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이자 시네-미디어 기억 연구자인 배주연의 글은 각각 디지털 공간과 페미니즘 연구, 그리고 영화와 페미니즘·기억 연구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톺아본다. 윤보라의 「몸 없는 공간의 젠더를 연구하기 위해」가 1990년대의 시대적 공기에 예민했던 십대가 인터넷과 페미니즘을 두 축으로 삼아 촛불집회와 온라인 외모관리 커뮤니티, 스마트폰, 일베·메갈리아, n번방 등의 사건을 거치면서 그것들을 연구 과제로 삼아 추적해온 과정을 담아냈다면, 배주연의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는 학생운동을 하며 소설을 쓰던 수학과 대학생이 어떻게 영화이론을 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그동안 영화를 둘러싼 매체·문화 환경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와 겹쳐놓는다.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인 이승철과 하와이대 사회학과 교수인 양명지의 글은 각각 인류학·경제학·사회학, 정치학·역사학·사회학을 오가며 한국사회를 분석해온 두 “사회과학자”들의 작업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관한 기록이다. 이승철의 「무너지는 사물, 부유하는 말」은 현재 한국사회의 변화를 설명할 “좌표와 분석틀의 부재”, “말과 사물의 위기에서 촉발된 혼란스러움”을 지적하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기획으로서 사회적 경제와 사회혁신, 금융화와 투자자 주체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양명지의 「박정희 시대의 유산으로부터」는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 현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탐구로서 중산층의 형성과 태극기부대의 극우정치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해외에서 한국사회를 연구한다는 것의 의미를 덧붙인다.
한편, 미국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며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문학에 접근하는 김성익은 「언어의 감옥 내 수감자와 탈옥수」에서 자연과학이 생산해내는 지식이 지배적인 시대에 인문학의 자리를 묻는다. 어떻게 한국사회에서 자연과학이 인문학의 공백을 채웠는지, 왜 미국 학계와 달리 한국에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분리되어 있었는지를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이론과 문화사회학을 전공하는 김정환의 「사회에 대해 말하지 않기, 보는 나를 보기」는 이 책을 닫는 글 역할을 한다. 지방 교대에서 학생들에게 사회학을 가르쳤던 경험에서 출발하는 이 글은 왜 그토록 공론장에서 많은 말들, 심지어 “선의”와 “이상적인 지론”이 오가지만 사회는 변하지 않는지 되물으며, 지식 생산은 ‘연구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학생과 일반 시민들에게도 해당되는 일이고, 그것은 “곧 자기변환의 실천”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언어와 관점의 발명, 그리고 자기변환의 실천까지
다시, 인문사회 연구란 무엇인가
다양한 위치와 전공의 연구자들이 쓴 책이지만, 『연구자의 탄생』은 자연스럽게 2000년대 이후의 풍경을 펼쳐놓으며, 지난 20여 년간 한국사회의 변화를 그려낸다. 학술장의 문제는 물론, 청년운동, 독립출판, 여행(이동), 페미니즘, 소수자정치, ‘감정’의 부상, 종교, 힐링, 스마트폰, 인터넷, n번방, 영화, 기억정치, 사회적 경제, 사회혁신, 금융화와 투자자, 중산층, 태극기부대, 여러 번의 촛불집회, 과학의 대중화, 비판담론의 포화 상태와 변하지 않는 세계 등 새롭게 등장한 과제들과 여전히 해묵은 문제들, 그리고 다른 모색과 실천의 시도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토록 다양한 연구자들은, 연구란 무엇이며 왜 연구자가 되었는지에 대해 놀랍게도 비슷한 대답을 들려준다. “공부란, 내 주변에 산재한 죽음과 불평등과 배제, 소외, 부조리함을 어떻게 해석하고 또 바꿔나가야 할지 삶과 생존을 위한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하는 매개”(12쪽)이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언어와 관점을 찾는 것이었다. 불안정하고 기이한 삶에서 시작된 궁금증과 질문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했던 마음이 매일 켜켜이 쌓여서 나는 공부하고 책 읽고 연구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13쪽)라는 천주희의 이야기는 “모든 사태를 ‘퇴행’, ‘백래시’, ‘반지성주의’ 같은 말로 일축하는 것은 손쉬운 현실도피이자 연구자의 직무유기 아닐까”, “지금 긴요한 것은, 내가 속한 ‘현재’를 이미 규범화·질서화된 가치를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문제계로서 새롭게 구성·재현하기 위한 관점과 언어다”(82~83쪽)라는 오혜진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다시 “부유하는 원한과 분노는 언젠가 자신의 언어와 대상을 찾아내기 마련입니다. 그때 사람들이 찾아내는 언어와 이름이 극우 포퓰리즘이나 종교 근본주의, 금융시장의 니힐리즘이 아닌 새로운 급진적 보편성의 정치가 될 수 있을까요?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서, 우리는 대안적 언어와 장치들을 벼리는 작업을 해낼 수 있을까요?”(207쪽)라는 이승철의 이야기와 공명한다. 이들은 인문·사회과학을 한다는 것이 새로운 관점, 언어, 담론을 생산하는 작업임을 강조한다. 동시에, 지식을 생산한다는 것은 “사회를 분석하고 비판하고 계몽하려는 의지들”에 그쳐서는 안 되고, “사회에 대해 말하거나 사회에 대해 쓰기를 멈추고서 나를 봄으로써 동시에 사회를 보는 것”(286쪽)이기를 바라는 김정환의 이야기는 앎과 실천이라는 해묵은 말들을 새롭게 갱신해내는데, 사실상 이 책에 실린 모든 글들의 숨은 전제일 것이다.
물론 『연구자의 탄생』은 한계가 뚜렷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연구자들은 ‘나’의 자리로부터 동시대를 사유하고 세상을 정확히, 또는 다르게 읽어내는 언어와 관점을 모색하고 있지만, 당연히 이들이 인문사회 연구 생태계를 대표할 순 없다. 철학, 역사학, 심리학 분야, 또는 서울 아닌 곳의 대학원생이나 유럽 대학의 유학생처럼 누락된 이야기들이 더 많다. 그럼에도, 바로 그렇기에 이 책은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또 다른 공동의 이야기들을 촉발해내는 일종의 발제문이자,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인문사회 연구를 한다는 것, 그리고 지식을 생산한다는 것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는 장을 여는 초대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책이 되기를 희망한다.
연구에 관한 사적이고도 공적인 이야기
『연구자의 탄생: 포스트-포스트 시대의 지식 생산과 글쓰기』는 40여 년 전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져 학술운동의 일부이기도 했던 한 인문사회 출판사의 편집자로서, 그리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오랜 독자이자 한 명의 시민으로서 품었던 의문으로부터 시작했다. 인문사회 출판의 역할 중 하나가 학계에서 생산된 지식을 일반 시민들과 연결하고 사회적 담론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때, 연구자들의 이야기는 왜 과거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할까? 여전히 좋은 연구자들이 존재하지만, 왜 기존에 인문·사회과학의 일이었던 것은 문학과 에세이의 몫처럼 보일까? 왜 문학으로부터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를 알고자 하고, 에세이로부터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났을까? 인문·사회과학의 언어, 학계에서 생산되는 지식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출판시장에서) 매력적일 수 있을까? 물론 부정적인 대답이라면, 여기에는 ‘인문학의 위기’나 ‘학문공동체의 붕괴’, ‘연구자의 전문화’, ‘학문 후속세대의 재생산 실패’, ‘논문 중심 글쓰기’, ‘성과주의·계량화’ 등 학술장의 변화를 지적하는 말들이 뒤따를 것이다. 이러한 말들은 익숙하다 못해 지루한 기본값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단하고도 예민하게 ‘사회’와 (활동으로서의) ‘글쓰기’를 동시에 염두에 두면서 2000년대 이후에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공부해온 동시대 젊은 연구자들이 있고, 그들의 가장 날것의 이야기를, 동료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학계 바깥의 시민들도 경청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었다.
비판적 사회연구의 전통에 속할 다양한 전공의, 문학평론가와 비평가, 독립연구자, 박사과정 중인 국내외 대학원생과 교수까지 다양한 위치의 인문사회 연구자 열 명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지금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 천착하고 있는 주제는 무엇입니까? 왜 그 문제가 개인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문제의식은 어떤 개인(사)적·시대적 경험을 통해, 어떤 궤적을 거치며 형성된 것인가요? 그리고 그러한 문제를 규명 또는 해결하기 위해 어떤 연구(글쓰기)를 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작업을 통해 어떤 지적 또는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기를 희망하시는지요?’ 다시 말해, 어떤 경험과 문제의식이 이들을 지금의 위치로 이끌었는지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기를 바랐고, 이런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200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와 지식 생산이 맺는 관계에 관해 풍부한 영감과 통찰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연구자의 탄생』은 ‘나는 왜 이런 연구를 하고 글을 쓰는가?’에 관한 연구자의 사적이고도 공적인 기록을 통해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에 이를 수 있는 책으로 기획되었다.
‘분과학문’과 ‘학계’ 안팎을 가로지르며
연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연구자’는 일반적으로, 대학원생과 시간강사와 교수를 아우르며 ‘학계’에서 연구를 하고 지식을 생산하는 이들을 칭한다. 하지만 연구자라는 말의 쓰임은 지난 20여 년간 변화한 학계와 사회의 조건을 정확히 반영한다. 이 말은 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강조하는 대신, 다른 분야나 학계 외부, 즉 시민과 사회와의 단절을 의도치 않게 장려한다. 따라서 이러한 진단이 가능하다. 2000년대 이후 학술장에 진입한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광활하고도 혹독한 지식/교육‘시장’에 맨몸으로 내던져” “가까스로 ‘연구자’인지 ‘콘텐츠 제공자’인지 ‘덕후’인지 모를 무언가가 되고 있는 중이다.”(79쪽) 문학평론가 오혜진에 따르면, “‘지적 분기점’이라고 합의할 만한 공통의 역사적 경험”이 도출되지 않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별 시차 없이 접한, 이른바 ‘포스트-포스트모던 시대의 지식노동자’라고 호명되곤 하는 동시대 젊은 연구자들은 자신의 지적 좌표와 궤적을 묻는 질문 앞에서 때때로 불안해진다.”(73~74쪽)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에 연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연구자들이 자신의 지적 좌표와 궤적을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연구자의 탄생』은 동시대 젊은 인문사회 연구자들에게 연구란 무엇인지 묻고 인문·사회과학 ‘연구’와 ‘연구자’를 재정의해보려는 책이 되었다. 문화연구, 국문학, 사회학, 여성학, 인류학, 영문학 등 다양한 전공과 관심사를 가진 연구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에 대한 답변과 새로운 질문들을 들려주었다. 이 책은 2000년대 이후 ‘분과학문’ 또는 ‘학계’ 안팎을 오가며 연구자로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와 시민들과의 연결을 놓지 않는 지식 생산이 어떻게 가능한지 되묻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연구자이자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를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인 천주희의 「나는 내일도 연구자이고 싶다」는 이 책의 서문 역할을 한다. “한 명의 연구자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경제적 자원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이 글은 청년연구자이자 프리랜서 연구자로 활동한 자신의 경험을 하나의 사례로 제시하며 연구자들이 직면한 물적 조건을 살핀다. 암묵지인 동시에 민감한 주제인 대학원생과 연구자의 재생산 문제를 제기하면서, 연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며 연구란 무엇인가에 대한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아간다. 또한 일반적으로 사회적 지식을 생산하는 주요 장이라고 여겨지는 언론계, 출판계, 학계를 기자, 작가, 유학생으로 경험한 안은별은 「이동 중에, 글쓰기의 자리에 대한 생각들」에서 자신의 연구 주제인 ‘이동’을 키워드로, 일본에서 공부한다는 것, 학계에 속한 지식 생산자로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앞의 두 편이 작가-연구자의 이야기라면, 다음 두 편은 비평가-연구자들의 이야기이다. 2010년대의 페미니즘 문학비평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 오혜진은 「불투명한 언어로 말하기」에서 국어국문학과를 중심으로 2000년대 이후 학술장과 한국사회의 변화를 개괄하며, 소수자정치에 관한 자신의 비평적 문제의식이 어떻게 벼리어졌는지를 들려준다. 한편, 비평가이자 한국사회의 감정을 사회적 맥락과 엮어 고찰하는 감정사회학 연구자인 김신식은 「그것: 감정사회학, 내 삶의 가망이 되다」에서 이러한 작업을 하게 된 계기를 좀 더 내밀하고 개인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이 글은 자기 자신의 문제, 특히 목회자 가정에서 자란 경험과 연결해 연구의 여정을 서술한다.
코로나19가 강화시킨 디지털 환경 속에서,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으로도 활동 중인 윤보라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이자 시네-미디어 기억 연구자인 배주연의 글은 각각 디지털 공간과 페미니즘 연구, 그리고 영화와 페미니즘·기억 연구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톺아본다. 윤보라의 「몸 없는 공간의 젠더를 연구하기 위해」가 1990년대의 시대적 공기에 예민했던 십대가 인터넷과 페미니즘을 두 축으로 삼아 촛불집회와 온라인 외모관리 커뮤니티, 스마트폰, 일베·메갈리아, n번방 등의 사건을 거치면서 그것들을 연구 과제로 삼아 추적해온 과정을 담아냈다면, 배주연의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는 학생운동을 하며 소설을 쓰던 수학과 대학생이 어떻게 영화이론을 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그동안 영화를 둘러싼 매체·문화 환경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와 겹쳐놓는다.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인 이승철과 하와이대 사회학과 교수인 양명지의 글은 각각 인류학·경제학·사회학, 정치학·역사학·사회학을 오가며 한국사회를 분석해온 두 “사회과학자”들의 작업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관한 기록이다. 이승철의 「무너지는 사물, 부유하는 말」은 현재 한국사회의 변화를 설명할 “좌표와 분석틀의 부재”, “말과 사물의 위기에서 촉발된 혼란스러움”을 지적하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기획으로서 사회적 경제와 사회혁신, 금융화와 투자자 주체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양명지의 「박정희 시대의 유산으로부터」는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 현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탐구로서 중산층의 형성과 태극기부대의 극우정치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해외에서 한국사회를 연구한다는 것의 의미를 덧붙인다.
한편, 미국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며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문학에 접근하는 김성익은 「언어의 감옥 내 수감자와 탈옥수」에서 자연과학이 생산해내는 지식이 지배적인 시대에 인문학의 자리를 묻는다. 어떻게 한국사회에서 자연과학이 인문학의 공백을 채웠는지, 왜 미국 학계와 달리 한국에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분리되어 있었는지를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이론과 문화사회학을 전공하는 김정환의 「사회에 대해 말하지 않기, 보는 나를 보기」는 이 책을 닫는 글 역할을 한다. 지방 교대에서 학생들에게 사회학을 가르쳤던 경험에서 출발하는 이 글은 왜 그토록 공론장에서 많은 말들, 심지어 “선의”와 “이상적인 지론”이 오가지만 사회는 변하지 않는지 되물으며, 지식 생산은 ‘연구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학생과 일반 시민들에게도 해당되는 일이고, 그것은 “곧 자기변환의 실천”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언어와 관점의 발명, 그리고 자기변환의 실천까지
다시, 인문사회 연구란 무엇인가
다양한 위치와 전공의 연구자들이 쓴 책이지만, 『연구자의 탄생』은 자연스럽게 2000년대 이후의 풍경을 펼쳐놓으며, 지난 20여 년간 한국사회의 변화를 그려낸다. 학술장의 문제는 물론, 청년운동, 독립출판, 여행(이동), 페미니즘, 소수자정치, ‘감정’의 부상, 종교, 힐링, 스마트폰, 인터넷, n번방, 영화, 기억정치, 사회적 경제, 사회혁신, 금융화와 투자자, 중산층, 태극기부대, 여러 번의 촛불집회, 과학의 대중화, 비판담론의 포화 상태와 변하지 않는 세계 등 새롭게 등장한 과제들과 여전히 해묵은 문제들, 그리고 다른 모색과 실천의 시도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토록 다양한 연구자들은, 연구란 무엇이며 왜 연구자가 되었는지에 대해 놀랍게도 비슷한 대답을 들려준다. “공부란, 내 주변에 산재한 죽음과 불평등과 배제, 소외, 부조리함을 어떻게 해석하고 또 바꿔나가야 할지 삶과 생존을 위한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하는 매개”(12쪽)이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언어와 관점을 찾는 것이었다. 불안정하고 기이한 삶에서 시작된 궁금증과 질문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했던 마음이 매일 켜켜이 쌓여서 나는 공부하고 책 읽고 연구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13쪽)라는 천주희의 이야기는 “모든 사태를 ‘퇴행’, ‘백래시’, ‘반지성주의’ 같은 말로 일축하는 것은 손쉬운 현실도피이자 연구자의 직무유기 아닐까”, “지금 긴요한 것은, 내가 속한 ‘현재’를 이미 규범화·질서화된 가치를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문제계로서 새롭게 구성·재현하기 위한 관점과 언어다”(82~83쪽)라는 오혜진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다시 “부유하는 원한과 분노는 언젠가 자신의 언어와 대상을 찾아내기 마련입니다. 그때 사람들이 찾아내는 언어와 이름이 극우 포퓰리즘이나 종교 근본주의, 금융시장의 니힐리즘이 아닌 새로운 급진적 보편성의 정치가 될 수 있을까요?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서, 우리는 대안적 언어와 장치들을 벼리는 작업을 해낼 수 있을까요?”(207쪽)라는 이승철의 이야기와 공명한다. 이들은 인문·사회과학을 한다는 것이 새로운 관점, 언어, 담론을 생산하는 작업임을 강조한다. 동시에, 지식을 생산한다는 것은 “사회를 분석하고 비판하고 계몽하려는 의지들”에 그쳐서는 안 되고, “사회에 대해 말하거나 사회에 대해 쓰기를 멈추고서 나를 봄으로써 동시에 사회를 보는 것”(286쪽)이기를 바라는 김정환의 이야기는 앎과 실천이라는 해묵은 말들을 새롭게 갱신해내는데, 사실상 이 책에 실린 모든 글들의 숨은 전제일 것이다.
물론 『연구자의 탄생』은 한계가 뚜렷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연구자들은 ‘나’의 자리로부터 동시대를 사유하고 세상을 정확히, 또는 다르게 읽어내는 언어와 관점을 모색하고 있지만, 당연히 이들이 인문사회 연구 생태계를 대표할 순 없다. 철학, 역사학, 심리학 분야, 또는 서울 아닌 곳의 대학원생이나 유럽 대학의 유학생처럼 누락된 이야기들이 더 많다. 그럼에도, 바로 그렇기에 이 책은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또 다른 공동의 이야기들을 촉발해내는 일종의 발제문이자,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인문사회 연구를 한다는 것, 그리고 지식을 생산한다는 것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는 장을 여는 초대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책이 되기를 희망한다.
목차
나는 내일도 연구자이고 싶다 _천주희
이동 중에, 글쓰기의 자리에 대한 생각들 _안은별
불투명한 언어로 말하기: 포스트페미니즘 시대의 소수자정치와 재현 _오혜진
그것: 감정사회학, 내 삶의 가망이 되다 _김신식
몸 없는 공간의 젠더를 연구하기 위해 _윤보라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 _배주연
무너지는 사물, 부유하는 말 _이승철
박정희 시대의 유산으로부터: 해외에서 한국을 연구하는 정치사회학자의 소고 _양명지
언어의 감옥 내 수감자와 탈옥수: 곰, 호랑이, 인간, 그리고 자동기계 _김성익
사회에 대해 말하지 않기, 보는 나를 보기 _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