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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젠더·성의 재활과 정치

발행사항
서울: 후마니타스, 2022
형태사항
424 p. : 삽도, 23 cm
서지주기
참고문헌과 색인을 수록하고 있음
비통제주제어
장애인, 젠더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00030850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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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번호
    00030850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부제: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젠더?성의 재활과 정치)은 장애와 질병이 있는 몸의 현존을 부정하고 반드시 재활하고 극복해야 할 ‘치유’의 대상으로 여기며 폭력적으로 서사화해 온 한국의 역사, 정책, 제도, 문화 텍스트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미국 시러큐스대학교 여성/젠더학과와 장애학 프로그램 부교수 김은정의 저서로, 2017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여성학, 장애학, 한국학 등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2017 전미여성학학회 앨리슨 피프마이어상, 2019 미국 아시아학학회 제임스 B. 팔레이즈상을 수상하며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이 책은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를 다룬 소설, 영화, 신문 기사, 정책 문건, 활동가의 글 등을 텍스트 삼아 ‘치유’를 명분으로 장애와 질병을 가진 사람/삶을 파괴하는 ‘폭력’을 들여다보고 사회적·정치적 맥락 안에서 분석함으로써, 장애와 질병에 관한 사회적 경험과 문화적 재현의 다른 상상력을 제안한다. 「심청전」, 「노처녀가」, 「백치 아다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당신들의 천국』, <만종>, <꽃잎>, <팬지와 담쟁이>, <수취인불명>, <오아시스>, <핑크 팰리스> 등 고전에서 현대까지의 서사와 기념우표, 광고, 사진 등의 시각적 이미지를 망라해 여성주의 장애학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장애학적 문화 비평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조혜영 영화평론가는 이 책이 장애학뿐 아니라 문학, 영화, 드라마 등 서사와 관련된 활동과 연구를 하는 사람을 위한 필독서라고 권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국 사회의 국가주의가 장애의 문화적 재현, 관련 정책, 사회운동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저자 특유의 정교한 논리와 세심한 언어로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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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과거와 미래 사이, 타자성과 정상성 사이, 치유 전과 후에 존재하는 장애를 주목한다. 이 중간 지대에서 치유와 장애는 과정으로서 공존한다. 나는 역사적이고 초국가적인 맥락에서, 한국의 문화적 재현에서 장애와 치유가 어떻게 봉합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이 접점에서 치유라는 이름으로 가려지는 폭력이 중요한 주제로 떠오른다. 장애화된 몸은 접힌 시간 속에서 다층적으로 구성된 타자성과 정상성의 경계로 이뤄진 지형 안에서 시각화되고 서사화된다.” (30쪽)

“저자의 장애학적 독해는 ‘접힌 시간’을 펼쳐 내 은유로서의 장애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를 살아 낸 장애의 신체성과 물질성을 감각하게 하고, 거래하고 협상하는 장애의 행위성을 인식하게 한다. 특히 이 책의 장애학적 비평이 빛나는 순간은 장애학이, 정상성과 규범성을 질문하는 페미니즘, 퀴어, 탈식민적 관점과 교차할 때다.” (조혜영, 추천의 글)

치유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폭력
정치적 개념으로서 ‘치유’

이 책에서 ‘치유’는 정신적·기능적·신체구조적 정상성을 갖게 되어 장애가 없어지고 아픈 몸에서 건강한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정상성과 건강의 범주는 유동적이기에, 치유가 되더라도 병력 때문에 낙인이 지속되거나 사회적 치유에 도달하지 못해 소수자로 남을 수 있고, 장애와 질병이 그대로이더라도 계급과 성별에 따라 더는 장애인이 아니라고 간주될 수도 있다. 정상성과 건강의 범주는 장애와 질병의 정의뿐 아니라 치유의 정의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치유는 도덕적인 당위가 아닌 정치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11쪽). 김은정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치유가 “정상과 건강의 테두리를 만들어 내는 행위”이고 “추방된 몸들의 일부를 선택적으로 포섭함으로써 경계를 강화시키는 과정”(10쪽)이라고 설명한다. 또 장애와 질병을 당연히 없애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장애와 질병을 가진 사람을 파괴하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견지를 밝히며 ‘치유 폭력’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치유 폭력은 장애와 질병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장애와 질병이 가진 차이를 없앰으로써 발휘될 수도 있다. 치유는 당위성이 강조될수록 개인이 아니라 가족·사회·국가 공동체를 위한 것이 된다. 이때 개인은 얻게 될 보상과 치러야 할 대가를 고려해 협상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공동체를 위해 죽음의 가능성을 감수하기도 한다(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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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자를 소위 나아지게 해줄 것이라는 명목으로 타자가 지닌 차이를 지우려는 힘의 행사를 묘사하기 위해서 ‘치유 폭력’(curative violence)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치유 폭력은 치유가 장애의 존재 자체를 문제로 규정하고 치유 과정에서 그 대상을 파괴할 때 일어난다. …… 치유와 관련된 폭력은 두 가지 차원에서 존재한다. 첫째, 장애와 질병을 삶의 다른 방식으로 보는 여지를 없애는 폭력이다. 둘째, 치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며 장애인들에게 신체적?물리적으로 가하는 폭력이다.” (38쪽)

과거와 미래 사이에 사라진 현재
‘접힌 시간’을 펼쳐 내기

2005년 7월 31일 방영된 KBS <열린음악회>에는 가수 강원래와 과학자 황우석이 출연했다. 척수 장애가 있는 강원래가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나와 춤춘 뒤, 과학기술부 장관과 함께 무대에 오른 황우석은 자신의 연구에 성원해 달라고 당부하며 강원래를 “벌떡 일으켜” 그가 과거처럼 “날렵한” 춤을 추는 걸 다시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원래는 같은 해 발표한 뮤직비디오에서 대역 배우와 특수 효과를 동원해 ‘일어나’ 춤추는 ‘과거’의 자기 모습을 재현했는데, 언론은 치료된 ‘미래’에 초점을 맞춰 그가 “휠체어에서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황우석은 자신의 연구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서 강원래처럼 사고로 척수가 손상된 미국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슈퍼맨>의 주연배우)의 연락을 받았다고 했는데, 리브 역시 2000년 미국 투자사 뉴빈(Nuveen)의 광고에 ‘치유’된 모습으로 나온 적이 있다. 가까운 미래의 장애 관련 행사를 그린 이 광고에서 카메라가 의자에서 ‘일어서서’ 걸어오는 한 남성의 하반신과 발, 전신을 차례로 비춘다(전신이 나오고 나서야 시청자들은 리브를 알아본다). 광고 속 진행자가 리브를 악수로 맞이하면 관객들이 ‘일어서서’ 박수를 보낸다. 리브의 머리가 다른 몸과 합성돼 있기에 ‘뭔가 달라 보였음에도’ 이 광고는 ‘너무 진짜처럼 보였기 때문에’ 시청자들을 호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여러 시청자가 리브의 치유에 대해 문의했다). 한편 황우석의 치료용 배아 복제 연구는 연구 조작 등이 드러난 뒤에도 정부 지원과 국제적 관심을 받았다.
김은정은 강원래, 황우석, 크리스토퍼 리브를 둘러싼 이런 치유의 논리를 ‘접힌 시간’이라는 시간성으로 설명한다. 접힌 시간은 “정상적인 과거로 현재를 대신하고 …… 정상적인 미래를 현재에 투영시킴으로써 현재를 사라지게” 만든다(23쪽). 장애를 갖기 이전의 과거와 치료된 미래만이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는 장애인이 사회로 ‘복귀’하려면 먼저 치유되어야만 한다는 사회적 명령을 강화하고, 여기에 담긴 비장애 중심적 전제를 유지시킨다. 이런 사회에서는 치유가 폭력의 명분이 된다. 장애와 질병을 삶의 다른 방식으로 보는 여지를 없애고, 치유의 이름으로 폭력을 가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치유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 치유가 항상 뭔가를 가능하게 할 수도 있지만, 이와 동시에 뭔가를 불가능하게도 할 수 있는 다면적인 협상 과정이며 고통이나 상실,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려”(27쪽)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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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는 장애가 있는 몸을 과거의 몸이나 앞으로 되어야 할 미래의 몸이 아닌 현재 상태 그 자체로 볼 수 있을까? 무엇이 장애를 가진 현재의 삶을 가능하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하는가, 혹은 그 중간의 무언가로 만드는가? ‘괜찮았던’ 과거를 향한 향수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장애가 있는 몸에 투영하면서 과거와 미래에만 주목하기 때문에, 몸의 역사와 함께, 그리고 나이든 후의 미래와 함께 현재에 머무르기 힘들다는 것이 접힌 시간 속에 살아가는 삶의 특징이다.” (358쪽)

장애와 질병이 있는 삶을 손실된 시간으로 보는 가정
멈출 수 없는 훈련과 재활

김은정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장애보정생존연수’(DALY) 지표나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의 정의가 지닌 한계에 대해 언급한다. WHO의 장애보정생존연수는 “인구 중 조기 사망으로 인한 수명손실연수”(YLL)와 “건강 문제나 그 후유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의 장애로 인한 수명손실연수”(YLD)를 합산한 지표이다. 이렇게 장애와 질병을 갖고 사는 연수를 “손실된 시간으로 보는 가정”을 통해, 장애와 질병을 갖고 살아온 시간의 의미가 “전체 인구가 장애와 질병 없이 노년까지 살 수 있는”, “실재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에 비교해 측정됨으로써 훼손된다”(359쪽).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훈련’과 ‘재활’을 구별하는데(비장애인에게 ‘학습’ ‘교육’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훈련’이라는 용어로 불린다), 당국은 훈련과 재활을 통해 “장애인이 최대한의 독립성을, 완전한 신체적·정신적·사회적·직업적 능력을, 삶의 전 분야에서 완전한 통합과 참여를 달성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저자는 여기서 독립성, 능력, 통합이 병렬적으로 배치된 점에 주목하면서 “독립성과 능력이 통합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지만, “능력 수준에 관계없이 완전한 통합과 참여를 보장한다기보다는 여전히 정상성에 최대한 가까워지는 것을 강조”(360쪽)한다고 지적한다. 반드시 이전의 ‘적절한’ 몸으로 치유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훈련과 재활을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은 장애인을 가족과 지역사회에서 고립시키고 그들의 ‘현재’ 삶, 현존을 불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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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치유될 수 있는 몸과 치유된 몸은 여전히 장애화되는데, 그 이유는 장애의 역사가 몸에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나은 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에 나이가 많이 들기 전까지는 재활의 노력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 그런 점에서 장애인에게 정상성이란 항상 한 순간 앞선 미래에 존재하기에 현재의 삶을 유예하도록 하고 사회적 변화를 위한 시도를 하지 않도록 만든다.” (30쪽)

“가능성과 독립성이 “최대한” 혹은 “최적의” 수준에 도달하고 나서야 사회적?물리적 환경을 조정하기 시작해야 하는 것인가? 개인이 훈련을 통해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 재활을 통해 이전의 ‘적절한’ 몸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생각, 장애와 만성적 질병은 영적?가족적?의료적 개입을 통해 반드시 치유되어야 한다는 생각 등은 모두 장애인을 가족과 지역사회에서 분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유예시킴으로써 현재로부터 분리하는 것이기도 하다.“ (360쪽)

한국적 맥락
국가주의의 작동으로서 치유

김은정은 서문에서 한국사의 핵심적인 순간들과 장애 인권 이슈를 교차해 정리한다(45, 62~71쪽).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넘어가고 1910년 일본에 합병되자 문학에서 국가를 장애화된 몸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생긴다. 1929년 조선박람회가 열리게 되자 일본 경찰들은 장애가 있는 서울 도심의 노숙인과 걸인들을 체포하고 추방했다. 1930년대엔 ‘불량분자’와 ‘불구자’는 불임시술을 받고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우생학 담론이 대중 매체에 나타났다. 조선총독부는 시청각 장애나 정신장애가 있는 고아들과 어린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조선총독부제생원을 설립하고 소록도엔 한센병 환자 등을 시설화하기 위한 자혜병원을 설립했다. 1945년의 해방과 분단, 1950년의 한국전쟁을 거치며 많은 사람이 장애를 갖거나 사망했다. 이때부터 ‘장애’라는 범주가 다양한 소수자 집단에 폭넓게 적용됐는데 이들이 처한 조건 때문에 취약한 상태로 간주되어 보호와 통제의 대상이 됐다. 1954년 한국 보건사회부는 취약한 인구 집단에 대한 연간 통계 보고서를 내기 시작한다. 첫 번째 보고서엔 “나환자, 혼혈아, 미망인, 마약중독자, 전염병 환자, 매춘부”가 포함됐다. 1955년엔 “장애인, 상이군인”이 추가됐다. 1961년에 처음으로 실시한 ‘장해’ 아동에 대한 국가 인구조사에는 다양한 신체·감각 장애 아동과 함께 ‘혼혈’ 아동이 포함됐다. 1964년 박정희 정권 때 한국군이 처음으로 베트남에 파병됐다. 이후 상이군인들이 등장하는 전쟁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상이군인의 재활은 한국의 경제성장 및 산업 발전과 결부되었다. 일제강점기에 확산된 근대 우생학의 개념은 박정희 군사정권 시기 강하고 능력 있는 나라를 세우려는 열망에 따라 재등장했고 더욱 강화되었다. 1973년엔 ‘모자보건법’이 제정되면서 재생산에 대한 국가 통제가 정당화되었다.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예외 조건을 규정하고 장애인들에 대한 강제 불임수술을 허용했다. 1980년 전두환은 광주항쟁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고 주장하며 군대의 무력을 사용했고, 대량 학살과 부상, 실종이 일어났다. 전두환 정권은 ‘복지국가’로 포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1981년엔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제정됐고 국제장애인연맹에도 가입했다. 같은 해 ‘국제 장애인의 해’가 지정되면서 장애인의 인권 및 반차별 원칙이 선언되었고, 이것이 한국 장애 운동의 촉진제가 되었다. 장애인 단체와 활동가들은 1990년 ‘장애인고용촉진법’을 통과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장애인에 관한 법률을 새로 제정하고 잘못된 제도를 재심사하고 폐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싸워 왔다. 1988년에 생긴 장애인 등록 제도는 20여 년 만인 2019년 폐지되었으나 여전히 여러 숙제를 안고 있다. 이 밖에도 저자는 민주화 이후 장애를 재현하는 문화적 서사의 양상이 변한 것과 국가인권위 출범 등의 이슈를 언급하며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IMF 경제 위기이후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내가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CEO’라고 말하는 지도자(이명박)를 선출했고, 이후 10년간 한국 대중문화에서 ‘힐링’ ‘치유’ ‘테라피’가 핵심 어휘로 떠올랐다. 이 단어들은 두루 사용되던 ‘웰빙’이라는 용어를 거의 대체하다시피 했다. “인권이 계속 침해되는 상황, 권리를 가진 모든 이들에게 자원이 적절히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힐링과 치유를 지향하는 담론은 대개 이런 상황에 대한 심리적 위로로 이어지고, 사람들에게 자기 계발을 요구한다”(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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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맥락에서 쇠약화의 물질적 조건과 치유의 작동 방식을 보면 재활이 하나의 목표이자 인구를 통치하기 위한 권력의 형태로 이용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식민 착취와 전쟁들, 그리고 억압적 정권들이 이어진 한국의 역사에서, 우리는 어떻게 장애와 치유를 긍정 또는 부정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특히 쇠약화가 식민 지배?인종차별?착취?전쟁?폭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때, 건강과 정상성을 획득하려는 변함없는 열망을 채우기 위해 장애화된 몸이 너무 쉽게 소비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열망은 국가주권의 개념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장애를 불의의 결과로만 보아 발생 순간에 고착시키는 원인 중심의 사고 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장애를 만들어 내는 폭력을 없애기 위해 노력함과 동시에 장애화된 몸에 의미가 각인되는 복잡한 방식들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46쪽)

초국가적 맥락
같은 시간 속에 공존하며 공유하기

우리는 종종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처지를 이야기할 때 서구 사회의 여건을 기준으로 삼아 비교하곤 한다. 김은정은 그가 미국의 대학원에 처음 입학했을 때 나눈 오래전 대화를 상기한다. 한국에서 장애인의 ‘환경 접근성이 낮고 차별이 심하다’는 김은정의 말에 상대는 ‘20년 전 미국의 상황과 같다’고 답한다. 이 대화는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을 남긴다. 20년 전 미국에서 불가능했던 장애인 편의를 위한 선진 기술이 오늘날 한국에서는 가능한데도 왜 보편화되지 않는지, 워싱턴 D.C에서 이뤄지는 결정이 한국과 미국 장애인을 어떻게 서로 연결하는지, 미국의 장애인 차별이 지나간 과거의 일이라면 지금 미국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물리적 거리, 문화적 차이, 20년의 격차로 인식되는 발전의 차이를 넘어 어떻게 초국가적 연대를 이룰 수 있을지 등이다. 김은정은 인류학의 대상을 인류학 담론 생산자의 현재와 다른 시간에 위치시키려는 경향을 뜻하는 “동시대성의 부정”(요하네스 파비안)을 들어, 비서구 사회의 현재 모습을 서구 사회의 과거 모습으로 동일시하는 것, 두 문화의 장애인이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도 시간성을 접는 일이라고 분석한다. 가령 미국이 장애인이 살기 더 좋은 곳이라는 기대는 미국에 사는 여러 소외 집단이 겪는 현실을 담지 못하고, 미국을 찾는 장애인 방문객을 실망시키고, 다른 사회에 있는 장애인들 사이의 소통을 방해한다. 호미 바바, 도나 해러웨이, 비나 다스 등을 언급하며 김은정은 장애와 관련된 한국의 문화를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전형적인 일반화나 장애인에 대한 젠더화된 폭력을 상상하는 선입견 차이라고 여기기보다는 “문화적 차이를 표현하는 그 순간에 생산되는 것이 무엇인지 집중하자고 제안한다”(호미 바바). “다른 문화적 가능성을 서구의 필요와 행동을 위한 자원으로 만드”는 서구의 논리를 경계하면서 “비서구권 장애에 대한 재현들을 이국적인 타자로 위치시키기를 거부해야 한다”(도나 해러웨이)고 말한다. “시간은 단지 재현되는 무언가가 아니다. 관계를 만들어 내는 행위자로서, 이 관계들이 해석되고, 다시 쓰이고, 덮어 쓰이는 것을 허용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행위자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공동체성이 창조되고 재창조된다”(비나 다스). 장애가 존재하는 시간을 공유하는 동시대성의 긍정은 장애가 있는 현재가 지워진 접힌 시간을 펼치는 데 중요한 전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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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비서구 문화가 여성 억압을 해결하는 데 “뒤처져 있다”고 보는 비슷한 논리를 비판해 왔다. 이런 논리는 서로의 삶이 연결되어 있는 서구와 비서구 여성들 사이의 연대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글로벌 사우스 안팎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상황은 국제기관 및 각국의 정치적 결정에 따라 좌우된다. 그러는 사이, 일상의 어려움에 편의를 제공하는 기술은, 그것을 이용할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다시 말해,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은 단순히 20년이 뒤처짐을 말해 주는 지표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풍요롭게 살 수 있게 하는 조건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현재의 시간을 공유하는” 동시대성은 “소통의 조건”이며, 일상에서 나오는 민족지적 지식을 만들어 내고, 시간을 펼쳐 함께 존재하도록 한다. 장애의 동시대성, 즉 여러 문화에 걸쳐, 또 과학적?수사적?시각적?정신적 영역에 걸쳐 장애가 존재하는 시간을 공유하는 것은 장애가 있는 현재를 지워 버리는 행위에 맞설 수 있도록 시간을 펼치는 또 다른 중요한 전략을 제시한다.“ (363쪽)

죽음의 사유에 대한 고찰
치유가 되지 않고서는 그대로 살아갈 수 없는 상태

얼마 전 한 40대 여성이 발달장애가 있는 6세 아들을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같은 날 대장암을 진단받은 60대 여성이 30대 중증 장애가 있는 딸과 함께 목숨을 끊으려다 혼자 살아남았다. 다음 날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삶’을 선택하는 것보다 쉬운 사람들의 외침”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며, 지난 3년 동안 일어난 일련의 비극적 사건들을 열거했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이 또 다시 반복된 것이다.” 2001년 1월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고로 한 장애인이 목숨을 잃으면서 촉발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20년째 계속되고 있다. 2004년에 법이 제정되고, 2007년부터 5년마다 새 계획이 나오고, 지난해엔 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예산 반영 등의 문제로 ‘이동 편의 증진’은 실질화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장애인이 ‘이동’하려다 다치고 죽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4월 ‘출근길 시위’로, 장애인의 이동 편의를 위한 이동권 투쟁에 대한 지지와 비장애인의 이동 편의를 방해한다는 비판의 여론이 나뉘고 있을 때 일어난, 휠체어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려던 한 장애인의 죽음은,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전보다 많이 알게 된 혹자들로 하여금 사고의 인과를 곰곰이 따져 보게 했다. ‘왜 그는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에스컬레이터를 탔을까?’ ‘왜 그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는 휠체어나 유모차의 진입을 막는 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았을까?’ ‘명백하게 개인의 과실 아닌가?’ ‘장애 인권 운동가나 정치인은 이 사안을 지금 어떻게 말하는가?’ 그러나 이렇게 잘 따져 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장애인이 가족과 사회 전체에 ‘부담’이 된다는 가정은 장애인을 죽음으로 내몰고, 사회가 모두에게 당연히 제공해야 할 자원들을 제공하지 않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비장애 중심적 논리를 뒷받침한다”(142쪽). 장애 때문에 ‘부담’이 생긴다는 논리가 강조될수록 ‘치유’는 공동체의 이익과 개인의 희생을 두고 협상하는 거래의 영역에 들게 된다. 국가가 장애인이 가족과 사회에 ‘부담’이 된다는 가정을 강화하고 사회적 지원을 늦추기 때문에, 장애인은 장애가 ‘치유’되지 않고서는 그대로는 살아갈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장애인은 수시로 삶이 아닌 죽음에 내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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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가족의 생존을 위해 치유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치유 행위는 개인의 선택이냐 사회적 강요냐로 구분되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가족 공동체의 이익과 희생을 두고 협상하는 거래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이때 자기희생, 순결, 정조, 종교적 신앙심과 같은 도덕적 가치들, 그리고 사회적으로 구성된 헌신에 대한 의무감,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정서적 감정은 이타적이라고 여겨지는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장애 때문에 ‘부담’이 생긴다는 논리는 돌봄의 경제적?신체적?정서적 비용을 강조해 왔다. 장애인이 가족과 사회 전체에 ‘부담’이 된다는 가정은 장애인을 죽음으로 내몰고, 사회가 모두에게 당연히 제공해야 할 자원들을 제공하지 않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비장애 중심적 논리를 뒷받침한다.” (141-142쪽)

이 책의 2장 ‘대리 치유’에도 일련의 죽음이 열거된다. 2010년 서울의 한 공원에서 건설 노동자가 목을 매고 죽은 채 발견됐다. 그의 주머니에는 “내가 죽으면 동사무소 분들께서 우리 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잘 부탁합니다”라고 적힌 쪽지가 들어 있었다. 자신의 소득 때문에 장애가 있는 아들이 국가 보조금을 받을 수 없음을 비관해 자살한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가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또는 자녀의 소득 증가로 자신이 수당을 잃게 될 거라는 사실을 통지받고 죽은 일은 허다하다.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었고, 이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광화문 농성장에 찾아와 약속한 사안이었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여전히 ‘가족’으로 연결된 신체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 국가가 사회적 지원을 제공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고 돌봄을 가족의 법적 의무로 돌려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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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구성원의 소득이 다른 가족(특히 장애인 가족)까지 부양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해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제도 안에서 아버지의 자살이 벌어진 것이다. 그의 행동이 이성적이었는지 혹은 아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지, 어떻게든 다른 방법으로 서비스 수혜 자격을 얻을 수는 없었는지에 대한 질문은 별개의 문제다. 아버지는 아들의 수혜 자격을 위한 모든 법적 선택지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결정에 담긴 고민은 자신의 소득, 복지 서비스 수혜 자격, 가족 구성원들의 소득 사이에서 행정적으로 강요되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득실을 따져야 하는 장애인들에게는 익숙한 상황이다.” (192-193쪽)

트라우마적 기억과 광기의 재현
취약성이 폭력을 일으킨다는 생각

3장에는 최윤의 중편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88)에서 영화 <꽃잎>(1996)으로 이어지는 분석이 나온다. 조혜영 영화평론가는 김은정의 <꽃잎> 분석을 이 책에 등장하는 문화 비평의 백미로 꼽으면서 작품과 트라우마에 관한 전에 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보여 준다고 평한다. 김은정은 정신장애를 가진 소녀의 몸이 광주가 남긴 트라우마적 기억의 환유로만 남는 것을 경계하면서 소녀가 경험한 폭력을 다른 정신장애 여성들이 경험하는 폭력과 연결시킨다. “정신장애 여성들은 치유 불가능한 비정상성과 젠더로 인해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져 공격당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신이 돌아오게 하거나’ 그들을 ‘치유하기 위해’ 폭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져 공격당하기도 한다”(236쪽). <꽃잎>에서 소녀를 고치려는 장의 열망에서 비롯된 폭력은 소녀의 트라우마적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장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은유 자체가 아니라, 트라우마를 겪은 후에도 개인들에게서 지속적으로 당하는 폭력이 국가 폭력에 대한 의미를 강조하는 과정 속에 숨겨지는 것이다. 3장은 <꽃잎>에서 영화 <박하사탕>으로, 박영숙 사진작가의 ‘미친년 프로젝트’를 경유해 영화 <도가니>와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으로, 이에 대한 장애여성 운동 진영의 대응으로 이어 가며 폭력, 트라우마, 광기, 은유, 재현, 성폭력, 법 제도, 시설화 등의 키워드를 교차해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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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사회에서 저항적인 페미니스트가 ‘정신병자’라고 비난받는다고 해도, 정신 병동의 복도에 있던 여성, 사진에서 그 여성을 연기하는 사람, 영화에서 묘지를 떠돌아다니고 자신을 강간한 남자를 쫓아가는 소녀, ‘미친년’이라는 꼬리표를 재정의하려는 사진작가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이런 이미지가 보여 주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누군가를 ‘미쳤다’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 ‘정상성’ 외부에 존재하는 여성을 향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영화 〈꽃잎〉에는 소녀의 존재에 화가 난 여성 주민들이 병원 창문으로 돌을 던지자 의사가 집게손가락을 머리 옆에서 돌리는 장면 ― 미쳤다는 것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동작 ― 이 나온다. 이들이 외치는 소리는 정확히 들리지 않지만, 소녀가 귀신에 씌었다고 믿는 여성 주민들을 미쳤다고 무시하는 동작은 잘 나타난다. 하지만 비장애여성이 미친 여자로 간주되는 경험을 한다고 해서 ‘정상성’ 바깥에 존재하는 여성들이 어떻게 폭력을 당하고 지워지는지 자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거나, 사회정의와 윤리적 반응의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광기를 재현할 때, 치유되지 않은 채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삶의 경험 그리고 지속적인 억압과 폭력의 경험을 살펴보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피해가 끝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258-259쪽)

장애인의 성적 권리와 재현
치유로서의 성경험

5장에는 장애인의 성적 권리에 대해 논란거리를 던져 주는 영화 <핑크 팰리스>와 <아빠>가 나온다. 숫총각 뇌성마비 장애남성의 성매매 업소 방문기를 그린 <핑크 팰리스>에서 장애남성은 주체로서 성욕을 드러내고 성적 경험을 추구하는 존재로 그려지지만, 딸이 성욕 때문에 자해 행동을 한다고 추정하는 아빠에 의해 치유 강간을 당하는 <아빠>의 장애여성은 장애여성에 대한 강간이 불가피한 것처럼 묘사되며 대상화된다. 김은정은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에 특히 주목하면서, 기존 논의가 장애남성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기에 장애여성은 성폭력이나 재생산 통제의 맥락에서 주로 논의되었다고 말한다. 또 성적 즐거움 자체는 덜 강조되었고, 사람들과의 친밀성이나 부부 관계 위주로 규정돼 왔다. 저자는 단일하고 즉각적인 해결책을 제공하고 성급하게 제도화하기보다는 장애여성과 장애를 가진 성·젠더 소수자, 장애를 가진 활동가, 성노동자 그룹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성적 다양성과 변화 가능성, 공적 지원 확대와 관계망, 법적 보호를 고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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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장애나 지적장애가 있는 남성과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구성하는 것은 정상적인 섹슈얼리티는 혼인 상태의 서로 사랑하는 사적 관계 안에서 이뤄진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형성된 복합적인 편견을 반영한다. 이주 노동자나 노인처럼 성적으로 소외된 다른 사람들보다, 또한 군인이나 재소자 같은 사람들보다, 장애남성의 경우 사회에서 성적 접근성이 제도적으로 부정되는 사람들을 향한 공감을 더 쉽게 불러일으킨다. 그리하여 예외적으로 고안된 지원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성욕이라는 논리가 선택적으로 적용되고, 이는 규범적인 섹슈얼리티를 장애인이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고착시킨다. 이런 해법 속에서는 이성애적 욕망이 정상 규범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이 성적인 존재라는 주장은 장애인은 무성적이라는 고정관념에 대한 대항 서사로 강조된다.” (320, 321쪽)

“장애와 섹슈얼리티에 관한 담론이 보여 주는 젠더화된 지형을 통해, 사회적 역동과 성산업 내 장애인/비장애인 트랜스젠더 노동자를 비롯한 다양한 소외 집단을 가로지르는 권력의 작동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성별에 따라 ‘남성의 성욕’과 ‘여성의 취약성’을 강조하는 이분법으로는 장애인의 다양한 성생활을 적절하게 설명하지도 못하고, 그런 다양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문제를 다루지도 못한다. 그렇게 해서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는, 장애남성과 장애여성의 경험과 구조적 폭력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사회적?문화적?역사적으로 도구화되어 온 성매매의 처방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 동시에 더욱 어려워지는 ― 문제가 된다.” (329쪽)

만 가지 질문을 던지며 연결되는 책
이 책의 의의와 효용

이 책은 장애와 치유, 정상성의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와 겹쳐진 공간을 자세히 서술함으로써 성별, 섹슈얼리티, 가족, 국가가 치유에 어떻게 개입되는지, 재생산, 가족, 계층, 인종, 국가, 결혼, 이성애 등의 표지들로 분석해 낸다. 기존의 여성주의 장애학의 담론을 분석하고, 한국적 맥락을 초국가적인 담론으로 언어화한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장애여성 운동 현장의 실천과 공명하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장애와 질병을 가진 몸이 그 자체로 현존할 수 있도록 ‘접힌 시간’을 펼쳐 내고, 장애여성의 관점에서 더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치유’의 논리를 만들어 갈 때, 초국가적 여성주의 장애학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교차성 위에 있기에 여러 갈래로 연결될 수 있는 이 책이 던지는 질문들을, 이제 독자들이 이어 나가길 바란다. “한국 사회는 장애의 시간을 어떻게 서사화하는가? 질문하는 이 책과 함께, 비장애중심주의를 벗어난 시간여행을 시작해 보자”(조혜영). “차별의 역사를 딛고 나중을 위해 유예된 시간을 펼쳐 내기 위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의 근원을 직시하고 사회 변화에 기여하고 싶은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한다”(나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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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권 운동과 장애여성 운동 사이의 연대가 이뤄지고 있다. 비규범적 가족들의 연대체나 무성애, 만성 질병, 트랜스젠더, 성소수자, HIV/AIDS 감염인 등을 탈병리화하는 운동을 바탕으로 새로운 연대들도 시도되고 있다. 성소수자, 노동자, 난민들과 연대 필요성이 늘어났고, 성산업 여성들을 위한 단체들과 연결 지점도 만들어졌다. 이런 진보적 반폭력 운동, 비장애중심주의에 반대하는 운동과 이슈별로 생겨나는 일시적인 모임들 안에서 제기된 의제와 토론들이 이 책에 담긴 텍스트와 역사적 맥락을 분석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비장애, 젠더 순응, 가족, 섹슈얼리티를 포함하여 정상성의 다양한 기준치들이 어떻게 치유의 개념을 구성하고 복잡하게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52, 53쪽)

“건강권?성과 재생산권?가족구성권?시설에 구금되지 않을 권리?이동할 권리?차별 없는 공공 의료에 접근할 권리를 요구하는 장애인 운동?성소수자 운동?이주민 운동?난민 운동?외국인 보호소 폐지 운동?HIV/AIDS 인권 운동?성노동자 운동?문화 운동의 동료들과 이 책을 함께 읽고 싶다.” (나영정, 추천의 글)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문
1장 낳아서는 안 되는 장애
2장 대리 치유
3장 사랑의 방식이라는 폭력
4장 머물 수 없는 곳, 가족
5장 치유로서의 성경험
결론

감사의 말
옮긴이 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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