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
이용 가능 (1) |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00021267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21267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지금 전 세계는 뉴턴적 명료성의 세계에서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모두가 하이젠베르크적 불확정성의 원리로 뒤바뀌는 모호성의 세계로 전환되고 있다.
우리는 근대에서 탈근대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근대에서 제2차 근대성 또는 성찰적 근대화로 이행하고 있다.
‘난 알아요’에서 ‘88만원 세대’ 또는 쓰레기가 되는 삶으로
1990년대 한국 사회에는 신세대가 등장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거대 담론과는 거의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은 ‘난 알아요’와 ‘교실 이데아’ 등 이전 세대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체제를 부정하며 ‘신세대, 네 멋대로 하라’는 말을 슬로건 삼아 자유와 개인의 천국을 즐기는 듯했다. 그리하여 한쪽에서는 압구정 ‘오렌지족’이라는 비아냥 어린 세대 규정도 있었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흐른 지금 이제 ‘네 멋대로’ 하던 신세대는 ‘88만원 세대’가 되었으며, ‘오렌지족’은 자칫 쓰레기가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될 형편이다. 성의 자유로움은 결혼 연령의 고령화와 세계 최고의 급속한 저출산율로 뒤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대중문화 또한 ‘소녀 시대’라는 말대로 무성화(無性化)되거나 소년 아이돌 그룹 식으로 중성화되고 있다.
도대체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에는 아니 전 지구적으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복지 국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왜 구세대는 젊은이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혀를 끌끌 차고 젊은이들은 88만원 세대라는 말로 자기를 비하할까? 우리는 과연 이처럼 복합적이고 정신이 어질어질한 세계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동안 지난 20년 동안의 변화를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해온 이론적 거대 패러다임은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거대한 것에서 작고 미시적인 것으로의 전환으로 요약될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회주의의 붕괴를 모더니즘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으로 보면서 탈근대 사회의 도래를 예측했다. 하지만 막상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는 9·11테러라는 구식 전쟁과 금융 위기라는 지독히 모던한 위기에 의해 순식간에 환상에서 악몽으로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하이테크 전쟁은 아프간의 고 산맥지대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의 전투’와 치열한 테러와의 전쟁을 치루고 있으며 가장 포스트모던한 도시 중의 하나인 뉴욕은 ‘금융 위기’에 언제든지 휘청거릴 수 있음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지금의 어떤 이론도, 어떤 철학도 이처럼 역설적이고 복합적인 세계의 모습을 곡진하게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일찍이 서구가 ― 실제로는 무너져가고 있던 ― ‘복지국가의 단꿈’에 잔뜩 사로잡혀 있을 때 근대 사회가 실제로는 위험사회라는 휴화산 위에 서 있다는 충격적인 명제를 제출해 서구 지성계에 큰 충격을 준 울리히 벡의 새로운 세계 진단을 경청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근대적 주체의 죽음’을 주창한 프랑스 철학을 배경에 깔고 미국에서 제조된 포스트모더니즘이 전 세계에 맹위를 떨칠 때도 그러한 주류에 맞서 세계위험사회, 제2차근대성, (개인주의가 아니라) 개인화라는 독창적인 명제를 통해 우리 문명의 심층을 가장 내밀히 진단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말하는 대로 근대적 주체는 ‘죽은 것’이 아니라 ‘개인주의’를 넘어 ‘개인화’를 강요받고 있다는 독특한 명제를 제출하고 있다. 즉 전근대 사회의 공동체의 붕괴에 뒤이은 개인주의는 지금 기러기 가족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가족의 해체와 함께 ‘내 멋대로 하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개인화라는 고통스런 선택의 모호성 속으로 모든 사람을 매 순간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주의는 공동체와 국가 등의 대립 개념이었으나 이제 ‘개인화’는 그러한 개인주의와는 완전히 구분된다. WHO에서 21세기 인류 최대의 질병이 심장병에 이어 우울증이 될 것이라고 진단하는 것도 아마 이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또 우리는 전 세계의 글로벌화와 함께 점점 더 지구촌이 하나로 통합되어 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지만 동시에 공항에서는 신체 투시기를 통과해야 하고 테러는 이제 낯선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이 되는 세계 전체가 위험사회화되는 것 또한 일상적으로 겪고 있다.
울리히 벡은 이것을 뉴튼적인 명료성의 세계가 하이젠베르크적인 모호성의 세계로 이행해가는 틀에서 거시적으로 조명하고 있는데, 이처럼 거시적이고 발랄한 그의 사유가 사방이 황사에 덮인 듯한 우리의 지식계에도 좋은 읽을 거리가 될 것이다.
일상의 문제에서 거대하지 않은 담론으로 ― 정치적인 것이 일상의 핵심으로/한국 사회에 대한 새로운 진단을 향하여
지난 2008년 봄에 방한한 울리히 벡 부부의 최근의 야심적인 생각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은 동시에 두 사람의 거시적인 이론을 한국 사회에 적용해보고 한국의 상황과 대화를 나눈 글들과 함께 어루러져 현실적·사상적으로 미로를 걷는 듯한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는 데도 여러 모로 시사적이다. 즉 이 책은 단순히 추상적인 거대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돌진적 근대화 이후 ‘모스트모던’ 사회로 향하는가 싶더니 IMF와 함께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지가 짙은 안개 속에 휩싸인 듯한 우리 사회의 나침반을 찾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의 독특한 문화 현상인 ‘기러기 가족’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가족 사회학 전공자인 벡 게른스하임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 이 지독히 한국적인 현상을 가족의 해체라고 보아야 할까 아니면 가족의 재구성이라고 보아야 할까? 두 사람은 이것을 전통과 가족을 넘어 개인까지 전부 해체시켜버리고 모든 사람에게 매순간순간마다 DIY(Do It Yourself)의 삶을 강요하고 있는 ‘개인화’의 틀 안에서 분석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러한 틀 안에서 볼 때야 비로소 하는데 청년들의 마마보이화, 펭귄 자식화 또는 소심화 등의 새로운 사회 현상들까지도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체제에 도전하던 1980년대 세대와 실제로는 세상은 너무나 무섭고 달랑 나 하나만 남은 88만원 세대의 차이는 역설적으로 이러한 ‘개인화’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벡 부분의 거대하지만 섬세한 담론은 그동안 우리가 ‘일을 하지 않는다’, ‘고생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불만 속에서 우려의 눈길로만 바라보았던 10~20대들을 보다 따듯하고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될 것이다. 이밖에도 도심 한가운데의 사찰에서 스님과 나는 대화 또한 종교화 현대적 지식의 고민과 관련해 여러모로 시사점을 주는 등 이 책은 그동안 너무 미시 세계에 갇혀 있던 우리 시야를 맑고 밝게 열어주는 전망창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근대에서 탈근대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근대에서 제2차 근대성 또는 성찰적 근대화로 이행하고 있다.
‘난 알아요’에서 ‘88만원 세대’ 또는 쓰레기가 되는 삶으로
1990년대 한국 사회에는 신세대가 등장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거대 담론과는 거의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은 ‘난 알아요’와 ‘교실 이데아’ 등 이전 세대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체제를 부정하며 ‘신세대, 네 멋대로 하라’는 말을 슬로건 삼아 자유와 개인의 천국을 즐기는 듯했다. 그리하여 한쪽에서는 압구정 ‘오렌지족’이라는 비아냥 어린 세대 규정도 있었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흐른 지금 이제 ‘네 멋대로’ 하던 신세대는 ‘88만원 세대’가 되었으며, ‘오렌지족’은 자칫 쓰레기가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될 형편이다. 성의 자유로움은 결혼 연령의 고령화와 세계 최고의 급속한 저출산율로 뒤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대중문화 또한 ‘소녀 시대’라는 말대로 무성화(無性化)되거나 소년 아이돌 그룹 식으로 중성화되고 있다.
도대체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에는 아니 전 지구적으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복지 국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왜 구세대는 젊은이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혀를 끌끌 차고 젊은이들은 88만원 세대라는 말로 자기를 비하할까? 우리는 과연 이처럼 복합적이고 정신이 어질어질한 세계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동안 지난 20년 동안의 변화를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해온 이론적 거대 패러다임은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거대한 것에서 작고 미시적인 것으로의 전환으로 요약될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회주의의 붕괴를 모더니즘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으로 보면서 탈근대 사회의 도래를 예측했다. 하지만 막상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는 9·11테러라는 구식 전쟁과 금융 위기라는 지독히 모던한 위기에 의해 순식간에 환상에서 악몽으로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하이테크 전쟁은 아프간의 고 산맥지대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의 전투’와 치열한 테러와의 전쟁을 치루고 있으며 가장 포스트모던한 도시 중의 하나인 뉴욕은 ‘금융 위기’에 언제든지 휘청거릴 수 있음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지금의 어떤 이론도, 어떤 철학도 이처럼 역설적이고 복합적인 세계의 모습을 곡진하게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일찍이 서구가 ― 실제로는 무너져가고 있던 ― ‘복지국가의 단꿈’에 잔뜩 사로잡혀 있을 때 근대 사회가 실제로는 위험사회라는 휴화산 위에 서 있다는 충격적인 명제를 제출해 서구 지성계에 큰 충격을 준 울리히 벡의 새로운 세계 진단을 경청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근대적 주체의 죽음’을 주창한 프랑스 철학을 배경에 깔고 미국에서 제조된 포스트모더니즘이 전 세계에 맹위를 떨칠 때도 그러한 주류에 맞서 세계위험사회, 제2차근대성, (개인주의가 아니라) 개인화라는 독창적인 명제를 통해 우리 문명의 심층을 가장 내밀히 진단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말하는 대로 근대적 주체는 ‘죽은 것’이 아니라 ‘개인주의’를 넘어 ‘개인화’를 강요받고 있다는 독특한 명제를 제출하고 있다. 즉 전근대 사회의 공동체의 붕괴에 뒤이은 개인주의는 지금 기러기 가족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가족의 해체와 함께 ‘내 멋대로 하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개인화라는 고통스런 선택의 모호성 속으로 모든 사람을 매 순간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주의는 공동체와 국가 등의 대립 개념이었으나 이제 ‘개인화’는 그러한 개인주의와는 완전히 구분된다. WHO에서 21세기 인류 최대의 질병이 심장병에 이어 우울증이 될 것이라고 진단하는 것도 아마 이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또 우리는 전 세계의 글로벌화와 함께 점점 더 지구촌이 하나로 통합되어 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지만 동시에 공항에서는 신체 투시기를 통과해야 하고 테러는 이제 낯선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이 되는 세계 전체가 위험사회화되는 것 또한 일상적으로 겪고 있다.
울리히 벡은 이것을 뉴튼적인 명료성의 세계가 하이젠베르크적인 모호성의 세계로 이행해가는 틀에서 거시적으로 조명하고 있는데, 이처럼 거시적이고 발랄한 그의 사유가 사방이 황사에 덮인 듯한 우리의 지식계에도 좋은 읽을 거리가 될 것이다.
일상의 문제에서 거대하지 않은 담론으로 ― 정치적인 것이 일상의 핵심으로/한국 사회에 대한 새로운 진단을 향하여
지난 2008년 봄에 방한한 울리히 벡 부부의 최근의 야심적인 생각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은 동시에 두 사람의 거시적인 이론을 한국 사회에 적용해보고 한국의 상황과 대화를 나눈 글들과 함께 어루러져 현실적·사상적으로 미로를 걷는 듯한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는 데도 여러 모로 시사적이다. 즉 이 책은 단순히 추상적인 거대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돌진적 근대화 이후 ‘모스트모던’ 사회로 향하는가 싶더니 IMF와 함께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지가 짙은 안개 속에 휩싸인 듯한 우리 사회의 나침반을 찾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의 독특한 문화 현상인 ‘기러기 가족’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가족 사회학 전공자인 벡 게른스하임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 이 지독히 한국적인 현상을 가족의 해체라고 보아야 할까 아니면 가족의 재구성이라고 보아야 할까? 두 사람은 이것을 전통과 가족을 넘어 개인까지 전부 해체시켜버리고 모든 사람에게 매순간순간마다 DIY(Do It Yourself)의 삶을 강요하고 있는 ‘개인화’의 틀 안에서 분석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러한 틀 안에서 볼 때야 비로소 하는데 청년들의 마마보이화, 펭귄 자식화 또는 소심화 등의 새로운 사회 현상들까지도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체제에 도전하던 1980년대 세대와 실제로는 세상은 너무나 무섭고 달랑 나 하나만 남은 88만원 세대의 차이는 역설적으로 이러한 ‘개인화’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벡 부분의 거대하지만 섬세한 담론은 그동안 우리가 ‘일을 하지 않는다’, ‘고생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불만 속에서 우려의 눈길로만 바라보았던 10~20대들을 보다 따듯하고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될 것이다. 이밖에도 도심 한가운데의 사찰에서 스님과 나는 대화 또한 종교화 현대적 지식의 고민과 관련해 여러모로 시사점을 주는 등 이 책은 그동안 너무 미시 세계에 갇혀 있던 우리 시야를 맑고 밝게 열어주는 전망창이 될 것이다.
목차
책을 펴내며
편자 서문
감사의 말
제1부 위험에 처한 세계와 코스모폴리탄 정치
1. 위험에 처한 세계 - 비판이론의 새로운 과제
2. 새로운 세계시민주의의 등장
3. 세계위험사회에서 살아가기
4. 위험사회 분석과 비판이론
제2부 21세기 가족의 미래
1. 가족 이후의 가족, 오늘날의 가족생활
2. 누가 누구와 결혼하는가?
3. 한국의 국제결혼 - 추세, 이슈, 적응문제
제3부 대담
1. 위험사회가 여는 코스모폴리탄 전망 - 새로운 사회학적 상상력
2. 울리히 벡과 김대중 전대통령의 대화
3. 울리히 벡과 서울 봉은사 명진 스님과의 대화
4. 울리히 벡과 한국 시민사회 지도자와의 대화
<부록>
중앙일보와의 인터뷰_미국, 9ㆍ11테러 직후 세계주의 확산시킬 좋은 기회 놓쳤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_한국은 아주 특별하게 위험한 사회다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_대운하 갈등, 한국사회 근대화 성찰의 계기 되길
참고문헌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