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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병률 여행산문집

발행사항
파주: 달, 2012
형태사항
297 p: 삽도, 22cm
비통제주제어
여행에세이, 산문집, 여행기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00025492대출가능-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00025492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참으로 오래 기다렸다.

처음 <끌림>이 출간되었을 때의 신선한 충격에 우리는 늘 목이 말랐다. 당시만 해도 여행지의 단순 정보를 작은 글자로 빽빽하게 나열한 책들만 가득하던 여행서 시장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감성 충만 여행산문집 <끌림>. 7년 전 첫 출간과 2년 전 일부 내용을 보강한 개정판까지 세상에 나오는 동안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꾸준히, 게다가 굳건히,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몹시도 낭만에 목이 말랐던 청춘들은, 매 챕터마다 모서리를 접어두기도 하고 표지는 낡아 모서리가 닳아 너덜너덜해지고 낱장은 떨어져 흩어지도록,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수줍은 마음을 전하는 연서戀書가 되기도 했고, 소중한 친구에게 희망을 실어주는 청춘열서靑春列書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끌림>은 피 끓는 청춘이 있는 장소라면 어디든 책장에 한 권쯤은 무심하게 꽂혀 있는, 그런 존재감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서점에 가보면 여행서 코너에는 여행지에서의 보고 듣고 먹은 것의 기록에 새로운 감성을 입힌 여행산문집이 늘 넘쳐나기 시작한다. 평생교육원과 사설 교육기관 등에서는 ‘여행작가가 되는 법’에 대한 강의마저 개설되어 스스로 여행지를 기획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취재, 스토리텔링, 사진 촬영에 대한 기술적 테크닉, 심지어 출판사와의 접촉 과정을 통해 출판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끌림>의 후폭풍이다.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길 위에서 쓰고 찍은 사람과 인연, 그리고 사랑

그렇게 7년 만에, <끌림>의 두 번째 이야기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가 출간되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작가는 여전히 여러 번 짐을 쌌고, 여러 번 떠났으며, 어김없이 돌아왔다. 그의 여권에는 80여 개가 넘는 나라의 이미그레이션 확인도장이 찍혔다.
여행이라는 것이 그렇다. 또 다시 떠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출발점’에 다시 서고, 지도 위에서 경계심을 푼다. 그러고는 ‘사람’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간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풍경은 달라졌을지라도, 변하지 않는 건 역시 ‘사람’. 작가는 혼자 떠난 여행에서도 늘 ‘사람’ 속에 있었으며, ‘사람’에 대한 따뜻한 호기심과 ‘사람’을 기다리는 쓸쓸하거나 저릿한 마음을 거두지 않는다.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결국 사람의 마음뿐이라는 정호승 시인의 말은, 그래서 맞다.

낯선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배우게 되는 말은 물(水)인 것 같다. 그 다음은 ‘고맙다’라는 말. ‘물’은 나를 위한 말이고 ‘고맙다’라는 말은 누군가를 위한 말. 목말라서 죽을 것 같은 상태도 싫고 누군가와 눈빛을 나누지 않는 여행자가 되기는 싫다.
_ 본문 [31# 그 나라 말을 못해서] 중에서

작가의 이 여행노트는 오래전부터 계획된 대단하고 거창한 여행기가 아니라, 소소하지만 낯선 여행지에서의 일상과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 이야기 날것 그대로임을 알게 해준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작정하고 책상에서 앉아 깔끔하게 정리하고 쓴 글이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길 위에 걸터 앉아서 혹은 어떤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그것도 아니라면 낡은 침대에 몸을 누이고 그렇게 생각나는 대로 적은 것일 테다. 그 정제되지 않은 듯 생동감 넘치는 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때 그곳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게 한다.
먹고 버린 라면 봉지에 콩을 심어 싹을 틔운 인도 불가촉천민들, 비용이 너무 많이 나왔다며 오히려 절반만 받겠다는 루마니아 택시 기사, 비행기가 좋아서 일주일에 두세 번씩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가 떠나거나 돌아오는 사람들을 만나는 할아버지, 아버지 혼자 다녀온 홍콩을 그대로 여행해보는 아들, 인터넷 랜선을 들고 숙소 꼭대기층까지 걸어 올라온 예멘의 청년 무함메드 등, 이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슬라이드 필름 돌아가듯 다분히 아날로그적인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당신이 좋은 건, 내겐 그냥 어쩔 수 없는 일

사실, 제목에 쓰인 ‘바람이 분다’는 ‘비가 온다’ ‘해가 떴다’ 등 그 어떤 말과도 같은 맥락이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해가 뜨는’ 그런 지극히 당연한 일상 속에서 ‘당신’만큼은 당연하지 않다. 그러니까 ‘당신이 좋은 일’은 어디까지나 ‘당신’이기에 가능하다.
표지만 봐도 쾌청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 청량감이 느껴지는 이번 산문집에서는 <끌림>보다 한층 더 울림 있고 따스해진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위트 있으면서도 깊이 있는 문장들과, 감성이 듬뿍 담긴 사진들은 가슴팍 한가운데로 명중해 와 아프게 꽂힌다.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알싸해지지만 슬픔 속에 함몰되지는 않는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우리는 사정없이 휘청이다 이내 곧 마음이 붉어진다. 그리고 슬프지 않은 울음을 운다.

당신이 좋다, 라는 말은 당신의 색깔이 좋다는 말이며, 당신의 색깔로 옮아가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 색깔이 맘에 들지 않는다, 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했을 경우, 당신과 나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지켜야 하는 사이라는 사실과 내 전부를 보이지 않겠다는 결정을 동시에 통보하는 것이다. 색깔이 먼저인 적은 없다. 누군가가 싫어하는 색깔의 옷을 입고 있다고 해서 그를 무조건 싫어할 수 없듯이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어떤 색으로 비치느냐에 따라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색깔의 옷을 입었더라도 그 기준은 희생될 수 있으며 보정될 수 있다.
_ 본문 [29# 조금만 더 내 옆에 있어달라고] 중에서

이번 산문집에는 유독 ‘색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눈에 띈다. 작가는 스스로 “많은 색깔에 물들었으며 많은 색깔을 버리기도 했다”고 말하고 있다. 가지고 사는 색깔이 많은 만큼, 세상에 뿌려진 물감들에 대해 작가는 어떤 이야기들이 하고 싶었을까. 집으로 배달되어 온다는 부끄러움 많은 ‘분홍’…… 사랑이 시작됨과 동시에 방망이처럼 닥치는 몸살의 ‘주황’…… 누구를 강렬하게 좋아하는 마음과 같은 색을 공유하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의 심장의 통증, ‘빨강’까지도…….
또한,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에는 낯선 곳에서의 낯선 사람들과의 이야기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병률 작가 주변 인물들과의 에피소드를 얼마쯤 꺼내놓고 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읽으면, 누구나 알 법한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우리도 그렇게 조금은 작가의 삶에 발을 담구어본다.

요리하고 글 쓰는 선배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문자 한 줄에 괜히 또 심줄이 끊어질 듯 아프다. (중략) 몸이 안 좋다는 말은 안 했지만, 선배는 또 먼 곳에 있다는 내게 ‘혼자서라도 씩씩하게 잘 다녀라’ 보낸 문자일 수도 있는데 내 몸은 계속 풀썩 꺼진다.
_ 본문 [49# 마음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중에서

당신이 황망히 떠나고 당신의 빈집을 찾았을 때 당신은 없었다. 당신의 집에 당신의 표정이 없는 것은 처음이었다. 당신이 없으니 당신의 집이 벼랑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중략) 그런데 당신은 거짓말 같다.
_ 본문 [43# 높고 쓸쓸한 당신] 중에서

선배 작가와 함께 취재를 마친 어느 저녁이었고 (중략) 우리가 들어설 때는 평일의 일곱시쯤이었는데 손톱을 막 깎은 뒤의 정돈미랄까. 그런 것이 실내에 가득했다.
_ 본문 [51# 그날의 분위기] 중에서

이 책을 거창하게 ‘여행기’라고 정의하기보다는, 떠나고 돌아오는 여정이자 그 자체가 곧 삶이기도 한 인생 속에서 작가의 생활의 일부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손에 잡은 책을 매개로 작가의 반대편에 마주 선 우리도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고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떠나온 곳에서는 원래 지내던 곳에서 함께 살을 부비던 이웃 사람들이 더 애틋하게 떠오르기도 하는 법 아니던가. 우리에게도 많은 ‘사람들’이 스친다. 슬며시, ‘당신’이 남는다.

그렇게 네가 돌아온 후에 우리 만나자

이번에도 역시나, <끌림> 때와 마찬가지로 목차도 페이지도 없다. 그러니, 정해진 순서도 없다. 얼마만큼 읽었나 얼마만큼 남았나 헤아려볼 계산적인 마음 따위, 여기에서는 필요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든 마음이 갈 때마다 책의 어느 곳이나 자유롭게 펼치고, 전 세계 어딘가 쯤에서 작가의 카메라의 셔터가 잠시 쉬었다 간 곳, 그리고 펜이 머물다 간 곳을 따라 함께 느끼면 된다. 그곳이 바로 시작점이기도 되어주기도 하고, 종착점이 되어주기도 한다.

우리의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모든 삶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