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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00024323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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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2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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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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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 소개
학교폭력, 진정한 해결책은 없는가?
우리는 아이들의 ‘또래 집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친구 문제로 괴로워하는 아이를 이해하고 도와주고 싶은
이 세상의 모든 어른들에게 바치는 책!
또래 집단은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학교폭력도 결국 또래 집단의 힘을 선망하고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일으키는 것이다. 또래 집단에 대한 이해 없이,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학교폭력 해결책은 없다!
** 오랫동안 아이들의 친구 관계를 연구해온 아동심리학자이자《뉴욕 타임스》베스트셀러인《아들 심리학 Raising Cain》의 저자 마이클 톰슨 박사가 10여 년간 ‘아이들의 사회적 잔인성’을 주제로 수많은 워크숍과 세미나를 이끈 결과를 집대성한 책. 마이클 톰슨 박사 이외에 두 명의 연구자들이 협력하여 집필 기간 2년 동안 다시 80여 명을 인터뷰하면서 실제 사례 중심으로 쉽게 풀어 쓴, 통찰력 가득한 책.
지금 우리 사회에는 학교폭력이 화두다. 누구나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각 학교마다 단체마다 이런저런 대책 마련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학교폭력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는 여전히 ‘불량한 아이’가 일방적으로 ‘착한 아이’를 괴롭힌다는 거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 속으로 들어가보면 아이들 사이의 복잡한 심리적 관계와 만나게 되고, 그 모든 관계의 바탕에는 어른들에게는 거의 생소한 ‘또래 집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이들의 또래 문화, 그 또래 집단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학교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아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그 모든 문제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아이들의 친구관계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아동심리학자이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아들 심리학 Raising Cain》의 저자인 마이클 톰슨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학교폭력이 화두다. 무슨 돌림병처럼 이제껏 없던 현상이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니건만, 지난 12월에 연이어 터진 자살 사건은 그동안 애써 눈을 감고 있던 우리 사회의 눈을 번쩍 뜨게 했다.
각 기관마다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형사처벌 대상 연령을 낮춘다느니, 스쿨 폴리스 제도를 확대한다느니, 학교폭력 핫라인을 개설한다느니 하는 물리적 해결책이 가장 먼저 나오고, 그간 학교폭력 문제에 무심했음을 반성한 전교조가 학교폭력을 학생인권의 문제로 보고 장기적으로 학교혁신운동을 결의했으며, 서울시교육청은 교사에 초점을 맞춰 교원감정코칭 연수를 실시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학교폭력 문제는 ‘이긴 자만이 살아남는다’고 가르친 우리 교육환경에서 필연적으로 잉태된 괴물이고 따라서 근본적 해법은 사회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지만, “입시경쟁이나 신자유주의에 따른 폭력의 재생산 등 학교폭력에 대한 거시적인 접근도 필요하지만, 당장 학교 현장에서 폭력이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지침이 필요하다”는 박종철 전교조 학생생활국장의 말처럼, 위의 물리적 해결책, 장기적 혁신운동, 교사 학부모 대상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학교폭력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그저 아이들을 가해자와 피해자 둘로 양단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수준에서 해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교원 연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학교폭력은 이미 교사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르렀지만, 그럼에도 교사 교육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단지 교사의 공감능력을 키워주는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드러난 학교폭력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담기에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에도 턱없이 부족한 처방에 불과하다. 학교폭력에 대한 대안을 내놓기는커녕 책임을 두려워하는 현실에서는 학교폭력에 대한 적절한 처방이 나올 리가 없다.
아니, 해결책에 앞서서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학교폭력은 개인의 심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구조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현실에서 학교폭력은 엄석대 같은 ‘불량배’나 ‘폭력배’ 한두 명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학교폭력의 주체는 몇몇 개인이 아닌 ‘또래 집단’이지만, ‘또래 집단’이라는 것은 외연이 분명하게 정해져 우리 눈앞에 보이는 실체가 아니고 아이들의 ‘관계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유동적이고 무의식적이라서, 아이들의 집 밖 사회생활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부모들은 물론, 가해자인 당사자 아이들도, 교사들도, 그 어느 누구도 일어난 사건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하기 힘들다. 그래서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고 하는 것이고, 가해자 아이들은 ‘그냥 장난이었어요’라고만 할 뿐이며, 교사들은 드러난 가해자를 처벌하거나 피해자 부모와 합의하는 학교 당국의 처신에 별 이의 없이 따르는 것이다. 또 그래서 학교폭력 하면 사람들은 마치 폭동을 진압하듯 경찰력을 찾게 되고 ‘강력한 처벌’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학교폭력이 아이들 간의 구조의 문제라는 것은 그동안 소수자의 목소리였다. 대표적으로 지난 10여 년 동안 학교폭력을 연구해온 현직 교사들의 모임인 ‘따돌림사회연구모임’만이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런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을 해왔고, 그 연구 결실인 《이 선생의 학교 폭력 평정기》는 엄석대가 없는 교실에서 일상에 깊이 뿌리 내린 학교폭력의 실상을 처음으로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기 나오는 교실처럼 현실의 학교폭력은 소리 없이, 교사가 어찌 손 쓸 도리 없이, 학생들의 웃는 얼굴 뒤에서 섬뜩하게 펼쳐진다.
이 책《아이들의 숨겨진 삶》은 또래 집단의 문화와 구조의 속성을 통해 학교폭력의 본질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아이들의 불미스러운 폭력 사건의 배후에 ‘또래 집단’이 있음을 밝히고, 그 또래 집단의 생리를 사회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선천적으로 혼자 있기를 즐기는 아이가 아니라면, 모든 아이들은 또래 집단에 들어가기를 열망한다. 또래 집단은 친한 친구 두세 명이 어울려 다니는 것과는 다르다.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또래 집단은 인기 있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추종하거나 부러워하는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공간 내에서 ‘또래 문화’를 주도한다. 이른바 ‘멋진 것’으로 통용되는 것, ‘쿨’함, 재치 있게 받아치는 말, 남을 제압하는 욕설, 빈티지 풍 또는 힙합 풍의 옷, 이 모든 언어와 태도, 패션에 대한 표준을 제공하는 것이 또래 집단이다. 아이들은 기꺼이 이 표준에 자신을 맞춤으로써 또래 집단의 일원임을 확인받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설왕설래되는 ‘노스페이스 점퍼’ 현상이 단적으로 이것을 보여준다.
또래 집단은 모든 아이들을 집단의 ‘안’과 ‘밖’으로 나눈다. 집단에 받아들여진 아이들과 거부된 아이들. 또한 집단은 받아들여진 아이들 내에서도 서열을 나눈다. 인기 있는 ‘상위 계급’ 아이들과 대부분의 평범한 ‘하위 계급’ 아이들. 또한 집단은 집단 내의 모든 아이들에게 역할을 부여한다. 리더가 있는가 하면 리더의 수족처럼 구는 아이도 있고, 남을 잘 웃기는 분위기 메이커가 있는가 하면 존재감이 없는 아이도 있다. 안, 밖, 위, 아래, 각자의 역할…… 이 모든 것은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리더 한 명이, 인기 있는 몇몇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한 아이를 따돌리자는 결정이 한 아이에 의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가장 배타적 집단조차도 어떤 아이를 따돌릴지를 투표로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수천 건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쌓여 이루어지며 각각의 사건들마다 아이들의 수다스러운 토의가 따른다. “그 애가 그런 짓 하는 거 봤니?” “그 애가 하는 얘기 들었어?” “걔 정말 얼간이 아니니?” (본문 213쪽)
이것이 바로 집단이 움직이는 생리다. 수천 수만 건의 작은 사건들, 수천 수만 번 오고가는 대화들, 서로 교환하는 친근한 눈빛, 부러운 표정, 두려운 떨림…… 집단의 모든 결정은 눈에 보이지 않고 결코 기억되지 못하는 이런 움직임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누구를 받아들일지도, 누구를 따돌릴지도, 누구를 상위 계급으로 떠받들고 부러워할지도, 누구에게 리더를 맡길지도, 무엇을 입어야 멋있을지도. 노스페이스 점퍼를 누가 처음 입기 시작했는가? 그 유행을 누가 퍼뜨렸는가? 그건 아무도 모른다. 자기 주장이 없는 소극적이고 얌전한 아이들만 모아놓으면 그 안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리더가 생기지 않는가.
그래서 아이들은 혼자 있을 때와 집단 속에서 어울릴 때, 태도와 행동이 달라진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또래 집단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우리 아이의 ‘친구들’ ‘반 아이들’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부모가 또래와 함께 있는 자기 아이를 보더라도, 부모가 보고 있는 한 아이는 절대로 또래의 일원이 아니다.
집단에 대한 결속력은 때로 아이들을 파괴적인 행동으로 몰아간다. 집단에 인정받고 싶은 욕망, 또래들에게 비웃음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혼자 있다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무모해지고 판단력이 마비된다.
집단 앞에서는 아이들의 도덕심과 개인적 책임감이 쪼그라드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어린이들, 청소년들은 또래와 함께 있을 때는 평소와 행동이 달라진다. 아이들이 함께 있을 때는 혼자 있을 때보다 남의 감정을 헤아리는 일에 더 둔감해진다. (본문 190-191쪽)
아이들은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집단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그 집단에 속한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기꺼이 하려 들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즉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배타적 집단의 일부가 되는 것이 나쁘더라도, 혼자 동그마니 앉아서 점심을 먹는 것보다 차라리 그 편이 낫다. (본문 280쪽)
저자가 말하는 ‘사회적 잔인성’, 즉 아이들의 도를 넘는 잔인한 행동은 여기서 나온다. 끊임없이 뒤에서 수군거리기, 때리기, 따돌리기, 무슨무슨 셔틀, 가족 사진에 대고 욕하게 하기, 그리고 결국 사고로 이어지는 잔혹한 ‘신참 신고식’ 들. 이 모든 행동은 아이들 배후에 집단이 없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학교폭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러한 또래 집단의 생리부터 이해해야 한다. 아이들에 대한 이러한 사회심리학적 이해 없이는 때린 아이는 가해자이고 맞은 아이는 피해자일 뿐, 피해자가 다시 자기보다 약한 아이에게 가해자가 되는 구조를 알 수도 없고, 유난히 나대는 아이가 있을지언정 아이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이는 ‘나쁜’ 아이는 없다는 사실도 깨우치지 못한다. 모든 것을 특정인의 잘못이 아니라 관계의 문제로 바라볼 때, 학교폭력을 해결할 올바른 방법이 생긴다. 학교는 아이들의 ‘나쁜 관계’를 끊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주는 쪽으로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왕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짝’을 마련해주고, 배타적 집단이 되지 않도록 아이들의 소속 클럽이나 자리 배치를 자꾸 바꿔서 유동적인 집단이 되도록 하고, 왕따 아이와 인기 있는 아이가 함께 이룰 수 있는 공통의 과제를 내주고, 따돌림 받는 아이를 인기 있는 상급생과 맺어줘 보호해주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의 방법을 강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 11장 <학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는 총기난사 사건부터 이미 학교폭력을 겪을 대로 겪은 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 프로그램들이 나와 있다. 학교폭력 예방과 대책의 불모지인 우리 학교에서 실정에 맞게 참조할 만한 것들이다.
부모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마이클 톰슨 박사는 이 책 전체에 걸쳐 부모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 부모들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지금껏 학교폭력에 가장 둔감했던 어른이 바로 부모들이었다는 아이러니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아이들은 절대로 부모의 개입을 바라지 않는다. 비록 또래 집단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그래도 또래 집단에 소속되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모순된 심리를 부모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부모가 사실을 알면, 아이는 엄마한테나 일러바치는 어린애라는 조롱까지 보태 배로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에게 이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강경하게 그리고 두려움에 차서 말한다.
“그러면 사태가 더 악화될 뿐이에요.”
아이는 흐느끼며 이렇게 말한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대개 맞는 말이다. (본문 203쪽)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이클 톰슨 박사는 부모의 ‘안정된 균형감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괴로움에 떨 때,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고 안정되게, 어른스러운 태도로 아이를 대하면 그것 자체가 아이에게 큰 힘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 역시 아이 뒤에 있는 집단의 힘을 통찰하고 있어야 한다. 무엇이 아이를 괴롭히는지 그 정체를 통찰할 줄 알면 분노나 증오로 뒤범벅된 감정이 아니라 안정된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고,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다.(5쪽, 37-38쪽) 그리고 부모의 구체적인 역할에 관해서는 12장 <부모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역시 자세하게 쓰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의 ‘또래 집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친구 문제로 괴로워하는 아이를 이해하고 도와주고 싶은
이 세상의 모든 어른들에게 바치는 책!
또래 집단은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학교폭력도 결국 또래 집단의 힘을 선망하고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일으키는 것이다. 또래 집단에 대한 이해 없이,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학교폭력 해결책은 없다!
** 오랫동안 아이들의 친구 관계를 연구해온 아동심리학자이자《뉴욕 타임스》베스트셀러인《아들 심리학 Raising Cain》의 저자 마이클 톰슨 박사가 10여 년간 ‘아이들의 사회적 잔인성’을 주제로 수많은 워크숍과 세미나를 이끈 결과를 집대성한 책. 마이클 톰슨 박사 이외에 두 명의 연구자들이 협력하여 집필 기간 2년 동안 다시 80여 명을 인터뷰하면서 실제 사례 중심으로 쉽게 풀어 쓴, 통찰력 가득한 책.
지금 우리 사회에는 학교폭력이 화두다. 누구나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각 학교마다 단체마다 이런저런 대책 마련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학교폭력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는 여전히 ‘불량한 아이’가 일방적으로 ‘착한 아이’를 괴롭힌다는 거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 속으로 들어가보면 아이들 사이의 복잡한 심리적 관계와 만나게 되고, 그 모든 관계의 바탕에는 어른들에게는 거의 생소한 ‘또래 집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이들의 또래 문화, 그 또래 집단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학교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아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그 모든 문제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아이들의 친구관계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아동심리학자이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아들 심리학 Raising Cain》의 저자인 마이클 톰슨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학교폭력이 화두다. 무슨 돌림병처럼 이제껏 없던 현상이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니건만, 지난 12월에 연이어 터진 자살 사건은 그동안 애써 눈을 감고 있던 우리 사회의 눈을 번쩍 뜨게 했다.
각 기관마다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형사처벌 대상 연령을 낮춘다느니, 스쿨 폴리스 제도를 확대한다느니, 학교폭력 핫라인을 개설한다느니 하는 물리적 해결책이 가장 먼저 나오고, 그간 학교폭력 문제에 무심했음을 반성한 전교조가 학교폭력을 학생인권의 문제로 보고 장기적으로 학교혁신운동을 결의했으며, 서울시교육청은 교사에 초점을 맞춰 교원감정코칭 연수를 실시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학교폭력 문제는 ‘이긴 자만이 살아남는다’고 가르친 우리 교육환경에서 필연적으로 잉태된 괴물이고 따라서 근본적 해법은 사회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지만, “입시경쟁이나 신자유주의에 따른 폭력의 재생산 등 학교폭력에 대한 거시적인 접근도 필요하지만, 당장 학교 현장에서 폭력이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지침이 필요하다”는 박종철 전교조 학생생활국장의 말처럼, 위의 물리적 해결책, 장기적 혁신운동, 교사 학부모 대상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학교폭력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그저 아이들을 가해자와 피해자 둘로 양단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수준에서 해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교원 연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학교폭력은 이미 교사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르렀지만, 그럼에도 교사 교육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단지 교사의 공감능력을 키워주는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드러난 학교폭력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담기에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에도 턱없이 부족한 처방에 불과하다. 학교폭력에 대한 대안을 내놓기는커녕 책임을 두려워하는 현실에서는 학교폭력에 대한 적절한 처방이 나올 리가 없다.
아니, 해결책에 앞서서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학교폭력은 개인의 심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구조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현실에서 학교폭력은 엄석대 같은 ‘불량배’나 ‘폭력배’ 한두 명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학교폭력의 주체는 몇몇 개인이 아닌 ‘또래 집단’이지만, ‘또래 집단’이라는 것은 외연이 분명하게 정해져 우리 눈앞에 보이는 실체가 아니고 아이들의 ‘관계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유동적이고 무의식적이라서, 아이들의 집 밖 사회생활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부모들은 물론, 가해자인 당사자 아이들도, 교사들도, 그 어느 누구도 일어난 사건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하기 힘들다. 그래서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고 하는 것이고, 가해자 아이들은 ‘그냥 장난이었어요’라고만 할 뿐이며, 교사들은 드러난 가해자를 처벌하거나 피해자 부모와 합의하는 학교 당국의 처신에 별 이의 없이 따르는 것이다. 또 그래서 학교폭력 하면 사람들은 마치 폭동을 진압하듯 경찰력을 찾게 되고 ‘강력한 처벌’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학교폭력이 아이들 간의 구조의 문제라는 것은 그동안 소수자의 목소리였다. 대표적으로 지난 10여 년 동안 학교폭력을 연구해온 현직 교사들의 모임인 ‘따돌림사회연구모임’만이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런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을 해왔고, 그 연구 결실인 《이 선생의 학교 폭력 평정기》는 엄석대가 없는 교실에서 일상에 깊이 뿌리 내린 학교폭력의 실상을 처음으로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기 나오는 교실처럼 현실의 학교폭력은 소리 없이, 교사가 어찌 손 쓸 도리 없이, 학생들의 웃는 얼굴 뒤에서 섬뜩하게 펼쳐진다.
이 책《아이들의 숨겨진 삶》은 또래 집단의 문화와 구조의 속성을 통해 학교폭력의 본질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아이들의 불미스러운 폭력 사건의 배후에 ‘또래 집단’이 있음을 밝히고, 그 또래 집단의 생리를 사회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선천적으로 혼자 있기를 즐기는 아이가 아니라면, 모든 아이들은 또래 집단에 들어가기를 열망한다. 또래 집단은 친한 친구 두세 명이 어울려 다니는 것과는 다르다.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또래 집단은 인기 있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추종하거나 부러워하는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공간 내에서 ‘또래 문화’를 주도한다. 이른바 ‘멋진 것’으로 통용되는 것, ‘쿨’함, 재치 있게 받아치는 말, 남을 제압하는 욕설, 빈티지 풍 또는 힙합 풍의 옷, 이 모든 언어와 태도, 패션에 대한 표준을 제공하는 것이 또래 집단이다. 아이들은 기꺼이 이 표준에 자신을 맞춤으로써 또래 집단의 일원임을 확인받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설왕설래되는 ‘노스페이스 점퍼’ 현상이 단적으로 이것을 보여준다.
또래 집단은 모든 아이들을 집단의 ‘안’과 ‘밖’으로 나눈다. 집단에 받아들여진 아이들과 거부된 아이들. 또한 집단은 받아들여진 아이들 내에서도 서열을 나눈다. 인기 있는 ‘상위 계급’ 아이들과 대부분의 평범한 ‘하위 계급’ 아이들. 또한 집단은 집단 내의 모든 아이들에게 역할을 부여한다. 리더가 있는가 하면 리더의 수족처럼 구는 아이도 있고, 남을 잘 웃기는 분위기 메이커가 있는가 하면 존재감이 없는 아이도 있다. 안, 밖, 위, 아래, 각자의 역할…… 이 모든 것은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리더 한 명이, 인기 있는 몇몇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한 아이를 따돌리자는 결정이 한 아이에 의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가장 배타적 집단조차도 어떤 아이를 따돌릴지를 투표로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수천 건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쌓여 이루어지며 각각의 사건들마다 아이들의 수다스러운 토의가 따른다. “그 애가 그런 짓 하는 거 봤니?” “그 애가 하는 얘기 들었어?” “걔 정말 얼간이 아니니?” (본문 213쪽)
이것이 바로 집단이 움직이는 생리다. 수천 수만 건의 작은 사건들, 수천 수만 번 오고가는 대화들, 서로 교환하는 친근한 눈빛, 부러운 표정, 두려운 떨림…… 집단의 모든 결정은 눈에 보이지 않고 결코 기억되지 못하는 이런 움직임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누구를 받아들일지도, 누구를 따돌릴지도, 누구를 상위 계급으로 떠받들고 부러워할지도, 누구에게 리더를 맡길지도, 무엇을 입어야 멋있을지도. 노스페이스 점퍼를 누가 처음 입기 시작했는가? 그 유행을 누가 퍼뜨렸는가? 그건 아무도 모른다. 자기 주장이 없는 소극적이고 얌전한 아이들만 모아놓으면 그 안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리더가 생기지 않는가.
그래서 아이들은 혼자 있을 때와 집단 속에서 어울릴 때, 태도와 행동이 달라진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또래 집단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우리 아이의 ‘친구들’ ‘반 아이들’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부모가 또래와 함께 있는 자기 아이를 보더라도, 부모가 보고 있는 한 아이는 절대로 또래의 일원이 아니다.
집단에 대한 결속력은 때로 아이들을 파괴적인 행동으로 몰아간다. 집단에 인정받고 싶은 욕망, 또래들에게 비웃음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혼자 있다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무모해지고 판단력이 마비된다.
집단 앞에서는 아이들의 도덕심과 개인적 책임감이 쪼그라드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어린이들, 청소년들은 또래와 함께 있을 때는 평소와 행동이 달라진다. 아이들이 함께 있을 때는 혼자 있을 때보다 남의 감정을 헤아리는 일에 더 둔감해진다. (본문 190-191쪽)
아이들은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집단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그 집단에 속한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기꺼이 하려 들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즉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배타적 집단의 일부가 되는 것이 나쁘더라도, 혼자 동그마니 앉아서 점심을 먹는 것보다 차라리 그 편이 낫다. (본문 280쪽)
저자가 말하는 ‘사회적 잔인성’, 즉 아이들의 도를 넘는 잔인한 행동은 여기서 나온다. 끊임없이 뒤에서 수군거리기, 때리기, 따돌리기, 무슨무슨 셔틀, 가족 사진에 대고 욕하게 하기, 그리고 결국 사고로 이어지는 잔혹한 ‘신참 신고식’ 들. 이 모든 행동은 아이들 배후에 집단이 없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학교폭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러한 또래 집단의 생리부터 이해해야 한다. 아이들에 대한 이러한 사회심리학적 이해 없이는 때린 아이는 가해자이고 맞은 아이는 피해자일 뿐, 피해자가 다시 자기보다 약한 아이에게 가해자가 되는 구조를 알 수도 없고, 유난히 나대는 아이가 있을지언정 아이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이는 ‘나쁜’ 아이는 없다는 사실도 깨우치지 못한다. 모든 것을 특정인의 잘못이 아니라 관계의 문제로 바라볼 때, 학교폭력을 해결할 올바른 방법이 생긴다. 학교는 아이들의 ‘나쁜 관계’를 끊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주는 쪽으로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왕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짝’을 마련해주고, 배타적 집단이 되지 않도록 아이들의 소속 클럽이나 자리 배치를 자꾸 바꿔서 유동적인 집단이 되도록 하고, 왕따 아이와 인기 있는 아이가 함께 이룰 수 있는 공통의 과제를 내주고, 따돌림 받는 아이를 인기 있는 상급생과 맺어줘 보호해주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의 방법을 강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 11장 <학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는 총기난사 사건부터 이미 학교폭력을 겪을 대로 겪은 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 프로그램들이 나와 있다. 학교폭력 예방과 대책의 불모지인 우리 학교에서 실정에 맞게 참조할 만한 것들이다.
부모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마이클 톰슨 박사는 이 책 전체에 걸쳐 부모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 부모들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지금껏 학교폭력에 가장 둔감했던 어른이 바로 부모들이었다는 아이러니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아이들은 절대로 부모의 개입을 바라지 않는다. 비록 또래 집단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그래도 또래 집단에 소속되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모순된 심리를 부모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부모가 사실을 알면, 아이는 엄마한테나 일러바치는 어린애라는 조롱까지 보태 배로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에게 이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강경하게 그리고 두려움에 차서 말한다.
“그러면 사태가 더 악화될 뿐이에요.”
아이는 흐느끼며 이렇게 말한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대개 맞는 말이다. (본문 203쪽)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이클 톰슨 박사는 부모의 ‘안정된 균형감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괴로움에 떨 때,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고 안정되게, 어른스러운 태도로 아이를 대하면 그것 자체가 아이에게 큰 힘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 역시 아이 뒤에 있는 집단의 힘을 통찰하고 있어야 한다. 무엇이 아이를 괴롭히는지 그 정체를 통찰할 줄 알면 분노나 증오로 뒤범벅된 감정이 아니라 안정된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고,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다.(5쪽, 37-38쪽) 그리고 부모의 구체적인 역할에 관해서는 12장 <부모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역시 자세하게 쓰고 있다.
목차
목차
서문 아이들 집단을 움직이는 힘
1장 생일 파티에서 생긴 일 - 당신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2장 가정 - 어린 시절의 애착은 사회생활의 토대가 된다
3장 우정의 발달 단계 - 유아부터 청소년까지, 우정이 성장하는 여정
4장 단짝 - 친구는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준다
5장 정글 - 아이들의 삶에 미치는 집단의 힘
6장 나쁜 친구들 - 아이들의 사회적 잔인성
7장 우정과 배신 사이에서
- 친구들은 어떻게 우정에 금이 가고, 어떻게 배신하며, 어떻게 화해하는가?
8장 성 역할 게임 - ‘남자다움’ ‘여자다움’ 그리고 인기
9장 사랑 - 그 어리숙하고 친밀하면서도 위험한 십대들의 통과의례
10장 차이 끌어안기 -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아이들
11장 학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경쟁력보다, 아이들의 사회적 경험을 중시하는 학교
12장 부모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집 안의 아이들이 아닌 집 밖의 아이들, 그 사회적 삶을 생각하라