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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00031950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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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3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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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80년대생들이 경험한 한국 자본주의의 축복과 고통
“민생과 경제 이슈에는 예민하고, 거대 서사에는 반감을 가진 세대!”
“산업화 이후 풍요 속에서 태어났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영끌족이 된 세대!”
1980년대생은 뉴밀레니엄의 팡파르 속에 성인이 된 세대다. 이들은 G세대와 N세대로 불리며, 찬란하고 화려한 인생이 펼쳐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예감은 정작 정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발랄보다는 꾸역꾸역 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청춘을 보냈고, 화려하기보다는 비루했다. 80년대생들은 산업화 이후의 풍요 속에서 태어나 큰 꿈을 펼치라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막상 성인이 되자 저성장에 적응하라는 훈계를 들어야 했다. 20대 때는 고시원 인생, 30대 때는 월세 인생, 급기야는 울며 겨자 먹기로 영끌족이 된 세대다. 80년대생들에게는 낭만과 불안과 좌절이 순환 운동하듯 반복되었고, 어제는 즐거웠고 오늘은 고달팠으며 내일은 어떤 날이 될지 모를 그런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세상에 발을 들이기도 전부터 숨죽여 사는 법을 배웠다.
1980년대생은 여러 겹의 얼굴을 가진 세대다. 민생과 기회의 문제에 예민하되, 진보 담론에는 거부감이 적고, 거대 서사에는 반감을 가졌다. 80년대생들은 한때 ‘진보 세대’라고 불릴 만큼 민주당과 정의당 지지 성향이 강했던 집단이었다. 그런데 2022년 3월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를 찍으며, 민주당의 재집권을 막았다. 그만큼 30대 사이에 누적된 반감이 컸다는 방증이다. 그것은 사다리 올라타듯 자산을 확보할 준비를 하던 30대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직격탄을 맞았다. 자연히 집권당인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특히 삼미남(30대 미혼 남성)은 집값 급등 탓에 결혼까지 포기해야 했다. 이들은 IMF 외환위기보다 더 힘든 시기를 보냈다.
1980년대생은 영끌 세대이자, 빚투 세대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하고, 빚까지 내서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그 영끌의 후폭풍으로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았다. 더구나 지금은 ‘장기 인플레이션’의 시대다. 인플레이션의 일상화는 시장의 불안정을 뜻한다. 30대는 시장의 상황을 주시하면서 적절한 대응책이 무엇인지를 눈을 부릅뜬 채 찾아내야 하는 ‘피로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80년대생은 가장 재수 없는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이들은 국가가 자신들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월급과는 별개의 소득 창출 수단을 찾아야 하고, 당장의 매출이나 평판보다는 미래의 성장 가능성이 훨씬 큰 직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제 구조와 환경과 정책이 제공하는 경제적 사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재석의 『세습 자본주의 세대』는 1980년대생들이 경험한 한국 자본주의의 축복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80년대생은 사다리를 잃은 세대, 결혼을 못하는 세대, 결혼과 부동산 시장의 패자 등으로 불리며, 한국 자본주의의 민낯을 처절하게 경험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꿈꾸는 대로 살다간 망한다는 지혜를 체득했으며, 부동산 정책 실패의 쓴맛을 보았다. 이들은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것을 성인이 되고 나서 깨달았다. 이들에게는 사다리 한 단계를 올라가느냐 마냐가 중요한데, 사다리가 놓인 그 땅 자체가 정글이 되었다. 부동산 자산을 얻을 수 없는 절망감이 이들을 감쌌다. 부동산 자산 증식의 꿈은 속절없이 바스러졌다. 한국 경제는 더는 성장하지 않을 것이며,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조건의 그림자는 오랫동안 짙게 드리울 것이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1986년생 김예슬은 2010년에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이고 자퇴를 선언했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대학생들은 학벌, 학점, 외국어, 자격증 등 스펙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만성적 불안감이 청춘의 일상을 잠식해갔던 시절이었다. 특히 이때부터 자소서가 취업 전선의 총아로 떠올랐고, 차별화된 이야기를 갖춰야 한다는 부담감이 취준생들을 짓눌렀다. 80년대생들은 왜 자소서 내용을 채우기 위해 고난을 마다하고, 돈을 주고 자소서를 사면서까지 취업 전선에 나섰을까? 기업에 들어가야 ‘성공’이라는 사고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80년대생 앞에는 일자리가 없던 게 아니다. 그들이 기대하는, 그리고 꼭 들어가고 싶은 ‘성 안의 일자리’, 즉 대기업과 공기업 정규직이 적었을 뿐이다. 2000년대 학번들이 너도나도 경영학 복수전공에 몰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07년 우석훈과 박권일은 평균임금을 외피 삼아 세대 개념을 잉태한 책인 『88만원 세대』를 출간했다. 2007년 비정규직 평균임금인 119만 원에 성인들에 대한 20대의 평균임금 비율 74퍼센트를 곱해 나온 숫자가 88만 원이었다. 우석훈과 박권일은 20대(1980년대생)의 상위 5퍼센트만이 한국전력, 삼성전자, 5급 사무관 이상의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평균임금 88만 원 정도를 받는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 책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예견한 책이자, 경제성장이 막혀버린 한국 자본주의의 우울한 민낯을 까발렸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생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기압차가 만드는 치열한 소용돌이를 마주해야 했던 세대였다. 자율을 표방한 공교육의 대상이자 산업화한 사교육의 최대 고객층이었기 때문이다. 일명 ‘이해찬 세대’라고 불리는 1983~1985년생들은 “시험 안 봐도 하나만 잘하면 대학 간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온전한 의미에서 특기·적성 교육을 향유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특기와 적성을 만들어야 했다. 그와 동시에 1990년대 중후반부터 사교육 시장이 급속히 팽창했다. 이를테면 80년대생은 ‘사교육 네이티브’였다. 그렇게 80년대생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대학 진학률이 높았던 세대가 되었다. 한편에서는 ‘이해찬주의’의 ‘무시험’이라는 단어를 들었고, 또 한편에서는 ‘손주은주의’의 “수능 만점에 도전하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것이야말로 자율의 배신이었다.
결혼과 부동산 시장의 패자, 사다리를 잃은 세대
주거 사다리는 자산 증식의 사다리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미덕은, 이 사다리를 탈 기회가 출신·학벌·명예·인맥과 상관없이 꽤 많은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제 노동으로 모은 종잣돈만으로 계층 이동에 성공할 수 없다. 즉, 월급을 모아 안정된 주거를 확보하는 게 불가능하다. 1980년대생은 빚을 낼 권리도 없어 무력했다. 세습이 아니고서는 사다리를 올라설 기회를 잡지 못한다. 이제 세습 자본주의의 막이 올랐다. ‘더 고생하면 더 나은 집에 살 것’이라는 한국 자본주의의 서사는 파편처럼 부서졌다. 30대에게도 ‘내 집’은 넘볼 수 없는 세계였다. 부동산 세습은 한 세대 내에서도 소수의 전유물일 뿐이다. 다시 말해 세습을 경유하지 않고 내 명의의 아파트에 살기 어렵다. 불행히도 한국 사회는 세습이 아니고는 피라미드 위로 가기 어려운 곳이 되어가고 있다.
사다리를 잃은 30대는 결혼도 포기하는 ‘결혼 불능 세대’가 되었다. 이들은 ‘혼자가 편해서, 집값이 너무 올라서, 취업난 때문에, 배우자를 찾지 못해서’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30대 남성은 취업과 부동산 등 경제적 제약 상황에 더 민감했다. 30대 남성의 미혼율과 실업률은 서로 연동되어 있다. 실업, 부동산 자산 불평등, 결혼 불능 문제는 서로 얽히고 설켜 있는 것이다. 2022년 3월 대선에서 30대 남성은 30대 여성에 비해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비율이 높았는데, 이는 부동산 정책 실패가 가장 컸다. 그리고 윤석열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재명 혹은 민주당의 패배를 위해 투표한 비율이 ‘삼미남’에서 가장 도드라졌다. 이것은 부동산 자산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투표라는 행동으로 나타난 결과다. 30대 남성들이 ‘정치적 변심’을 한 결정적인 이유다.
1980년대생은 진보 성향이 분명히 강했다. 환경이나 인권, 소수자 이슈에 관심이 많았다. 또 대학 시절부터 북한 문제에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보다 보수적이었으나, 비정규직 등 경제 이슈에 대해서는 진보 성향이 강했으며, 복지에 관해선 양대 정당의 노선보다도 전향적인 인식을 가졌다. 또 민주화의 성취를 높게 평가했다. 그것은 진보 논객이 전성기를 구가한 시기라는 점과도 맞물리는 현상이었다. 2000년대는 사상의 자유시장이 완연히 열린 시기였다. 학생회나 운동권에 별반 관심이 없던 대학생들에게도 진보 논객들의 담론이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끼쳤다. 더구나 진보 논객들의 도서는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는 진보 논객들이 대학생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탈(脫)민주당 양상이 나타났다. 1980년대생의 목표는 명확했다. 이들은 투표를 통해 집권세력에 분명하게 각을 세웠다.
‘비정규직 시대’의 그늘
1980년대생은 ‘비정규직 공화국’의 출발점에 선 세대였다. 그런데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분절된 시장, 즉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토양을 다진 건 바로 노무현 정부였다.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을 보호해야 한다며 2007년 일명 ‘비정규직보호법’을 시행했지만, 2년마다 해고가 잇따랐다. 1980년대생이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할 시점부터 비정규직 규모가 급증했다. 국내 비정규직 규모는 2003년 462만 명에서 2004년 540만 명으로 급증했다. 2005년과 2006년에도 각각 546만 명, 2007년에는 573만 명 등 꾸준히 상승했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2년 뒤 578만 명으로 늘더니 2011년에는 605만 명으로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2012년 595만 명으로 잠깐 주춤하더니 2015년에는 630만 명, 2021년에는 815만 명으로 폭증했다.
‘일자리는 당연히 정규직’이라는 앞선 세대의 상식은 사라졌다. 신자유주의라는 단어가 삶의 복판으로 가시처럼 틈입한 시절이었고, 약탈적 금융이라는 단어가 공론장의 한편에서 출몰을 거듭하는 때였다. 사회생활의 첫발을 잘못 떼면 금세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에 휩싸인 시대였다. 1990년대생도 비정규직의 그늘을 물려받았다. 현재 한국은 비정규직에 관한 한 전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국가다. 그 시절 1980년대생이 좋아한 노무현이 ‘비정규직 시대’에 불을 질렀으니 이 얼마나 얄궂은 운명인가? 1980년대생은 노동시장의 출발선부터 보편적 고용 형태의 하나로 비정규직을 경험한 첫 번째 세대였다.
1980년대생이 복지에 관해 가장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비정규직의 경험에서 비롯했다. 노동시장이 그들의 삶 곳곳에 남긴 그늘이 양극화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발전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이 혹은 친구가, 가족이, 이름 모를 온라인상의 누군가가 겪은 비정규직의 경험을 애달피 여긴 사람들의 마음이 투영된 것이다. 2010년대 초 정치권을 휩쓴 ‘보편적 복지’ 열풍에서 가장 강력한 지지층은 당시의 20대, 그러니까 1980년대생이었다. 그렇다면 1980년대생 앞에 가시적인 거악은 누구인가? 저성장 시대를 상대로 싸울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아니면 비정규직을 철폐하라고 머리띠라도 둘러야 하는가? 적어도 사회가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버틸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최소한 도태되지 않을 만큼의 인프라는 구축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승자독식 사회의 우울한 민낯
1980년대생은 등록금 1,000만 원 시대에 대학에 다녔다. 등록금 인상률이 물가상승률을 압도했다. 교육 양극화뿐만 아니라 부동산 자산 불평등이 심화해서 각자도생해야 했다. 또 한편으로 1980년대생이 살아온 한국 사회는 기회가 줄어든 사회다. 기회가 줄어든 시장은 전장이다.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전사가 되어야 했다. 한 번 불리한 길에 들어서면 반전의 계기를 찾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패자 부활전이 없는 사회다. 말 그대로 승자독식 사회다. 1980년대생들은 그렇게 눈물겨운 ‘사다리 올라타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생이 전반적으로 진보에 가깝다는 건 진실에 부합한다.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시위를 하고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의 형에게 치를 떨었다. 전직 대통령의 비선 실세에 분노했고, 전직 법무부 장관의 위선을 조롱했으며, 부동산 시장의 불평등에 화를 냈다. 30대는 조국 사태 이후로 민주당에 정나미가 떨어졌고, 특권층 검사들이 주도하는 윤석열 정부에 희망을 보지 못한다. 30대들의 삶은 눈물마저도 메말라 버릴 듯한 꽉 막힌 현실이다. 거기에 더딘 경제성장에다 기계화·자동화까지 겹쳐 일자리는 갈수록 줄고 있다. 1980년대생과 1990년대생, 아마도 높은 확률로 2000년대생까지 직면할 현실이다. 1980년대생이 노동시장에서 느낀 공포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스펙 시대를 건너온 1980년대생은 “단군 이래 가장 근면 성실한 세대”다. 1980년대생은 이기적인 세대거나 권리만 주창하는 세대가 아니다. 이들은 제대로 먹고살기 위해 요구하는 것이다. 투자에도 적극적이고 부업에도 두려움 없이 뛰어들면서 ‘갓생’의 삶을 산다. 이것이 사다리를 잃은 세대 혹은 생존주의 세대가 사는 법이다. 이들은 “최선을 다해 삶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단지 이들에게 열린 길은 오므린 듯 좁았을 뿐이다. 이제 한국 사회에는 사다리가 없다.
“민생과 경제 이슈에는 예민하고, 거대 서사에는 반감을 가진 세대!”
“산업화 이후 풍요 속에서 태어났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영끌족이 된 세대!”
1980년대생은 뉴밀레니엄의 팡파르 속에 성인이 된 세대다. 이들은 G세대와 N세대로 불리며, 찬란하고 화려한 인생이 펼쳐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예감은 정작 정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발랄보다는 꾸역꾸역 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청춘을 보냈고, 화려하기보다는 비루했다. 80년대생들은 산업화 이후의 풍요 속에서 태어나 큰 꿈을 펼치라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막상 성인이 되자 저성장에 적응하라는 훈계를 들어야 했다. 20대 때는 고시원 인생, 30대 때는 월세 인생, 급기야는 울며 겨자 먹기로 영끌족이 된 세대다. 80년대생들에게는 낭만과 불안과 좌절이 순환 운동하듯 반복되었고, 어제는 즐거웠고 오늘은 고달팠으며 내일은 어떤 날이 될지 모를 그런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세상에 발을 들이기도 전부터 숨죽여 사는 법을 배웠다.
1980년대생은 여러 겹의 얼굴을 가진 세대다. 민생과 기회의 문제에 예민하되, 진보 담론에는 거부감이 적고, 거대 서사에는 반감을 가졌다. 80년대생들은 한때 ‘진보 세대’라고 불릴 만큼 민주당과 정의당 지지 성향이 강했던 집단이었다. 그런데 2022년 3월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를 찍으며, 민주당의 재집권을 막았다. 그만큼 30대 사이에 누적된 반감이 컸다는 방증이다. 그것은 사다리 올라타듯 자산을 확보할 준비를 하던 30대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직격탄을 맞았다. 자연히 집권당인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특히 삼미남(30대 미혼 남성)은 집값 급등 탓에 결혼까지 포기해야 했다. 이들은 IMF 외환위기보다 더 힘든 시기를 보냈다.
1980년대생은 영끌 세대이자, 빚투 세대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하고, 빚까지 내서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그 영끌의 후폭풍으로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았다. 더구나 지금은 ‘장기 인플레이션’의 시대다. 인플레이션의 일상화는 시장의 불안정을 뜻한다. 30대는 시장의 상황을 주시하면서 적절한 대응책이 무엇인지를 눈을 부릅뜬 채 찾아내야 하는 ‘피로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80년대생은 가장 재수 없는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이들은 국가가 자신들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월급과는 별개의 소득 창출 수단을 찾아야 하고, 당장의 매출이나 평판보다는 미래의 성장 가능성이 훨씬 큰 직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제 구조와 환경과 정책이 제공하는 경제적 사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재석의 『세습 자본주의 세대』는 1980년대생들이 경험한 한국 자본주의의 축복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80년대생은 사다리를 잃은 세대, 결혼을 못하는 세대, 결혼과 부동산 시장의 패자 등으로 불리며, 한국 자본주의의 민낯을 처절하게 경험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꿈꾸는 대로 살다간 망한다는 지혜를 체득했으며, 부동산 정책 실패의 쓴맛을 보았다. 이들은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것을 성인이 되고 나서 깨달았다. 이들에게는 사다리 한 단계를 올라가느냐 마냐가 중요한데, 사다리가 놓인 그 땅 자체가 정글이 되었다. 부동산 자산을 얻을 수 없는 절망감이 이들을 감쌌다. 부동산 자산 증식의 꿈은 속절없이 바스러졌다. 한국 경제는 더는 성장하지 않을 것이며,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조건의 그림자는 오랫동안 짙게 드리울 것이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1986년생 김예슬은 2010년에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이고 자퇴를 선언했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대학생들은 학벌, 학점, 외국어, 자격증 등 스펙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만성적 불안감이 청춘의 일상을 잠식해갔던 시절이었다. 특히 이때부터 자소서가 취업 전선의 총아로 떠올랐고, 차별화된 이야기를 갖춰야 한다는 부담감이 취준생들을 짓눌렀다. 80년대생들은 왜 자소서 내용을 채우기 위해 고난을 마다하고, 돈을 주고 자소서를 사면서까지 취업 전선에 나섰을까? 기업에 들어가야 ‘성공’이라는 사고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80년대생 앞에는 일자리가 없던 게 아니다. 그들이 기대하는, 그리고 꼭 들어가고 싶은 ‘성 안의 일자리’, 즉 대기업과 공기업 정규직이 적었을 뿐이다. 2000년대 학번들이 너도나도 경영학 복수전공에 몰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07년 우석훈과 박권일은 평균임금을 외피 삼아 세대 개념을 잉태한 책인 『88만원 세대』를 출간했다. 2007년 비정규직 평균임금인 119만 원에 성인들에 대한 20대의 평균임금 비율 74퍼센트를 곱해 나온 숫자가 88만 원이었다. 우석훈과 박권일은 20대(1980년대생)의 상위 5퍼센트만이 한국전력, 삼성전자, 5급 사무관 이상의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평균임금 88만 원 정도를 받는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 책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예견한 책이자, 경제성장이 막혀버린 한국 자본주의의 우울한 민낯을 까발렸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생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기압차가 만드는 치열한 소용돌이를 마주해야 했던 세대였다. 자율을 표방한 공교육의 대상이자 산업화한 사교육의 최대 고객층이었기 때문이다. 일명 ‘이해찬 세대’라고 불리는 1983~1985년생들은 “시험 안 봐도 하나만 잘하면 대학 간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온전한 의미에서 특기·적성 교육을 향유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특기와 적성을 만들어야 했다. 그와 동시에 1990년대 중후반부터 사교육 시장이 급속히 팽창했다. 이를테면 80년대생은 ‘사교육 네이티브’였다. 그렇게 80년대생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대학 진학률이 높았던 세대가 되었다. 한편에서는 ‘이해찬주의’의 ‘무시험’이라는 단어를 들었고, 또 한편에서는 ‘손주은주의’의 “수능 만점에 도전하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것이야말로 자율의 배신이었다.
결혼과 부동산 시장의 패자, 사다리를 잃은 세대
주거 사다리는 자산 증식의 사다리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미덕은, 이 사다리를 탈 기회가 출신·학벌·명예·인맥과 상관없이 꽤 많은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제 노동으로 모은 종잣돈만으로 계층 이동에 성공할 수 없다. 즉, 월급을 모아 안정된 주거를 확보하는 게 불가능하다. 1980년대생은 빚을 낼 권리도 없어 무력했다. 세습이 아니고서는 사다리를 올라설 기회를 잡지 못한다. 이제 세습 자본주의의 막이 올랐다. ‘더 고생하면 더 나은 집에 살 것’이라는 한국 자본주의의 서사는 파편처럼 부서졌다. 30대에게도 ‘내 집’은 넘볼 수 없는 세계였다. 부동산 세습은 한 세대 내에서도 소수의 전유물일 뿐이다. 다시 말해 세습을 경유하지 않고 내 명의의 아파트에 살기 어렵다. 불행히도 한국 사회는 세습이 아니고는 피라미드 위로 가기 어려운 곳이 되어가고 있다.
사다리를 잃은 30대는 결혼도 포기하는 ‘결혼 불능 세대’가 되었다. 이들은 ‘혼자가 편해서, 집값이 너무 올라서, 취업난 때문에, 배우자를 찾지 못해서’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30대 남성은 취업과 부동산 등 경제적 제약 상황에 더 민감했다. 30대 남성의 미혼율과 실업률은 서로 연동되어 있다. 실업, 부동산 자산 불평등, 결혼 불능 문제는 서로 얽히고 설켜 있는 것이다. 2022년 3월 대선에서 30대 남성은 30대 여성에 비해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비율이 높았는데, 이는 부동산 정책 실패가 가장 컸다. 그리고 윤석열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재명 혹은 민주당의 패배를 위해 투표한 비율이 ‘삼미남’에서 가장 도드라졌다. 이것은 부동산 자산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투표라는 행동으로 나타난 결과다. 30대 남성들이 ‘정치적 변심’을 한 결정적인 이유다.
1980년대생은 진보 성향이 분명히 강했다. 환경이나 인권, 소수자 이슈에 관심이 많았다. 또 대학 시절부터 북한 문제에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보다 보수적이었으나, 비정규직 등 경제 이슈에 대해서는 진보 성향이 강했으며, 복지에 관해선 양대 정당의 노선보다도 전향적인 인식을 가졌다. 또 민주화의 성취를 높게 평가했다. 그것은 진보 논객이 전성기를 구가한 시기라는 점과도 맞물리는 현상이었다. 2000년대는 사상의 자유시장이 완연히 열린 시기였다. 학생회나 운동권에 별반 관심이 없던 대학생들에게도 진보 논객들의 담론이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끼쳤다. 더구나 진보 논객들의 도서는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는 진보 논객들이 대학생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탈(脫)민주당 양상이 나타났다. 1980년대생의 목표는 명확했다. 이들은 투표를 통해 집권세력에 분명하게 각을 세웠다.
‘비정규직 시대’의 그늘
1980년대생은 ‘비정규직 공화국’의 출발점에 선 세대였다. 그런데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분절된 시장, 즉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토양을 다진 건 바로 노무현 정부였다.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을 보호해야 한다며 2007년 일명 ‘비정규직보호법’을 시행했지만, 2년마다 해고가 잇따랐다. 1980년대생이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할 시점부터 비정규직 규모가 급증했다. 국내 비정규직 규모는 2003년 462만 명에서 2004년 540만 명으로 급증했다. 2005년과 2006년에도 각각 546만 명, 2007년에는 573만 명 등 꾸준히 상승했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2년 뒤 578만 명으로 늘더니 2011년에는 605만 명으로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2012년 595만 명으로 잠깐 주춤하더니 2015년에는 630만 명, 2021년에는 815만 명으로 폭증했다.
‘일자리는 당연히 정규직’이라는 앞선 세대의 상식은 사라졌다. 신자유주의라는 단어가 삶의 복판으로 가시처럼 틈입한 시절이었고, 약탈적 금융이라는 단어가 공론장의 한편에서 출몰을 거듭하는 때였다. 사회생활의 첫발을 잘못 떼면 금세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에 휩싸인 시대였다. 1990년대생도 비정규직의 그늘을 물려받았다. 현재 한국은 비정규직에 관한 한 전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국가다. 그 시절 1980년대생이 좋아한 노무현이 ‘비정규직 시대’에 불을 질렀으니 이 얼마나 얄궂은 운명인가? 1980년대생은 노동시장의 출발선부터 보편적 고용 형태의 하나로 비정규직을 경험한 첫 번째 세대였다.
1980년대생이 복지에 관해 가장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비정규직의 경험에서 비롯했다. 노동시장이 그들의 삶 곳곳에 남긴 그늘이 양극화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발전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이 혹은 친구가, 가족이, 이름 모를 온라인상의 누군가가 겪은 비정규직의 경험을 애달피 여긴 사람들의 마음이 투영된 것이다. 2010년대 초 정치권을 휩쓴 ‘보편적 복지’ 열풍에서 가장 강력한 지지층은 당시의 20대, 그러니까 1980년대생이었다. 그렇다면 1980년대생 앞에 가시적인 거악은 누구인가? 저성장 시대를 상대로 싸울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아니면 비정규직을 철폐하라고 머리띠라도 둘러야 하는가? 적어도 사회가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버틸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최소한 도태되지 않을 만큼의 인프라는 구축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승자독식 사회의 우울한 민낯
1980년대생은 등록금 1,000만 원 시대에 대학에 다녔다. 등록금 인상률이 물가상승률을 압도했다. 교육 양극화뿐만 아니라 부동산 자산 불평등이 심화해서 각자도생해야 했다. 또 한편으로 1980년대생이 살아온 한국 사회는 기회가 줄어든 사회다. 기회가 줄어든 시장은 전장이다.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전사가 되어야 했다. 한 번 불리한 길에 들어서면 반전의 계기를 찾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패자 부활전이 없는 사회다. 말 그대로 승자독식 사회다. 1980년대생들은 그렇게 눈물겨운 ‘사다리 올라타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생이 전반적으로 진보에 가깝다는 건 진실에 부합한다.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시위를 하고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의 형에게 치를 떨었다. 전직 대통령의 비선 실세에 분노했고, 전직 법무부 장관의 위선을 조롱했으며, 부동산 시장의 불평등에 화를 냈다. 30대는 조국 사태 이후로 민주당에 정나미가 떨어졌고, 특권층 검사들이 주도하는 윤석열 정부에 희망을 보지 못한다. 30대들의 삶은 눈물마저도 메말라 버릴 듯한 꽉 막힌 현실이다. 거기에 더딘 경제성장에다 기계화·자동화까지 겹쳐 일자리는 갈수록 줄고 있다. 1980년대생과 1990년대생, 아마도 높은 확률로 2000년대생까지 직면할 현실이다. 1980년대생이 노동시장에서 느낀 공포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스펙 시대를 건너온 1980년대생은 “단군 이래 가장 근면 성실한 세대”다. 1980년대생은 이기적인 세대거나 권리만 주창하는 세대가 아니다. 이들은 제대로 먹고살기 위해 요구하는 것이다. 투자에도 적극적이고 부업에도 두려움 없이 뛰어들면서 ‘갓생’의 삶을 산다. 이것이 사다리를 잃은 세대 혹은 생존주의 세대가 사는 법이다. 이들은 “최선을 다해 삶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단지 이들에게 열린 길은 오므린 듯 좁았을 뿐이다. 이제 한국 사회에는 사다리가 없다.
목차
추천사 ㆍ 006
프롤로그 : 80년대생의 축복과 고통 ㆍ 010
제1장 결혼과 부동산 시장의 패자
서른의 운명 ㆍ 024
나의 영끌 분투기 ㆍ 036
나는 SOLO ㆍ 050
갭 투자 세대 vs 임차인 세대 ㆍ 062
제2장 어쩌다 1980년대에 태어나
월세 인생, 고금리 인생 ㆍ 076
문화적 선진국의 첫 시민 ㆍ 088
우리의 월드, 월드컵과 싸이월드 ㆍ 100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슬램덩크가 있다 ㆍ 112
제3장 사다리를 잃은 세대
88만원 세대의 추억 ㆍ 126
입사의 이유 ㆍ 136
스펙에 질식당하다 ㆍ 148
87년생 대기업 과장의 이야기 ㆍ 160
제4장 진보 담론 우위의 시대
그 시절 우리가 뽑은 비운동권 ㆍ 174
진보 논객의 전성기 ㆍ 186
노무현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 ㆍ 200
제5장 1980년대생의 변심이 말해주는 것
세대 동맹의 균열 ㆍ 214
어떤 섭외 ㆍ 226
조희연의 제자, 윤석열의 지지자 ㆍ 238
제6장 가장 논쟁적인 능력주의
20대 남성을 사로잡은 어떤 30대 ㆍ 250
가장 정치적인 능력주의 ㆍ 264
이해찬과 손주은 사이의 혼란 ㆍ 276
제7장 너무 차갑지도, 지나치게 뜨겁지도 않은
정의롭되 정의롭지 않았다 ㆍ 290
우리 세대의 위선 ㆍ 302
꿈의 독재를 넘어 ㆍ 316
에필로그 : 사다리 올라타기 ㆍ 329
해제 ㆍ 333
주 ㆍ 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