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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00021676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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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1986년 『위험사회』 출간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좀 더 '글로벌화'한 위험사회
지난 1986년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 / 국역본 새물결출판사 刊, 1999)를 발표하여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울리히 벡(Ulrich Beck, 1944~ )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 '위험사회론'이 아직도 우리 삶 도처에서 유용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그것이 더욱 더 '글로벌화'함을 역설한 신작을 발표(2007)했다. 이번 책은 바로 한국어판 번역본이다.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남에 따라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위험사회』― 이 책은 전 세계 3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5년여 동안 6만여 부가 판매되는, 학술서치고는 상당한 반향을 불러왔다 ―는 우리에게 "궁핍은 계급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라는 유명한 경구를 남김으로써, 이미 현대적 리스크의 글로벌 성격을 강조한 바 있다. 그렇다면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디에 와 있으며, '위험사회' 담론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벌써 이 책은 1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위험사회'에 대한 논의가 좀 더 글로벌화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 인류문명 자체가 낳은 '위험사회' ― 피할 수 없는 '뜨거운 감자'!
저자가 보기에 근대와 함께 시작되었고 현대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미래사회의 근본 성격을 결정짓는 핵심적 성격이 다름 아닌 '위험'이다. 이 위험에는 기아와 전염병, 지진과 화산 폭발 등 자연재해로부터 발생하는 '외부적 위험'과 기후변화, 금융위기, 테러리즘같이 인류문명이 산출해낸 '내재적 위험'으로 세분화되는데, 각별히 저자는 '내재적 위험'을 지칭할 때 '리스크'(독일어로 Risiko, 영어로는 Risk)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현대사회는 바로 이 지점에서 근본적으로 위험사회, 즉 리스크 사회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왜 그럴까? 현대사회, 즉 과학기술과 산업문명이 발달할수록 '위험'은 감소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우리가 철석같이 믿었던 '현대화(또는 근대화)'의 논리인데, 실상은 그 반대로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들은 바로 그 현대화의 부작용들로부터 야기된 것들이라고 본다.
오늘날 지구상의 동식물과 인류의 생명, 생존을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위협하는 위험들은 바로 "현대화의 위험들"이다. 그것은 현대화 과정에서 산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화를 위해 우리 ―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 가 감수한 위험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의 위험은 우리가 모르는 자연의 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류문명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이 책 『글로벌 위험사회』에서는 이런 '위험사회론'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좀 더 심화되고 글로벌화한 차원에서 인류가 처한 '위험'에 대해 논증하고 있다.
2009년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가 보여준 역설 ― 과연 누가 리스크를 생산하고 결정하는가
울리히 벡은 한편으로 현대문명의 리스크를 통제하는 것이 점점 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한편으로 글로벌 리스크는 점점 더 글로벌화되어 그것을 개별 국가의 틀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부작용을 해결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워진다. 왜 그럴까? 벡은 이 현대문명의 역설을 위험사회 개념으로 설명한다. "리스크의 의미론은 지금 논의되는 미래의 위험과 연관되는데, 이 위험은 종종 문명의 성공에서 비롯된다." 현대문명의 위험은 실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성공에서 오기 때문에 현대 과학과 기술의 리스크를 통제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글로벌화'한 위험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사실 위험사회를 결정하는 것은 위험이 많고 적은 정도가 아니라 위험의 '판단'이다. 최근 전 세계 문제의 핵심 주제로 떠오른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저자의 논리에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기후변화에 책임이 가장 적은 사람들이 최대 피해자가 된다는 뼈아픈 역설을 생각하면, '리스크'를 생산하는 자와 결정하는 자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회피할 수 없다. 미국 한 나라가 전 세계 배출량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최상위 5개국인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인도, 일본이 절반 이상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로 야기된 기후변화의 결과는 민주적이지만 기후변화의 원인은 계급적임을 알 수 있다. 2009년, 이런 문제에 대해 전 세계가 모여 심각하게 논의한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COP15)가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는 '코펜하겐 합의'(Copenhagen Accord)를 상징적으로 채택하고 막을 내린 점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이 회의가 별다른 성과없이 끝나자 코펜하겐의 실패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때문이라는 일설은 바로 이산화탄소의 최대 배출국들이 전 세계 기후변화의 난국을 타개하려는 인류의 의지를 꺾은, 즉 리스크의 생산자가 결정자 역할까지 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결국 기후변화의 피해국들은 가난한 국가들이 감수해야 하는 구조로 내몰리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리스크의 생산과 정의가 국제관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임을 울리히 벡은 이 책에서 힘주어 말한다. 왜냐하면 리스크는 근본적으로 '결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리스크가 인류사만큼이나 오래된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대문명의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벡은 위험이 항상 인간의 실존조건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간단히 답한다. "리스크는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정의된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리스크를 정의하는가? 사회적 부(富)가 핵심 문제였던 근대사회에서는 부의 생산과 분배를 결정하는 것이 '생산관계'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리스크의 생산과 분배가 핵심 문제로 부상한 현대사회에서 이를 결정하는 것은 '정의관계'이다. 정의관계는 무엇이 리스크인지를 규정하고, 리스크를 판단할 수 있는 지식과 규범을 통제하며, 리스크의 분배를 결정하는 지배관계이다. "리스크의 현실성이 지식과 무지에 관해 결정을 내리는 규범에 따라 극적으로 과장되거나 극소화될 수도 있고 다른 형태로 변형되거나 단순히 부정될 수 있기" 때문에 정의를 내리는 지배관계는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고 벡은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심각한 위험이 원인 생산자에게 해석의 독점권을 부여한다는 것이 글로벌 위험사회의 정치적 역설이다. 선진국 과학자들이 오존구멍과 조류인플루엔자, 미세먼지,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면, 이러한 지식을 연출 형태로 전달받은 다른 나라들은 아무런 대책없이 따라가는 상황이 이를 보여준다.
글로벌 리스크와 세계시민주의의 가능성, 그리고 "계몽의 기능"
현대문명이 산출한 여러 문제가 더 이상 국민국가의 틀 안에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오늘날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글로벌리즘이 현대사회를 성찰하는데 출발점이자 핵심적 전제조건이다. 그렇다면 과연 글로벌 리스크는 세계시민주의를 가져올 수 있는가? 글로벌 리스크가 현대문명이 낳은 심각한 부작용에 관한 사회학적 현실 인식이라면, 세계시민주의는 위험조건에서 어떻게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지를 다루는 정치적-윤리적 성찰이다. 우리가 현실적인 세계시민주의의 비전을 제시하려면, 세계화가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세계시민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필연적으로' 전제되어야만 한다. 글로벌 리스크의 정의와 생산, 분배에서 새로운 불평등과 양극화가 발생한다는 것은 세계시민주의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고, 글로벌 리스크가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평등하게 위협한다는 것은 세계주의적 계기이다.
저자는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이러한 세계주의의 가능성을 본다. 많은 사람들은 인류의 멸망이라는 파국을 가능한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지만, 글로벌 리스크는 우리가 예견하지 못한 것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벡에 의하면 글로벌 리스크에 대한 반응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부정" "무감각" "변형"이다. 벡이 선호하는 세 번째 반응인 "변형"은 글로벌 리스크가 초래한 충격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세계주의적 태도이다. 그것은 글로벌 리스크가 현대문명의 비의도적 부작용인 것처럼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시작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벡은 글로벌 리스크가 "계몽의 기능"을 갖는다고 확신한다. 좀더 진전된, 즉 프랑크푸르트학파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성찰적 현대화에 대한 담론은 그런 점에서 아직도 유효한 대안 담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1986년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 / 국역본 새물결출판사 刊, 1999)를 발표하여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울리히 벡(Ulrich Beck, 1944~ )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 '위험사회론'이 아직도 우리 삶 도처에서 유용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그것이 더욱 더 '글로벌화'함을 역설한 신작을 발표(2007)했다. 이번 책은 바로 한국어판 번역본이다.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남에 따라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위험사회』― 이 책은 전 세계 3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5년여 동안 6만여 부가 판매되는, 학술서치고는 상당한 반향을 불러왔다 ―는 우리에게 "궁핍은 계급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라는 유명한 경구를 남김으로써, 이미 현대적 리스크의 글로벌 성격을 강조한 바 있다. 그렇다면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디에 와 있으며, '위험사회' 담론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벌써 이 책은 1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위험사회'에 대한 논의가 좀 더 글로벌화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 인류문명 자체가 낳은 '위험사회' ― 피할 수 없는 '뜨거운 감자'!
저자가 보기에 근대와 함께 시작되었고 현대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미래사회의 근본 성격을 결정짓는 핵심적 성격이 다름 아닌 '위험'이다. 이 위험에는 기아와 전염병, 지진과 화산 폭발 등 자연재해로부터 발생하는 '외부적 위험'과 기후변화, 금융위기, 테러리즘같이 인류문명이 산출해낸 '내재적 위험'으로 세분화되는데, 각별히 저자는 '내재적 위험'을 지칭할 때 '리스크'(독일어로 Risiko, 영어로는 Risk)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현대사회는 바로 이 지점에서 근본적으로 위험사회, 즉 리스크 사회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왜 그럴까? 현대사회, 즉 과학기술과 산업문명이 발달할수록 '위험'은 감소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우리가 철석같이 믿었던 '현대화(또는 근대화)'의 논리인데, 실상은 그 반대로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들은 바로 그 현대화의 부작용들로부터 야기된 것들이라고 본다.
오늘날 지구상의 동식물과 인류의 생명, 생존을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위협하는 위험들은 바로 "현대화의 위험들"이다. 그것은 현대화 과정에서 산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화를 위해 우리 ―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 가 감수한 위험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의 위험은 우리가 모르는 자연의 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류문명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이 책 『글로벌 위험사회』에서는 이런 '위험사회론'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좀 더 심화되고 글로벌화한 차원에서 인류가 처한 '위험'에 대해 논증하고 있다.
2009년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가 보여준 역설 ― 과연 누가 리스크를 생산하고 결정하는가
울리히 벡은 한편으로 현대문명의 리스크를 통제하는 것이 점점 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한편으로 글로벌 리스크는 점점 더 글로벌화되어 그것을 개별 국가의 틀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부작용을 해결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워진다. 왜 그럴까? 벡은 이 현대문명의 역설을 위험사회 개념으로 설명한다. "리스크의 의미론은 지금 논의되는 미래의 위험과 연관되는데, 이 위험은 종종 문명의 성공에서 비롯된다." 현대문명의 위험은 실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성공에서 오기 때문에 현대 과학과 기술의 리스크를 통제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글로벌화'한 위험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사실 위험사회를 결정하는 것은 위험이 많고 적은 정도가 아니라 위험의 '판단'이다. 최근 전 세계 문제의 핵심 주제로 떠오른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저자의 논리에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기후변화에 책임이 가장 적은 사람들이 최대 피해자가 된다는 뼈아픈 역설을 생각하면, '리스크'를 생산하는 자와 결정하는 자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회피할 수 없다. 미국 한 나라가 전 세계 배출량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최상위 5개국인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인도, 일본이 절반 이상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로 야기된 기후변화의 결과는 민주적이지만 기후변화의 원인은 계급적임을 알 수 있다. 2009년, 이런 문제에 대해 전 세계가 모여 심각하게 논의한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COP15)가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는 '코펜하겐 합의'(Copenhagen Accord)를 상징적으로 채택하고 막을 내린 점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이 회의가 별다른 성과없이 끝나자 코펜하겐의 실패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때문이라는 일설은 바로 이산화탄소의 최대 배출국들이 전 세계 기후변화의 난국을 타개하려는 인류의 의지를 꺾은, 즉 리스크의 생산자가 결정자 역할까지 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결국 기후변화의 피해국들은 가난한 국가들이 감수해야 하는 구조로 내몰리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리스크의 생산과 정의가 국제관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임을 울리히 벡은 이 책에서 힘주어 말한다. 왜냐하면 리스크는 근본적으로 '결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리스크가 인류사만큼이나 오래된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대문명의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벡은 위험이 항상 인간의 실존조건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간단히 답한다. "리스크는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정의된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리스크를 정의하는가? 사회적 부(富)가 핵심 문제였던 근대사회에서는 부의 생산과 분배를 결정하는 것이 '생산관계'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리스크의 생산과 분배가 핵심 문제로 부상한 현대사회에서 이를 결정하는 것은 '정의관계'이다. 정의관계는 무엇이 리스크인지를 규정하고, 리스크를 판단할 수 있는 지식과 규범을 통제하며, 리스크의 분배를 결정하는 지배관계이다. "리스크의 현실성이 지식과 무지에 관해 결정을 내리는 규범에 따라 극적으로 과장되거나 극소화될 수도 있고 다른 형태로 변형되거나 단순히 부정될 수 있기" 때문에 정의를 내리는 지배관계는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고 벡은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심각한 위험이 원인 생산자에게 해석의 독점권을 부여한다는 것이 글로벌 위험사회의 정치적 역설이다. 선진국 과학자들이 오존구멍과 조류인플루엔자, 미세먼지,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면, 이러한 지식을 연출 형태로 전달받은 다른 나라들은 아무런 대책없이 따라가는 상황이 이를 보여준다.
글로벌 리스크와 세계시민주의의 가능성, 그리고 "계몽의 기능"
현대문명이 산출한 여러 문제가 더 이상 국민국가의 틀 안에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오늘날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글로벌리즘이 현대사회를 성찰하는데 출발점이자 핵심적 전제조건이다. 그렇다면 과연 글로벌 리스크는 세계시민주의를 가져올 수 있는가? 글로벌 리스크가 현대문명이 낳은 심각한 부작용에 관한 사회학적 현실 인식이라면, 세계시민주의는 위험조건에서 어떻게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지를 다루는 정치적-윤리적 성찰이다. 우리가 현실적인 세계시민주의의 비전을 제시하려면, 세계화가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세계시민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필연적으로' 전제되어야만 한다. 글로벌 리스크의 정의와 생산, 분배에서 새로운 불평등과 양극화가 발생한다는 것은 세계시민주의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고, 글로벌 리스크가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평등하게 위협한다는 것은 세계주의적 계기이다.
저자는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이러한 세계주의의 가능성을 본다. 많은 사람들은 인류의 멸망이라는 파국을 가능한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지만, 글로벌 리스크는 우리가 예견하지 못한 것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벡에 의하면 글로벌 리스크에 대한 반응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부정" "무감각" "변형"이다. 벡이 선호하는 세 번째 반응인 "변형"은 글로벌 리스크가 초래한 충격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세계주의적 태도이다. 그것은 글로벌 리스크가 현대문명의 비의도적 부작용인 것처럼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시작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벡은 글로벌 리스크가 "계몽의 기능"을 갖는다고 확신한다. 좀더 진전된, 즉 프랑크푸르트학파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성찰적 현대화에 대한 담론은 그런 점에서 아직도 유효한 대안 담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목차
차 례
제1장 서론: 글로벌 리스크 연출 13
제2장 개념 정의관계는 지배관계이다: 누가 무엇이 리스크인지 결정하는가
제3장 글로벌 위험사회의 '세계주의적 계기' 또는 강요된 계몽
제4장 리스크 문화의 충돌 또는 정상 상태와 비상사태의 중첩
제5장 세계여론과 글로벌 하위 정치 또는 기후재앙은 얼마나 현실적인가
제6장 예방국가 또는 직선적 진보비관주의의 진부성에 관해
제7장 지식 또는 무지: '성찰적 현대화'의 두 관점
제8장 보험원칙: 비판과 반비판
제9장 체감 전쟁, 체감 평화: 폭력 연출
제10장 글로벌 불평등과 지역적 취약성: 생태학적 위험의 갈등역학은 방법론적 세계주 의의 틀 안에서만 이해되고 연구될 수 있다
제11장 글로벌 위험사회의 비판이론
해제: '글로벌 리스크'는 우리를 계몽할 수 있는가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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