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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육체의 탄생: 몸 그 안에 새겨진 근대의 자국

저자
이영아
발행사항
서울: 민음사, 2008
형태사항
356p. : 삽화, 23cm
서지주기
부록(주요 신소설의 서지 사항) 수록하고 있음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00021689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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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번호
    00021689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무시당하고 홀대 받던 육체,
근대와 만나 다시 태어나다!!

웰빙, 다이어트 열풍의 기원을 찾아,
100년 전 조선으로 간다!


아름답고 건강한 몸을 가지고자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 ‘어떤 몸을 가졌는가’가 그 개인의 능력과 지위, 나아가 품성까지 규정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니 웰빙 열풍이나 다이어트 중독, 건강 염려증, 성형 중독이 유행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한때는 ‘신체발부수지부모’라 하여 몸에 손을 대는 것은 물론 건강이나 몸매에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일로 치부되던 시절이 있었으니, 오랜 역사 속에서 육체는 은밀하거나 하찮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부터 육체란 것이 이렇게 중요해졌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 30대 여성 학자가 개화기 조선 사회 곳곳을 누볐다. 이 책은 그 흥미진진한 여정의 결과물이다.

★ ‘육체에 사로잡혀 있던 나’로부터 출발한 연구

지금은 얼짱, 몸짱이라는 말이 어느 세대에게도 낯설지 않은 시대, 아름다운 육체가 곧 자본이 되는 시대다. 연예인의 쌩얼이나 학창 시절 사진을 (성형 수술을 받았다고 추정되는) 현재 모습과 비교하며 타인의 육체에 대한 평가를 일상적으로 즐기는 희한한 풍토까지 만연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젊은 여성들, 아니 모든 국민들이 다이어트와 운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과 그러나 현재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작게는 쌍꺼풀 수술부터 안면 윤곽 교정, 지방 흡입, 근육 퇴축술, 전신 성형까지도 두려움을 무릅쓰고 감행하는 경우가 흔해졌다.
성형 수술을 했다는 사람들을 두고 은연중에 비난 아닌 비난을 퍼부으면서도, 나도 손봐야 될 부분이 있지는 않은가 자신의 얼굴이며 몸매를 꼼꼼히 뜯어보는 것은 결국 온 사회가 개인의 육체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지대한 관심을 쏟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심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언제부터 사람들은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생김새로 개인의 품성을 규정하고, ‘체력이 국력’이라 믿으며, ‘몸짱’이 최고의 목표인 삶을 살게 된 것일까.
여기 30대 초반의 한 여성 연구자가 있다. 그녀는 “한시도 다이어트나 미용에 대한 관심을 끊지 못하고, 건강 염려증에 사로잡혀 의학 관련 기사나 지식에 휘둘리곤” 했다. 누가 딱히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항상 근면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나이를 먹어 갈수록 결혼이나 출산 문제를 염려”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고민이 시작됐다. “왜 나는 몸을 통해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몸에 의해, 몸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 그런 고민들 속에서 이 책의 테마 ‘육체의 탄생’이 탄생했다.

나를 비롯한 우리가 이토록 ‘몸속에 갇혀’ 살고 있는 이유를 찾기 위해 그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는 일, 그것이 이 글이 목표로 삼은 것이다.―이영아(「들어가며」 중에서)

1976년생인 저자는 국문학을 전공했다. 스스로 고백하길 “항상 좀 ‘늦된’ 인간이었던” 저자는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면서도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완전히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자리를 마치고 귀가를 하던 중, 한 선배가 던진 짧은 말 한 마디에서부터 시작해, ‘학문을 한다는 것’과 ‘이영아가 학문을 한다는 것’에 대해 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선배가 던진 말은 이것이었다. “학문을 한다는 건 자기모순을 해결해 간다는 거야.” 저자 이영아가 두려움을 이기고 직면한 ‘그녀의 자기모순’은 ‘육체의 문제로부터 유난히 자유롭지 못한 자신’이었다.
그렇게 해서 쓰기 시작한 것이 바로 논문 「신소설에 나타난 육체 인식과 형상화 방식 연구」였다. 저자는 이 논문으로 2005년 채 서른도 되지 않은 기록적인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는 한 연구자가 그만큼 자신의 연구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고, 그런 만큼 당연한 결과였다. 그 후에도 저자의 관심은 ‘근대의 몸’에 관한 담론 및 문화 연구에 집중되었고, 2007~2008년에는 태평양학술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여성의 ‘몸 가꾸기 프로젝트’ 담론의 변천 과정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책은 그 박사 논문을 바탕으로 해서, 자신의 고민을 국문학 연구자들만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바람을 더해 고심 끝에 내놓은 책이다. 상아탑 안에 갇힌 학문이 아닌 그 자신의 삶에서 출발한 탐구를 하고 싶다는,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연구와 글쓰기를 ‘신나게’ 하고 싶다”는 저자의 포부를 그녀의 첫 번째 저작 <육체의 탄생>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근대와 만나 새롭게 태어난 육체, 그 탄생의 현장 개화기 조선을 목격하다

이제는 권선징악이 아니라 권미(美)징추(醜)가 새로운 도덕률이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 누가, 왜 이토록 육체에 집착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은 우리가 육체의 존재를 처음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그 현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에서는 서양 문명과 제국주의를 맞닥뜨린 조선이 육체, 육체적인 것을 인식하고, 탐구하고, 관리하고, 욕망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저자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대중이 즐겨 읽던 신문, 잡지, 소설 등을 통해 이러한 흔적들을 살핀다.

● <육체의 탄생> 본문 맛보기

1 몸의 탄생
한때는 정신보다 덜 중요했고, 그저 은밀하거나 하찮은 것이었고, 딱히 가치를 지닌 것도 아니었던 몸이, 어느덧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죽은 듯 숨어 지내던 몸이 새로이 생명을 얻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한국 사회에서 몸이 이다지도 중요해진 것일까? 언제부터 그리고 어떻게? 그 균열의 지점을 찾아 개화기 조선 사회로 찾아간다.

2 몸 공부하기
몸이 중요해졌으니, 이제는 그 구석구석을 공부해야 할 차례다. 생김생김은 어떠하며, 병들고 상한 몸과 건강한 몸의 차이는 무엇이며, 이 몸을 제대로 ‘작동’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몸 공부하기는 의학에서부터 출발해, 근대의 지식 체계 속에서 새로운 위상을 얻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등장한 신종 학문들(박물학, 생리학, 위생학 등)은 몸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보자.

3 몸 관리하기
체력은 국력이고 건강한 육체라야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이제 건강은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개인의 몸을 관리해 줄 만큼. 그렇다면 개화기 그 시절에 ‘건강한 몸 만들기 실천 계획’은 어떤 강령들을 제시하고 있었을까. 학교, 군대, 가정 어디서나 권장되었던 체력 단련 및 생활습관 그리고 성생활에 관한 지침을 한번 구경해 보자.

4 몸 이야기하기
사회적으로 학술적으로 중요해진 몸이 문학에서라고 소홀히 다루어졌을 리 없다. 우리나라 근대 서사물의 시발점이었던 신소설 가운데 ‘몸’이 중요한 매개로 등장하지 않은 작품은 거의 없다. 문학이라는 허구의 세계 안에서 ‘이야기되는’ 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당시의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읽어 본다.

5 몸 욕망하기
‘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바로 ‘섹슈얼리티’다. 건강한 몸도 중요하지만 성적 매력이 넘치는 몸도 중요하다. 성은 사적인 것이고 은밀한 것이다. 근대에 들어 등장한 소설이라는 장르는 글쓰기라는 공적인 행위를 통해 사적인 것을 침범하는 예술이다. 그렇다면 개화기 신소설에서는 이 사적인 문제, ‘성적인 육체의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졌을까.

★ 조상과 후손을 위해 존재하던 몸에서 국가의 영달을 위해 존재하는 몸으로

18세기 조선 영조 때 마을 어귀 버드나무 가지에 목이 매달린 시체와 20세기 초 철로 위에서 기차에 치여 죽은 한 청년의 시체, 이 두 개의 장면으로부터 이 책은 시작된다. 18세기에 사망 사건이 일어나면, 유가족과 이웃들의 합의를 거쳐 사건이 관아에 보고되고, 그러면 사또가 서리들과 함께 사건 현장에 와서 검시를 시작한다. 반면 20세기에 들어서면 유가족이나 이웃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국가(경찰)가 바로 그 죽음에 개입하여 수사를 시작한다. 모든 사망은 국가의 관리 하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검시의 방법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18세기에는 사체의 색이나 부풀어 오름 등을 살펴 사인을 파악했던 반면, 20세기에는 해부의 방법이 동원된다. 몸을 가르고 헤집는 것이 금지되던 시대와 허용되던 시대의 차이다.

머리로부터 검사하여 시작할 때에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헤아리고 키가 크고 적음, 얼굴과 몸의 살색이 어떠함, 지육(脂肉: 피부)의 꺼지고 꺼지지 않았음, 두 손과 발이 펴진 채 곧게 있거나 혹 주먹 쥐며 굽음, 상투와 머리카락이 단단하며 느슨해졌음 혹 흩어지며 풀어짐 등을 살피며, 상투를 풀어 머리카락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재고, 두 눈을 떼어 열어 두 눈동자를 보고, 만일 상처가 있거든 어떤 곳에 상함이 몇 곳이 있는데 살갗이 까지고 피가 났거나 혹 살갗이 적게 상해서 피가 안 났거나 혹 푸르며 붉은 색이거나 혹 부었거나 혹 들뜬 살갗이 까졌거나 혹 뼈가 상했거나 상하지 않았다고 지정(指定)하여 길이와 넓이와 깊고 옅음, 둘레와 푸르며 붉으며 검붉으며 진하게 검음, 부은 부분의 분촌(分寸: 길이) 등을 재되 혹 손발이거나 혹 다른 물건이거나 혹 부딪히고 쓸리거나 은점한 곳에 속한다고 죽음에 이른 근본 원인을 정하여 잡으라.―<증수무원록> 권1, 23쪽

인간의 몸을 째고 갈라 그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 ‘죄악’이라는 사고를 털어버리고 부검을 도입한 시기, 바로 이 시기가 한국에서 몸에 대한 인식이 바뀐 시점이다. 더불어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조상과 부모와 자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몸과 마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고 몸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던 기존의 사고 체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서구 문명과 함께 사회진화론이 유입되면서 우등인종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가 제기되었고, 이를 위해 건강한 육체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효율적으로 통제되고 관리되는 몸은 곧 육체가 조상도 후손도 아닌 ‘나 자신’의 것임을 의미했다.
그러니 건강하고 효율적인 몸을 만들기 위해, 의학과 박물학, 생리학, 심리학, 교육학이 급속도로 발전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몸을 보다 분석적으로 이해하기 위함이었다. 몸이 새롭게 탄생함으로써 근대 학문의 체계가 바뀌게 된 것이다. 그간 철학으로만 다루어져 왔던 ‘몸’의 문제는 이제 과학 분야에서 더 활발히 다루어졌으며, 정치나 문화, 일상과도 깊숙한 연관을 맺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전통적인 의식이나 학문은 차츰 배제되어 갔다.(전통 한의학이 서구 의학에 자리를 내주게 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위생(衛生)’의 개념이 등장했고, 몸을 단련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공간인 군대와 학교에서 교육학과 생리학이 적극적으로 적용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당시의 위생이 오늘날의 용례보다 훨씬 더 넓은 외연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때의 학회지나 신문들을 살펴보면, 위생을 위해서는 운동, 목욕, 주변 청결에 주의해야 할 뿐 아니라, 일정한 시간에 규율을 정하고 업무에 종사해야 하며, 정신적 유쾌를 도모해 국가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위생은 인간 생활의 모든 부분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기치였다. 마찬가지로 학교와 군대에서도 운동의 필요성이 강조되었고, 질서와 규율에 복종하도록 구성원들을 훈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몸 특히 성욕에 대해서까지 통제, 관리가 가해졌다. 이는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우등한 인구의 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었다. 결국 개인의 몸은 조상으로부터는 벗어났으되, 근대 국가라는 더 크고 강력한 손아귀로 넘어갔던 것이다. 이러한 20세기 초의 ‘내 몸 사용설명서’는 ‘생체 정치’의 성격을 띠고 있던 근대의 몸 담론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

★ 1900년대 초의 신문, 잡지 그리고 신소설. 다채롭고 풍성한 사료가 보여 주는 ‘몸의 문화사’

정신 아래에 놓여 모른 척, 없는 척 무시당해 오던 육체가 근대와 만나면서 ‘새롭게 탄생’해 탐구, 관리되고 지금에 이른 과정을 따라가 보는 것은 곧 ‘몸의 문화사’를 연구하는 작업이다. 국문학자인 저자는 이 ‘문화사 연구’를 위해 1900년대 초의 신문과 잡지 그리고 신소설들을 사료로 사용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저자의 전공이 십분 활용된 신소설 사료들이다. 이 부분은 책의 4부와 5부, ‘몸 이야기하기’와 ‘몸 욕망하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혈의 누>, <귀의 성>, <고목화>, <빈상설>, <치악산>, <송뢰금>부터 시작해 <천연정>, <두견성>, <금국화>, <국의 향>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살펴보고 있는 신소설 작품의 목록은 무려 60여 개에 달한다.
근대에 들어 갑자기 중요해진 ‘몸’이 문학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리는 없다. 우리나라 개화기 소설에서도 역시 ‘몸’이 이야기의 흐름에 중요한 힘으로 작용하기 시작했으니, 당대의 사람들이 몸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파악하는 데 이보다 더 효과적인 자료가 없을 것이다.
이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몸은 역사의 격변을 그 안에 상처로 새기기도 하고(청일 전쟁, 러일 전쟁 등), 서구 의학과 일본 근대 문물의 힘에 의해 건강하고 새로운 육체로 다시 태어나기도 하며, 학생과 군인으로서 과거 선비나 장수였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신체로 거듭나기도 한다. 전근대적 사고를 지닌 인물들은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학교 교육을 받거나 군대 훈련을 받은 인물들은 바람직하고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이 모든 신소설의 구도 속에는 전근대/근대, 야만/문명, 위생/불결 등의 이분법이 반영되어 있었다. 아직 일제 강점이 시작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서구의 문물, 근대의 문명이 위태로운 조선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과 기대가 좀 더 강했기 때문이겠지만, 어쨌든 신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외부에서 유입된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근대적 개인/몸’으로 거듭 태어나야만 행복한 결말을 맞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신소설이 전대 소설로부터 변별되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했다.
또한 5부에서 보듯, 신소설은 몸에 관한 여러 문제 중 특히 ‘섹슈얼리티’의 문제에서도 그 이전 시기의 소설과 차이를 드러냈다. 청상과부는 개가해서는 안 된다는 수절 신화가 근대 신소설에 이르러 개가하여 건강한 자식 낳는 게 더 좋다는 인식으로 인해 무너졌고, 병을 앓으면 인구 생산에 지장을 끼치니 이 역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인식과 자녀 교육을 위해서는 여성의 교육도 필요하다는 인식이 작품 속에 반영되었다.
저자는 여러 신소설들을 하나하나 분석하여 각 경우들에 대한 사례들을 정리한다. 그리하여 개화기 신소설은 이 문화사 연구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사료로 빛을 발하게 되었다.

★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개화기 천태만상

대중과 소통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은 무엇보다 각 장(章) 사이사이에 들여놓은 ‘현미경’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최초로 쌍꺼풀 수술을 받은 여성의 이야기부터, 성교육을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둘러싼 논쟁, 선비처럼 고고하게 몸을 쓰지 말아야지 운동 따위를 해서 무엇 하느냐는 주장과 이에 대한 반박 등 현미경 코너에서 저자는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을 만한 개화기의 갑론을박들을 당시의 신문과 잡지 자료를 그대로 실어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이미 1900년대 초부터 얼짱보다는 몸짱이 좋다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남편을 살해했어도 얼굴이 예쁘다는 이유로 대중의 동정 여론을 자극한 일대 사건이 있었는가 하면, 성형 수술을 두고 비난과 우려가 교차하는 장면들도 자주 등장했다. 이 ‘현미경’ 코너는 독자들이 잠시 쉬어 가며 읽기의 즐거움을 누리시라는 저자의 배려가 담긴 부분이기도 하지만, 다른 어느 곳 못지않게 개화기의 ‘몸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 지금-여기의 우리에게 ‘몸’은 ‘어떠해야’ 하는가? 문제는 근대의 권력이다!

지금-여기의 우리에게 ‘몸’은 ‘어떠해야’ 하는가? 건강해야 하고, 아름다워야 하며, 효율적이어야 하고, 쾌락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몸’을 위해 어떠한 일을 해야 하나? 지속적으로 운동을 해야 하고, 의학적 지식을 동원해 생활 습관을 조절해야 하며, 병원에 가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되고, 미용을 위한 성형이나 피부 관리, 체형 관리도 꾸준히 받아야 한다. 다이어트는 필수이며, 배우고 습득한 규칙과 요령대로 몸을 움직여야 하고, 다양한 성 지식을 바탕으로 쾌락적이고도 안전한 성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하며, ‘고령화 사회’를 대비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많이 낳아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현재의 우리에게 거의 ‘당위’에 가깝게 요청되는 ‘덕목’이 되었고, 사람들은 이러한 내용들을 실천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당위’와 ‘강박’은 현재의 고도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몸과 관련한 산업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운동 센터들, 의학 관련 기사와 책 및 방송 프로그램들, 생활 전반에 연관된 웰빙 상품들, 나날이 늘어 가는 의사와 병원들, 에스테틱과 단식원과 피부 관리 전문숍, 학교와 군대, 성의학·성과학 지식 및 전문가들, 수많은 피임법과 불임 클리닉과 결혼 정보 회사들······. 내 몸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산업에 어떻게든 비용을 지불하고 꾸준한 관리와 조절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다시 나의 ‘수입’과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을 보장해 주는 ‘투자’가 된다. 즉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순환의 구조이다. 그리하여 몸은 이 시대의 중심 화두가 되었다.
몸에 대한 담론과 지식, 기술의 발달은 몸을 나의 의지와 인위적인 방법에 의해 최대한 조작, 통제하는 것이 ‘해방’인 것처럼 보이게도 하고, 그러한 것들의 내부에 존재하는 산업적 메커니즘, 자본주의적 논리, 불확실성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저항’인 것처럼 보이게도 한다. 어떤 이에게 몸은 ‘장애’가 되고 또 어떤 이에게는 ‘기득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천부적인 몸을 그대로 두는 것은 태어남과 동시에 주어진 ‘계급’적 특권일 수 있다. 따라서 몸을 나의 의도대로 고치고, 개발하고, 조절하고, 통제하는 일이 진정한 내 몸의 주인이 되는 길이라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나의 의도’가 사실은 숨겨진 ‘권력’의 의도이며, 그것에 ‘순응적인 육체’를 만드는 일을 향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태어날 때의 몸 상태 그대로 물 흘러가듯 두는 것과, ‘운명’이라고 여겨졌던 자신의 몸을 바꾸고 개발하는 것 사이에서 어느 쪽이 ‘정답’에 가까운지를 판단하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이 책은 우리 현대인이 가지는 몸에 대한 ‘강박’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쓰였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을 한마디로 하자면, 결국 ‘근대의 권력’이 문제였다고 하겠다. 근대는 몸의 시대를 열었다. 20세기를 들어서던 즈음의 현실에서, 담론에서, 문학에서 우리의 몸은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유되고, 활용되고, 상상되었다. 벌써 백 년도 전의 일이 되어 버렸는데도, 그때 생긴 ‘변화’들은 21세기의 ‘몸의 현실’과 많은 부분 닮아 있다. 1900년대의 몸이 1870년대의 몸보다 2000년대의 몸과 더 가깝다는 사실. 그만큼 그 변화는 급격하고 전복적이었다. 몸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몸은 조작과 통제가 가능한 대상이며, 그 조작·통제의 결과에 따라 자본과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자산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근대적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식, 권력에 발빠르게 적응하고 이것을 활용함으로써 ‘근대적인 몸’이 되도록 노력해야 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한 현상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를 반성하게 되면서 그 ‘승리’가 과연 진정한 승리일 수 있는가 회의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돌진’하던 몸의 과학, 지식, 기술은 주춤거리게 되었다. 이 지점이 현재의 몸 담론이 처한 딜레마의 상황이다. 의식의 차원에서의 반성은 차츰 진행되고 있지만, 그 반성이 현실 세계를 바꿀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그래서 앞으로 이 딜레마가 어떠한 방향 전환을 할 수 있을지, 또는 해야 할지는 쉽게 예측이나 선언을 하기 어렵다.
다만 이 책이 현대인들이 몸을 대하는 태도에 숨겨진 메커니즘을, 그러한 ‘몸이 탄생한’ 시점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되살펴보는 데에 작은 기여를 할 수 있었으면 했다. 현재와 같은 몸이 탄생한 것이 결국 근대의 논리, 자본의 논리, 권력의 논리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반성의 출발점을 그곳에서부터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즉 이 책에서 말한 ‘육체의 탄생’이란 ‘근대적 육체의 탄생’이라는 점, 그렇기 때문에 ‘근대의 탄생’이란 ‘육체의 탄생’이며 ‘근대’는 ‘몸의 시대’이기도 하다는 것.
어쩌면 이 ‘근대’ 또는 ‘몸의 시대’는 조만간 또다시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이를 대비하여 근대적인 것, 서구적인 것들에 대해 반성해 보는 일과 몸을 다시 이해하는 일이 같이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본다. 이 책을 통해 ‘변화’의 기점이었던 때를 조금이나마 일별하였으니, 앞으로는 더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 온, 근대 이전의 몸을 다시 돌아보고, 또 변화 이후의 몸을 더욱 섬세하게 따라가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이영아(「마치며」 중에서)
목차
차 례 들어가며 1 몸의 탄생 2 몸 공부하기 3 몸 관리하기 4 몸 이야기하기 5 몸 욕망하기 마치며 주 부록-주요 신소설의 서지 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